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rtraiture
1. 설명
질적 연구방법 중 하나로, 연구대상에 대해서 심층면접법(IDI) 혹은 관찰법을 동원하여 수집한 정보에 대해 풍부하고 심오한 묘사를 함으로써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는 방법.다변화된 질적 응용연구를 극한으로 추구하는 학문적 특성 때문인지 교육학 분야에서 개발되었으며, 실제로도 교육학에서 많이 쓰인다. 학계에서는 사례연구를 위한 면접법의 한 파생형 정도로 취급되는 듯하며, 방법론적 개발에 있어서 한국 학자들과도 인연이 많다. 크게 보아 새라 로런스-라이트푸트(S.Lawrence-Lightfoot)의 접근과 클라우스 위츠(K.G.Witz)의 접근으로 나눌 수 있으며, 이 둘은 초상화법이라는 이름만 공유한다 뿐이지 나머지 모든 방법론적인 측면들은 아예 별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확연하게 달라진다. 굳이 둘 중에서 대세(?)를 꼽자면 위츠의 접근이 더 활발히 적용되고 있는 중. 따라서 "초상화법이 뭐임?" 이라는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일단 먼저 로런스-라이트푸트의 접근을 배경지식 삼아 소개한 다음, 위츠의 접근을 소개하면서 "초상화법은 이런 것" 이라는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것 같다.
접근 가능한 대부분의 초상화법 관련 논문들은 (위츠의 글쓰기 특성일 수도 있으나) 마치 유파의 비급을 전수해 주는 건가 싶을 정도로 긴가민가한 뜬구름이 많다. 현장에서 뛰면서 면접법만 열몇 번씩 진행해 본 베테랑 연구자들끼리 통하는 고단수의 "노하우" 를 공유하는 듯한 인상이다..
1.1. 로런스-라이트푸트
사실 초상화법의 시조라고 한다면 로런스-라이트푸트의 1983년 저서인 《The Good High School》 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1] 당시 이 책의여기에 고무된 로런스-라이트푸트는 자신의 방법론을 본격적으로 "초상화법"(portraiture)이라고 명명하고, 1997년에 아예 화가와 공동으로 《Art and Science of Portraiture》 를 펴내기에 이른다.[3] 이 책은 초상화법을 "예술과 경험주의의 경계선상에 놓인 연구방법론" 이라고 정의했으며, 면접 자료를 연구자가 보고할 때 '화가가 초상화를 그리듯이' 보고하는 방법을 정립했다고 평가된다. 여기서 "초상화를 그리듯이" 글을 쓴다는 표현이 낯설 수 있는데, 굳이 분류를 제시하자면 에스노그라피 기반의 임상적 면접에 속하고, 현장 연구노트를 인상주의적 글쓰기로 관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초상화란 곧 인상파 초상화일 수 있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 면접을 진행한 뒤, 면접 결과를 논문에 보고하기 위해 면접 내용의 일부를 발췌할 경우, 이야기 속에 연구자의 존재를 포함시킴으로써[4] 연구자의 반성(reflexivity)을 도모했다고.
로런스-라이트푸트가 당초 제시했던 초상화법은 면접에 응하는 참가자의 표정과 분위기, 면접 장소, 주변 환경, 타인들, 기관 및 조직의 분위기, 조직문화, 이 모든 것들을 전부 전후맥락에 집어넣고 철저하게 기술함으로써 하나의 완성된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에 가까웠다. 특히 이 방법은, 종래의 전통적 연구에서처럼 연구대상의 병리적 측면을 조명할 때보다는 오히려 강점, 덕목, 모범, 공공선 등을 주제로 할 때 더 효과적이라고. 그래서 아래에 소개할 위츠의 방법과는 달리, 그녀의 방법론은 특정한 활동, 프로그램, 조직, 기관, 지역사회의 실생활(real life)을 연구의 주제로 할 때에 더 탁월하다고 평가되고 있다.
