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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핵실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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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장소 | 네바다 핵실험장 · 비키니 섬 · 에니위턱 환초 |
오퍼레이션 크로스로드 Operation Crossroads | |
실험 날짜 | 1946년 6월 ~ 7월 |
실험 장소 | 비키니 환초 |
실험 횟수 | 2회 |
주도 | 미 육군/해군 합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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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두번째 핵실험이자 세계 최초의 수중 핵폭발이 일어난 실험. 최초로 비키니 섬에서 실시한 핵실험이자, 밀덕에게는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노획, 퇴역 군함들이 끔살당한 실험으로 유명하다.2. 과정
맨해튼 계획으로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한지 얼마 안돼서 핵무기가 해군 함정에 가할 수 있는 피해 수준을 실험해야 한다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그런데 같은 주장이지만 미 육군과 미 해군의 입장이 미묘하게 달랐는데, 육군은 함정이 핵무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실험하려 한 반면 해군은 함정이 핵무기에 얼마나 잘 버티는지를 실험하려고 한 것. 어찌어찌하여 합동 태스크포스 1(Joint Task Force 1, JTF-1)을 구성해 실험을 진행하였다.실험은 에이블(Able), 베이커(Baker), 찰리(Charlie) 총 3발로 구성되었다. 에이블은 폭격기에서 투하하여 공중 폭발, 베이커는 얕은 바다 수중에서 폭발, 찰리는 깊은 바다 수중에서 폭발하여 각종 퇴역 함정과 노획 함정들이 입는 피해를 확인할 예정이었다. 실험 장소로는 태평양의 마셜 제도에 있는 비키니 환초로 설정되었고, 총 95척의 항공모함, 전함, 순양함, 구축함, 기타 각종 함정들이 집결하였다. 핵무기가 생물에 끼치는 영향을 실험하기 위해 수천 마리의 각종 동물들도 동원되었다. 본래 비키니 환초에 살던 원주민 167명은 206km 떨어진 롱게리크 환초에 이주하기로 합의하였다.
3. 폭발
3.1. 에이블
에이블 | |
실험 날짜 | 1946년 7월 1일 09시 00분 01초 (MIT) |
실험 장소 | 비키니 환초 |
사용한 폭탄 | Mk-3A |
위력 | 23 kt |
폭탄 종류 | 플루토늄 내폭형 핵무기[1] |
고도 | 해발 158 m 공중투하 |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가 투하한 플루토늄 핵무기[2]를 사용한 공중폭발실험. 본래는 표적함인 전함 USS 네바다 함[3] 상공에 투하할 예정이었지만 650m 가량 빗나갔고, 이로 인해 예상보다 많은 피해가 나왔다. 상당수의 군함이 네바다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었기 때문이다. 총 5척의 배[4]가 침몰했고 14척의 배가 심한 손상을 입었다. 피해를 입은 배들은 대부분 폭심지에서 900m 거리 이내에 있었다.
다만, 함선들을 모두 격침시키기에는 위력이 부족했지만 그럼에도 방사선은 승조원들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폭심지에서 650m 떨어진 바다에는 실제 승조원들이 위치해야 할 곳마다 실험동물들이 자리잡고 있었고, 이중 폭발 당시에 살아남은 동물들도 전부 수 일 이내에 방사선 피폭으로 죽었다. 하지만 실험 후 배 자체에 남은 방사능은 거의 없었고, 핵분열 생성물들은 대부분 성층권까지 올라가 낙진 오염도 없었다. 하루 뒤에 살아남은 배에는 승조원들이 승함해 다음 실험을 준비할 정도로 방사능이 줄었다.
3.2. 베이커
베이커 | |
실험 날짜 | 1946년 7월 23일 08시 35분 00초 (MIT) |
실험 장소 | 비키니 환초 |
사용한 폭탄 | Mk-3A |
위력 | 23 kt |
폭탄 종류 | 플루토늄 내폭형 핵무기 |
고도 | 수심 27.5m 수중폭발 |
고화질 사진
고화질 사진에서 전함 USS 아칸소 함에 의해 만들어진 검은 그림자도 볼 수 있다.
