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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f3120><colcolor=#ffffff> 광역자치단체 | 경상남도 | ||
기초자치단체 | 합천군 | ||
행정표준코드 | 5480043 | ||
관할 법정리 | 14리 | ||
하위 행정구역 | 27행정리 64반 | ||
면적 | 72.34㎢ | ||
인구 | 2,180명[1] | ||
인구밀도 | 30.14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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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면사무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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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남도 합천군의 면, 합천읍, 초계면, 쌍책면, 대양면, 고령군 쌍림면과 맞닿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2. 역사
- 조선조 중기 율진,천곡,갑산면으로 행정구역 분리
-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3개면이 통합,율진의 “율”자와 천곡의 “곡”자를 따서 율곡으로 이름하고, 1959년 7월까지 문림리에 면사무소가 있었음.
- 1959년 8월 1일부로 현재의 영전리 교동(校洞) 455-1번지 현 장소로 면사무소 이전.
3. 지명유래
3.1. 문림리
조선시대에는 합천군 천곡면 지역으로 민갓,문갓 또는 문림이라 불렀는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시 하천동(下泉洞)일부를 병합하여 율곡면으로 편입되었다. 그후 주세붕(周世鵬)이 벼슬에 진출할 때 중종께서 출생지를 하문할 때 민갓이라 하니 중종이 선비가 숲같이 많이 배출 하라는 뜻으로 문림(文林)으로 동명을 하사 하였다고 한다. 일제 침략시와 광복후 1959년 7월까지 율곡면 면소재지로 면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1.2구로 구성된 상주주씨 집성촌이다.
율곡면 옛 면소재지였다.
3.2. 임북리
임북리는 본래 합천군 천곡면 지역으로 숲이 우거진 뒤쪽에 마을이 있어 숲뒤. 혹은 임북이라 불렀는데 1914년 일제의 행 정구역 개편시에 종간(宗澗)마을을 병합하여 임북리라 명하고 율곡면으로 편입 되었다. 수개의 자연 마을로서 1.2구로 행정 리동 나누어져 있으며,율곡농공단지가 1990. 4.10일 준공 23.6ha의 부지에 전자부품,시멘트제품,모방직,건축자재,종합식품등 18개업체가 입주 가동중이다.
3.3. 본천리
천리는 본래 천곡면의 지역으로서 대암산 밑에 자리를 잡아 샘이 많고 집집마다 있어 샘실 또는 천곡,본천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간이상수도를 이용하고 있지만 우물이 많이 남아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천동,하동,대암동,하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본 천리라 해서 율곡면으로 편입 되었다. 3개의 자연 마을이 행정 리동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1구 새미실 2구 수실,3구 대암(大岩)이다.
3.4. 영전리
영전은 본래 천곡면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시 벽전동(壁田洞)을 합병하여 영전이라 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다. 대암산(大岩山)줄기가 북쪽을 향해 여러 줄기가 뻗어는데 골이 깊고 길어 기다란 밭이 많다하여 영전이라 불렀다고 한다. 광복과 더불어 1959년 문림리(文林里)에 소재하던 율곡면 청사를 영전리로 이전 하여 면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으며, 1.2구로 나뉘 어져 있고 면 소재지는 1구에 위치하고 있다.
3.5. 낙민리
낙민리(樂民里)는 율곡면 법정리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면적이 많은 마을로 현동(峴洞), 수복동(樹福洞),매야곡(梅也谷), 귀봉(貴峰),방동(芳洞)등 여섯 개의 자연 마을로 형성되어 있는데 조선조 초계군 갑산면 지역으로 속해 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천곡면(泉谷面) 벽전동 일부를 병합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다. 낙민(樂民)1구는 농토가 넓고 비옥하여 옛부터 교통이 편리하여 행인의 왕래가 많아 사람이 살아가는데 낙지(樂地)라 하여 낙민이라 불렀다는데 초계군 갑산면 면청사 소재지로 지금도 그 터가 남아 있다고 전하고 있으며,낙민2구는 마을 뒷산인 매화봉 (梅花峰)의 산록이 서쪽으로 야자 (也字) 형상으로 뻗어내려 매화가 많아 매화낙지(梅花落地)라 하여 매실 또는 매야곡으로 불렀다. 또 조선시대 중엽 선조조(宣組朝)에는 매야곡을 모여곡(毛汝谷)으로불렀다 하는데 1597년 정유재란시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초계에 주둔한 권율 도원수 휘하에 백의종군할 때 이 모여곡에서 오랫동안(6.4~7.18까지) 머물다간 역사적인 사실이 장군의 난중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낙민3구는 방동(芳洞)과 귀봉(貴峰)등 2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있다. 방동은 방골이라고도 하는데 3면이 산으로 둘러 싸여 아늑하고 따뜻하여 이름 그대로 살기좋은 곳이다. 귀봉(貴峰)은 도로에 보면 산속에 가려져 조금도 노출되지 않는 마을로서 임진왜란시 아홉사람의 부인들이 무사히 피난을 잘 하였다고 구부인(九婦人)이라 불렀다 하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발음 이 변형되어 구빙 또는 귀봉으로 불러졌다고 한다.
