최근 수정 시각 : 2023-03-23 23:33:30

조얌전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악녀
조얌전 (귀인 조씨)

(김현주 분)
파일:조귀인.jpg
작위 숙원 → 소원 → 소용 → 귀인
1. 개요2. 작중 행적
2.1. 유년2.2. 입궁2.3. 승승장구2.4. 몰락
3. 평가

1. 개요

JTBC 주말 드라마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의 주인공. 조기의 서녀이며, 이름은 '얌전'이라는 설정. 그녀의 어머니 한옥은 아버지 조기에게 총애받는 첩이었는데, 화가 난 정실부인이 한옥을 멍석말이로 반 죽을 지경까지 패는 모습을 얌전이 목격하게 된다. 이에 얌전은 아버지인 조기를 찾아가 어머니를 구해달라고 애원하지만, 조기는 오히려 첩의 행실이 방자하면 정실부인이 나서서 가르치는 것이 당연하다며 그녀를 모른 척 한다. 이 일은 얌전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어, 평생 아버지를 혐오하고 중전 자리에 집착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1]

옹정황제의 여인견환연세란을 섞어놓은 듯한 인물. 처음에는 순수한 소녀였다가 어떤 계기로 흑화하여 파멸하는 주인공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김자점의 양녀로서 궁에 들어갔다는 설정이라 처음엔 김 소원, 김 소용이라 불렸으나, 귀인이 된 후부터는 다시 본명으로 돌아가 조씨로 불리고 있다.

2. 작중 행적

2.1. 유년

어려서 조기의 정실부인에게 어머니 한옥이 천대받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손 남혁과 혼인하고 싶었지만, 신분 차이 때문에 큰 반대에 부딪친다. 남혁의 이 되겠다며 남혁의 어머니 마음을 어느 정도 돌렸더니, 이젠 집안 때문에 김자점인조를 무너뜨릴 작정으로 궁으로 들일 여인으로 선택된다. 이때는 병자호란 직후의 시점이라 대부분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청나라에서 데려가 버렸기 때문에, 그나마 남은 여자들 중에서 얼굴도 되고 춤도 어느 정도 되는 얌전을 선택한 것이다.

그녀도 처음에는 거부했으나, 곧 운명을 받아들이고 임금의 후궁이 되기로 결심하며 남혁을 떠나버린다.

2.2. 입궁

입궁 첫 날, 인조는 총애하던 승은상궁 이씨의 처소를 찾고, 얌전은 그대로 소박맞아 김 내관이 족두리를 벗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인조가 얌전의 처소로 오고, 당차게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던 얌전은 고개를 돌려 인조를 보자마자 '자신은 임금을 노인으로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젊어 눈이 부신다'며 병자호란 이후 콤플렉스 덩어리로 지내던 인조의 마음을 녹인다.

결국 인조의 총애를 받게 되고 승은상궁 이씨는 뒷방 신세가 된다. 마침 중전의 자리가 공석이니 아들을 낳으면 중전의 자리를 주겠다는 인조의 말을 듣고, 아들을 낳고자 하였으나 딸이 태어났다.[2] 이 딸이 바로 효명옹주로, 드라마 상에서는 입궁 전 남혁과 관계를 가져서 생긴 아이다.

어쩔 수 없이 남혁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건 이후, 본격적으로 세상을 원망하게 되어 중전이 되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한 여자가 된다.[3][4]

결국 명문가의 적녀 장렬왕후가 중전으로 간택되어 얌전은 기회를 놓치고, 이후 새 중전에 대해 끊임없는 공작을 펼치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그러나 중전이 소현세자 부부의 편을 들게 만들어 결국 인조와 중전 사이는 소원해지고, 인조의 총애를 독차지한다.

다음 기회를 노리며 아이를 낳는데, 이형익에게 만일 이 아이가 딸이라면 사가의 사내아이와 바꾸라는 명을 내리고, 결국 딸을 낳자 사가의 사내아이와 딸을 바꿔치기 한다. 이 아이가 바로 숭선군이다.[5]

2.3. 승승장구

아들을 낳은 공로로 소용으로 승봉되었는데, 얌전은 인조에게 조금조금씩 올릴거면 차라리 빈으로 올려달라고 하지만 인조는 단호하게 "소용이면 됐다!"며 거절한다.

