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31 01:28:47

카를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colbgcolor=#E7DBC7><colcolor=#000>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
카를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Karl Friedrich Albrecht,
Markgraf von Brandenburg-Schwedt
파일:Karl_Friedrich_Albrecht_von_Brandenburg-Schwedt_by_A.R.Lisiewska_(1737,_Germanisches_Nationalmuseum).jpg
이름 카를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
(Karl Friedrich Albrecht)
출생 1705년 6월 10일
베를린
사망 1762년 6월 22일 (향년 57세)
브로츠와프
아버지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알브레히트 프리드리히[1]
어머니 쿠를란트의 마리아 도로테아
형제 아나 조피 샤를로테, 루이제 빌헬미네, 프리드리히, 알베르티네, 프리드리히 빌헬름
1. 개요2. 일생
2.1. 초기 경력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2.3. 7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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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이센의 장성.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7년 전쟁에서 활약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알브레히트는 1705년 6월 10일 브란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 카를 프리드리히 알브레히트의 아들이었고 프리드리히 대왕의 사촌이었다. 알브레히트는 어린 나이에 프로이센군에 입대했고 1729년 아버지의 보병 연대에 소속되어 대령이 되었다. 173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그 뒤를 이어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이 되었고, 같은 해에 성 요한 기사단의 그랜드 마스터가 되었다. 또한 그는 그해 6월에 자신의 보병 연대인 카를 변경백 보병대 지휘관이 되었으며, 1740년 소장으로 승진했다.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한 후, 알브레히트는 글로가우 포위전, 몰비츠 전투, 코투지츠 전투에서 활약했고 1742년 중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그는 1745년 봄에 상부 슐레지엔 방면군 지휘를 맡았고 1747년 보병대 대장으로 승진했다.

2.3. 7년 전쟁

1756년 8월, 알브레히트는 작센으로 침공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세 군단 중 한 군단을 맡았다. 이후 그해 9월 중순까지, 알브레히트는 코타로 진군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페르디난트의 군단을 대신해 드레스덴 근처에 진을 쳤다. 9월 28일, 프리드리히 대왕은 보헤미아 국경에 집결한 오스트리아군에 대항하기 위해 피르나에서 출격하면서 알브레히트에게 자신을 대신해 피르나에 고립된 작센군을 포위하도록 지시했다. 10월 13일 오전 8시, 알브레히트는 작센군이 피르나에서 퇴각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즉시 일부 병력을 전방으로 보내고 히멜레이치 근방 고지에 진영을 설치한 후 모리츠 폰 안할트-데사우에게 작센군을 추격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추격을 뿌리치지 못한 작센군은 10월 15일 항복했다.

1758년 봄, 알브레히트는 모라비아 침공전에 참가했다. 그해 5월 초, 그는 스타나우에서 진을 친 8개 보병 대대와 16개 기병대대 지휘관에 선입되었다. 6월 17일, 프리드리히 대왕은 알브레히트에게 마흐강 좌측 둑에서 새로운 진영을 건설하고 올로모우츠와 프레라우 사이의 연락망을 끊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알브레히트는 즉시 바우니위츠로 진군했고 6월 18일 비스트로완으로 이동해 길목을 차단했다. 그 후 프로이센군이 7월 6일 올로모우츠에서 철수할 때, 알브레히트는 츠비타우에 주둔하고 있었다. 7월 7일, 알브레히트는 본대의 선두에 서서 진군을 개시했고 8월 10일 본국으로 돌아간 프리드리히 대왕을 대신해 슐레지엔에 남겨진 프로이센군 지휘를 맡았다.

1758년 8월 28일 오스트리아군이 슐레지엔을 침공하자, 알브레히트는 프리드리히 대왕으로부터 슐레지엔을 떠나 드레스덴 북쪽으로 이동해 오스트리아군의 작센 침공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해 9월 초, 알브레히트는 철수를 개시했고 9월 9일 그로스도브리츠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의 군대와 접촉했다. 10월 14일, 그는 호크키르히 전투에서 좌익을 지휘했으나 패전을 면치 못했고 도중에 부상을 입었다. 11월 중순 슐레지엔으로 돌아간 알브레히트는 12월 나움부르크 인근에서 겨울 숙영에 들어갔다.

1760년 8월 중순까지 슐레지엔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알브레히트는 프리드리히 대왕의 프로이센군 좌익을 지휘했고 11월 3일 토르가우 전투에 참가해 제1 전선을 지휘했다가 또다시 부상을 입었다. 이후 1761년 8월 중순까지 슐레지엔에서 벌어진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과의 전역 때 대왕의 명령에 따라 그라스노위츠 고지와 드롬스도르프 고지에 자리를 잡고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의 공세에 맞서 수비로 일관했다. 그러나 부상이 악화된 그는 군직에서 물러났고 1762년 6월 22일 브레슬라우에서 사망했다. 향년 57세.

[1]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4남이자 프리드리히 1세의 남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