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년, 영제가 즉위하자 영제의 유모 조요는 조절, 왕보 등과 같이 섭정 환사황후에게 아첨을 일삼았고, 진번은 조요 등을 죽이라는 상소를 올렸다.[1]
2차 당고의 금 때 조절이 영제를 덕양전으로 뛰어가게 하면서 유모 조요 등으로 하여금 영제를 호위하게 했다.[2]
178년 7월, 재앙이 연이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 채옹이 올린 상소 내용에서 조요가 언급되는데, 유모 조요는 살아서는 재물 곳집이 천자의 곳집과 같았고 죽어서는 무덤이 왕릉을 넘었고 가족들도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3] 이 기록을 보아 조요는 떵떵거리며 살다가 178년 7월 이전에 죽었다.
훗날 동진의 진성제가 그의 보모 주씨(周氏)에게 명호를 주고 싶어했는데, 고화가 그러한 선례는 후한의 영제가 그의 유모 조요를 평씨군(平氏君)으로 봉한 일 뿐이라면서 반대했다.[4] 이 기록을 보아 조요는 생전에 영제로부터 평씨군(平氏君)이라는 봉호를 받았었다.
참고로 영제의 아들 헌제도 자기 유모 여귀에게 조요의 봉호와 똑같은 평씨군(平氏君)이라는 시호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