1.2. 클라우스 위츠
오늘날 국내에서나 해외에서나 초상화법이라고 하면 위의 설명보다는 대개 이제부터의 설명이라고 보면 된다(…). 클라우스 위츠의 초상화법은 특별히 본질주의자 초상화법(essentialist portraiture)이라고 불리며,[5] 고유의 여러 방법적 체계들을 갖고 있다. 위츠는 로런스-라이트푸트에게서 초상화법이라는 이름을 전수받긴 했지만, 이를 포함하여 내러티브 면접이나 에스노그라피 등에서 강조되는 전통적인 '몰입적' 보고양식에 대해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 면접법에서 집중 잘 해라, 라포(rapport) 잘 만들어라, 꼼꼼하게 보고해라 하는 정도의 조언이라면 이미 한두 번 나왔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위츠가 보기에 이 모든 조언들은 전부 피상적인 기술과 묘사에 그칠 따름이었다.[6] 그것만으로는 연구대상에 대해 진정으로 알았다고 볼 수 없었다. 독자들은 그런 풍부한(rich) 서술을 보면서 자신이 연구대상의 심층적인 측면까지 전부 이해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이는 맥락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위츠는 기존의 한계점 있는 면접 방식을 "정보를 위한 면접"(interviewing for information)이라고 명명하고, 이에 대비되는 자신의 새로운 대안적 접근으로서 "느낌을 위한 면접"(interviewing for feeling)이라고 명명했다. 이제부터는 참가자의 외적인 측면에 대한 정보만을 찾을 게 아니라, 참가자의 마음 속에서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지 느껴 보자는 것이다.[7] 즉, 위츠의 초상화법은 특정 인물에 대한 사례연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느낌을 위한 면접에서 참가자는 단순히 연구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오히려, 참가자는 연구문제에 대한 공동의 숙고자(co-contemplator)의 지위를 얻고, 동반자로서의 참가자(participant as ally)로 인정받는다.[8] 참가자는 더 이상 화가 앞에서 꼼짝 없이 앉아 있는 모델이 아니다. 연구자가 참가자의 일생과 사고관, 경험, 세계를 이해해감에 따라, 참가자 역시 연구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된다. 그래서 Witz(2006)는 참가자가 동반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는 징후로서, 참가자가 어느 순간부터 연구주제와 관련하여 자발적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 감정, 가치들을 먼저 꺼내놓게 되면 그때 동반자 관계가 성립된 것이라고 하였다.[9] 바로 이 점 때문에 위츠의 초상화법은 라포의 형성이 극도로 중요하다. 관련문헌에서 아예 "인생의 동반자를 정할 때 그러하듯이, 연구의 동반자를 정할 때에도 충분히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해야 한다" 고 말할 정도. 일탈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본질주의 초상화법을 실시하기 위해, 면접 몇 개월 전부터 (교사의 허락을 받고) 교실 뒷자리에 연구자가 함께 앉아서 학생들과 미리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본질주의 초상화법이 "타인의 의식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여기서 이해되는 타인의 의식이란 무엇일까? 관련문헌에 따르면,[10] 참가자가 자신의 삶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미묘하고 폭넓게(subtle-and-pervasive) 나타나는 통일성(unity)이 존재한다고 하며, 이것을 포착하는 것이 본질주의 초상화법의 목표가 된다. 이는 대체로 그 사람의 생애에 걸쳐서 수 년 이상의 오랜 시간 동안 서서히 떠오르는 개인의 가치관, 형이상학, 종교성, 신념, 이상, 윤리 등으로, 개인의 내면에 시간적으로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 흐름(strands)이며, 현재 시점에서는 미묘하지만 폭넓게 영향을 끼치는 일반적 본질(general nature)이다. 본질주의 초상화법은 그러한 측면들을 고차적 측면(higher aspects)이라고 부르고 있다.[11] 고차적 측면을 찾아내기 위해서 초상화법의 연구자는 참가자 내면의 순간순간의 의식(moment-to-moment consciousness)을 질문하게 되고, 이 의식들이 나타나는 생생한 지점(alive passage)을 탐색한다. 