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padding-top: 5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 <rowcolor=#cd9f51> 1901 | 1902 | 1903 | 19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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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 폰 베링 | 로널드 로스 | 닐스 핀센 | 이반 파블로프 | |
<rowcolor=#cd9f51> 1905 | 1906 | 19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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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코흐 | 카밀로 골지 | 산티아고 카할 | 샤를 라브랑 | |
<rowcolor=#cd9f51> 1908 | 1909 | 191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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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메치니코프 | 파울 에를리히 | 에밀 코허 | 알브레히트 코셀 | |
<rowcolor=#cd9f51> 1911 | 1912 | 1913 | 19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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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르 굴스트란드 | 알렉시 카렐 | 샤를 리셰 | 로베르트 바라니 | |
<rowcolor=#cd9f51> 1919 | 1920 | 19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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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보르데 | 아우구스트 크로그 | 아치볼드 힐 | 오토 마이어호프 | |
<rowcolor=#cd9f51> 1923 | 1924 | 19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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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벤팅 | 존 매클라우드 | 빌럼 에인트호번 | 요하네스 피비게르 | |
<rowcolor=#cd9f51> 1927 | 1928 | 19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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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우스 야우레크 | 샤를 니콜 | 크리스티안 에이크만 | 프레더릭 홉킨스 | |
<rowcolor=#cd9f51> 1930 | 1931 | 19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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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란트슈타이너 | 오토 바르부르크 | 찰스 셰링턴 | 에드거 에이드리언 | |
<rowcolor=#cd9f51> 1933 | 193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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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모건 | 조지 휘플 | 조지 마이넛 | 윌리엄 머피 | |
<rowcolor=#cd9f51> 1935 | 1936 | 19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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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슈페만 | 헨리 데일 | 오토 뢰비 | 얼베르트 센트죄르지 | |
<rowcolor=#cd9f51> 1938 | 1939 | 19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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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네유 하이만스 | 게르하르트 도마크 | 카를 담 | 에드워드 도이지 | |
<rowcolor=#cd9f51> 1944 | 19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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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얼랭어 | 허버트 개서 | 알렉산더 플레밍 | 하워드 플로리 | |
<rowcolor=#cd9f51> 1945 | 1946 | 19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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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체인 | 허먼 멀러 | 칼 퍼디낸드 코리 | 거티 코리 | |
<rowcolor=#cd9f51> 1947 | 1948 | 19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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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도 우사이 | 파울 뮐러 | 발터 헤스 | 에가스 모니스 | |
<rowcolor=#cd9f51> 1950 | 19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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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헨치 | 에드워드 켄들 | 타데우시 라이히슈타인 | 막스 타일러 | |
<rowcolor=#cd9f51> 1952 | 1953 | 19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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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먼 왁스먼 | 핸스 크렙스 | 프리츠 리프먼 | 존 앤더스 | |
<rowcolor=#cd9f51> 1954 | 1955 | 195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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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웰러 | 프레더릭 로빈스 | 악셀 테오렐 | 앙드레 쿠르낭 | |
<rowcolor=#cd9f51> 1956 | 1957 | 195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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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너 포르스만 | 디킨슨 리처즈 | 다니엘 보베 | 조지 웰스비들 | |
<rowcolor=#cd9f51> 1958 | 19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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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테이텀 | 조슈아 레더버그 | 세베로 오초아 | 아서 콘버그 | |
<rowcolor=#cd9f51> 1960 | 1961 | 196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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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맥팔레인 버넷 | 피터 메더워 | 게오르크 폰 베케시 | 제임스 왓슨 | |
<rowcolor=#cd9f51> 1962 | 196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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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크릭 | 모리스 윌킨스 | 앨런 호지킨 | 앤드루 헉슬리 | |
<rowcolor=#cd9f51> 1963 | 1964 | 196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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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커루 에클스 | 콘라트 블로흐 | 페오도르 리넨 | 프랑수아 자코브 | |
<rowcolor=#cd9f51> 1965 | 196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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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루오프 | 자크 모노 | 페이턴 라우스 | 찰스 브렌턴 허긴스 | |
<rowcolor=#cd9f51> 1967 | 19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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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나르 그라니트 | 핼던 케퍼 하틀라인 | 조지 월드 | 로버트 윌리엄 홀리 | |
<rowcolor=#cd9f51> 1968 | 196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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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셜 니런버그 | 하르 고빈드 코라나 | 막스 델브뤼크 | 앨프리드 허시 | |
<rowcolor=#cd9f51> 1969 | 197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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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에드워드 루리아 | 버나드 카츠 | 울프 폰 오일러 | 줄리어스 액설로드 | |
