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555><colcolor=#fff> 찰리 조던 Charley Jordan | |
본명 | 찰스 조던 주니어 Charles Jordan Jr. |
출생 | 1890년 7월 11일 |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 | |
사망 | 1954년 11월 15일 (향년 64세) |
미국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 |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음악가, 스카우트 |
장르 | 세인트루이스 블루스 |
악기 | 보컬,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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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음악가, 스카우트.2. 생애
1890년 7월 11일,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찰스 조던과 루라 휠러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찰스 조던 주니어다.[A] 제1차 세계 대전 때 미 육군에서 복무했고, 이후 호보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25년엔 세인트루이스에 거주 중이었고 기타리스트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녹음한 곡을 근거로 멤피스 혹은 미시시피 델타에 방문해본 적이 있었음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2] 그는 20대에 미국 남부에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렸다.[B]그는 1920년대에 주류 밀매자로도 활동하다 1928년에 척추에 총을 맞아 목발을 짚고 걷게 됐다. 이로 인해 그의 수입원은 음악이 되었고 1933년에 금주법이 폐지되자 더욱 음악에 의존하게 됐다.[B][C] 그는 1930년 6월 중순에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솔로로 곡들을 녹음했다. 이후 1937년 11월 2일까지 피티 휘트스트로 등과 곡들을 녹음했다.[6] 그의 곡들은 큰 성공을 거뒀다. 또한 그는 피티 휘트스트로의 절친한 음악적 동료였다.[7]
그는 1930년대를 보컬리온 · 데카 레코드의 스카우트 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보냈다. 그는 피티 외에도 케이시 빌 웰던 등과 연주했다. 1940년대 그는 빅 조 윌리엄스 (Big Joe Williams) 와 세인트루이스에서 활동했으나, 1940년대 말엔 거의 은퇴한 상태로 있었다.[B][C] 이후 1954년 11월 15일, 세인트루이스의 호머 G. 필립스 병원에서 숨졌다. 사후 미주리주 오크데일 묘지에 안장됐다.[A] 사인은 폭력 혹은 폐렴이다.[B]
[A] Bob L. Eagle · Eric S. LeBlanc, "Blues: A Regional Experience" (ABC-CLIO · 2013.5.1.), 238쪽[2] "Charley Jordan Vol 1 1930-1931", thedocumentrecordsstore.com, 2022년 12월 17일 확인[B] Bruce Eder, "Charley Jordan: Biography", 올뮤직, 2022년 12월 17일 확인[B] [C] Jeff, "Big Road Blues Show 1/12/14: Don’t Put That Thing On Me – Forgotten St. Louis Greats", sundayblues.org, 2014.1.12., 2022년 12월 17일 확인[6] "Charley Jordan discography", wirz.de, 2022년 12월 17일 확인[7] Edward Komara · Peter Lee, "The Blues Encyclopedia" (Routledge · 2004.7.1.), 548쪽[B] [C] [A]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