보다시피 한 개인의 가장 진솔하고 가장 진지하며 가장 근본적인 측면들을 꺼내는 작업이다 보니, 때때로 내적 갈등이나 차마 털어놓지 못했던 개인적인 비밀도 튀어나올 수 있으며, 이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타인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지는 치료적 효과를 기대해 볼 수도 있다고 하지만,[12] 초상화법은 상담기법이 아니라 엄연히 연구방법론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부가적 효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문제는 남는다. "무엇을"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되었지만, "어떻게" 그것을 이해해야 할지는 다른 설명이 더 필요한 것이다. "연구자가 어떻게 타인의 의식을 이해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에 대답하기 위해, 위츠는 찰스 쿨리(C.H.Cooley)가 1906년에 제안했었던 방법인 공감적 내관법(sympathetic introspection)을 제안한다.[13] 물론 여기서도 모든 노력의 대전제는 라포의 형성이다. 일단 연구자가 참가자와 "친밀한"(intimate) 관계를 만들었다면, 다음으로 연구자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참가자의 삶의 경험과 최대한 유사한 경험을 "일깨워내고"(awakening), 이를 논문의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는"(articulating) 방법이라고 간략히 설명할 수 있다.[14] 즉, 참가자의 삶과 경험을 접할 때, 연구자의 내면에서 이미지가 "일깨워져서" 그 내면에서 올라오게 되고, 연구자는 참가자에 대한 '미묘하고 내적인 이해' 를 갖게 된다. 참가자의 실제 삶과 연구자의 이미지가 서로 유사해지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 발생하고, 이로써 외적 타당도가 확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이해한 것을 이제 어떻게 필사하고, 논문에서 생생하게 발췌해서 보고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여기서 다시 제시되는 것이 바로 미시분석(micro-analysis)이다. 본래 이 역시 에스노그라피에서 활용되던 방법이었는데,[15] 위츠는 미시분석을 할 때 청각적 녹취 자료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즉, 이 자료를 필사할 때에는 면접 당시 연구자가 공감하던 그 "느낌" 이 일정 부분 손실되는데, 이런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연구자는 반드시 녹취 자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츠는 미시분석의 대상이 되는 측면 3가지로서 ① 목소리의 인상, ② 강세, 윤곽, 억양, 어조, 피치 등 말투의 인상, 그리고 ③ 긴장감, 고양감, 경계심 등 목소리의 특성을 각각 제시하였다. 생생한 지점들을 미시분석할 때, 연구자는 간혹 엉뚱한 결론으로 오도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차피 미시분석의 대상이 되는 생생한 지점들은 여러 군데에 있으므로, 그것들이 서로 상호확증하며 일관된 하나의 통일성을 만들어낸다면 연구자의 해석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생생한 지점 B의 핵심 내용은 그 앞에서 생생한 지점 A를 분석할 때 이미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자의 노력은 종래의 다른 질적연구와 같은 범주기반 코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논평(commentary)의 형태로 논문에서 보고되게 된다. 논문에서 연구자들이 녹취록 일부를 (괄호쳐진 어조 정보와 함께) 인용하고, 이 지점이 어째서 의미심장하고 어떤 인상을 불러일으키는지, 그리고 주목해야 할 언급이 어디어디인지 지적해 줄 수도 있다고. 특히 초상화법에서 자주 쓰이는 시각자료가 바로 타임라인(timeline)인데, 그 이유는 한 개인의 내면 속에서 미묘하고도 폭넓게 영향을 끼치는 본질적인 통일성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한방에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가자의 생애를 가로축으로 표시하고 주요 전환점들을 세로선으로 그어서 시기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연구주제에 관련된 타인의 내면이 어떻게 확장, 축소, 통합, 분리되었는지 면적의 형태로 나타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보자면 초상화법이 무슨 종단적 연구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초상화법은 어디까지나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보기 위하여" 개인의 전생애적 삶의 궤적을 그려내는 것을 중요시한다. 즉 면접 자체를 몇 년씩 이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면접을 할 때 수 년에서 수십 년에 해당하는 기억들을 되살리는 방식이라는 것.
