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0:38:13

쥬니히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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겐지모노가타리의 삽화. 오른쪽의 인물은 약식인 코우치기(小袿)만을 걸치고 있다.

파일:external/www.miyabi-yuki.jp/201471918225.jpg
쥬니히토에 차림의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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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니히토에 차림의 히나 인형. 이와 같은 같은 경우에는 제작시에 옷이 구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종이로 본을 대고 솜을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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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구성3. 나라 말 헤이안 초기의 복식과 착의법4. 헤이안 시대 중기 ~ 무로마치 시대 중기 착의법5. 오닌의 난 이후 부터 현재 착의법6. 코우치기7. 특징8. 실제 착용 예
8.1. 쥬니히토에8.2. 코우치기
9. 기타10. 관련 문서

1. 소개

일본의 전통 여성 복식의 일종으로, 헤이안 시대 중후기의 궁중여관(宮中女官) 및 황/귀족 부인들의 정장 겸 대례복이다.

이름대로 꼭 12겹이었던 것은 아니고, 충분의 일본어 발음 '쥬분'이 12의 일본어 발음인 '쥬니'와 비슷하기 때문에 12에 '많다'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많은 옷을 겹쳐 입는 옷으로 인식되었다. 8겹에서 신분이 높아질수록 25겹까지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안에 입는 기본 옷 위에 겹겹의 옷을 겹쳐 입으니 여름에는 그야말로 찜통이며, 옷 자체도 20 ~ 30kg 정도 나간다고 하니 신부로서는 죽을 맛이다. 당대에도 평상복으로 겹수를 줄인 코우치기를 주로 입었다.

근현대의 일본 황실에서는 결혼식 때 이 의상을 입으며, 교토 등의 의상 스튜디오 같은 곳에서도 체험이 가능하다.

참고로 쥬니히토에라는 명칭은 속칭(俗称), 즉 민간에서 불러왔던 이름으로, 일본 내 복식학자들은 궁녀 옷이라는 뜻의 뇨보 쇼조쿠(女房装束)나 모카라기누(裳唐衣) 혹은 카라기누모(唐衣裳) 등의 명칭을 사용한다.

2.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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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속옷 역할인 코소데와 하카마 위에 겹겹이 껴입고 짧은 겉옷인 카라기누와 뒷치마인 모를 걸치는 형태이다. 헤이안 시대 당시에는 옷깃을 겹쳐서 그대로 여미는 방식이었으나, 에도 시대 초기 이후로 2개의 끈으로 10겹이면 10번, 5겹이면 5번씩 각기 끈을 묶는 게 정석이다. 옷을 여미고 그 위에 한번 묶고 그위에 한 겹 껴입고 묶은 후 밑의 끈을 풀어 다음 한겹을 여밀때 묶는 방식으로 반복했다.

습한 여름에는 평상복으로 히토에바카마(単袴)라고 해서 코소데를 입지 않은 알몸위에 하카마를 입고 그위에 홑옷을 걸쳤다. 하카마는 허리에 묶어서 가슴을 드러내거나 가슴 위에 묶기도 했다.

특징으로 유사시에는 모의 끈 하나만 풀면 하카마 차림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이는 화재시에 유용했다.[1] 앉아 있는 자세에서 몸만 빠져 나가면 겹겹이 쌓인 옷들은 앉아 있던 자세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명이 부실했던 시대에는 사람이 앉아 있는 걸로 착각하기도 했다. 이를 금선탈각'모를 벗어 놓은 껍데기(裳抜けの殻: 모누케노가라)'라 하고, 겐지모노가타리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우츠세미가 이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우츠세미(매미 허물)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한 것. 애당초 우츠세미란 이름 자체가 '空蝉', 즉 매미 허물을 뜻한다.

