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 채희남(蔡熙南) |
본관 | 평강 채씨[1] |
출생 | 1908년 8월 24일[2] |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 종달리 (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3] | |
사망 | 1980년 2월 5일[4] (향년 71세) |
제주도 북제주군 |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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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채재오는 1908년 8월 24일 전라남도 제주군 구좌면(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에서 아버지 채홍의(蔡鴻儀)[5]와 어머니 풍천 임씨 임영보(任永寶)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1931년 5월 조선공산당 제주도야체이카에 가담해 신재홍 등과 함께 농민부를 맡았다. 이후 농민조직 확대에 힘을 쏟던 그는 1931년 11월 3일 신재홍, 한원택, 고사만 등과 함께 김기생(金己生)의 집에서 농민조합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날 참석한 농민 수십명에게 "농민의 피를 짜는 악질조합 반대, 종묘 강제 배포 반대, 무상부역 반대, 농민대중의 이익에 배치되는 면 행정 반대" 등 표어를 제시하며 그들의 항일의식을 고취시켰다. 1932년 1월, 채재오는 제주도 해녀들의 투쟁을 배후에서 지휘, 조종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된 그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제주도에서 조용히 지내다 1980년 2월 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채재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