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12:58:14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Saint Felix of Cantalice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첫 성인
<colbgcolor=#A0522D>파일:칸탈리체의성펠릭스01.jpg
출생 1515년 5월 18일
교황령 칸탈리체(Cantalice)
선종 1587년 5월 18일 (향년 72세)
시복 1625년 10월 1일
시성 1712년 5월 22일
축일 5월 18일
신분 카푸친 작은형제회 수사
종교 가톨릭
상징 아기 예수, Deo Gratias, 가득 찬 동냥자루,
어린이들과 누에농장의 수호성인, 카푸친 수도복

1. 유,청년 시절2. 천사가 전해준 성소(聖召)3. 수도자(修道者)로서의 활동4. 일화(逸話)5. 알폰소 루포 신부에게 목격된 성모 마리아 환시(幻視)6. 기적(奇蹟)7. 선종(善終)8. 시성(諡聖)9. 어록(語錄)10. 기도문 및 찬가11. 참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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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청년 시절

파일:성펠릭스_모두.png

카푸친 작은형제회[1]펠릭스[2]는 1515년 5월 18일 교황령의 칸탈리체(Cantalice)에서 태어났다.
소작농으로 가난하지만 신실했던 펠릭스의 부모인 산티와 산타 포리(Santi, Santa Porri)는 펠릭스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고, 10살 무렵 아들을 치타두칼레(Cittaducale)에 사는 피키(Picchi)라는 농장의 목동으로 취직시켰다. [3]
힘든 농장일을 마친 후 사촌이 사막 교부들의 생애를 읽어주었고 펠릭스는 그들의 삶에 매료되었으며 교부들의 엄격성과 놀라운 참회생활에 감화되어 언젠가 자신도 그들처럼 되리라고 다짐하며 본받고 싶어했다.
목동으로 가축들을 돌보는 긴 시간을 기도의 시간으로 보냈다. 동료들에게 자신이 조각한 나무 십자가를 주기도 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용서의 기도를 올리고, 꾸준히 일하고 묵상하며 상당히 오랜 시간 하느님과 친밀한 대화를 나눌 정도로 영적으로 성장했다.
천사의 성소로 카푸친 작은형제회에 수도자로 들어가기까지 20여년 동안 농장일을 했다.

2. 천사가 전해준 성소(聖召)


파일:칸탈리체의 성 펠릭스_by Ferdinando Stuflesser_photo from Beni Ecclesiastici in WEB_in Civitavecchia- Tarquinia of Italy.jpg

28살이 되던 해, 펠릭스는 꿈에 천사를 보았다.
나는 주님의 천사다. 네가 주님을 섬기기를 원한다.” 천사가 말했다.
"주님께서는 제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시는지요?” 펠릭스가 되묻자 천사가 대답하였다.
프란치스칸들에게 가기를 원하신다![4] 레오네사(Leonessa)로 가거라. 그곳에서 그들을 만날 것이다.
펠릭스는 천사의 계시대로 레오네사에 갔지만 관구대리 형제를 만나지 못해 다시 농장으로 돌아와야 했다. 또 다시 꿈에 천사가 나타나 이번에는 리에티의 카푸친 작은형제회로 가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그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농장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펠릭스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을 뿐더러 농장일 외에는 세상 물정에 어두워 바람 맞는 것에도 익숙지 못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아우구스티노회의 한 수사가 펠릭스에게 아우구스티노회에 입회하도록 권했다. 하지만 펠릭스는 ‘카푸친[5]이 아니라면 차라리 수도자가 되지 않겠습니다.’라며 사양했다.
두 번이나 입회할 기회를 잃어버린 펠릭스는 그 후 아무런 진척없이 마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황소 두 마리를 길들이다가 무언가에 놀란 황소의 고삐를 놓치는 바람에 그의 몸이 쟁기날에 끼는 사고가 났다. 다들 펠릭스가 죽었을 것이라고 여겼지만 다행히 무사하였다.[6] 이 사건을 계기로 펠릭스는 농장주에게 자신의 봉급을 다 포기하겠으니 자신을 치타두칼레 카푸친 작은형제회로 데려가서 입회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농장주는 펠릭스의 무사함에 하느님의 손길이 있음을 느끼고 작은형제회에 데려다 주었다. 그 곳 수호자(수도원장)는 펠릭스를 성당에 데리고 가서 커다란 십자고상 앞에서 성소[7]식별을 위한 은혜를 청해보라고 하였다. 피를 흘리며 수척한 모습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계시는 예수님의 성상 앞에 펠릭스는 무릎을 꿇었다. 그때 그는 숨이 끊어지는 예수님의 참혹한 울부짖음이 들리는 듯 했고,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음을 느끼며, 고통의 신비속에 온전히 빠져들어 예수님께서 겪으신 모든 고통을 영적으로 느꼈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정도로 계속 눈물을 쏟으며 그리스도의 고통을 체험했다.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수호자가 교회로 돌아왔는데, 그가 아직도 그곳에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8] 펠릭스는 그때까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수호자는 펠릭스에게
"내 아들아, 무엇을 하고 있느냐?
아직도 여기 있는 거냐?
기운을 내거라! 널 데려가마.
예수님께서는 이제 더 이상 홀로 계시지 않을 거다.
네가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도와 드릴 테니 말이다."
하고 말하였다. 수련기와 서약 10일 후, 펠릭스는 로마로 가서 로마 카푸친 형제회의 수호자와 총대리인인 아스티(Asti)의 베르나르디노 형제의 소개로 예전에 만날 수 없었던 관구대리 형제를 만날 수 있었다. 관구대리(볼테라의 라파엘 형제)는 정식으로 펠릭스에게 입회를 허락했는데,[9] 그때가 1543년 늦가을이었다. 1544년 초, 펠릭스는 보니파시오 수련장 형제와 함께 퓨지(Fiuggi) 수련소으로 들어갔다. 고된 수련 생활로 인해 펠릭스는 다른 수도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얘기할 정도로 잦은 열병과 허약한 심신으로 고생을 했다. 결국 그는 몬테 산 죠반니 캄파노(Monte San Giovanni Campano)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리고 펠릭스는 마스트란토니오(Mastrantonio)의 야고보라는 증인 앞에서 정식으로 모든 재산을 친형제들에게 내놓음으로서 모든 상속권을 포기했다. 형제들이 3년 동안 곡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것이 상속 포기 조건이었다.

