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0:58

청덕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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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청덕면
靑德面 | Cheongdeok-myeon
<colbgcolor=#ef3120><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경상남도
기초자치단체 합천군
행정표준코드 5480047
관할 법정리 12리
하위 행정구역 23행정리 45반
면적 57.03㎢
인구 1,570명[1]
인구밀도 27.5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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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복지센터 동부로 1754 (두곡리 347-1)
청덕면사무소
1. 개요2. 역사3. 지명유래
3.1. 두곡리3.2. 가현리3.3. 적포리3.4. 대부리3.5. 앙진리3.6. 초곡리3.7. 모리3.8. 성태리3.9. 미곡리3.10. 삼학리3.11. 소례리3.12. 운봉리
4. 특징5. 교육6. 출신 인물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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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합천군 적중면, 쌍책면, 덕곡면, 의령군 부림면, 낙서면, 창녕군 유어면, 이방면과 맞닿아 있다.

2. 역사

낙동강, 황강 유역으로 농업자원이 풍부하고 교통 요충지 (국도20호, 24호 교차) 옛날 초팔혜국(草八兮國)에 속해 있었는데 서기 1세기경 고령에서 일어난 대가야국에 병합되었다. 신라 진흥왕 23년(562)에 대가야국이 망함으로써 신라국에 속하게 되어 경덕왕 16년(757)에 팔계현으로 개명되면서 강양군 청계현에 속하다가 현종9년 합주의 초계현에 속하게 되었다. 충숙왕 3년에 초계군에 속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초계군 청원면과 덕진면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합천군에 속하면서 현 청덕면으로 통합되었다. 또한 임진왜란시 의병활동지, 한국전쟁시 격전지였다.

3. 지명유래

3.1. 두곡리

두곡리는 본래 청원면의 지역으로서 파실 또는 두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두곡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청덕면의 소재지로서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관공서가 모두 있으며, 두곡마을과 송기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마을 형성시기는 정확한 자료를 찾아볼수 없으나 조선시대 19대왕 숙종때인 약300년전에 탐진안씨 판관공이 적중면 두방리에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두곡(파실)은 청덕면 소재지 마을로 24번 국도변에 위치하고 있고, 자연마을로는 상두곡(웃파실), 양지마을, 내두곡(안마), 하두곡(샛담)주막거리등 5개 마을로 분산되어 미타산 줄기인 산밑에 자리 하고 있다.
  • 성씨분포 : 성씨분포는 탐진안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완산전씨, 전주이씨 초계정씨, 충주한씨, 창녕성씨, 해주오씨, 양천최씨 등이 살고 있다.
  • 상두곡(웃파실) : 마을형성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탐진안씨가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기 오래전부터 연안차씨, 팔계정씨, 김해허씨가 살았다는 구전이 있다. 홍개동(칠마등)은 당시 대성을 이루고 살던 연안차씨 문중에서 한집에 진사를 7명이나 배출하여 말이 7마리 매여 있었다고 해서 칠마등이라고 칭했다고 한다. 그 후 300여년전 인근 적중면 두방리에서 두원처사 안영후씨가 이주하여 현재는 탐진안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 양지마을 : 200여년전 완산전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상두곡(웃파실)에서 탐진안씨가 이주하여 현재는 탐진안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 안마(내두곡) : 200여년전 파평윤씨가 터전을 잡고 살던 곳으로 마을이 번성 완산전씨가 거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상두곡(웃파실)에서 탐진안 씨가 이주하여 현재는 탐진안씨가 대성을 이루고 있다. 샛담 : 200여년 동부지역에서 가장 부자였던 1,000석지기 안석눌씨가 안마에서 이주해 자리를 잡고 살게 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 후 안마(내두곡)에서 도둑봉(진정 뒷산)을 피해 이주를 해와 번성할 당시 100여호에 이르렀다고 한다.
  • 주막거리 : 팰구정에 있던 주막거리가 육상교통의 발달과 낙동강 하상이 높아지면서 배가 다니지 않게 되자 팰구정이 폐쇄하였고, 차도 옆 현재 위치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지나가는 나그네는 물론이고 광대, 씨름꾼 등의 공연장이 있을 정도로 번성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 송기
송기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서쪽 1㎞ 거리에 옥두봉과 돈재를 등지고 남향 으로 자리하여 청덕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 곽골과 송림마을, 동쪽으로는 안터마을이 있다. 송기(松基) 솔이 우거졌다는 뜻으로 송림이라 불렸으며, 청덕초등학교를 사이에 두고 서쪽으로는 곽골과 송림마을, 동쪽에는 안터마을이 있다. 광주노씨 한보공이 300여년 전인 조선시대 숙종때 이주해와 후손들이 살고 있다.

