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차인범(車仁範) |
생몰 | 1901년 2월 7일 ~ 1922년 9월 28일 |
출생지 | 경기도 남양군 장안면 삼동 (현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 |
사망지 | 경성형무소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차인범은 1901년 2월 7일 경기도 남양군 장안면 삼동(현 화성시 장안면 수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차희식, 차병한, 차병혁 등과 함께 수원군 장안면 및 우정면 일대에서 독립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고 4월 3일 정오경 수촌리 이장 백낙렬(白樂烈)로부터 장안면 사무소에서 독립만세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즉시 그곳으로 달려갔으나 이미 면사무소는 군중들에게 파괴되고 난 후였다. 군중이 쌍봉산으로 이동했다는 말을 들은 그는 다시 쌍봉산으로 달려가서 군중과 합세한 뒤 선두에 서서 우정면사무소로 행진해 그곳의 집기류와 공문서를 파기하는 데 앞장섰다.이어 석포리 이장 차병한의 제안에 따라 군중을 인솔해 화수리에 있는 경찰 주재소를 습격, 방화했다. 이때 주재소 안에서 일본인 순사 카와바타 토요타로우(川端豊太郞)가 도주하면서 권총을 발사해 시위군중 1명이 맞아 죽자, 그는 차희식, 정서송, 이순모(李順模), 장제덕, 장소진 등과 함께 이를 추격해 카와바타 순사를 때려 죽였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20년 12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 살인, 방화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경성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22년 9월 28일에 옥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차인범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