3. 수도자(修道者)로서의 활동

파일:칸탈리체의성펠릭스_페테르파울루벤스.jpg

1545년[10] 5월 18일, 펠릭스는 종신서약을 했다. 목동일을 하면서 자연에 감화되어 기도와 묵상을 하는 것을 좋아했던 펠릭스는 산속의 수도원에서 영성을 위한 은둔생활을 희망했지만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는 티볼리(Tivoli)와 비테르보(Viterbo) 형제회에서 1년 동안 영성 교육을 더 받은 후, 수도회 봉사자들에 의해 성 니콜라우 데 포르티스(San Nicola de Portis)의 로마 형제회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매일 큰 자루를 메고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수도원 공동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물품을 얻는 동냥 소임을 받았다. 1547년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40년 동안을 꼬박 이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동냥자가 된 펠릭스는 동냥자루를 어깨에 매고 매일 로마 거리로 나갔다. 묵주를 손에 들고 눈을 아래로 내리 뜬 채 나즈막히 기도하며 맨발로 걸어다녔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면 서슴없이 도움을 주었다. 궂은 날씨, 비포장 길을 맨발로 다녀야 하는 동냥 임무는 쉽지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밝고, 겸손하고, 조용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성모님께 아기예수님를 받아 안았던 그 손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구호품으로 받은 빵과 포도주와 기름을 너그럽게 나누어 주었고, 행여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고위 성직자들과 로마의 부자들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펠릭스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은 아무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펠릭스의 동냥자루는 그의 마음처럼 밑바닥이 없다"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게으름뱅이!' 혹은 '거지!', '이단!'이라며 조롱을 하는 사람이 있을 때도, 동냥 소임을 하며 면전에서 푸대접을 받을 때도 그는 온순히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11]"하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곧잘 재미로 그의 뒤를 졸졸 따르면서 소리를 맞추어 "데오 그라시아스, 데오 그라시아스" 하고 놀려댔지만 펠릭스는 조금도 언짢게 생각지 않고 오히려 웃으면서 그들과 하나되어 "데오 그라시아스"라는 말을 함께 외쳤다. 자주 사람들에게 ‘주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드리세요!’라고 말하곤 했으며, 구호품을 받을 때에도 늘 공손하게 ‘데오 그라시아스’라고 말했기 때문에 ‘데오 그라시아스 형제[12]’라는 애칭을 얻게 되었다.

펠릭스는 신심과 묵상을 위해 기도문과 성경과 전례의 문구들을 외우곤 했다. 세속의 학문에 대해 중요치 않게 생각한 그는 글을 읽을 줄 몰랐지만[13] 마음으로 기도하며 정신을 영적인 사리 분별로 무장했다. 몸을 애지중지하면 영혼이 나태해진다고 생각하고,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빵 부스러기와 물 한모금으로 식사를 해결했으며, 불편한 수도복[14]을 항상 입었고, 신발 없이 맨발로 다녔다.[15]
로마의 길거리에서든 자신의 방에서든, 성당에서든 그의 마음은 늘 관상으로 고취되어 있었고, 복음 말씀에 영감을 얻어 묵상했다. 잠은 두세시간만 잤으며 다른 수도자들이 잠든 후에도 날이 밝을때까지 로마 거리에서 그가 본 모든 불행, 그가 노래하도록 가르친 아이들, 많은 사람들의 눈물, 기꺼이 자선을 베푼 선량한 영혼들의 친절, 그날 하루 동안 만난 모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고 예수님의 신비를 묵상하며 많은 시간을 성체 앞에서 보냈다. 매일 첫 미사로 성체[16]를 모셨으며, 성체를 모실때마다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신앙에 막힘이 생길때는 저명한 스페인의 사제, 알폰소 루포 신부에게 자주 영성지도를 받았다. 종교개혁으로 고위 수도자들까지 개신교로 개종하던 시기였고, 프란치스코회도 박해를 받던 시기였으며, 성직의 매매 등 일부 성직자들의 도덕적 가치 또한 떨어져 교육을 통한 사제들의 양성의 필요를 논하던 어려운 시대속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17]으로 어려운 이들에게 봉사했던 그의 삶은 단순함, 순수함, 정결함으로 거룩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했던 증거가 되었다.
카푸친 총장이었던 Mauro Jöhri는 2012년 5월 18일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시성 350주년을 기념하는 회람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 그는 주님께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사도행전 20,35)'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살았습니다. 성 펠릭스는 자신의 삶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었습니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요청하고, 간청했지만, 무엇보다도 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을 말씀을 주고, 기도의 열매인 내면의 평화를 주고, 풍부한 삶의 경험에서 얻은 현명한 조언을 주었습니다. 가난하지만 근면하고 신실한 가족에게서 그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주는 소중한 교훈을 배우고 실천했습니다."