물론 위츠의 면접법은 데이터의 포화에 이를 때까지 기본 수 회의 후속면접들과 프로빙(probing)을 가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후속면접은 어디까지나 앞서의 면접에서 놓친 것이 있거나 보완해야 할 것이 있을 때에 그 주제에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거두절미하고 효과적으로 요점으로 들어갈 수 있다. 면접 방법을 제시하는 문헌에 따르면,[16] 서로 동일한 배경지식을 갖춘 상태에서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연구자의 질문에 참가자가 대답을 준비하기 위해 휴지(pause)를 갖는다거나 생각에 잠기거나 군말을 하는 등의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연구자와 참가자는 이미 "척하면 척" 의 관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는 참가자보다 한 발짝 뒤에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반구조화된(semi-structured) 방식의 면접을 통해서 연구가 방향지어질 수 있을 정도만큼만 살짝 감만 잡아주면 충분하다.[17] 대체로 후속면접이 필요할 경우에는 2~3회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이상의 소개에서 보듯이, 위츠의 방식은 로런스-라이트푸트의 "전반적으로 다 묘사하는" 방식과 확연히 다르다. 우선 양자의 공통점을 먼저 언급하자면, 양쪽 모두 참가자와 연구자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하고, 참가자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여 보고하며, 연구대상에 대해 긍정적인 주제에 집중하고, 참가자의 삶에 대해 통일성이 돋보이는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확연하게 드러나는 차이점들도 존재한다. 위츠는 연구 참가자 상대방의 내면 속 깊숙이 들어가고자 하며, 이를 위해 참가자의 과거와 미래를 헤매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특히,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상대방의 내면에 감돌고 있는 "본질적" 인 부분이 어떻게 움트고, 확산되고, 영향을 끼치게 되었는지 그 변화의 과정에 관심을 갖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위츠의 본질주의 초상화법은 참가자 개인의 삶과 고유한 측면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즉 참가자 개인을 이해하는 데 탁월하다.[18] 즉, 한 개인의 내면에서 과거에서 현재, 미래에 이르는 시간 동안 걸쳐 온 동기화, 도덕성, 윤리관, 영성, 의식화, 각성, 깨달음 등을 주제로 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더 짧게 줄여 말하자면, 위츠의 초상화법 주제는 인터넷에서 흔히 돌곤 하는 "그때부터였어요... 제가 ○○하게 된 때가..." 라는 드립에 비유되어도 좋을 것이다(…). 참가자가 언제부터 환경 운동가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참가자가 교사로서 갖고 있는 '가르친다' 는 관념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참가자가 어쩌다가 촛불집회에 직접 나서게 되었는지, 참가자가 무엇을 계기로 젠더갈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참가자가 한때 학교를 중퇴했으나 무엇을 계기로 다시 학교에 복학하게 되었는지, 참가자가 사업에 실패한 이후 누구에게서 어떻게 힘을 얻어 재도전을 하게 되었는지, 참가자가 어떤 일들을 계기로 자신의 노후를 실감하고 대비하게 되었는지 같은 수많은 영역들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2. 유사 질적연구들과의 비교
종합적으로 보아 초상화법은 연구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추구하기에 적합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로런스-라이트푸트의 경우 그것을 풍부한 상황설명 및 세밀한 묘사를 통해 추구한다면, 위츠는 특정 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통일된 본질을 포착함으로써 달성하려 한다는 차이가 있다고 보면 될 듯하다. 이와 같은 접근법이 질적연구의 수많은 흐름들 속에서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초상화법은 그 자체만의 고유한 특성도 갖는다. 다른 유사한 연구들과 부분적으로 비교를 시도하였던 전영국(2015)의 문헌을 참고한다면 다음과 같다.- 근거이론: 면접 자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들을 통해서 연구대상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시도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특정한 코딩방식을 채택하지 않고 녹취록의 반복적 듣기와 연구자의 해석을 중시한다는 것은 초상화법만의 차이점이다.
