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최경락(崔京洛) |
생몰 | 1900년 6월 10일 ~ 1949년 7월 19일 |
출생지 |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삼산리 |
사망지 | 충청남도 논산군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포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최경락은 1900년 6월 10일 충청남도 논산군 성동면 삼산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6년 3월 공주 공립사범학교를 수료하고 충청남도 내 여러 초등학교를 거쳤으며, 1941년 8월 말 논산군 벌곡면 한천리에서 벌곡공립국민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1943년 6월 담임을 맡고 있던 5학년 국사 수업시간에, “옛날 풍신수길의 군대가 조선을 공격해 와서 어린이를 죽이고 마을의 집들을 모조리 불태워버렸다", "조선에는 쓰기에 편한 한글이 있는데도 마음대로 쓸 수 없어 유감이다", "너희들은 일본인이 되었지만 아버지, 할아버지는 조선인이다"라는 등의 내용을 우리 말로 강의했다.이 일로 체포된 그는 1943년 11월 29일 대전지방법원 강경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49년 7월 1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최경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