4. 일화(逸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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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면 그는 성 필립보 네리와 "7대 성당 도보순례".[18]를 하거나 로마의 여러 ​​병원에 있는 환자들을 방문하곤 했다. 아픈이들을 찾아가 직접 병수발을 하며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하느님을 굳게 믿으라고 말해주었고, 십자가로 축복하면 그들의 병을 낫게 하기도 했다. 펠릭스가 동냥으로 받은 음식들은 때때로 치료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한번은 그가 포도주로 오르비에토의 주교인 베드로 크레셴지(Crescenzi) 추기경의 어머니, 콘스탄자의 눈을 씻어 눈병을 고쳐주기도 했다. 성 요한의 병원에서도 펠릭스가 기증한 포도주를 통해 환자가 치유되었다. 때때로 친구들이 장난스럽게 "펠릭스, 내가 아프면 네 포도주를 좀 갖다 줘!" 하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임종 상태에 있는 사람들도 자주 위로해 주었다. "하늘나라, 하늘나라" 혹은 "마음놓고 천국으로 가세요."라는 말로 용기를 주며 죽음을 준비하게 했다. 살아 있을 때부터 수많은 기적이 보고 되었고 증인들은 대부분 수도원의 형제들이 아닌 로마 시민들이었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동요를 들려주고 함께 동화를 만들고, 연극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구호품을 나누어 주는 것은 물론이고, 묵주기도를 함께 외우고, 직접 만든 노래로 단순하고 쉽게 교리를 가르치며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했다. 펠릭스가 만든 노래들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를 찬미하는 짧은 성가들이었다.
"예수님, 최고의 희망, 최고의 용덕, 자! 제게 그 큰 사랑을 주시어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오늘 이 땅에 작은 장미꽃 나셨네! 작은 동정 마리아, 천주의 성모이시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에 충분합니다"
"당신이 천국에 가는길을 모른다면, 자비롭고 경건한 얼굴로 성모 마리아에게 가십시오. 당신에게 천국에 가는 길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

라는 노래들이다. 아이들을 모아 둥글게 앉혀 놓고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르게 하곤 했으며, 아이들에게 선한 삶의 아름다움과 죄의 추악함을 가르쳤다. 특히 버림받은 아이들을 보듬고 온정을 베푸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을 위해 만든 노래가 인기가 있었는지 자선 모금회에도 초청되곤 했다고 한다. 펠릭스가 죽은 후에도 로마의 소년, 소녀들은 그가 작곡하고 가르친 노래들를 계속 불렀다. 어린이들은 펠릭스를 "파!(Pappa, 아빠)"라고 다정하게 불렀는데, 나이 든 독신 수도자에게 아이들이 아빠라고 부르기 때문에 펠릭스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놀라곤 했다. 성화나 조각상에 어린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으로도 묘사되며,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라고도 불리운다.
선하신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크나큰 신뢰심을 품었다. 로마에 전염병으로 기근이 돌았던 어느 해였다. 때가 때인 만큼 카푸친 형제들에게 돌아갈 음식이 모자랄 것을 염려한 수도자들은 펠릭스에게 어려운 바깥 사람들을 위해서는 더 이상 음식을 동냥하지 말 것을 제안했다. 이에 펠릭스는 "형제들, 바깥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동냥을 하면 우리 형제들이 굶게 된다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내 말을 믿게나. 가난한 사람들이 먹을 것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형제들도 굶지 않을 거네"' 라고 대꾸했다. 수도원의 장상들은 펠릭스에게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펠릭스는 일 년 내내 충분히 동냥할 수 있었고, 형제들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도 먹여 줄 수가 있었다. [19]
평소 조용한 편이었지만 필요할 때에는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어떤 수도자에게는 "자네를 바로잡고 싶네"'라며 직접 조언을 주기도 했다. 카푸친 설교자들에게 그는 "이름을 떨치려 하지 말고 사람들을 회심시키기 위해 설교하게나."라고 자주 말했다. 가끔씩 "Bo, bo, bo, assai dico e poco fo!"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 말은 "쯧, 쯧, 쯧, 말만 많고 실천은 모자라는구먼!"이라는 뜻이다. 그는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추기경(율리오 안토니오 산토리(Santori))에게 "추기경, 당신은 수도회의 장상들 일에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임명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훗날 식스토 5세 교황이 될 사람에게 "자네가 교황이 되면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이익을 위한 교황이 되어 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형제로 남는 것이 나을 걸세."라고 말했다. 교황이 된 식스토는 펠릭스를 길에서 만나면 때로는 빵을 좀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런 그에게(식스토 5세 교황은 카푸친 작은형제회 일원이다.) 빵을 조금 떼어 주면서 "교황 성하, 미안하지만 자네는 아직도 형제이지?" 라고 말했다고 한다.
베르나르디노 비샤(Biscia)라고 하는 변호사의 법서 위에 십자고상을 놓고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을 가리키며 "이보게, 베르나르디노, 이 모든 책들은 자네가 이분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걸세."라고 말했다. 하루는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음식을 동냥하다가 펠릭스는 법학 논문을 읽는 것에 심취한 어떤 변호사의 문을 두드렸다. 변호사는 방해가 된다며 동냥질보다는 자신이 법학 논문을 읽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무시하며 화를 내었다. 펠릭스는 눈물을 훔치며 "하느님의 법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 변호사는 법조계를 떠나 성직 생활에 헌신하였다고 한다.
로마 사람들은 걱정이나 몸이 아플 때 의사보다 펠릭스에게 먼저 가서 도움을 청했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을 바쳤고 모든 일을 하느님의 섭리에 맡겨드리곤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에 고향 사투리로 늘 반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가식이 없는 이였으며, 누군가를 회개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 지위나 계층을 가리지 않고 허물없이 직접 당당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물품을 구걸 받을 때나 필요한 물품을 누군가에게 전해줄 때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깍듯한 존경으로 대했다고 한다.
동시대의 다른 유명한 성인들과 친구였다. 그는 오라토리오회의 창설자 성 필립보 네리와 함께 로마 거리에서 마치 취객들처럼 싸움이 난 듯 가장하여 구경꾼들을 불러모으는 방식으로 성 필립보의 설교를 위한 청중을 만들기도 했다. 펠릭스는 글을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영적인 조언을 구할 정도로 탁월한 영성의 소유자였다. 성 암브로시오의 헌신회(현재 성 가롤로의 헌신회) 설립자 성 카를로 보로메오도 펠릭스의 친구였다. 그는 자신이 창설한 헌신회의 회헌을 펠릭스에게 평가해 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는데, 펠릭스는 그 책을 들어 무게를 가늠해 보더니 너무 부담스럽다고 농담을 했다. 카를로 성인은 이를 서약에 관련된 사항을 서약자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했고, 조언에 따라 회헌을 재편집하여 일부 규정을 완화했다고 한다.