3.2. 가현리

본래 초계군 청원면의 지역으로 옥두봉의 끝이 되어 여러골짜기의 물이 모이 므로 하회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하회리라해서 청덕 면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1995년 12월17일 가현리로 개칭되었으며, 가현리에는 중회, 가현 2개의 행정마을이 있다.
  • 중회
면소재지를 이루고 있는 두곡리와 연결되어 있으며, 두곡마을에서 흘러 오는 하천의 북쪽은 양지땀, 남쪽은 음지땀이라 부른다.
  • 가현
하회(가르재)라고 불렀는데 1995년 가현리 가현마을로 개칭되었다. 면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1.5㎞거리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마을로 동쪽 끝에는 탐진안씨 상장군공파 의 대종산인 강정산이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고 남쪽으로는 갈마산을 바라보는 눈앞에 면내에서 가장 큰 들판이 있다.
  • 옥두봉의 끝이 되어 여러 골짜기의 물이 모이므로 하회(가르재)라고 불렀는데 1996년 가현리 가현마을로 개칭되었다.
  • 강진산 : 마을 탐진안씨의 새로운 명칭인 강진안씨 시조공 2세인 초계 입향조를 비롯하여 19위의 묘가 집중되어 있는 독산이라서 강진안씨의 산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산 서쪽끝에 호호정(浩浩停), 창랑정(滄浪停)이 있다.

3.3. 적포리

본래 초계군 청원면의 지역으로 마을 남쪽에 낙동강의 벼랑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남비 또는 난비, 옛날 포구에 드나들던 많은 배들의 돛의 색깔이 붉은색으로 붉은적을 사용하여 적포라 불리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적포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중적포
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4㎞정도 떨어진 마을이며, 24번국도가 통과하고 마을앞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은 창녕군 이방면이다. 중적포마을은 지금 부터 약400년전 조선시대 현종때 달성서씨 병조참의 문서공이 이곳에 정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옛날에 낙동강을 따라 운반되는 화물과 육로로 운반되는 화물의 집산지가 되었고 5일 시장이 개설되어 멀리 거창 등의 지방 에서 목화 등 육지의 생산물을 가져와서 소금을 사 가지고 돌아가는 포구였다.
  • 바람재 : 도방마을에 있다고 해서 도방재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에서 북쪽으로 500m 거리에 있다. 남쪽에는 낙동강 바람이, 북쪽에서는 황강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바람이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 하적포
면사무소 동남으로 24번 국도를 따라 4.5㎞의 거리에 동향으로 산밑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약100m 앞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적포리의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어 아랫골이라고도 한다.

3.4. 대부리

본래 초계군 청원면의 지역으로 가매실의 큰 마을이므로 큰 가매실 또는 대부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봉산동, 소부동, 상소부동을 병합하여 대부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소부
    • 소부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 7Km 떨어진 협소한 골짜기에 소부마을과 상소부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 대부
대부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 7Km거리로 마을에서 동쪽으로 1㎞거리에 24번 국도가 통과하고 그 밑에 낙동강이 흐르고 있으며, 현재 대부마을앞 들에는 온천을 개발 중에 있다.
  • 대부(大釜) : 면소재지에서 남쪽으로 7km거리에 낙동강에서 안으로 들어가 있는 마을로, 큰 가매실이라고도 한다.
  • 부곡
부곡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 7Km거리로 마을에서 동쪽으로 1.3㎞거리에 24번 국도가 통과하고 대부마을에서 남쪽으로 300m 위치에 있다.
  • 부곡(釜谷) : 대부마을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가매실이라고도 한다.