소용이 된 후 빈궁과 각을 세우며 대립하기 시작하는데, 번번히 중전과 빈궁에게 천것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물러나야 했고, 중전에게 숭선군의 양육권까지 빼앗기게 된다. 김 상궁의 도움으로 숭선군의 양육권을 되찾을 수 있었다.

김자점과의 관계도 조금씩 틀어져서 귀인으로 승봉된 이후에는 김씨 성을 버리고 조씨 성으로 바로잡아 귀인 조씨로 불리게 된다.

이형익을 불러 소현세자에게 침을 놓아 독살하고, 인조에게는 독살의 배후로 지목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로 인해 인조가 소현세자의 사망사건을 조사하는 데에 비협조적으로 나오게 되고, 빈궁과 인조 사이가 갈라지는, 얌전으로서는 가장 이득을 보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하루는 빈궁에게 인조에게 전복구이를 올리라며 전복을 선물하고, 빈궁은 의심했지만 관계를 회복할 좋은 기회라 여겨 인조에게 올렸는데, 옆에서 기미를 하던 얌전이 독을 먹은 척 연기를 한다. 결국 전복의 성분을 검사하려고 잠깐 밖으로 가지고 나간 사이에 이형익이 독을 풀어 전복에 독이 들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나게 되었다.

빈궁은 이 사건으로 인해 의심을 받아 인조와의 사이가 더욱 멀어졌고, 얌전은 빈궁의 죄를 묻는 대신 원손과 경완군, 경안군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라고 한다. 인조는 명을 내려 세 손자를 제주도로 보낸다.

이후 얌전의 사주로 원손은 죽게 되고, 빈궁은 이성을 놓고 예친왕에게 아이들을 양자로 데려가 달라고 하지만, 청의 사신이 왔을 때 얌전이 잘 구워삶아서 돌려보낸다. 그 후 빈궁의 서찰을 입수한 얌전은 내용을 조작하여 '빈궁이 청에게 원군을 요청하여 인조를 끌어내리려 했다'고 모함한다.

2.4. 몰락

인조가 중병에 걸려 국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계략을 꾸며 원손과 빈궁을 죽게 만들었고, 이를 후회한 인조가 그녀를 멀리하려 하자 혼수상태의 인조를 창경궁의 외딴 전각에 사실상 감금하고 인조가 승하하기 전에 중전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최종 목적은 인조가 승하하면 자신은 중전에서 대비가 되고, 대비가 가진 차기 왕위 계승자 임명권을 사용하여 세자 봉림대군을 폐하고 숭선군을 왕위에 올리는 것이었다. 대전의 용상을 차지하고 앉아 도승지를 불러 중전을 폐하라는 교지를 내리려 하나, 도승지는 전하를 뵙고 직접 윤허를 받기 전엔 그럴 수 없다며 사직상소를 내던지고 가는 등, 얌전의 계획에 반발하는 사람이 많아 계획을 실행하는 데에 난관이 많았다. 결국 다름아닌 숭선군이 자신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는 어머니에게 반발했고 숭선군이 어린 내관을 시켜 상선 김인에게 인조가 있는 곳을 알려줌으로서 이후 세자 측의 계획이 실행 가능했는데, 숭선군은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음에도 내관이 마음대로 움직이도록 도와주었다. 결국 어머니의 몰락에 숭선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6] 세자가 중전 자리 거래로 그녀를 끌어낸 사이, 상선 김인이 이끄는 내시 일당이 인조를 구하고 뒤늦게야 이것을 보고 절규하고야 만다.
이후엔 인조의 처소에서 발악하다가 중전 조씨(장렬왕후)에게 뺨을 맞았으며, 첩지를 빼앗기고 유폐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신세가 된다. 딸 효명옹주에게 어미의 목숨을 구걸하라며 울면서도[7] 한편으로는 자기가 독약을 먹고 죽으면 중전이 자신을 괴롭히다 죽일 수 없을테니 독약을 구하라고 하는 등, 마치 정신나간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인조가 승하하면서 조씨를 살려줄 것을 고명으로 남기자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게 되는데, 이와중에도 미망을 못 버리고 왕위에 오른 효종을 저주하려고 한다. 그러나 언년이의 배신으로 이 일이 들통나 결국 죄를 추궁받게 되는데, 대비를 저주하려고 한 것이라 자백해서 결국 대비를 음해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사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장렬왕후이런 년은 사약 같은 걸로 편히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해서[8] 결국 궁궐 밖으로 쫓겨나게 되고, 소현세자민회빈 강씨 부부에 대한 지지가 높았던 백성들이 던진 돌에 맞아 죽게 된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악행을 후회하지도, 개과천선하지도 않고 고개 빳빳이 쳐들고 악녀로서 죽었다. 얼마나 많이들 던졌던지 시신이 돌로 된 봉분에 파묻혀 있었을 정도다. 물론 실제 역사에선 조귀인이 반역죄이기는 하나 선왕을 모신 후궁이라서 선왕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약으로 처형했으며 장례식도 후궁의 예로 치러주었다. 또한 조귀인 소생의 자녀들도 몇 년간 귀양 보낸 뒤 왕족으로 복귀시켰다.