5. 알폰소 루포 신부에게 목격된 성모 마리아 환시(幻視)

파일:칸탈리체의성펠릭스_성화.jpg
펠릭스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내면 신앙생활이 드러나지 않도록 대단히 조심했다. 특히 그는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잘 숨겼다.[20] 성탄절이 가까워진 어느날 밤, 알폰소 루포 신부는 불 켜진 기도실에서 홀로 기도하고 있던 펠릭스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몰래 살펴보니 '성모님께서 나타나 펠릭스에게 아기 예수님을 안겨주는 모습'을 목격했다.
성화나 조각상에서 펠릭스가 아기 예수님을 안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이유가 바로 이 일화 때문이다. 펠릭스는 평소 아기들과 젊은 어머니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지닌 성 모자(母子) 신심을 잘 드러내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펠릭스가 "(성당에 있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 펠릭스의 성화에 대한 얘기를 하며...)성 펠릭스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이유는 어려운 사람들의 짐을 지는 것이 곧 마굿간에서 가난하고, 불쌍하게 태어난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21]

6. 기적(奇蹟)


파일:Guercino_Blessed_Felix_of_Cantalice.jpg
치유의 기적 : 펠릭스는 많은 영유아와 어린이를 치유하거나 소생시키는 기적을 행했다. 펠릭스가 기증한 물건들로도 치유의 기적이 발생했다고 한다. 위 그림은 바르샤바 국립박물관에 있는 구에르치노의 '죽은 아이를 부활시키는 칸탈리체의 펠릭스'그림이다.
기적의 샘 : 어린 시절 펠릭스는 가축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었고, 가뭄이 극심한 해였다. 비도 오지 않고, 개울의 물은 말라버려 마실 물조차 없어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하고 있었다. 그 때 펠릭스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린 후 막대기로 땅을 치자 땅에서 물이 솟아나왔고 목자들과 농부들은 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그의 첫번째 기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곳에 성 펠릭스 알라쿠아(San Felice all'Acqua)라는 성소가 세워졌다.[22]
누에 농장의 전염병 치유 : 그의 가장 유명한 기적 중 하나로 전염병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누에 농장을 살렸다. 펠릭스는 누에 농장에 물에 적신 몇 개의 잎을 가져왔고, 그 잎과 물을 먹은 병든 누에들이 다시 살아나고 번식했다. 이 때문에 펠릭스는 누에 농장 주인들의 수호 성인으로도 불렸다.
가벼운 동냥자루 : 펠릭스는 1572년까지는 빵을, 이후로는 포도주와 기름을 구걸했다. 매일 로마 거리를 돌아다니며 많은 구호품들을 받아 동냥자루가 가득 찼음에도 무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가볍다고 얘기했다. 어느날 아이들이 장난으로 그의 자루에 몰래 동전을 넣자, 그는 자루가 무거워졌고 악마가 들어 있다고 외쳤다. [23]
펠릭스의 발 : 펠릭스는 육신의 편함으로 인한 영혼의 나태해짐를 경계해 겨울에도 신발을 신는 것을 거부했고, 추위와 비로 인해 그의 발은 계속해서 궤양과 물집, 피고름으로 뒤덮였으며, 여러 번 로마의 구두 가게에서 자신의 발 뒤꿈치를 꿰매는 모습이 목격되었으나, 그가 죽은 후, 그의 발은 하얗고 온전했으며 흉터 자국 조차 없었다.
무덤에서 흘러나온 치유의 물 : 그의 무덤에서 맑고 진한 은색 액체가 3년 동안 흘러나왔고, 몇몇 수녀들은 이를 모아 많은 환자를 치유했다. 몇 달 후에 그의 무덤이 다시 열렸을 때, 그의 시신은 여전히 온전했으며 부패하지 않았다.[24]

7. 선종(善終)[25]

파일:성펠릭스_초상.gif
1587년 4월 30일, 펠릭스는 병에 걸렸고 죽음이 임박했음을 예감했다. 그는 형제들에게 "작은 수탕나귀가 쓰러졌군. 이제 다시 못 일어나겠어'"라고 말했다. 1587년 5월 18일 아침, 간호하던 프라토(Prato)의 우르바노는 얼굴이 눈부시게 변모한 펠릭스를 보게 되었다. 그가 손을 들고 "오, 오, 오"라는 감탄사를 내뱉고 있기에 우르바오는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에 펠릭스는 "나는 경이로운 천사들의 무리로 둘러쌓이신 동정 마리아님을 보고 있네!" 라고 대답했다. 수호자가 노자 성체를 모시고 왔을 때 펠릭스는 ‘O sacrum convivium(오 거룩한 잔치여)’이라는 성체성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곳에 모인 형제들에게 ‘데오 그라시아스’ 라는 응답을 부탁했다. 그리고 성체를 모신 다음, ‘그리스도의 영혼이여, 이제 떠나시오.’라는 사제의 기도와 함께 펠릭스는 그것에 순종이라도 하듯 그가 태어난 날, 성모님의 마중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1587년 5월 18일, 칸탈리체의 펠릭스’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로마의 사람들은 무리지어 '카푸친 작은형제회'로 달려갔다. 수도자들은 문을 걸어 잠갔지만, 수도회는 군중에 포위당한 것과 다름없었다. 사람들은 밧줄과 사다리를 이용하여 높은 마당 벽을 오르고 있었다. 결국 수도자들은 사람들의 요구에 응하기로 했고,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시신을 성당에 안치하기로 했다. 아이들과 추기경들, 로마 시민들과 귀족들, 거지들과 교황 식스토 5세까지 위, 아래를 막론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조문을 왔고, 조문객들은 수 시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40여년 동안 로마의 사람들에게 향했던 그의 모든 발걸음이 이제 그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펠릭스의 유품들을 훔치는 탓에 시신에게 입혔던 수도복을 여러 번 갈아입혀야 했고, 펠릭스의 머리털과 턱수염은 다 잘려 나가고 없었다. 일부는 손가락을 자르려했던 사람도 있었다. [26]
정문 앞에 운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수도원으로 들어가려면 수도자들마저도 돌담을 기어 넘어가야 했다. 조문객들이 조문을 마치고 나갈때에는 수도원의 한쪽벽을 허물고 나가야 했다고 한다. 당시 그곳에서는 84차 카푸친 총회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이 회의를 다음으로 연기해야만 했다.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수도자들은 이토록 유명한 성인이 자신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식스토 5세[27] 교황은 오래전부터 펠릭스의 깊은 신앙심과 그의 사역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펠릭스가 묻히기도 전에 벌써 그의 시성운동을 명했다. 그 과정이 지체되자 관례대로 펠릭스의 시성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고자 했으나 펠릭스의 선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식스토 5세 교황 또한 선종[28]하여 시성 운동의 여세는 떨어졌다. 카푸친들은 수도회 최초의 성인을 125여년나 더 기다려야 했다.[29]
파일:성펠릭스성당01.jpg파일:성펠릭스성당02.jpg
로마의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성당'[30]은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약 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성당의 입구에 커다란 펠릭스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위 그림은 성 펠릭스 성당의 입구와 제대의 사진이다. 제대의 성화에도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겨주시는 펠릭스가 묘사되어 있다. 19세기 폴란드에서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기 위해 프란치스코회 제3회 정규 수도회인 '펠리시안 수녀회[31]'가 설립되었고 펠릭스를 그들의 수호성인으로 모셨다.
가톨릭은 세례성사시 공경하고 본받고자 하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삼는다. 수도회에 입회시 많은 수도자들이 펠릭스라는 세례명을 사용했다. 1650년 이탈리아에는 약 11,000명의 카푸친 수도자들이 있었고, 펠릭스라고 불리는 사람은 277명, 1966년까지 로마 관구의 묘지에는 217명의 수사들이 같은 이름을 지녔다. 칸탈리체에서는 그의 축일인 5월 18일 무렵 펠릭스를 기리는 행사가 열린다.[32]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수도자 중에서 펠릭스는 가장 사랑받는 성인이다.[33]