- 생애사연구: 특정 경험에 대해서 연구참가자의 시간적 흐름에 따르는 주요 측면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초상화법은 생애달력을 만들어서 한 개인의 일대기적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것이 그 목적이 아니다.
- 에스노그라피: 연구대상에 대해 중층기술법과 미시분석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초상화법은 단순히 두터운 묘사에서 그치지 않고 연구대상이 갖는 더 깊은 본질을 탐색하려 한다.
3. 연구동향 및 논의점들
초상화법은 클라우스 위츠가 질적 방법론 저널들에 기고하는 논문들, 그리고 같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동료 연구자들의 연구사례를 통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영국과 이현주(2016)에 따르면, 특히 본질주의 초상화법은 2000년대 이후 해외에서 점차 정립되고 있는 동안에 국내에서도 석박사급의 학위논문 주제로 저변을 넓혀 갔으며, 역시나 국내에서도 교육학 분야에서 폭넓게 활용되었다. 흥미롭게도 주요 연구자들 중에 한국인이 많은데, 당장 위에서 언급되었던 전영국, 배성아 등의 연구자들이 바로 이 위츠와 함께 연구하고 방법론을 만들었으며 국내에 초상화법을 도입한 인물들이다. 심지어 Witz(2015)의 문헌은 국내 저널인 《질적연구》 창간호에 실린 것이다. 초상화법에 대해서라면 국내 연구환경도 방법론적으로 상당히 선진적이라고 볼 수 있을지도.몇 가지 남은 논의점들로, 전영국과 이현주(2016)는 미시분석이라는 것이 자칫 심리적이고 인지적인 수준의 분석과 혼동될 수도 있다고 하였다. 현재로서는 초상화법의 미시분석이 다른 종류의 질적 분석들과 같다면 어떻게 같은지, 다르다면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것인지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특히 초상화법은 질적 연구 분야에서의 학술적 글쓰기(academic writing)가 갖는 위상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고 평가된다. 양적이거나 과학적인 연구들은 매우 엄격하게 정형화된 글쓰기 스타일을 견지하는 반면,[19] 질적 연구의 경우 어떻게 논문을 써야 할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는데, 이는 글쓰기가 질적 접근에서 갖는 중요성이 크다는 것을 알았기에 함부로 통일시키기 어려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초상화법은 독자와의 공명(resonance)을 위해 회화적 비유에 크게 의존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학술적 규준에 맞는가 하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다. 만약 가능하다면, 예컨대 한 문헌에서 가능성을 제안했던 것처럼[20] 이른바 "크로키식 글쓰기", "콜라주(collage)식 글쓰기" 도 가능한가 하는 의문들도 따라오게 된다.[21]
[1] Lawrence-Lightfoot, S. L. (1983). The good high school: Portraits of character and culture. New York, NY: Basic Books.[2] 아닌게아니라 예전부터 저자와 연구주제를 공유하고 있던 다른 동료 학자들부터가 방법론에 있어서 굉장히 진보적인 분위기였다고 한다.[3] Lawrence-Lightfoot, S. L., & Davies, J. H. (1997). The art and science of portraiture. San Francisco, CA: Jossey-Bass.[4] 대개의 경우 이는 3인칭으로 묘사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1인칭도 가능하다고 한다. 예컨대, 논문에서 연구자가 스스로의 느낌과 생각에 대해서 "나는 참가자의 그 말을 듣고 안도하였다." 라는 문장을 면접 발췌 중에 포함시킬 수 있다.[5] Witz, K. G. (2015). Portraiture and essentialist portraiture. Journal of Qualitative inquiry, 1(1), 67-84.[6] Witz, K. G., Goodwin, D. R., Hart, R. S., & Thomas, H. S. (2001). An essentialist methodology in education-related research using in-depth interviews. Journal of curriculum studies, 33(2), 195-227.