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3 05:54:17

카세트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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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CM4. 카세트 비전 Jr.

파일:external/cdn.gamemeca.com/11cn_20130201-008_ghey.jpg

1. 개요

Cassette Vision / カセットビジョン

1981년일본에폭에서 출시한 거치형 게임기.

2. 상세

에폭은 일본의 유명 완구 회사의 하나로서 완구뿐 아니라 게임 쪽으로도 제법 사업을 벌린 편이다. 다만 가정용 게임기는 카세트비전 시리즈가 유일하며 이후의 에폭의 게임기 사업은 LCD 휴대용 게임기나 LSI 탁상용 게임기 위주로만 손댄 듯하다. TV의 채널 OSD 표시용 IC를 활용해서 만든 4비트 게임기로 구분되며, 일본에서 가장 처음으로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의 시초를 열었다. 다만 당대의 염가형 게임기들처럼 컨트롤러가 별도로 없고 게임에 필요한 버튼이 본체에 달려있다.

당시 일본에 소개되어 있던 아타리 2600 등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가 몇 종류 있지만 대부분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기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는데 카세트비전은 당시로서는 13,500엔 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1] 45만 대를 팔아치워 패미컴이 등장하기 전까지 일본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약 70%를 점유했다. 성능은 아타리 2600은 물론이고 최초의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인 페어차일드 채널 F 보다도 낮으나 당시 카트리지 교환식 게임기가 4~5만엔 정도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을 때 카세트비전의 13,500엔이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은 이 기기의 낮은 성능을 만회하고도 충분히 남았다. 패미컴 등장 전까지 Sord M5, 토미의 퓨타[2], 반다이 RX-78 건담 등 여러 게임용 컴퓨터가 등장했으나 가격이 3만엔 이상이었기 때문에 경쟁이 되지 못했다.[3] 심지어 성능 면에서 카세트비전보다 우수하고 미국에서 높은 인기를 끌던 아타리 2600은 플라자 합의 이전 시기였던 탓에 가격이 너무 비싸 일본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 발을 붙이지 못했다.

이름의 "카세트"는 롬 카트리지를 가리킨다. 당시에 일본에서는 롬 카세트라고 불렀다. 카세트테이프와 관계 없다. TV에 연결된 상태에서 카트리지를 넣고 전원을 켜면 바로 게임이 시작되며, 게임 오버가 되면 게임을 재시동(리셋)해야 한다.

꽤나 복잡하게 생겼는데, 두 종류의 컨트롤러를 2개씩 탑재했기 때문이다. 검고 커다란 둥근 것 네 개는 좌우상하를 조종할 수 있는 패들이다. 주로 퐁 같은 "전자 탁구/축구/테니스" 게임류에 사용했다. 본체 최하단 좌우 구석에 있는 작은 "레버"는 좌우 조종만 되는 조이스틱이다. 당시엔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럭시안 같은 좌우 이동만 가능한 슈팅 게임이 대세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틱이 작아서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고 움직여야 할 정도이다.

여담으로 가운데 부분에 AUX 버튼이라는 것이 있으나 이것을 사용하는 게임은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3. CM


첫번째 CM의 광고 나레이션은 코바야시 키요시와 카니에 에이지가 담당했으며 두번째 CM의 광고 모델은 하기모토 킨이치가 메인 MC를 맡고있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Kin Don! 좋은 아이, 나쁜 아이, 보통 아이'[4]에 출연하였던 아사이 기획 소속의 신인 3인조 게닌 유닛인 이모킨 트리오 (イモ欽トリオ)가 담당했다.[5]
CM 1
카셋트 비전!
갤럭시안인 4개의 공격패턴으로 총 공격~
스페이스 셔틀 도킹! 해냈다.
다섯 개의 카셋트가 수록된 에폭사의 테레비 게임, 카셋트 비전!
CM 2
카셋트가 여러개, 카셋트 비전!
몬스터 맨션, 파쿠파쿠 몬스터, 갤럭시안
아직 아직 있다구![6]
(배틀 베이더, 빅 스포츠 12)
너는 언제 할수있니?[7]
에폭사의 카셋트 비전!

4. 카세트 비전 J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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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가판으로 카세트 비전 Jr.를 5,000엔에 발매했으나 얼마 안 가 패미컴의 인기에 밀렸다. 에폭에서는 1984년에 후속기인 슈퍼 카세트 비전을 내놓았다.

[1] CPU가 본체가 아닌 카트리지에 달려 있는 다소 독특한 구조이지만 이것이 카세트비전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2] 16비트 CPU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TMS9995를 장착하여 16비트장점으로 내세웠으나 VDP가 MSX1랑 똑같은 TMS9918이라 '게임 퍼스컴'을 표방한 주제에 연산 성능만 빠르고 그래픽은 MSX1랑 똑같다. 해외에는 '튜터'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3] 이후 MSX가 등장하며 '게임 퍼스컴'이라는 카테고리는 거의 MSX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4] 1972년 10월 9일~1979년 4월 6일까지 총 8년동안 방송했던 10분짜리 챌린지 프로그램.[5] 히로시마 현 출신의 야마구치 요이치 (요시오), 카가와현 출신의 니시야마 코지 (와루오), 오사카 부 출신의 나가에 켄지 (후츠오)로 구성된 트리오로 1981년 8월 5일에 싱글앨범인 '하이스쿨 라라바이 '를 발매하면서 대히트하여 하기모토 킨이치의 지원 아래에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1982년 3월 21일에 2번째 싱글인 티아드롭 탐정단을 릴리스한 직후 1982년 9월에 나가에 켄지가 탈퇴하고 에히메 현 출신의 고토 마사시가 2대째 후츠오로 들어왔다. 하지만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고 1983년 1월 1일에 3rd 싱글 '틴에이지 이글스를 발매하고 몇달 안 있다가 해산하고 만다.[6] 3명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면서 동시에 대사를 하는데 나가에 켄지가 게임 카셋트 7개를 한아름 안고있다.[7] 나가에 켄지가 게임을 하면서 대사를 하는 와중에 야마구치 요이치와 니시야마 코지는 그 뒤에서 서로 팔짱을 끼면서 팔을 휘저으며 응원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