8. 시성(諡聖)

파일:칸탈리체의 성 펠릭스_Beni Ecclesiastici in WEB_in Rieti of Italy.jpg
펠릭스는 1625년 10월 1일,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 교황에 의해 시복 [34] 되었고, 1712년 5월 22일, 클레멘스 11세(Clemens XI) 교황에 의해 시성[35]되었다. 카푸친의 고위 수도자들과 추기경이 신발을 신고 다니라고도, 고된 동냥자의 소임을 그만두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펠릭스는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작음과 청빈을 추구하는 생활 양식과 영성의 특성을 최상의 모범으로 보여주었다.

수도자로서의 수련기부터 이미 정결한 삶과 겸손의 극치를 보여주었으며, 수련을 주관하는 수련장에게 요청하여 보속과 금욕을 배로 늘리기도 했다. 동료 수도자들 뿐만 아니라 칸탈리체의 어린이들도 그를 일컬어 "성인"이라고 불렀다.
30세에 성대서원을 발하였고, 죽을 때까지 로마에 살면서, 음식을 구걸하는 일과 수도원의 허드렛 일을 하면서 생활하였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실제로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동냥자로서 조롱받던 펠릭스의 성덕은 차츰 로마 시민들 사이에 퍼졌고, 가는 곳마다 환영을 받게 되었지만 조금도 교만한 기색이 없이 늘 자신을 ’카푸친 수도원의 당나귀’라며 낮춰 말했다. 로마 사람들은 그를 ‘데오 그라시아스(Deo Gratias) 형제’라고 불렀고, 도시의 어린아이들은 ‘아빠(Pappa)’라고 불렀다.
성 필립보 네리"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이의 고통을 대속[36]하는 살아있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며 늘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였다.
시성 후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라는 정식명이 그에게 붙여졌다.

파일:칸탈리체의 성 펠릭스의 무덤_photo by Jose Luiz Bernardes Ribeiro_in the Church of Santa Maria Immacolata in RomeItaly.jpg
카푸친들의 최초의 성인,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의 시신은 로마의 비아 베네토(via Veneto)에 있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카푸친회 성당'[37] 제대 아래 안치되어 있다. 그의 축일에 통상적인 조건[38]을 만족하고, 성당을 방문하면 전대사[39]가 부여된다.
'로마 순교록'[40]에는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수사가 존경할 만큼 엄격함과 단순함을 지니고 40년 동안 구호품을 모으며 주변에 평화와 자비를 전파하는데 헌신했다고 기록하였다


9. 어록(語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내 이마에,
그리스도의 말씀은 내 입에,
그리스도의 사랑은 내 마음에!"
"마음을 더럽히는 헛된 일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기쁘게 해주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하세요."
"나는 아주 행복해. 이미 천국에 와 있는 것 같네. 내가 행한 작은 일들이 이 현세의 삶 안에서 그 어떤 보상으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라면..."
"(펠리체 페레티가 식스토 5세 교황이 되기 전)"자네가 교황이 되면 하느님의 영광과 교회의 이익을 위한 교황이 되어 줘.
그게 아니라면 그냥 단순히 형제로 남는 것이 나을 걸세."
"이보게, 이 모든 책들은 자네가 이 분(십자고상의 예수 그리스도)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걸세."
"나는 오직 여섯 개의 글자만 알고 있네. 빨간 글자 다섯과 흰 글자 하나이네. 빨간 글자 다섯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상흔[41]이며
흰 글자는 성모님이시네."
"나는 괜찮아. 교황보다 더 잘 살고 있어. 교황은 많은 고민과 걱정거리가 있겠지만, 나는 이 세상을 즐기고 있네.
교황자리와 왕좌를 함께 준다고 하더라도 이 동냥자루와 바꾸지 않을 것이네!"
"눈은 땅을 향한 채,
마음은 하늘로 올린 채,
묵주는 손에 든 채!"
"Deo Gratias"
(하느님 감사합니다)


10. 기도문 및 찬가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의 기도문[42]

Litany of St. Felix of Cantalice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기도문