[7] Witz(2006)에 따르면, 종래의 정보를 위한 면접 과정에서는 전형적으로 참가자가 "~가 좋았다", "~하기로 했다", "~는 도움이 되었다", "~가 재미있었다" 와 같은 언급을 하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그가 강조하는 바 느낌을 위한 면접 과정에서는 이런 언급들은 전부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 특이한 표현, 말의 강세, 윤곽, 억양, 어조, 피치 등이다. 질문 역시 종래의 방식에서는 "어쩌다 수학교육과에 들어가셨나요?" 를 직접 묻지만, 느낌을 위한 면접에서는 먼저 라포가 형성되고, 연구자가 질문을 물어보려는 즈음에 참가자 쪽에서 오히려 "그러고 보니 제가 어쩌다 수학교육 전공을 했을까요?" 하고 말을 꺼낸다. 이는 초상화법의 고유한 면접 기술이자 차별점이다.[8] Witz, K. G. (2006). The participant as ally and essentialist portraiture. Qualitative inquiry, 12(2), 246-268.[9] 다시 말하면, 참가자가 연구자의 문제의식을 놓고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다가, 문득 "그렇다면 아마도 제가 겪었던 이 경험이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어요" 하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10] 전영국, 이현주 (2016). 질적 연구 방법으로서의 초상화법 소개와 특징 고찰. 교육문화연구, 22(4), 5-23.[11] Witz, K. G., Lee, H., & Huang, W. (2010). Consciousness in the study of human life and experience: "Higher aspects" and their nature. Qualitative inquiry, 16(5), 397-409.[12] 신옥숙 (2005). 교육 연구를 위한 심층면접법의 의의와 활용. 경인교육대학교 교육논총, 25(1), 121-139.[13] Witz, K. G., & Bae, S. (2011). Understanding another person and Cooley's principle of sympathetic introspection: Consciousness in the study of human life and experience II. Qualitative inquiry, 17(5), 433-445.[14] Witz, K. G. (2007). “Awakening to” an aspect in the other: On developing insights and concepts in qualitative research. Qualitative Inquiry, 13(2), 235-258.[15] Erickson, F. (1992). Ethnographic microanalysis of interaction. In M. D. LeCompte (Ed.), The handbook of qualitative research in education (pp.201-225). San Diego, CA: Academic Press.[16] 전영국 (2015). 초상화법 질적 연구 방법과 수행 절차에 관한 탐구. 질적연구, 1(2), 1-23.[17] 전영국, 배성아, 이현주 (2013). 초상화법에서 사용되는 심층면담에 관한 탐구: 동반자적 관계 형성과 주관적 요소 탐색을 중심으로. 교육인류학연구, 16(3), 1-29.[18] 전영국 (2014). 이공계 공학도의 인문예술적 소양과 영적 각성에 관한 인물 사례 고찰. 내러티브와 교육연구, 2(1), 23-42.[19] 실제로 과학적 방법이 지배적으로 통용되는 학문분야의 영자논문은 어지간한 TOEFL 읽기 지문보다 훨씬 더 빠른 독해가 가능한데, 이는 논리적 전개에 따라서 눈에 띄는 "시그널" 이 정형적으로 존재하고, 일종의 상투적 표현들이 대동소이하게 반복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사법(레토릭)이나 암시적 표현, 소위 "행간 읽어내기" 와 같은 측면들은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래서 일단 전문용어와 약어, 구성양식에만 익숙해지면, 독자가 논문에게 끌려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이후에 나올 내용까지 미리 예상하면서 먼저 읽어내려가는 것도 가능하다.[20] 김영천, 이동성 (2013). 질적 연구에서의 대안적 글쓰기 이론화 탐색. 열린교육연구, 21(1), 49-76.[21] 나무위키에 한하여 생각건대, 김영천과 이동성(2013)이 제시한 "회화적 글쓰기" 의 범주는 차후 질적연구 학계에서 좀 더 명확히 제시되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초상화법은 '회화로서의 글쓰기' 에 가깝다면, 해당 문헌에서 말하는 범주는 오히려 '회화의 도움을 받는 글쓰기' 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