3.5. 앙진리

앙진리는 초계군 청원면의 지역으로서 낙동강물이 소리를 내면서 흐르므로 우러러 또는 앙진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앙진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우곡
우곡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8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약450년전 초계변씨가 우곡 본 마을에 정착한 뒤 탐진안씨와 창녕조씨 등도 함께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합천, 창녕, 의령 3개군의 접경지대로서 낙동강이 마을앞으로 흘러내리고 적포교가 있으며 적포교 주변은 상가 지대로 횟집이 많아 장어구이, 잉어.향어회가 유명하다.
  • 삼연정(三沿亭) : 초계변씨 동몽교관 삼중공, 한성좌윤 삼신공과 삼근공 삼형제의 시묘살이 효행으로 복호됨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는데 영성군 박문수가 삼연당이라 지었다고 한다.
  • 일충오효자문(一忠五孝子門) : 임진왜란 때의 창의장 초계변씨 옥희공이 왜적과 싸우다가 순절하자 그의 아들 상동공이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싸웠다고 한다. 충신집에 효자난다고 그 후손에 많은 효자가 났으니 변상동공과 그의 현손 삼형제인 삼중, 삼신, 삼근공과 7세손 경유공 등 5효자를 기리기 위하여 고종 29년 1892년에 정문이 세워졌다.
  • 적교(赤橋) : 적포교의 약칭이자 적포교 일대에 위치한 상가지대 마을을 지칭한다. 적포교는 당초 적포마을 앞에서 창녕군 이방면 현창리쪽으로 가설할 계획이었으나 그 곳은 강의 폭이 넓어서 현재 위치로 변경 가설되었는데 다리 이름은 당초 계획한 지명 그대로 따서 적포교라고 하였다.
  • 유천
유천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11Km 거리에 있는 남향 마을인데 좌측에 오방마을, 중앙에 유천마을, 우측에 원진마을 등 3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약 350년전 적중면 두방에서 탐진안씨 형제가 이마을에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남쪽으로는 낙동강이, 동쪽으로는 신반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제방축조 후 넓은 들에 대규모 경지정리가 되어 대부분 시설채소 재배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으며, 특히 수박을 특산물로 생산하고 있다.
  • 유천마을은 넓은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넉바우(늑바우) 또는 광암(廣巖)이라고도 하며, 원진(院津)마을은 원나루라고도 한다.
  • 필재 : 우곡에서 원진동으로 가는 고개로 현재 국도 20호선이 지나고 있는 곳이다. 식당과 휴게소가 있어 앙진리와 초곡리 주민들의 모임 장소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3.6. 초곡리

초곡리는 본래 풀이 무성하므로 푸시골 또는 초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초곡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초곡
초곡리 초곡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13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고려시대 밀성손씨, 창원황씨, 광주노씨 등이 입주하여 형성되었다고 한다. 초곡마을은 푸싯골, 샛터, 공장소, 지통골, 축산단지등 5개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지통골 : 닥나무껍질로 한지인 문종이(창호지)를 만드는 곳이었는데 종이를 만드는 지통이 있다는 이유로 붙은 이름이다.
  • 푸싯골 : 옛날 불씨를 얻기 위해 돌에 쇠조각을 부딪쳐서 튀어 나오는 불씨가 말린 풀(수리치풀)에 옮겨 붙게 하였는 바 이때 쓰이는 돌을 푸싯돌(부싯돌)이라 하는데 그 돌이 나오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샛터 : 새로 생긴 마을이라는 뜻이다.
  • 공장소 : 마을의 중심부에 자리한 마을인데 새마을 창고, 마을회관, 마을 운동장 등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들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 정동
정동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약14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안정골과 바같정골로 나뉘어 있는데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다. 안정골은 300년전 김녕김씨가 산청군 신안면에서 이주하였고, 바같정골은 여양진씨가 100여년전 의령군 부림면에서 이주해 옴으로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문중에서 정하는 법도에 따라 살기 때문에 바르고 곧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동네이름이라고 전해진다

