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 조지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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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의 축구인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찰리 조지 Charlie George | |
본명 | 찰스 프레드릭 "찰리" 조지 Charles Frederick "Charlie" George | |
출생 | 1950년 10월 10일 잉글랜드 런던 이즐링턴 | |
국적 | 영국 (잉글랜드 ) | |
신체 | 180cm | |
직업 | 축구선수(스트라이커,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 |
소속 | 유소년 팀 | 아스날 FC (1966~1968) |
소속팀 | 아스날 FC (1968~1975) 더비 카운티 (1975~1978) → 세인트 조지 FC(오스트레일리아) (1977/임대) 미네소타 킥스(NASL) (1978) 사우스햄튼 FC (1978~1981) → 노팅엄 포레스트 (1980/임대) 벌로바 SA(홍콩) (1981~1982/1982) AFC 본머스 (1982) 더비 카운티 FC (1982) 던디 유나이티드 (1982) 코번트리 시티 (1983) | |
국가대표 | 1경기 0골(잉글랜드 / 19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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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아스날 FC와 더비 카운티 FC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기록했던 선수이다.2. 일생
2.1. 아스날 FC 시절
1950년 10월 10일에 런던 이즐링턴에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아스날을 응원하였으며, 잉글랜드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 우승하던 1966년에 찰리는 아스날 유소년팀에 입단해 2년간 수련을 받고 1968년에 1군에 편입되어 그가 그토록 꿈꿔왔던 아스날 입단을 이루었다. 그는 곧 당당한 태도와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로 1970년 인터-시티 페어스컵을 우승하여 그의 영광은 시작되었고, 1970/71 시즌에 진짜로 '왕'의 포스를 내뿜으려 했으나 다리를 크게 다친 채 시즌을 맞이하다가 시즌 중반에 돌아와서 중요한 골들을 성사시켰고, 마침내 그 시즌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까지 이끌었다.그 인상적인 모습.
1971년 5월, 선수들의 기운을 빠지게 하는 그 무더위 속에서 웸블리에서 진행된 FA컵 파이널은 전후반 내내 골이 터지지 않아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는데 먼저 골을 터뜨린 건 리버풀이었다. 그러나 에디 켈리와 조지 그레이엄이 동점골을 같이 넣어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경기 종료를 불과 9분 남겨두고 센터포워드인 존 래드포드가 지친 기색이 있던 조지에게 공을 연결하여 기운을 되찾은 조지는 리버풀의 골문으로 18미터짜리 중거리슛을 날렸다. 이 멋진 슛을 날린 조지의 활약으로 동료들은 그라운드에 두 팔을 벌리고 누운 조지에게 달려들었다.
2.2. 더비 카운티 FC 시절
1975/76 시즌을 앞두고 찰리 조지는 더비 카운티 FC로 이적했고, 이적 후 뛴 첫 경기인 채리티 실드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전에 승리하며 첫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찰리는 그 시즌 유로피언 컵 레알 마드리드 CF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잭 스탬스 트로피[B]를 수상했다.
찰리는 더비 카운티 FC에서 세 시즌 동안 106경기에 출장하며 34득점를 기록했다.
2.3. 더비 카운티 FC 이후
이후 찰리는 여러 팀을 옮기는 저니맨이 되었고, 1983년 코번트리 시티 FC를 끝으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3. 플레이 스타일
선수 시절 내내 조지는 결정적인 골을 넣긴 했지만 자신이 인정했듯 그리 뛰어난 골잡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팬들과의 특별한 관계를 맺었다는 점에서 다른 선수들과 달랐다. 훗날 그는 골을 넣으면 종종 인사하면 그 때마다 팬들이 지켜봐 줄 정도로 당당히 팬들을 위해 뛰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약간 건방지지만 솔직한 면모를 보였다.4. 은퇴 이후
은퇴 이후 개인 사업을 하다 현재 아스날 레전드 투어 리더로써 활동중이다.5. 수상 기록
5.1. 팀
- 아스날 FC
- 인터-시티 페어스컵: 1970
- 풋볼 리그 디비전 원: 1970-71
- FA컵: 1971
- 더비 카운티 FC
- 채리티 실드: 1975
- 노팅엄 포레스트 FC
- UEFA 슈퍼컵: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