나중엔 인술의 일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무협물사극에서도 이따금 등장한다. 매미가 가지에 허물만 벗어놓고 사라지는 것과 같다 하여 《사무라이 스피리츠 시리즈》의 핫토리 한조블리치쿠치키 뱌쿠야가 동명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3. 나라 말 헤이안 초기의 복식과 착의법

나라 시대와 마찬가지로 중국풍 옷을 입었고, 이는 헤이안 중기인 894년에 견당사가 폐지되고 국풍 문화가 유행하기 전까지 계속 유지된다.
  1. 속옷 위에 겉옷(衣)를 입고 그위에 히라미(褶) 라는 속치마를 두른다.
  2. 당나라에서 도입된 반비가 변형된 카라기누(唐衣)를 그 위에 입는다.
  3. 모(裳, 치마)를 허리에 두른다. 이 당시의 모(裳)는 흔히들 아는 길게 끌리는 뒷치마 형태가 아니었으며, 앞치마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4. 허리에 소에오비(紕帯)를 두르고, 당나라에서 도입된 표(裱)가 변형된 히레(領巾)를 어깨에 걸친다.

4. 헤이안 시대 중기 ~ 무로마치 시대 중기 착의법

견당사가 폐지된 894년 이후, 국풍 문화의 유행과 함께 이에 대한 급진으로 일본의 풍토에 맞게 옷이 변형되었는데, 현재 잘 알려진 헤이안 시대 말기에서 현재까지의 착의법의 초석이 된다.
  1.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 위에 하리바카마(풀을 먹여 뻣뻣하게 만든 하카마)나 우치바카마(생견[2]을 다듬이질한 하카마)를 입는다.
  2. 카사네이로에(히토에(單)의 다채로운 색상들이 깃, 소맷부리, 도련에 드러나 보이는 것)를 입는다. 이 시절에는 코소데(小袖)가 없었고, 히토에가 속옷 역할을 했다. 여름에는 히토에가사네라고 우치기를 생략하고 히토에만 여러 벌 껴입기도 했다.
  3. 우치기(袿)를 입는다. 우치기는 우와기(上着, 겉옷)와 카사네우치기(중간)로 나누어졌다. 본래 카사네우치기는 최대 20겹 이상 껴입었지만, 헤이안 시대 후기부터는 이츠츠기누五衣로 줄이게 된다.
  4. 모(裳, 뒤로 늘어지는 긴 치마)를 허리에 두른다.
  5. 마무리로 카라기누(唐衣)를 걸친다.

이렇게 입은 옷의 무게는 대략 15~20kg. 이렇게 옷이 무겁기 때문에 사뿐사뿐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옷이 많기 때문에 옷을 어떻게 겹쳐 입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색의 배합이 나올 수 있는데, 이는 계절에 따라 다르게 맞췄다고 한다. 약 200여 가지의 조합이 있었으며, 이를 센스있게 잘 코디해서 분위기에 맞추는 것이 궁중은 물론 공/무가 할것 없이 도성 귀족 여인들의 중요한 패션 감각이었다.

이 시기 여자들은 12~13세에 모기(裳着)라는 성인식을 치렀는데, 이 때부터 모를 입을 수 있었으며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사이시(금색 머리 장식)를 꽂고 '올려 빗은 머리'로도 종종 번역되는 그 스타일은 행사가 있을 때 외엔 여관(뇨보)도 보통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길게 기른 머리도 포함되었는데, 신분이 높을 수록 머리를 길게 길러서 바닥까지 닿게 질질 끌고 다니는 게 예의에 맞는 차림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긴 머리는 당시 미인의 기준이기도 했다는 설도 있으며, 출가할 때는 이 긴 머리를 어깨 언저리에 닿게 잘라서 속세를 떠났음을 표시했다. 반면 신분이 낮으면 머리를 짧게 잘랐다.

특이하게도 가마쿠라 시대 후기에 이르러서는 카라기누 위에 모의 허리끈을 허리가 아닌 어깨 위에 둘러 묶어 망토처럼 걸치는 형태가 유행했다.