3.6. 두사리
두사리(杜泗里)는 본래 초계군 갑산면 지역으로 두릉(杜陵) 또는 두사(杜泗)라 하였는데 마을앞에 황강이 흐르는 관계로 강의 하상(河床)이 들의 높이와 비슷하여 홍수시는 항상 농토의 침수가 잦고 농작물의 피해가 심함으로 주민들이 물을 막는 노력이 많으므로 물을 막는다는 뜻으로 두사(杜泗)라 붙여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동네에는 안씨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3.7. 갑산리
갑산리(甲山里, 갑산, 진읍, 토개)는 본래 초계군 지역으로 고갑산(古甲山)이라 불렀는데 계포(械浦, 일명 진읍, 진늪)와 토포(吐浦, 일명 토개)를 병합하여 1914년 행정구역개편시 갑산리로 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다. 갑산리는 서쪽은 낙민리와 북쪽은 용덕산(龍德山)을 사이에 두고 내천리(內川里)와 남쪽은 초계면과 경계하고 있으며 동쪽은 황강이 동남으로 흘러 쌍책면과 접해있다. 갑산리는 갑산1구(甲山), 갑산2구(械浦), 그리고 갑산3구(吐浦)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황강 유역으로 예부터 수운(水運)이 편리한 곳이었으며 넓은 평야지로 형성되어 물물교환이 많이 이루어졌으며, 토포(吐浦)에는 예부터 농창(農倉)이 있었다고 전한다. 쌍책면 옥전 고분군이 바로 마을 앞이므로 사람이 거주한 역사는 오래되어 삼한시대 이전부터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갑산1구인 원갑산은 뒷산 자락이 거북이 등과 같고 갑옷을 입은 형상이므로 고갑(古甲)또는 갑산이라 불리워졌다고 하는데 갑산리 3마을 중에 가장 역사가 깊고 오래된 마을이다.
3.8. 내천리
본래 조선조에는 초계군 갑산면(甲山面)지역으로 마을 앞 황강 연변의 은빛 십리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서 평사락안천(平沙落雁川)이라 하여 기러기, 황새, 백로, 왜가리, 청등오리 등 많은 종류의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여 마을 지명이 안천(雁川)으로 기록되고 불려왔으나 한일합방으로 인한 1914년 왜정(倭政)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기러기 안자(안천 雁川)을 안내자(內川)로 잘못 의역표기(意譯表記)하고 개칭되어 현 합천군 율곡면에 편입된 것으로 고정(考訂)된다.
일설에 의하면 400여년전 임진왜란시 왜병이 부산포에 상륙하여 병선(兵船)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그 지류인 황강으로 진입하여 현 내천리(內川里) 뒷편 못재산(天池山)에 주둔하고 대안(對岸)인 기리(己里) 백마산성(白馬山珹)의 아군 의병과 화살, 창 등의 무기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 하여 동네 이름을 “왜나루”라고도 불렀다 하는데 구전일 뿐 확실한 고록(考綠)은 없고, 또 안천(安川)으로 일부 불려지나 안천(雁川)이 틀림없다고 전한다.내천리는 옛부터 산궁수회처(山窮水廻處)라 일컫는데 덕유산(德裕山)에서 발원한 강이 합천읍을 거치면서 유유히 동쪽으로 흐르다가 내천리에 이러르서 지산(池山) 천지천(天地川)과 용덕산(龍德山)을 휘감아돌아 북쪽으로 용트림하면서 굽이쳐 동남으로 흘러 낙동강(洛東江)에 합류된다. 이렇게 용비천(龍飛天)하는 지세(地勢)에 좋은 명당(明堂)이 있고 큰 인물(人物)이 배출된다 하여 유명무명(有名無名)의 地師(지사)들이 끊이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전두환의 생가가 있다.