3.7. 모리

본래 초계군 덕진면의 지역으로서 뫼굴 또는 묘동 모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모리라 해서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모리
모리마을은 소재지에서 황강을 건너 서북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남향마을로서 마을앞에는 황강이 흐르고 강건너는 적중면 죽고리, 서북쪽 약 2Km 밖에는 쌍책면 다라리가 있다. 모리는 안마을, 아랫마을 2개마을 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전에 덕진면사무소 청사가 이마을에 있었다. 토질이 좋아 비닐하우스에 수박 등의 특수작물을 재배하여 고속득을 올리고 있다 모리는 본래 초계군 덕진면의 지역으로서 쌍책면에서 오는 길의 모퉁이가 되는 마을이므로 뫼굴 또는 묘동 모리라 하였다.

3.8. 성태리

* 본래는 초계군 덕진면에 속하여 소태실, 상태실, 상태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으며 양촌, 화동, 궁동을 병합하여 성태리라하며 궁동과 양촌으로 구분한다.
  • 궁동
궁동은 면소재지에서 약8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취락의 형성연대는 미상이나 연안차씨가 400년전부터 집단 세거하는데 인척관계의 김녕김씨가 인근 고령에서 이거해와 3-4대째 같이 거주하고 있다. 활같이 생겼다 하여 궁동으로 불리게 되었고 수박 등 비닐하우스 특작 재배가 활발하다. 본래는 초계군 덕진면에 속하여 소태실, 상태실, 상태 등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으며 양촌, 화동, 궁동을 병합하여 성태리라하며 궁동과 양촌으로 구분한다.
  • 궁동(弓洞) : 활같이 생겼다 하여 불린 이름이며, 양촌리와 같이 연안차씨가 집단 세거하는데 인척관계의 김녕김씨가 인근 고령 우곡에서 이거해와 살고 있다. 모리와 성태리가 공유하는 들판을 황강이 감돌아 흘러 옛날에는 홍수가 잦았으나 제방공사와 낙동강 연안개발사업으로 제방이 축조되어 수박, 참외 등 비닐하우스 특작이 활발하다. 고종때 급제한 죽헌 차정위 공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 양촌
양촌리는 면소재지에서 황강을 건너 서북쪽으로 약8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임진왜란 당시 절충장군 겸 수군절제사를 역임한 차향리공의 자손이 터전을 잡아 인근 운봉리와 삼학리에 걸쳐 300여호가 집성촌을 이루어 400여년의 덕원서원차씨문중의 본거지다. 경상남도 지정문화재 138호인 덕원서원과 덕원서원에는 유형문화재 257호인 쌍청당실기책판이 소장중이다.
  • 양촌(陽村) : 마을이 남서로 향해 있어 반대편에 위치한 화동과 궁동에 비해 햇빛이 오래 비친다 하여 양담, 양지담, 양지말로 불리며, 덕원서원이 저수지를 끼고 마을 어귀에 즐비해 있어 향리의 정취를 더한다.
  • 화동(華洞) : 서원을 사이에 두고 양촌과 마주보고 연해 있는 마을로 햇골이라고도 하며, 마을서편 안골(內谷)에는 저수지가 있어 앞들의 한발을 대비해 있다.
  • 샛터(新基) : 양촌의 앞산 왼자락에 영농의 편리를 쫓아 새로 조성된 주거지라 하여 샛터, 샛담 등으로 불리고 있다.

