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897년생 목사
아! 신앙 혁명은 가까웠구나 / 아! 신앙 혁명은 이르렀구나 / 현대의 생명 없는 신도들아 / 허위에 날뛰는 교우들아 / 말라 빠진 교리만 붙잡고 있고 / 생명의 신앙을 내버렸구나 //
신앙혁명가 1절
신앙혁명가 1절
1897~1950. 호는 시남. 우리나라 고유의 그리스도교 교단인 기독교대한복음교회를 창립하였다.
일본의 무교회주의 신학자인 우치무라와 성경을 공부하면서, 한때 무교회주의에 심취해 있었고 이때 '제도냐 신앙이냐', '사업이냐 생명이냐'와 같은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중반부터는 무교회주의에서 점차 탈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1925년 12월에 YMCA 강당에서 발표한 '신앙혁명선언문'을 보면 그가 무교회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때 "소하고 순한(작고 순수한) 민족교회"의 설립을 처음 생각하였다. 1928년 다시 일본으로 유학을 간 그는 메이지가쿠인대학(명치학원대학)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고, 1932년 귀국하여 전국을 돌아다니며 "조선의 신학, 조선의 신학교"를 부르짖었다.
1935년 1월에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기독교조선복음교회를 창설하였다. 기독교조선복음교회는 기독교대한복음교회의 전신으로, 다분히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었기에 일제의 탄압과 박해를 받았다.
광복 직후에는 새 국가 건설의 초석은 오직 기독교 신앙뿐이라고 말하며 신생회라고 하는 신앙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뒤에는 농민회 부회장, 농민훈련원 원장을 지내며 농촌운동에 헌신하였다. 1950년 9월 11일에 한국 전쟁 도중 서울에서 북한 공산군에 의하여 순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