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존 시그레이브 John Segrave | |
생몰년도 | 1315년 5월 4일 ~ 1353년 4월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시그레이브 남작령 | |
사망지 | 잉글랜드 왕국 더비셔 레프턴 | |
아버지 | 스티븐 시그레이브 | |
어머니 | 앨리스 피츠앨런 | |
배우자 | 노퍽의 마거릿 | |
자녀 | 존, 에드먼드, 존, 마거릿, 앤, 엘리자베스 | |
직위 | 제4대 시그레이브 남작 |
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제2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과 백년전쟁에 참여했다.2. 생애
12세기 초부터 랭커스터셔에서 토지를 소유한 귀족 가문인 시그레이브 가문의 일원이다. 조부 존 시그레이브는 제2대 시그레이브 남작으로, 제1차 스코틀랜드 독립 전쟁에서 활약했다. 아버지 스티븐 시그레이브는 1325년 제2대 시그레이브 남작 존 시그레이브가 사망한 후 작위를 계승했지만 그 해를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고, 외동아들인 존이 뒤이어 제4대 시그레이브 남작이 되었다. 어머니 앨리스 피츠앨런은 제8대 아룬델 백작 리처드 피츠앨런의 딸이다.아버지로부터 작위를 물려받을 당시 10살에 불과했던 그는 에드워드 2세의 명령에 따라 초대 노퍽 백작 브라더턴의 토머스의 후견을 받았다. 1335년경, 그는 브라더턴의 토머스의 15세 장녀 마거릿과 결혼했다. 1334년부터 에드워드 3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으며, 1341년 병사 40명과 함께 왕의 시종으로 임명되었는데, 그중 8명은 기사였고 나머지는 궁수병이었다. 그는 이 분견대를 이끌고 1343년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에드워드 3세의 군대에 반복적으로 소집되어 프랑스와의 전쟁과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모두에서 활약했다.
1350년, 마거릿이 월터 매니와 결혼하기 위해 그와 이혼하려 했다. 그녀는 자기가 합의 연령 이전에 결혼했으며, 결혼을 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교황청은 수년간 심리 끝에 그녀의 청구를 수락하기로 했지만, 존은 잉글랜드에 교황의 칙서가 도착하기 이전인 1353년 4월 1일 더비셔주 레프턴의 있는 그의 영지에서 사망했다. 그는 1352년 더비셔의 브렛비에서 쓴 유언장에서 자신을 차콤에 안장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라 차콤의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마거릿은 존의 사후 남편의 영지 중 일부를 자녀의 재산 관리에 대한 대가로 받았으며, 월터 매니와 재혼했다.
다양한 사료에 따르면, 존 시그레이브는 노퍽의 마거릿과의 사이에서 총 여섯 자녀를 낳았는데, 아들이 셋이고 딸이 셋이었다. 아들 존과 에드먼드는 모두 유년기에 사망했다. 또다른 존은 1340년에 태어나 1353년 이전에 죽었으며, 모브레이의 블랜치와 결혼했으나 자녀를 낳지 못했다. 딸 마거릿은 유년기에 사망했고, 또 다른 딸인 앤은 바킹의 수녀원장으로서 1377년까지 생존했다. 세번째 딸 엘리자베스(1338~1368)는 제5대 시그레이브 여남작이 되었으며, 제4대 모브레이 남작 존 모브레이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