Lord, have mercy. Christ, have mercy.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Mary, Queen of heaven, pray for us.
천국의 모후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Angels adoring at the throne of God, pray for us.
하느님의 보좌에 경배드리는 천사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Prophets, apostles, and martyrs, pray for us.
예언자, 사도, 순교자들은,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Holy men and women of God, pray for us.
하느님의 거룩한 형제자매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aints of the Franciscan Orders, pray for us.
프란치스코회의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t. Felix of Cantalice, pray for us.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Friend of the poor, pray for us.
가난한 이들의 친구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Companion to children and youth, pray for us.
아기들과 어린이들의 친구이신 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Counselor and spiritual guide, pray for us.
조언자이자 영적 지도자이신 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Model of simplicity and humility, pray for us.
단순함과 겸손의 모범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Model of obedience and self-denial, pray for us.
순종과 희생의 모범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Model of on-going conversion, pray for us.
지속적인 개종의 모범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Model of prayer and contemplation, pray for us.
기도와 관상의 모범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Lover of the Cross of Jesus, pray for us.
예수 십자가를 사랑하시는 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Lover and adorer of the Eucharist, pray for us.
성체를 사랑하고 숭배하는 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Lover of Mary, the Mother of God, pray for us.
천주의 성모님을 사랑하시는 분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For your zeal in providing for the needs of the poor, thanks be to God.
가난한 사람들의 짐을 지는 당신의 헌신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or your love of the earth and all creation, thanks be to God.
지구와 모든 피조물에 대한 당신의 사랑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or your devotion to the mysteries of the rosary, thanks be to God.
묵주 기도의 신비에 대한 당신의 헌신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or your virtue of joy, thanks be to God.
당신의 기쁨의 미덕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or your commitment to truthfulness, thanks be to God.
당신의 정직함에 대한 헌신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or your spirit of atonement, thanks be to God.
당신의 속죄하는 마음에 대하여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Let us pray:
God, our Father, we thank you for the graces you bestowed on your servant St. Felix of Cantalice during his lifetime. Bless us as we strive to imitate his service to the poor, his commitment to prayer, his devotion to the Blessed Virgin Mary, and his love for the Eucharist. We ask this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your Son, who lives and reigns with you and the Holy Spirit, one God, for ever and ever. Amen.
기도합시다.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당신의 종인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에게 베푸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 헌신적인 기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에 대한 헌신,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을 본받고자 노력하는 저희에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하느님.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는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Prepared by the Felician Sisters of the Assumption of the BVM Central Convent Ecclesiastical Approval Applied for, Archdiocese of Chicago
BVM 중앙 수녀원의 Felician Sisters가 작성, 시카고 대교구 교회 승인 신청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호칭기도[43]

Ladainha de São Félix de Cantalice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호칭 기도

Deus Pai do Céu,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Tende piedade de nós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Deus Filho Redentor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님
Tende piedade de nós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Deus Espírito Santo
거룩한 영 성령님
Tende piedade de nós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Santíssima Trindade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Tende piedade de nós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1. São Félix pequeno pastor
작은 목자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fiel servidor
충실한 종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chamado por Deus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 São Félix humilde esmoler
겸손한 동냥자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os pobres irmãos
가난한 형제들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frei Deo Gratias
데오 그라시아스 형제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3. São Félix santo da alegria
기쁨의 성자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porta do perdão
용서의 문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a paz construtor
평화를 구하는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4. São Félix do menino Deus
아기예수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e Nossa Senhora
성모님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bendito do Pai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5. São Félix amigo dos frades
수사들의 친구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os velhos amparo
노인들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e nossa cidade,
우리 도시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6. São Félix amigo dos jovens
젊은이들의 친구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protetor das crianças
어린이들의 수호자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Consolador dos aflitos
고통 받는 이들의 위로자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7. São Félix do enfermo auxílio
병자들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de Cantalice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nosso padroeiro
우리의 수호성인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São Félix nosso padroeiro
우리의 수호성인 성 펠릭스
Rogai por nós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찬가[44]

Hino de São Félix de Cantalice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찬가

Amado São Félix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Do meu coração
내 마음으로부터
Lançai-nos do céu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소서
A vossa benção
당신의 축복[45]

Vós tendes nos braços
품에 안으신 주
Cercados de luz
빛에 둘러싸여
A glória do céu
천국의 영광
O menino Jesus
아기 예수

Amado São Félix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Do meu coração
내 마음으로부터
Lançai-nos do céu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소서
A vossa benção
당신의 축복

Dos Santos altares
당신은 거룩한 제단의
Vós sois ornamento
장식품이십니다
Luz de Cantalice
칸탈리체의 빛
No mundo potente
강하지 않은 세상


Amado São Félix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Do meu coração
내 마음으로부터
Lançai-nos do céu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소서
A vossa benção
당신의 축복

São Félix humilde
겸손한 성 펠릭스
Da igreja, defensor,
교회의 수호자시여,
Levai os vossos filhos
당신의 자녀들을
Ao trono do Senhor
주님의 보좌로 데려가소서 .

Amado São Félix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Do meu coração
내 마음으로부터
Lançai-nos do céu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소서
A vossa benção
당신의 축복

Fazei que convosco
저희도 당신과 함께
Louvemos também,
천국의 영광을
A glória do céu,
영원히 찬양하게
Para sempre. Amém
하소서. 아멘

Amado São Félix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Do meu coração
내 마음으로부터
Lançai-nos do céu
우리를 하늘에서 내려주소서
A vossa benção
당신의 축복

