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4 23:38:13

진 시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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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진 시버그
Jean Seberg
파일:진 시버그.jpg
본명 진 도러시 시버그
Jean Dorothy Seberg
출생 1938년 11월 13일
미국 아이오와 마셜타운
사망 1979년 8월 30일 (향년 40세)
프랑스 파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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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아이오와 대학교
직업 배우
활동 1957년 ~ 1979년
배우자 프랑수아 모뢰이(1958년~1960년 이혼)
로맹 가리(1962년~1970년 이혼)
데니스 찰스 베리(1972년 결혼)
자녀 아들 알렉상드르 제고 가리(1962년생)
딸 니나 아 가리(1970년)~(1970년)

1. 개요2. 상세3. 주요 출연 작품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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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출신 여배우.

2. 상세

미국에서 감독 오토 프레밍어가 실시한 잔 다르크 역 신인 발굴 오디션에서 18,000명에 달하는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성 잔 다르크>(1957)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그러나 영화는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그래도 프레밍어는 <슬픔이여 안녕>(1959) 주인공 역에 다시 시버그를 캐스팅했다. 이 영화를 매우 인상적으로 봤던 장 뤽 고다르는 프랑스 파리로 넘어온 시버그를 자신의 감독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60)에서 퍼트리셔 프란키니 역으로 캐스팅했다.

<네 멋대로 해라>로 스타덤에 오른 시버그는 유럽과 미국 양대륙에서 동시에 활동하며 성적으로 문제를 겪는 인물을 주로 연기했다. 시버그는 전반적으로 흥행력이 좋은 배우는 아니었다.

1962년 오늘날엔 프랑스의 대문호로 여겨지나 당시엔 2류 작가로 평가 받던 로맹 가리와의 24세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아들 알렉상드르 제고 가리[1]를 얻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 소설가로, 어머니 시버그에 대한 기억에 기초한 자전 소설 "S. ou L'espérance de vie"이 대표작이다.

워렌 비티와 <릴리스>(1964)를 찍을 때 둘이 불륜 관계였다는 얘기가 있다. 숀 코너리, 조앤 우드워드와는 <파인 매드니스>(1966)를 찍었다.

가리는 아내 시버그를 주연으로 기용해 두 편의 영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1968), <킬>(1971)을 연출했는데, 상대역은 전부 가리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을 지닌 연상의 남자들이었다. 시버그는 <페인트 유어 웨건>(1969)을 찍으면서 유부남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불륜 관계가 됐는데 사실 이스트우드는 시버그 몰래 해당 영화에 출연 중이던 단역 배우와 이중으로 바람피고 있었다.

이를 전혀 모르고 있던 시버그는 이스트우드와 결혼하기 위해 가리와 이혼에 들어갔다. 가리는 이스트우드에게 결투를 신청했으나 거절 당했다. 그러나 늘 새로운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불륜 상대를 구하곤 했던 이스트우드는 시버그와 바로 헤어졌다. 70년대에 시버그는 알코올과 약물에 대한 의존증이 심해졌는데, 이스트우드의 잔인한 처우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시버그는 이스트우드에게 버림 받은 뒤 가리와의 이혼이 성립되기 전인 1969년 겨울 학생 혁명운동가 카를로스 오르넬라스 나바라[2]와 짧은 불륜 관계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1970년 8월에 태어난 딸 니나 아 가리[3]는 임신 중의 수면제 과다복용 때문에 태어난지 이틀만에 사망했다.

<에어포트>(1970)는 시버그의 출연작 중 최고 흥행작으로 버트 랜캐스터딘 마틴이 나온 군상극이었다.

시버그는 흑인 인권 운동에 관여하면서 특히 흑표당에 경제적 원조를 했는데, 이로 인해 FBI에서 1956년에서 71년 사이에 운용한 코인텔프로(COINTELPRO)[4] 작전의 주요 표적 중 하나가 되었다. 존 에드거 후버는 시버그에 대한 일반 대중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시버그에게 모멸감을 안겨주기 위해 로스 엔절러스 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조이스 헤이버[5]에게 시버그가 흑표당의 일원인 흑인의 아이를 가졌다는 가짜 정보를 흘렸고, 시버그는 온갖 지저분한 흑색선전을 당했다.

이후에도 잦은 감시와 도청을 당하며 살다가 1979년 9월 8일 실종 10일만에 파리에서 주차된 본인의 차 뒷좌석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시버그가 과다복용한 바르비투르산의 빈통은 차 안에 있었지만, 체내 알코올 농도 역시 매우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술병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당시 누군가 현장에 있었을 수밖에 없다는 합리적 추론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코인텔프로 작전 하에서 FBI가 상당수의 인권운동가들을 암살한 점도 시버그 타살설에 힘을 싣고 있다. 시버그는 사망 당시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그러나 시버그와 같이 사망한 태중의 아기는 백인이었다.

전남편 가리는 시버그가 살해 되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지만 끝내 묻혔다. 후에 FBI가 1969년에서 72년 사이에 시버그를 감시했음을 입증하는 서류가 폭로됐으며, 흑색선전의 중심에 있던 로스 엔절러스 타임즈는 시버그가 FBI의 희생양이었음을 고발하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3. 주요 출연 작품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Les oiseaux vont mourir au Pérou), 1968
  • 킬(Kill!), 1971

4. 여담

  • 중성적인 이미지가 강했으며 숏컷으로 시버그 컷이라는 용어까지 있을 정도다. 세실 스타일로도 알려져 있다. 오드리 헵번미아 패로와 함께 숏컷 양식을 대표하는 연예인이다.
  • 독립영화감독 마크 래퍼포트[6]가 만든 다큐멘터리 <진 세버그의 일기(From the Journals of Jean Seberg)>(1995)가 있다. 메어리 베스 허트[7]가 시버그를 연기했다.
  • 2019년 시버그의 삶을 그린 영화 <세버그>가 만들어졌다.

[1] Alexandre Diego Gary.[2] Carlos Ornelas Navarra.[3] Nina Hart Gary.[4] Counter Intelligence Program.[5] Joyce Haber.[6] Mark Rappaport. 1942-.[7] Mary Beth Hurt. 1946-. "허트"는 윌리엄 허트와 첫 결혼하면서 얻었던 결혼 후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