3.9. 기리
기리(己里)는 본래 초계군 갑산면 지역인 상기(上沂: 웃기), 하기(下沂:점골)등과 합천군 율진면 지역인 오복동(五福洞) 일부를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의 율곡면 기리가 되었다. 상기동(上沂洞)의 중앙에 흐르는 개울이 합천군과 초계군의 경계였다. 기리는 율곡면 최북방의 마을로 경북 고령군(高靈郡) 쌍림면(雙林 面)과 접해 있으며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도계(道界)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북쪽의 봉태산(烽台山) 일명 각산(角山)과 서쪽 의 백마산(白馬山)이 둘러쳐져 있어서 농지면적은 협소하나 산림지가 많아 임산자원이 풍부하며, 남쪽은 황강이 동쪽으로 흐르면서 기리(內川里), 두사리(杜泗里)와 경계한 마을이다. 옛날 육지의 도로망이 개설되어 있지 않을 때는 주로 마을 앞의 황강을 이용한 수운교통이 편리한 마을이었다. 낙동강에서 해산물을 돛단배에 싣고 올라와 곡물과 임산물 등을 물물교환하던 교역장이 되어서 마을 앞 나릇가에 하역장이 있었다고 전한다. 상기동(上沂洞) 뒷산은 백마산으로 산성지(山城地)가 지금도 남아있는데 임진왜란시 의병들이 진을 치고 강건너 못재간의 왜병과 치열한 접전을 한 곳으로 전 해 내려온다.하기동(河沂洞 일명 점곡:店谷)에는 옹기를 굽는 도요지가 있었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기리에 풍산홍씨가 터를 잡고 오래 살았다고 하나 그 후손들은 다 이거하고 한집도 남아 있지않다.
3.10. 항곡리
항곡1구는 마을앞 약 300여평의 저수지가 천연적으로 생성되어서 못이 있는 마을, 즉 못실이라 불리워졌고 오랜세월이 지나면서 못실이 변칭되면서 목항(項)자를 사용하여 項谷이란 명칭이 되었다고 한다. 마을 서쪽의 주봉인 소학산(巢鶴山)이 우뚝 솟아 두줄항곡 큰 능선이 동향(東向)으로 뻗었는데 남쪽의 매봉산 줄항곡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골이 깊으나 평탄하고 아늑하므로 마을의 입지조건이 아주 좋은 편이다. 또한 동쪽은 황강(黃江)이 유유히 동류(東流)함으로 비옥하고 광활한 평야를 이루어 오곡이 풍성하고 인심이 순박하여 사람 살항곡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저수지 아랫 둑에 600여평의 정지(亭地)가 있어서 수령(樹齡)이 400여년의 정자나무 여섯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어 언제나 마을 사람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 피서지로서도 적지(適地)이다. 또한 이곳은 음력 정월 대보름에 동제(洞祭)를 올리는 곳으로 마을의 상징적인 장소이항곡도 하다. 항곡2구인 오복동 (五福洞)의 유래는 임진왜란시에 백마산성에 주둔한 조선의병들이 맞은편 못재산을 주둔한 倭兵에게 전력 부족으로 패주하면서 전투 항곡간에 마을주민들이 협조해준 것을 고맙게 여겨 작별 인사차 5인의 장수가 산성에서 내려와 복 많이 받고 행복하게 잘 사십시오 하면서 떠났항곡에 동명(洞名)을 오복동(五福洞)으로 불리워졌다고 전하여내려온다. 마을 서쪽의 수양산(壽陽山)과 북쪽의 백마산(白馬 山)이 둘러있고, 동쪽은 황강(黃江)이 동류(東流)함으로 토지가 비옥하여 이름 그대로 복 받을 마을이항곡도 하다.
3.11. 제내리
제내리(堤內里)는 본래 합천군 율진면 지역으로 마을 앞에 약3,000여평의 넓은 못이 있었으므로 못안, 지내(池內)라 불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둔전동(屯田洞), 서탄동(西呑 洞), 범구주(泛龜州)을 병합, (堤內)라 하여 율곡면 편입되었다. 현재 못안(池內), 둔전동(屯田洞), 범구주(泛龜州), 성지동(聖智 洞)의 네개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황강 물이 마을을 휘 감아 흐르므로 옛부터 수리가 편리하였고, 농토가 비옥하여 농산물이 풍부하게 생산되는 마을이며, 조선시대 과전제도(科田制度)에 의하여 운영되던 둔전(屯田)이 있던 마을이다.
3.12. 율진리
율진리(栗津里)는 본래 합천군 율진면 지역으로 1914 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갈(烏葛), 상지(上池), 하지(下池), 육비(六碑), 학산(鶴山), 예이(曳耳) 등 6개동을 병합, 율진리라 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다. 합천읍과 이웃하고 있으므로 옛부터 교통이 편리하고 사람살기가 좋아 일찍부터 농경문화가 발전한 지역 이었다. 율진리는 1.2구의 행정리로 구분되어 있다.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옛 율진면의 중심지였으며 고령 및 대구로 가는 시외버스가 정차하는 곳이다.
