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노벨생리학·의학상 수상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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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카를 란트슈타이너 Karl Landsteiner | |
출생 | 1868년 6월 14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
사망 | 1943년 6월 26일(향년 75세) |
미국 뉴욕 | |
직업 | 병리학자, 의사 |
1. 개요
오스트리아 바덴바이빈 출신의 병리학자이자 의사.빈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미국 록펠러의학연구소의 병리학 교수를 지냈다. 사람의 혈액군(血液群)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여 ABO식 혈액형을 발견, 수혈법을 확립했다. 그 공로로 1930년에 노벨생리학·의학상을 받았다.
또 A.위너와 협동하여 Rh인자(因子)를 발견했고 소아마비 초기에 유효한 혈청을 개발하고 매독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참고 : Karl Landsteiner (네이버 지식백과)
2. 생애
란트슈타이너는 1868년 6월 14일 오스트리아 바덴 바이 빈의 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4] 오스트리아의 독일어 일간 신문으로 유명한 Die Presse의 편집장이던 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란트슈타이너가 겨우 7살이었던 1875년에 5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는 아마 란트슈타이너가 혈액형 연구 등 생명을 살리는 연구에 집착하게 된 것에 관계가 있을 것이다.그는 빈의 고등학교에서 Matura(라틴어로 '성숙한', 즉 한국으로 치면 수능) 시험을 마친 후 빈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 1891년 박사 논문을 썼다. 이 시절에도 그는 혈액에 대해 관심이 깊어 혈액 구성에 대한 식단의 영향에 대해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1891년부터 1893년까지 란트슈타이너는 뷔르츠부르크, 뮌헨, 취리히 등등에서 화학을 공부하며 많은 책을 썼다. 1900년 ABO식 혈액형을 발견, 이듬해 논문에 발표하였으며, 이 공로로 1930년 노벨상을 받았다. 1908년 빈 대학교 병리학 교수가 되었다. 1916년 헬렌 블라스토와 결혼하여 1명의 자녀를 두었다.
1937년에는 제자 A.비너와 협동하여 Rh인자(因子)를 발견했고, 이 무렵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 나치당이 오스트리아를 휩쓸자 1939년 퇴직 후 뉴욕으로 건너갔으며, 1943년 실험실에서 일하던 중 심장발작을 일으켜 사망했다. 향년 75세.
3. 여담
- 세계 헌혈자의 날은 란트슈타이너의 업적을 기념하여 생일에 맞춰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