5. 오닌의 난 이후 부터 현재 착의법

이후 무로마치 말기에 이르러 쥬니히토에가 사라졌던 시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오닌의 난으로 인해 황실의 권위가 추락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 곤궁해졌기 때문이다. 이는 황실뿐만이 아니라 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던지라 오닌의 난이 끝난 1477년부터 분메이 16년인 1484년까지 7년간 본래는 잘해봐야 세미 정장에 가까웠던 우치기 한겹에 카라기누만을 걸친 차림새등이 의례에 사용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 점차 재정이 해결되어 그 다음해 정월에 이츠츠기누와 카라기누, 모의 착용 예법을 정돈, 다시 제작되어 궁녀들에게 대여되었다.

에도시대 초기에 이르러 상술한 바와 같이 모를 망토처럼 걸쳤던 형태를 바탕으로 카케오비(掛帯)라는 이름의 폭이 넓은 장식용 끈이 생겨났는데, 이는 모의 허리 부분에 달린 고리에 꿰어 어께에 걸치고 앞에서 매듭을 매는 동시에 모의 허리끈 역시 허리에 묶는 방식으로 복귀했다.

또한 고미즈노오 천황 시기에 막부가 궁중복식 부흥을 지원하면서 카케오비에 자수를 넣는 등 쥬니히토에의 형태는 화려해지고 최고예복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져 히토에, 이츠츠기누, 우치기, 우와기를 한번에 겹쳐 여미는 방식에서 차례대로 겹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형태로 바뀌어 정착한다. 이후 메이지 시대에 이르러 카케오비는 사라진다.
  1. 코소데(小袖, 상의)와 나가바카마(長袴, 하카마의 일종)를 입는다. 미혼 귀족 여성의 나가바카마는 자주색. 기혼 여성은 붉은색.
  2. 히토에(単, 홑겹옷)을 그 위에 입는다.
  3. 이츠츠기누(五衣, 홑겹옷을 5겹 겹친 것)을 그 위에 입는다.[3]
  4. 우치기(袿)를 그 위에 입는다.[4]
  5. 우와기(上着, 겉옷)를 그 위에 입는다.
  6. 카라기누(唐衣)을 그 위에 입는다.
  7. 모(裳)를 그 위에 또 걸친다.

6. 코우치기

小袿

정식 쥬니히토에가 무겁고 불편했기 때문에, 궁중여관들을 제외한 귀족 여인들은 평상시에는 우치기까지만 입거나 더 간소한 옷을 입었고 부채도 종이부채로 가벼운 것을 사용했다. 이 중 코우치기(小袿)는 실내에서 편하게 지낼 때 주로 입었는데, 코소데와 하카마 위에 적으면 1~3겹, 많으면 5~6겹 정도의 겉옷을 겹쳐 입는 정도였다.

습한 여름에는 평상복으로 히토에바카마(単袴)라고 해서 코소데를 입지 않은 알몸위에 하카마를 입고 그위에 홑옷을 걸쳤다. 하카마는 허리에 묶어서 가슴을 드러내거나 가슴 위에 묶기도 했다.

또한 정식 예복과 약식 예복의 중간 개념으로서 쥬니히토에를 입기엔 격이 너무 지나친 경우에는 코우치기 위에 모만 걸치거나 혹은 카라기누만 입는 방식도 있었다.

7. 특징

쥬니히토에는 무겁다고 하나 실질적으로는 홑겹의 옷을 겹쳐입는 구조이기 때문에 덥고 불편한 옷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소례복 차림의 코우치기 따위를 입을 때는 옷감이 널럴하고 바지통도 넓어 현대 기모노보다 편하고, 임산부 역시 제약이 없기에 복부가 부푼 상태에서도 입을 수 있었고, 옷감의 폭이 넓고 여유와 풍요의 시대답게 옷이 활동성보다는 느긋히 앉아 편안함을 도모하는 것을 의도로 삼아 착용되었다고 해석된다.[5]

쥬니히토에의 흔적은 무가가 권력을 잡으면서 초기에는 나가바카마 없이 코소데 위애 코우치기만을 걸쳐입다가 한겹 정도의 우치카케(打掛け)'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옷감 소모가 비교적 적으며 품위 있고 한겹만으로 예장이 되며 활동하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6]

