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2-07 16:46:36

최면식

성명 최면식(崔勉植)
자 / 호 경소(敬紹) / 염재(念齋)
본관 경주 최씨[1]
생몰 1891년 1월 7일 ~ 1941년 7월 3일
출생지 경기도 포천현
(현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2]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최익현의 손자이기도 하다.

2. 생애

최면식은 1891년 1월 7일 경기도 포천현(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서 최영학(崔永學)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경성부로 이주하여 장사동에 살았다.

1910년 경술국치를 당하자 그는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에 나서기로 결심, 무기를 휴대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17년에 대한광복회에 가입하고 이병호(李秉昊)와 함께 전라남도 지역의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금하고, 무기를 조달하여 광복회장 채기중에게 증여하는 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그러다 1918년 초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어 또 다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그해 2월 25일 소위 보안법 위반 및 공갈·총포화약취체령 위반 등의 혐의로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후 1여년 동안 미결수로 복역하다가 1919년 2월 2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형(미결 구류일수 중 90일 본형에 산입)을 언도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대한광복회 재건에 힘쓰다가 1921년 9월에 재차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갖은 고문을 당했다.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반신불수가 되었다. 1925년 이후에는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상·하왕십리(현 서울특별시 성동구 상왕십리동·하왕십리동)와 숭인면 신설리(현 동대문구 신설동) 등지에 은거하며 자택을 국내 독립운동 단체의 연락처로 제공하기도 하고, 상경하는 청년들에게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도 하였으며, 특히 독립투사 비밀 기술원에서 의술을 배워 한약방을 개설해 어려운 주민들을 무료로 치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문의 여독으로 1941년 7월 3일 별세하였다.

198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포장이 추서되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1] 화숙공파 29세손 식(植) 상(相) 항렬.[2] 경주 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최익현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