3. 평가

친아버지 조기는 몇 번 그녀를 설득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자 낙향해서 딸과의 관계에 선을 그었고, 작중에서 악랄함으로 따졌을 때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김자점마저도 얌전의 악랄함에 질려 혀를 내두를 정도. 이용 대상에 불과한 인조에 대한 추억에 젖는다거나[9] 어머니가 불륜으로 아버지에게 살해당하자 아편을 하고 인사불성 상태의 인조에게 신세한탄을 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있지만, 악행이 너무나도 지독한 나머지 묻히는 경향이 있다. 간혹 특유의 톤 때문인지 악녀인지 개그 캐릭터인지 헷갈린다고 하는 시청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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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찌 보면 선덕여왕의 미실과도 유사하다.[2] 이때 자신의 딸을 갖다버리라고 한다.[3] 어느 정도 흑화를 하고 입궁을 하긴 했지만, 남혁이 죽고 아이를 낳기 전까진 천진한 처녀시절 모습이 어느정도 남아있었다.[4] 사실 중전의 자리를 준다는 말이 없었을 때는 얌전 역시 중전 자리를 생각도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5] 물론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로 인해 전주 이씨 숭선군파에서 본작에 대해 소송을 걸기도 했다.[6] 얌전은 숭선군이 장렬왕후에게 가까이 가려고 하면 이를 제지하거나, 인조 곁에 가기 싫다는 숭선군을 강제로 데리고 가기도 했는데, 이런 일에 대한 반발이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숭선군은 자신이 인조와 조귀인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어린시절부터 얌전이 효명옹주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미묘하게 다른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어느날 자신이 잠이 든 줄 안 (명목상)외조모 한옥이 머리맡에서 "네가 전하(인조)의 친아들이였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라는 말을 들어버린것이 확인사살.[7] 이때 남혁이 잠시 찾아오는데, 지금이라도 같이 도망가자고 애원하지만 남혁이 들어주지 않자 처절하게 저주의 말을 내뱉는다.[8] 그렇긴 해도 조씨가 처참하게 죽었다는 말을 듣고 허탈해졌는지 그렇게 갈거면서 왜 그리 모질게 사람들을 해쳤냐며 독백하기도 한다.[9] 중반에는 인조를 어느정도 마음에 둔 적도 있었으나 인조가 얌전더러 천하다고 하여 콤플렉스를 건드린 이후 철저히 이용대상으로 보았다. "내가 10여 년 동안 나이 든 임금과 살을 맞댄 게 얼마나 싫었는지 아느냐"며 남혁에게 절규한 걸로 봐선, 그 후 인조에게 큰 애정은 지운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