현대의 쥬니히토에는 일본 황실, 특히 황후와 황자비, 공주의 결혼예복이며 동시에 특별행사에 입는 옷인데, 조선시대의 왕비와 세자빈이 입었던 적의(翟衣)와 비슷한 케이스다. 단, 보통 황족이 아닌 이상 전통 일본식 결혼식에는 순백색의 우치카케를 입거나 이로우치카케를 입으며 쥬니히토에를 고집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맨 위의 히나 인형 사진과 아래의 실제 착용 예 문단의 머리 모양은 오스베라카시(大垂髪)로, 에도 시대 중기 이후 올림머리가 교토 공가(公家)의 귀족 부인과 여식들·황실 여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면서 막말(幕末) 때 이르러 지금과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8. 실제 착용 예

8.1. 쥬니히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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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구니노미야 나가코 여왕. 히로히토 황태자(쇼와)와의 결혼식에서.
파일:attachment/혼례용 기모노/two.jpg
1959년, 나가코 황후의 큰며느리 미치코 황태자비(왼쪽)/1964년 작은며느리 하나코 비(오른쪽)
파일:attachment/혼례용 기모노/two2.jpg
1993년 미치코 황후의 큰며느리 마사코 황태자비(왼쪽)/1990년 작은며느리 키코 비(오른쪽)
파일:attachment/혼례용 기모노/juni3.jpg
2005년, 미치코 황후의 딸 노리노미야 사야코 내친왕

8.2. 코우치기

파일:attachment/센게 노리코/senge.jpg
2014년, 노리코 공주와 센게 구니마로의 결혼식
파일:moriyaayako.jpg
2018년, 아야코 공주와 모리야 케이의 결혼식

다이쇼 덴노의 증손녀 센게 노리코모리야 아야코는 혼인식 때 코우치기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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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기타

일본풍, 그 중에서도 헤이안 시대 풍이 강한 옷이어서 그런지 헤이안 시대를 소재로 한 서브컬처에도 종종 등장한다.

코스프레 등을 할 때는 여러 겹을 겹쳐 입으면 곤란한 부분도 있어서, 끝부분에만 천을 겹쳐서 여러 겹을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 방식으로 만들어 입기도 한다.

미스터 초밥왕 배달 초밥 에피소드에서 쥬니히토에를 모티브로 한 후토마키즈시(김밥처럼 생긴 초밥)가 나온 적이 있다. 애장판에서는 '12단복'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모티브 답게 12개의 속재료가 들어가 있는 크고 아름다운 후토마키즈시로 나온다.

쿠키런: 오븐브레이크에 등장하는 스네이크후르츠맛 쿠키의 복장이 약식인 코우치기로 추정된다.

10. 관련 문서


[1] 헤이안 시대는 딱히 소방과 도둑에 대한 경비가 좋지 않았다. 천황의 궁중까지도 도둑이 들어와 물건을 훔치거나 불이 나곤 했다.[2] 정견, 명주, 실크[3] 5벌의 배색이 이루는 카사네노 이로메(襲の色目)라는 색채 구성이 얼마나 아름다우냐로 착장자의 센스가 판단된다고 할 정도. 뭐, 매뉴얼의 나라 일본답게 나중에는 정형화된 패턴이 수십 가지 등장하지만. 꼭 홑겹은 아니고 안감의 끝단이 겉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서 10겹으로 보이게 하기도 한다.[4] 이츠츠기누의 배색과는 구별되는 1겹으로 액센트를 주는 역할. 사실 이츠츠기누도 우치기를 5겹 입는 것이다.[5] 헤이안 시대가 끝나고 전쟁이 잦아질 수록 여성들의 옷은 여러겹에서 많으면 두세겹, 적으면 한겹으로 줄어들며 실루엣도 슬림해지고, 에도시대 중기에 이르러 올린 머리로 바뀌어갔다.[6] 그러나 각광받던 실용성과 달리, 우치카케에 부리는 호화스러운 직물과 장식들로 후에 실용성이 아닌 값비싼 사치품으로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