11. 참고문서

https://capuchin.kr/kr/?page_id=57&board_name=menu2_1&order_by=fn_pid&order_type=desc&page_id=57&vid=8
https://feliciansisters.org/st-felix-of-cantalice/
https://www.capdox.capuchin.org.au/saints-blesseds/saint-felix-da-cantalice-1/
https://www.catholic.org/saints/saint.php?saint_id=638
https://www.indcatholicnews.com/saint/148
https://capuchinswest.org/friar-friday/saint-felix-of-cantalice-nurturing-holiness-in-humility/
https://saint.cpbc.co.kr/m/result.html?gender=male&no=34
https://www.someliturgia.com.br/paroquia-sao-felix-de-cantalice/ladainha-de-sao-felix-de-cantalice/1882/letra
https://news.cpbc.co.kr/article/570613
https://bbs.catholic.or.kr/bbsm/bbs_view.asp?num=66053&id=180473&menu=4779
https://m.mariasarang.net/saint/bbs_view.asp?index=bbs_saint&no=2784&curRef=2784&curStep=0&curLevel=0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today=&today_tmp=&ctxtCommand=&ctxtLogOn=&ctxtSexcode=&ctxtChukday=&ctxtGaladay=&Orggubun=101&ctxtHigh=&ctxtLow=&ctxtChecked=Checked&oldrow=&curpage=2&ctxtOrder=name1%2Cgaladaym%2Cgaladayd&ctxtOrderType=&ctxtSaintId=2784&ctxtSCode=&ctxtSearchNm=%ED%8E%A0%EB%A6%AD%EC%8A%A4&ctxtChukmm=&ctxtChukdd=&ctxtPosition=&ctxtCity=&PSIZE=20
https://en.wikipedia.org/wiki/Felix_of_Cantalice
https://www.capuchin.org/saints_blessed/saint-felix-of-cantalice/
https://capuchin.kr/kr/?p=972
https://www.parrocchiasanfelice.org/
https://web.archive.org/web/20141110001009/http://beafriar.com/felix.html
https://faith.nd.edu/s/1210/faith/interior.aspx?sid=1210&gid=609&calcid=53508&calpgid=61&pgid=20088&crid=0
https://www.santiebeati.it/dettaglio/53750
https://it.wikipedia.org/wiki/Felice_da_Cantalice
https://anastpaul.com/2018/05/18/saint-of-the-day-18-may-st-felix-of-cantalice-o-f-m-cap-1515-1587/
https://catholicinsight.com/st-felix-of-cantalice-the-friar-who-saved-the-capuchin-reform-by-his-holiness/
https://www.capdox.capuchin.org.au/saints-blesseds/saint-felice-da-cantalice-2/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776288785795109&id=776161979141123
https://edizionicittanuova.it/prodotto/enciclopedia-dei-santi-bibliotheca-sanctorum/
https://discoverplaces.travel/en/stories/special-places/san-felice-cantalice-first-capuchin-saint
https://comune.cantalice.ri.it/contenuti/381326/santuario-s-felice-acqua


