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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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상영회 포스터
ゆきゆきて、神軍
척척 나아가서, 신군
1. 소개
1987년 제작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 하라 카즈오 감독의 작품이다. 오쿠자키 겐조(奥崎謙三, 1920.2.1.~2005.6.16.)를 1년간 밀착취재하며 그의 행동과 발언들을 담았다. 하라 카즈오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다큐멘터리다.오쿠자키는 1940년 일본 육군에 입대해 43년에 영국령 뉴기니로 전출을 갔고, 거기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상등병으로 패전을 맞았다. 전후에는 전자제품 매장을 운영하면서 아나키즘적 반전주의 운동을 했다.
전쟁의 책임을 쇼와 덴노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쇼와 덴노에게 파칭코 쇠구슬을 쏴 맞출 뻔하기도 했으며,[1] 히로히토의 얼굴을 합성한 야짤을 뿌리다(…) 음란물 유포죄로 입건되기도 했다. 오쿠자키는 쇼와 덴노의 사망 후 아키히토 덴노의 즉위와 패전 60주년도 지켜보았으며,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987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칼리가리 상을 수상했다.
2. 상세
원제인 ゆきゆきて、神軍(척척 나아가서, 신군)은 상당히 시적인 표현이다. '계속해서 나아가다', '갈 데까지 가다'라는 의미인 고어 ゆきゆく를 사용했는데, 구체적으로 목적지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반어적이면서도 중립적이다. 오쿠자키는 차에 '신군'이라는 글자를 붙여놓고 '신군평등병'을 자칭하고 다녔다.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으로 복무한 오쿠자키 겐조는 당시 뉴기니 전선에 고립되어 죽을 고비를 넘겼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참혹함을 생생하게 겪은 오쿠자키는 패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천황을 비판하고, 자신의 소속부대였던 36연대에서 탈영병들을 처형했던 상관들을 찾아다니며 그때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다나카 가쿠에이를 처단하자"는 현수막으로 개조한 차량을 몰고, 천황에게 파칭코 구슬을 쏜 적도 있는
하지만 오쿠자키가 제국주의, 군국주의의 피해자는 맞지만 전후 행동들을 모두 옹호해줄 수는 없다. 그가 영화상에서 저지르는 행동들은 엄밀히 말하면 폭력과 감금, 강요, 상해 등의 중범죄이며, 전후에는 돈이 없어서 고리대금업자(야쿠자)에게서 돈을 빌린후, 못갚다가 독촉하러 온 야쿠자를 살해하기도 했다. 단 영화상에서는 야쿠자 살해로 복역하던 수감생활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고 반전운동에 투신하는 계기로 삼았다고 한다.
하라 가즈오 감독은 폭력을 통해 국가에 저항하고자 하는 인간 오쿠자키 겐조와 그의 논리에는 찬동할 수 없지만, 그런 논리가 만들어지게된 배경이나 역사를 보여주고, 그를 통해 현실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오쿠자키의 사상을 설파하는 영화가 아니라, '일본군의 패잔병이 얼마나 망가진 인간이 되었고, 왜 이런 사상을 가지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물론 감상은 각자의 몫이다.
감독이 담아내고자 했던 내용 중 뉴기니에서 촬영한 분량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정보부가 원본 필름을 몰수하는 바람에 영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3]
이 다큐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옆의 링크들에 나온다.폐하에게 새총을, 가자가자 신군, 하라 가즈오 감독과의 대화,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3. 기타
마이클 무어 감독은 "내가 평생 본 영화 중에서 최고의 다큐멘터리였다."고 극찬했다. 에롤 모리스도 호평을 남겼다.타코츠보야의 GIRLS und PANZER 동인지 '진군하라 전차도'의 제목도 이 다큐멘터리에서 따왔다.
1998년에는 이 다큐멘터리 말미에 언급되는 살인미수로 12년 복역 후 자신의 이상향 갓월드를 짓는다는 생각을 하는데, SM장르의 AV를 찍는다[4]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녀석(神様の愛い奴)>가 나온다. 평은 완전 혼란스럽고 나쁜 괴작이라고 한다.
오쿠자키가 새총으로 파칭코 구슬을 날리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이후 황족이 군중들을 접하는 발코니에는 방탄 유리창이 설치되었다고 한다. 오쿠자키 켄조는 이 사건 이후 교도소에 1년 간 연행되어 이듬해인 1970년에 석방된 이후에도 1970-80년대 당시 쇼와 천황과 일본 권력층들의 전쟁 책임과 구 일본군 장병들의 피해 배상을 요구하는 반전 운동을 이어갔고, 1989년 쇼와 천황이 사망하고 아키히토 황태자가 새 천황이 된 이후에도 아키히토 천황에게 쇼와 천황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일본 국민들의 앞에 서서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우편물들을 써 보내며 2005년 6월 16일 죽을 때까지 쇼와 천황을 비판했다. 2005년에 M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천황의 나라 일본’ 제작진과도 인터뷰했는데, 당시 오쿠자키는 고령으로 고베 박애병원이라는 시립 요양원에 입원해 있었고 요양원에 취재하러 온 MBC 다큐멘터리 취재진과 인터뷰하며 자신이 몇십 년 동안 써온 일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제작진에게 했던 말이 이렇다.
“(쇼와 천황은) 절대로 책임이라는 걸 질 놈이 아니야. 한 마디로 미천한 놈이야.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를 안 한 놈이라고. 인간은 잘못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머리 숙여서 사죄를 하는데 그놈은 죽을 때까지 한 마디도 안 했어. 한 마디도 ‘잘못했습니다’라고 안 했어.”
사후에 오쿠자키 겐조의 자택은 해체되어서 지금은 주차장이 되었다고 한다.# 감독 하라 가즈오에 의하면 부부의 무덤와 모친이 묻혀져 있는 무덤은 철거되어 공터가 되었다고 한다.#
2019년 새로 리마스터되어 영국에서 블루레이가 나왔다. 그리고 2021년에 일본에서 블루레이가 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