3.9. 미곡리

초계군 덕진면의 지역으로 성산 및 골짜기가 되므로 미실 또는 미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시 미곡리라 해서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미곡
미곡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황강건너 약 3Km 정도 떨어진 마을로서 덕연, 말정, 미실 3개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임진왜란 이후 연안차씨, 창녕성씨가 이곳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 미실(尾室) : 면 소재지에서 황강 건너 북쪽으로 3㎞ 거리에 산성봉 밑에 남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 덕연(德淵) : 덕어실이라고도 하며, 마을 앞의 황강물이 길고 큰 쏘를 이루어 연못같다고 하여 큰 덕(德)자와 못 연(淵)자를 따서 덕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말정(馬亭) : 낙동강과 황강의 합류지점이자 청덕면의 강남과 강북을 잇는 관문이다. 예전에는 나루터로서 주민을 실어나르는 나룻배가 있었으나 철교가 가설되고 2003년 청덕교가 완공된 이후부터 나룻배가 사라졌다.

3.10. 삼학리

본래 옛 초계군 덕진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내삼학마을과 외삼학마을을 통칭하여 삼학리라 하며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다.
  • 외삼학
외삼학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황강건너 동북쪽 5㎞ 거리에 위치한 낙동강 가에 있는 마을로서 낙동강 건너 동쪽은 창녕군 이방면이고, 남쪽은 황강과 낙동강의 합류 지점으로 300년전에 광주노씨, 평산신씨들이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비옥한 토지로 미맥농사 외에 마늘농사를 많이 한다
  • 내삼학
내삼학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북쪽으로 황강건너 6㎞ 거리에 동서로 길게 남향마을로 마을의 형성연대는 미상이나 약 400여년전부터 연안차씨가 터전을 잡아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밀양박씨가 다소 거주하고 있는데 700년전에는 남양홍씨가 살았다는 설이 있다.

3.11. 소례리

본래 초계군 덕진면 지역으로서 소리 또는 소례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례리로 개칭되었으며, 2개의 행정마을로 소례와 정산으로 구분되어 있다.
  • 소례
소례마을은 면소재지에서 청덕교를 건너 북쪽으로 7㎞거리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임진왜란때 합천이씨가 정착하여 형성되었으며, 조선중엽 병자호란때 경주김씨가 정착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 정산
정산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황강건너 북서쪽 7.5㎞ 거리에 시루봉밑 동북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약 250여년전 여양진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형성되었다.

3.12. 운봉리

운봉리는 옛 초계군 덕진면에 속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평촌, 송정, 상촌을 통칭하여 운봉리라 하여 합천군 청덕면에 편입되었으며, 2개 행정마을인 평촌과 송정으로 구분한다.
  • 평촌
평촌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황강건너 북서쪽 9㎞ 거리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송정과 상운봉에 비해 비교적 들판이 넓어 평촌이라 불렀고 약 400년전 부터 연안차씨가 집단 세거하였고 정확한 취락형성은 미상이다.
  • 송정
송정마을은 면소재지에서 황강건너 서북쪽 10㎞ 거리에 위치한 군도1호선이 면내 종점을 맞는데 이곳이 상촌이다. 송정은 상촌과 평촌의 중간에 위치하는데 상촌과 송정을 병합하여 송정이라 칭한다. 쌍책면과 덕곡면의 경계지점으로 약 400년전 연안차씨가 이곳에 정착하여 형성 되었다.
  • 상촌(上村) : 상운봉(上雲峯)또는 웃담이라고도 한다.
  • 중촌(中村) : 아랫담이라고도 하며 상촌과 송정 사이에 있다.
  • 송정(松亭) : 마을입구에 4~500년 생으로 추정되는 소나무가 있어 정자 그늘을 이루었다고 송정 또는 솔정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1924년 자연 고사하여 마을 이름으로 남았다.

4. 특징

면소재지는 두곡리이다. 이 면의 특징은 동측으로 창녕, 서측으로 초계, 적중이 있어 생활에는 불편함이 없다.

5. 교육

초등학교 - 청덕초등학교 (공립)

6. 출신 인물

7. 기타

합천창녕보와 낙동강 자전거길이 지나가고 있으며 근처에 적교장 모텔이 있어 픽업점프로 가능한 편이다.

[1] 2022년 12월 주민등록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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