<rowcolor=#cd9f51> 1971 | 1972 | 197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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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 서덜랜드 | 제럴드 모리스 에덜먼 | 로드니 로버트 포터 | 카를 폰 프리슈 | |
<rowcolor=#cd9f51> 1973 | 197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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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트 로렌츠 | 니콜라스 틴베르헌 | 알베르 클로드 | 크리스티앙 드뒤브 | |
<rowcolor=#cd9f51> 1974 | 197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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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에밀 펄레이드 | 데이비드 볼티모어 | 레나토 둘베코 | 하워드 마틴 테민 | |
<rowcolor=#cd9f51> 1976 | 197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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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크 새뮤얼 블럼버그 | 대니얼 칼턴 가이듀섹 | 로제 기유맹 | 앤드류 빅터 섈리 | |
<rowcolor=#cd9f51> 1977 | 197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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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절린 옐로 | 베르너 아르버 | 다니엘 네이선스 | 해밀턴 O. 스미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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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코맥 | 고드프리 하운스필드 | 바루 베나세라프 | 장 도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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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데이비스 스넬 | 로저 울컷 스페리 | 데이비드 헌터 허블 | 토르스텐 닐스 비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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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네 베리스트룀 | 벵트 잉에마르 사무엘손 | 존 로버트 베인 | 바버라 매클린톡 | |
<rowcolor=#cd9f51> 1984 | 198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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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사르 밀스테인 | 게오르게스 쾰러 | 닐스 카이 예르네 | 마이클 스튜어트 브라운 | |
<rowcolor=#cd9f51> 1985 | 1986 | 198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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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골드스타인 | 스탠리 코언 | 리타 레비몬탈치니 | 토네가와 스스무 | |
<rowcolor=#cd9f51> 1988 | 198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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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화이트 블랙 | 거트루드 B. 앨리언 | 조지 히칭스 | 존 마이클 비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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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럴드 엘리엇 바머스 | 조지프 에드워드 머리 | 에드워드 도널 토머스 | 에르빈 네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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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자크만 | 에드먼드 헨리 피셔 | 에드윈 크레브스 | 리처드 로버츠 | |
<rowcolor=#cd9f51> 1993 | 1994 | 199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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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앨런 샤프 | 앨프리드 길먼 | 마틴 로드벨 | 에드워드 루이스 | |
<rowcolor=#cd9f51> 1995 | 199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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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위샤우스 | 크리스티아네 뉘슬라인폴하르트 | 피터 C. 도허티 | 롤프 칭커나겔 | |
<rowcolor=#cd9f51> 1997 | 199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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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프루지너 | 로버트 퍼치곳 | 루이스 이그내로 | 페리드 머래드 | |
<rowcolor=#cd9f51> 1999 |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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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블로벨 | 폴 그린가드 | 아비드 칼손 | 에릭 캔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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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o Heinrich Warburg 오토 하인리히 바르부르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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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88,#ff0> 출생 | 1883년 10월 8일 독일국 바덴 대공국[1] 프라이부르크 |
사망 | 1970년 8월 1일 (향년 86세) 서독 서베를린 |
국적 | 독일 |
분야 | 세포생물학, 생화학 |
학력 | 베를린 대학교 (화학 / 박사) (1906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의학 / 박사) (1911년) |
지도교수 | 헤르만 에밀 피셔 루돌프 폰 크릴 (Albrecht Ludolf von Krehl) |
1. 개요
Otto Heinrich Warburg(1883년~1970년)독일의 생화학자로,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유대계[2] 독일인 은행가 가문 바르부르크 가문 출신으로, 아비 바르부르크와는 먼 친척 관계라고 한다.[3]
2. 업적
그는 산소의 생물학적 작용과 세포호흡에 관한 연구의 권위자였다. 바르부르크는 헤모글로빈처럼 산소와 결합하는 철이 함유된 헴(heme)기를 가진 사이토크롬 효소군을 최초로 발견한 공로로 1931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이 연구는 세포의 호흡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 외에도 대사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생체화합물인 FAD와 NAD+의 작용 기작을 규명하고, 암세포는 정상 세포에 비해 산소 소모량이 적다는 것도 밝혀낸 인물이다. 이렇게 산소가 충분한 상황에서도 암세포가 산화적 인산화가 아니라 무산소 과정인 해당과정을 선호하는 것을 그의 이름을 따 바르부르크 효과라고 한다.바르부르크는 개신교 어머니와 유대인 혈통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나치가 권력을 잡았을 때, 비록 예외를 두었지만 유대인 후손들은 그들의 직업적인 위치에서 쫓겨났다. 1935년 뉘른베르크 법에 따르면 바르부르크는 1/2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독일 시민권 부여되긴 했다. 게다가 평생 독신이었던 바르부르크는 비서이자 조수인 야콥 하이스와 함께 살면서 일했던 관계 때문에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나치 치하에서 위기가 2개나 되었지만 바르부르크는 가르치는 것이 금지되었어도 연구는 계속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1941년, 바르부르크는 나치 정권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이유로 잠시 자리를 잃었지만, 몇 주 만에 히틀러로부터 개인적인 명령을 받아 연구를 재개할 수 있었다. 히틀러가 어린 나이에 유방암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암에 집착했는데, 나치는 바르부르크가 신진대사와 암에 집중했기 때문에 기꺼이 일을 하도록 허락했다. 괴링은 또한 그를 4분의 1 유대인으로 분류하도록 주선했으며, 1942년 9월, 바르부르크는 아예 명예 아리아인으로 분류되었다.
1944년에도 효소 연구의 공로로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어 수상 가능성이 농후하였으나 결국 수상되지 않았는데, 이는 나치 정권이 유대인인 그가 노벨상을 받지 못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설령 수상했더라도 나치가 독일인의 노벨상 수상을 금지했으므로 그 해에 상을 받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