[1] https://capuchin.kr/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엄격하게 닮고 따르고자 하는 1회 수도원 중 제일 마지막으로 교황의 인준을 받은 수도회, 프란치스코회라 불리는 수도공동체는 크게 3갈래로 나뉜다. 먼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맨 처음에 직접 조직한 작은형제회,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그리고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1회, 아시시의 성녀 클라라와 함께 세운 클라라 수녀회는 2회, 그리고 재속 평신도와 사제들로 구성된 3회로 지칭된다. 명칭의 카푸친은 커피 종류인 카푸치노의 어원이다.[2] 라틴어로 행운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여성형은 펠리시아.[3] 블라시오와 카롤로라는 형들과 포텐자와 베드로 마리노라는 남동생 두 명이 있었다. 베드로 마리노는 칸탈리체와 리에티(Rieti) 사이의 있었던 전투에서 숨졌다.[4] 카푸친 작은형제회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이다.[5] 카푸친 작은형제회의 수도자[6] 쟁기날에 큰 상처가 났지만 바로 아물었다는 내용이 전해지기도 한다.[7] 聖召(성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8] 펠릭스를 깜빡 잊어버렸다고도 한다.[9] 유년기부터 수도원 생활을 한 성인들의 일화나, 현 시점 학문이 얕아도 나이가 있더라도 수도자로서 받아들여졌다는 평가를 하는 것을 보면, 서른 가까이 된 배움도 없어 보이는 농장일만 하던 펠릭스를 수도자로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유추된다.[10] 1517년 루터의 95개 반박문으로 시작된 종교개혁으로 가톨릭은 궁지에 몰릴 지경으로 교세가 줄어들고 있는 시기였다. 가톨릭의 자체적인 쇄신운동이 시작되던 해이며 근대의 사제 양성과 역할, 미사 전례등이 정립되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시작되었다.[11] Deo Gratias(하느님 감사합니다.) 라틴어로 하느님과 감사의 합성어[12] Brother Deogratias[13] 문맹률이 90%를 훌쩍 넘는 시기라고 한다. (세종대왕님 감사합니다.)[14] 수도복은 상당히 불편해서 입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보속을 할 수 있다고 한다.[15] 16세기의 포장되지 않은 거리와 계절의 변화에 그의 발은 항상 곪고 찢겼다.[16] 가톨릭 미사참례시 영성체 예식에서 백원짜리 동전 크기의 하얀색 제병을 먹는다. 제병이 축성되면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며 성체로 모시며 신성시 한다. 위키 설명은 다음과 같다. ---- 성체와 성혈(聖體와 聖血, 영어: Blessed Sacrament, Most Blessed Sacrament, MBS) 또는 그리스도의 몸과 그리스도의 피는 기독교에서 성체성사를 통해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정교회와 가톨릭 등의 기독교인들은 성찬 중에 빵과 포도주가 실체 변화하여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고 신성과 인성이 실제로, 실체적으로 현존한다고 믿는다. 개신교는 일반적으로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17] 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외적인 부분에서도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하였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마구간에서 가난하게 태어나 옷이 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처럼 자신 역시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프란치스코회 수도규칙의 핵심은 가난과 사도적 삶에 대한 헌신이다.[18] 성 베드로 대성당,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산 세바스티아노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산타 크로체 인 제루살렘메 대성당, 산 로렌초 푸오리 레 무라 대성당, 그리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19] 위 내용과 연관된 전승은 다음과 같다. - 성 펠릭스의 영향력은 평범한 수준을 넘어 어려운 시기에 희망의 등대가 되었다. 1580년, 로마는 심각한 기근에 직면했고, 도시의 정치인들은 카푸친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성 펠릭스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한 그들은 도시 전체를 위한 음식과 식량을 모으기 위해 그의 도움을 요청했다. 카푸친회 장상들은 동의했고, 펠릭스는 기꺼이 이 새로운 임무를 받아들였다.[20] 많은 수도자들이 그러하듯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 말씀의 실천으로 생각된다. 성전에서 기도를 드리다가도 누군가가 나타나면 기도를 드리지 않은 척하는 성인도 있었다. 다음과 같이 성경에 쓰여있다. -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는 줄 안다.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 마태 6.5~7[21] 요한 바오로 2세가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수녀회'에서 한 연설문. https://www.vatican.va/content/john-paul-ii/en/speeches/2000/apr-jun/documents/hf_jp-ii_spe_20000616_sisters-st-felix.html[22] https://comune.cantalice.ri.it/contenuti/381326/santuario-s-felice-acqua[23] 프란치스코회는 어떤 방식으로도 금품을 지원받지 않는다.[24] 성인이나 고승들의 시신이 인위적인 조치없이 부패하지 않는 많은 보고와 연구가 있다. 대표적으로 서프라이즈에서도 방송됐던 성녀 베르나데트의 사례가 있다.[25] 가톨릭에서의 선종(善終)은 임종 때에 병자성사(종부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착하게 살고 복되게 생을 마친다'는 뜻을 가진 선생복종(善生福終)에서 유래하였다.[26] 가톨릭에는 성인 유해에 대한 공경이 있다. 성인의 물건도 성유물로 취급된다. 성경에 엘리야의 뼈에 닿아 살아나는 기적이나, 사도 바오로의 살에 닿았던 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들에게 대기만 해도 질병이 사라지고 악령들이 물러났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유해 또한 85개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펠릭스는 평상시에도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지고, 생전에도 성인으로 불려져 그에게서 기적과 축복을 얻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중세의 성유물에 대한 공경 수준은 현재와 확연히 다르다. 성유물을 구했다며 마을 전체가 수일간 축제를 하기도 했다. 유명한 성인은 그 유해의 온전한 보존이 어려웠고, 성인이 묻힌 곳이 축복의 순례지가 되어 도시의 경제 규모까지 달라질 정도 였다고 한다. 지금도 여러 미디어에 나오는 롱기누스의 창이나 성배를 보면 성유물에 대한 전설과 전승은 아직도 진행형이다.[27] 제227대 교황. 강철교황이라고도 불리며, 금욕적이고, 가톨릭의 질서를 회복시키고, 잃었던 교황령을 되찾아 재정을 튼튼히 했다고 평가받는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이탈리아를 여행 중 어느 젊은 수도자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치자 갑자기 무릎을 꿇고 "교황님"이라 부르며 경의를 표한 적이 있는데, 노스트라다무스 사후 19년 뒤 이 젊은 수도자는 실제로 교황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그가 식스토 5세이다.[28] 1590년 8월 27일[29] 1625년 우르바노 8세 교황에 의해 시복, 1712년 클레멘스 11세 교황에 의해 시성[30] Church of Saint Felix of Cantalice, URL: https://www.parrocchiasanfelice.org/ , WIKIPIDIA : https://en.wikipedia.org/wiki/San_Felice_da_Cantalice_a_Centocelle , 여담으로 추기경이 되면 교황은 로마의 성당 하나를 명의 본당으로 지정해준다. 한국 천주교 역사상 첫 추기경인 김수환 추기경이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본당 명의사제이다.[31] 칸탈리체의 성 펠릭스 수녀회라고도 불린다. https://feliciansisters.org/[32] https://www.archivio.formatrieti.com/cantalice-dal-15-al-20-maggio-si-festeggia-san-felice-tra-gli-ospiti-l-equipe-84[33] 프란치스코회에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녀 클라라, 오상의 비오를 비롯해 펠릭스보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성인이 많다.[34] 諡福(시복) / Beatification / 가톨릭에서 누군가를 복자로 선포하는 행위. 시성 청원인이 대상자를 성인으로 인정해 달라고 교황청 시성부에 청원하면 해당 후보자는 '하느님의 종'으로 불리게 된다. 문제가 없다면 교황의 권한으로 해당 후보자에게 가경자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가경자가 시복심사를 통과하면 교황의 인가를 받아 복자가 된다. 1983년 교회법이 개정되면서 대상자가 복자품에 오르기 위해서는 대상자의 전구에 의한 기적 사례 한 개가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대상자가 순교했을 경우 순교를 기적으로 간주하여 기적 심사가 면제된다.[35] 諡聖(시성) / Canonization / 가톨릭에서 복자를 성인의 명단에 올리고 전세계 교회로 하여금 그를 공경할 수 있도록 하는 선언을 말한다. 여기서 시(諡)란 죽은 사람에게 올리는 어떤 호칭을 뜻한다. 따라서 '시성(諡聖)'이란 '죽은 사람에게 성인(聖人)이란 칭호를 올리는 것'을 말한다.[36] 代贖(대속), 남의 죄를 대신해 속죄하거나 대가를 치르고 풀려나게 하는 것[37] https://en.wikipedia.org/wiki/Santa_Maria_della_Concezione_dei_Cappuccini[38] 고해성사와 영성체, 교황님의 뜻대로 기도(주님의 기도, 성모송, 사도신경)[39] 대사(大赦)의 일종. 전대사는 대사 중에서도 죄에 따른 잠벌(暫罰)에서 전부 풀리는 '전면대사'를 말한다.[40]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은 기독교 전례서의 하나로, 주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해마다 지내는 성인들의 축일을 나열한 전례력의 근거를 이루는 책이다. 첫 번째 공식 출판본은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이는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1586년에 승인한 것이다.[41] 양 손바닥과 양 발등에 성정으로, 옆구리에 론지누스의 창으로 찔린 5개의 상처[42]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776288785795109&id=776161979141123[43] https://www.someliturgia.com.br/paroquia-sao-felix-de-cantalice/ladainha-de-sao-felix-de-cantalice/1882/letra[44] https://www.someliturgia.com.br/paroquia-sao-felix-de-cantalice/hino-de-sao-felix-de-cantalice/937/letra[45] 문맥에 따라 의역 : 사랑하는 성 펠릭스여. 간구하오니 하늘에서 당신의 축복을 저희에게 내려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