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6 07:25:33

중장보병전술

1. 개요2. 장단점
2.1. 장점2.2. 단점

1. 개요

중세 보병 전술 중 하나로 9~14세기 유럽에서 주로 사용되었는데,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중장보병(중보병)들을 앞세워 기병들이 적들을 우회 타격할 동안 주로 전방에서 적 부대를 저지하고 묶어놓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기원 자체는 그 이전 시대인 로마그리스에도 유사한 병종이 있었다.

중장보병은 당시 유럽의 전장에서 주력으로 이용되었는데, 메일(사슬 갑옷)이든 플레이트 앤 메일이든, 금속제 갑옷은 제작에 상당한 시간과 인건비가 소요되는 주문제작품였으며, 유지비도 많이 소모되는 장비의 가격으로 인해 주로 하급귀족이나, 기사, 부유한 용병들이 중보병의 다수를 차지했으며, 그중에는 기사들이 기병으로 종군하다가 필요시 보병으로서 전투를 치르는 경우도 있었다. 기병이 전장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기병이 불필요하거나, 보병이 중요시 되는 전투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산악지대에서 전투를 치를 경우에 기병보다는 보병이 더욱 유리하였다. 기병은 평지같은 곳에서는 그 특유의 기동성을 살려 활약할 수 있었지만, 산같이 굴곡이 심한 지형일 경우에는 기동성도 저하될 뿐더러 말의 체력 많이 소모되고 오르막을 빠른 속력으로 오르다가 말의 발목이 부러질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목이 부러진 말은 곧 소용이 없어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하여 산악 지대에서는 오히려 보병이 압도한다. 대표적으로 테르모필레 전투 당시에는 페르시아 병사들이 스파르타 군과 싸웠지만, 정작 페르시아 군대는 데리고 온 기병들은 제대로 쓰지도 못했다. 오히려 보병 대 보병 전투가 진행되었다. 이와 같이 병종에 맞는 지형과 전술에 따라 승패가 좌우될 정도로 그만큼 중장보병전술은 좁은 골목을 지키는 수비전이나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모루 역할을 맡는 역할에 알맞았다.

2. 장단점

2.1. 장점

  • 뛰어난 방어력
    어설픈 무장과 전술로는 상처를 입히기 어려운 갑옷의 존재는 중장보병들의 생존률을 끌어올려주었으며 죽음에 대한 공포감 역시 어느 정도 덜어주었다. 또한 밀집대형으로 뭉치면 제 아무리 기병들이라도 상대하기 거북할 정도였다[1].
  • 우수한 공격력
    사실 부가적인 효과인데, 병사들 대부분이 전투 숙련도가 높았고,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는 안정감 덕분에 더욱 공격적으로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손쉽게 적을 쓰러트리는데 이바지 했고, 본래 농부였을 일반 징집병이나, 가난한 병사들의 경우에는 완전한 갑옷을 구비하기는 어려워 보다 무장을 갖춘 보병들의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다.

2.2. 단점

  • 높은 유지비
    병사 개개인이 갑옷과 무기를 부담한다고는 해도, 이들에게 봉급을 내줘야 한다면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중장보병을 징집하는데 일반 병사들의 배에 달하는 거금이 소요된다. 때문에 당연히 높은 유지비는 웬만한 재력을 갖춘 세력이 아닌 한 큰 문제가 된다.
  • 느린 기동성
    유지비를 어찌 해결한다고 하여도 전신을 감싼 갑옷을 갖춘 보병의 특징은 기동성의 저하(+ 누적되는 피로로 인한 사기 저하)로 나타난다. 중세 초기에는 이들이 모루의 역할을 수행했기에 큰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전장과 환경에 노출되자 중장보병의 부족한 기동성은 치명적인 상황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2] 실제 100년 전쟁 당시 대표적인 프랑스군의 패전인 아쟁쿠르 전투에서는 발이 푹푹 빠지는 뻘에 무거운 갑옷과 갑옷에 달라붙어 무게를 가중시키는 진흙, 이로 인한 병사들의 피로가 중장보병의 기동성을 더욱 저하시켰다. 때문에 프랑스의 하마기사들은 순식간에 영국군의 장궁병들에게 학살당했으며, 끝내 화살이 떨어지자, 공구를 손에 쥔 채 덤벼든 영국군에게 차례차례 각개격파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느린 기동성 탓에 적 진형을 깨부순다한들, 이리저리 흩어져 도망가는 적들을 섬멸하지 못 해 전과확대에 한계가 크고, 반대로 아군 진형이 무너지면 무거운 장비를 걸친 중보병들은 제대로 도망가지 못 하고 그대로 전멸할 위험성이 매우 높다.
  • 발전된 무기
    위 사례의 백년전쟁 말기부터 시작된 대포를 필두로 한 화기의 발달로 아무리 단단한 갑옷이라도 뚫어버리는 무기의 존재는 중장보병을 쇠퇴시키는데 앞장섰으며, 이후 르네상스로 접어들며, 중장보병전술과 중장보병은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단단한 갑옷이 주는 최소한의 안전성은 사라지지 않았고, 르네상스 시대에 중보병은 파이크병이나 검방보병 등으로 변화되어 활약하게 되었지만, 점차 화약병기가 발전하고 움직임이 편한 보병이 그만큼 생존률이 높다는 점을 깨달아져 갑주는 경량화되어 점차 주요한 부위만 방어하는 갑옷으으로 변하였다.
  • 환경에 따른 제약
    중장보병에게 가장 이상적인 지형이 산악지형과 초원이라면 치명적인 환경은 바로 사막 지대가 가장 전장으로 택하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다. 이것은 단순히 선호와 비선호, 편한 환경과 불편한 환경의 수준이 아니다. 사막에서 긴 시간동안 강철로 된 전신갑주를 갖추고 대열을 유지한다면 진지하게 전투 한번 없이 죽을 수도 있다. 거기다 중무장을 계속하다 보면 갈증과 피로가 훨씬 빨리 쌓이기 때문에 더 많은 식수와 병사들이 훨씬 자주 쉬어야 했고 보급, 특히 물 보급이 많이 필요했다. 실제로 로마의 카르헤 전투와 중세 종교 전쟁인 하틴 전투을 통하여 우리는 보병이든 중장보병이든 사막 지대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 알 수 있다.
    거기다 중장보병들이 더 취약한 곳은 위에 언급한 아쟁쿠르 전투에서 하필이면 프랑스군이 돌격한 곳에 많은 비가 와서 진흙탕으로 변해 버린 곳이었기 때문에 제 아무리 무장면에서 우수한 중장보병이라도 진흙탕에 뒤엉켜 오히려 둔해져 경장갑을 한 보병에게 손쉬운 먹잇감으로 변해버렸다. 더군다나 무장한 갑옷이나 무기에 녹이 슬어 잘 관리까지 해야 하였다.


[1] 중장기병인 카타프락토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고대 기병 대다수에게는 뒷날의 중장기병의 주요 임무가 되었던 충격전술이 없었다. 대다수가 투창이나 궁기병으로 싸웠기에 중장보병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으나, 그래도 팔랑크스와 같은 중장보병이 버티면 카타프락토이가 더 긴 창을 가지지 않는 한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 하였다.[2] 실제 중세 중보병과 비슷한 역할이였던 그리스의 호플리테스도 부족한 기동성이 발목을 잡았기에, 경무장한 채로 투창이나 돌을 던져대는 경보병들에게 일방적으로 농락당하다가 패배한 전투들이 제법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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