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자 | 중보(仲甫) |
출생 | 1847년[1] |
황해도 평산군 궁위방 산두현리[2][3] (현 황해남도 청단군 흥산리) | |
사망 | 1907년 12월 24일[4] (향년 59~60세) |
황해도 해주군 유사림 | |
본관 | 인천 채씨[5] |
상훈 |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03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47년 황해도 평산군 궁위방 산두현리(현 황해남도 청단군 흥산리)에서 아버지 채형상(蔡亨尙, 1818 ~ 1850.5.14.)[6]과 어머니 고령 이씨(高靈 李氏, 1818 ~ 1876.6.22.)[7] 사이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고향에서 유생으로 한학을 수학하였다.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고 대한제국군 군대마저 해산당하는 사태를 보고는 의분을 느껴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초기에는 전 목천군수 박정빈과 박정빈 휘하 중대장 심노술의 참모로 활동했다.[8] 이후 김제현(金濟鉉) 의진에 입대하여 황해도 해주군 등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우제경·심노식 등과 함께 청나라 산동성 연주부(兗州府) 등현(滕縣)[9] 등지를 왕래하면서 의병장 김제현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탄환을 구입하는 등 의병대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던 1907년 12월 12일 해주군에서 의병장 김제현과 우제경·심노식 등과 함께 일본 제국 육군 수비대에 체포되었다. 12월 23일 밤 이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이튿날인 12월 24일 오전 6시 30분에 해주군 유사림에서 수비대원의 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 순국하였다.
200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