3.13. 와리
와리(瓦里, 와촌:瓦村)는 본래 합천군 와면 지역으로서 마을에 개와(蓋瓦)를 굽는 요지(窯地)가 있어서 고을 안 각처에 개와(蓋瓦)를 공급했으므로 와촌이라 불렸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와동(上瓦洞), 지현동(芝峴洞), 원촌동(院村洞)을 병합, 와리(瓦里)라 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다. 지릿재를 사이에 두고, 경북 쌍림면과 접경하므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경계 마을 이며, 대구에서 합천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다. 교통이 편리할 뿐더러 옛부터 원촌에는 합천읍에서 노양리(魯楊里) 가재를 넘어 묘산면(妙山面)과 경북 고령군 쌍림면 안림역(安林驛) 으로 넘나드는 길목으로 관원의 행차시 머물다가 가는 원(院)이 있었고, 행인이 쉬어가는 주점이 있어 왕래가 많았다고 전해오고 있다. 와리는 율곡초등학교와 율곡파출소가 있어서 북율곡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마을이며, 경북과 도계(道界)를 이루고 있어 보안.치 안의 요충지이다.
지릿재 넘어 고령군 쌍림면 합가리와 맞닿아 있다.
3.14. 노양리
노양1구는 웃너부리, 아랫너부리(샛담),가재마을 등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으며, 노태산 바로 밑의 마을로 마을 뒷산이 큰 능(陵)과 같이 생겨서 광릉동(廣陵洞)으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노양1구는 교통이 다소 불편하나 산수가 아름답고 임산자원이 풍부한 마을이다. 노양2구는 어양곡(魚陽谷), 신촌(新村), 원촌(院 村) 등의 자연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노양리(魯陽里)는 본래 합천군 율진면 지역으로 행정구역 통폐합시에 잉읍동(仍邑洞), 신촌동 (新村洞), 의량동(儀良洞)을 병합하여 노양리로 하여 율곡면에 편입되었는데 노태산(魯泰山) 남쪽의 따뜻한 양지마을이므로 노태산의 노자(魯字)노양 볕양(陽)자를 따서 노양리라 한다. 노양리는 노양1구노양 노양2구로 행정구역이 구분되어 있다. 노양리는 율곡면 최북단 마을로 묘산면(妙山面)과 경북 고령군 쌍림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노태산의 능선(陵線)이 양쪽으로 뻗어내려 골이 깊고 길어서 물이 맑고 공기가 깨끗하여 자연경관이 수려한 마을이다.
율곡면에서 가장 오지인 지역이다. 또한 33번 국도도 지나지 않는다.
4. 특징
면소재지는 영전리이다. 가야면, 야로면과 함께 고령군과 맞닿아 있는 지역이며5. 교육
초등학교 - 영전초등학교 (공립)6. 교통
고속도로는 없다.국도는 24번 국도와 33번 국도가 있으며, 24번 국도는 합천읍에서 건너와 거친 다음 초계면으로 가며, 33번 국도는 역시 합천읍에서 건너와 율진리, 와리를 거쳐 고령군 쌍림면으로 간다. 두 국도로 인한 수혜 지역이 서로 다르다. 대부분 지역은 24번 국도 축선이다. 임북리, 문림리, 본천리, 영전리, 제내리, 낙민리가 24번 국도 축선이며, 율진리, 와리, 노양리는 33번 국도 축선이다.
정작 율곡면소재지를 지나고 교통량도 더 많은 길은 24번 국도인데 24번 국도는 왕복 2차로인 반면 33번 국도는 전 구간 왕복 4차로다.[5]
버스교통은 많이 불편하다. 그나마 면소재지가 있는 영전리, 버스가 지나다니는 길목인 문림리, 낙민리,
참고로 율진리, 와리, 노양리, 제내리, 임북리, 본천리는 율곡면소재지인 영전리에서 1번에 바로 가는 버스가 없으며 합천읍이나 문림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또한 축선도 율곡면소재지행은 초계 - 신반선, 33번 국도 연선은 노양선으로 다르다.
7. 출신 인물
[1] 2022년 12월 주민등록인구[2] 하루 15회 정도.[3] 지랫재, 합가, 귀원, 고령 경유. 율곡면소재지인 영전리가 아닌 옛 율진면 중심이었던 '율진리'에 서니 주의하자. 영전리에서 대구 갈 거면 그냥 합천시외버스터미널 가는 게 더 편하다.[4] 코로나19로 인해 무기한으로 운행이 중지되었다.[5] 이는 24번 국도가 주변의 작은 촌을 잇는 반면 33번 국도는 대구나 진주 같은 굵직굵직한 큰 도시를 잇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