상륙정 LSM-60호정에 묶여 수심 27.5m에 있던 핵무기가 사용된 최초의 수중폭발실험. 항공모함 1척, 전함 2척, 잠수함 3척, 기타 3척으로 총 9척이 침몰했고 이중에는 노획된 일본 해군 나가토도 포함되어 있었다. 크릭스마리네 중순양함 프린츠 오이겐은 손상된 채로 살아남았으나 방사능으로 인해 수리하지 못해 콰잘레인 환초로 견인되다가 좌초된다.
참고로 위의 사진을 잘 보면 가운데의 거대한 물기둥 오른쪽편에 길쭉한 검은색 그림자가 수직으로 높게 뻗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관측자들 대부분은 이것을 기폭위치 바로 위에 있던 LSM-60 상륙정을 제외하고 폭심지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전함 아칸소가 수직으로 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측자들은 매우 먼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하게 볼 수 없었으며 저 검은 그림자가 아칸소에 의해 발생한 것은 분명하나 아칸소가 수직으로 선 것을 확인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다. 오히려 아칸소는 실제로는 폭심에서 거의 수평하게 우현을 드러낸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위키피디아 링크)[5] 폭발이 아무리 세더라도 수직으로 서는 건 불가능했다.
만약 실제로 수직으로 섰다면 아무리 전함이라 해도 자체 하중을 견뎌낼 수 없고 그 거체 한쪽 끝을 2~300여 m 높이로 들어올릴 정도의 충격을 하부에서 받은 아칸소의 용골은 당연히 부러졌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아칸소는 해저에 용골이 부러지지 않은 상태로 뒤집혀 가라앉은 상태이다. 잠수사의 스케치(위키피디아) 즉 실제로는 우현에 큰 충격을 받으면서 옆으로 굴러 침몰했다. 바꿔 말하면 저 검은 그림자의 정체는 실제로는 아칸소 자체가 아니라 아칸소에 가려져서 물보라가 일어나지 않은 구멍으로 인해 생긴 그림자인 셈이다. 기폭전에 다들 철수해서 원거리에서 관측하다 보니 관측 당시 아칸소의 정확한 포지션을 몰랐기에 관측자들이 해당 그림자를 보고 아칸소가 수직으로 선 것으로 믿은 것이다. 국내 밀덕뿐만 아니라 물론 외국 밀리터리 관련 사이트에서도 아칸소가 수직으로 선 것으로 잘못 설명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 실험의 결과를 짧게 말하자면, 해서는 안 됐었을 끔찍한 실험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방사능도 엄청나게 남겼는데, 그 전까지의 핵폭발은 모두 지상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공중에서 터졌지만 이 실험은 수중에서 터져 핵분열 생성물들이 그대로 지상에 흩뿌려졌기 때문. 실험 후에 다음 실험을 준비하기 위해 인원이 탑승하려 했지만, 가장 멀리 떨어진 5척에만 사람이 탈 수 있을 정도로 방사능이 너무 높아서 실험장비를 탑재한 무인 보트만이 중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중심에서의 방사선량은 첫 24시간동안 730뢴트겐이었다. 참고로 당시 개인당 허용된 방사선량은 일일 0.1뢴트겐. 보다 중심에 가까운 함정에는 소방선을 이용해 방사능 물질을 씻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었고 첫 시도에서 절반까지 떨어뜨리는 데 성공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아무리 물을 뿌려도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나마 진행된 방사능 제염 작업 역시 위험하고 비효율적으로 진행되었다. 피폭량을 측정하고 통제하기 위해 18,875장의 배지 선량계와 320개의 가이거 계수기가 지급되었지만, 인원들은 보호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작업해야 했다. 명확한 방사능 제염 작업 수칙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물과 비누, 걸레와 솔로 갑판을 청소해야 했다. 소방선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함정에 너무 가까이 접근했고 작업 인원들은 방사능을 씻어낸 물에 젖은 채로 일했다. 소방선 한 척은 방사능으로 완전히 폐기되어야 했고 나흘 동안 총 69척의 배가 기준치 이상으로 피폭되었다. 배에 승선한 인원들 중 일부는 바로 과다 피폭되었고 즉시 본국으로 후송되었다.
프린츠 오이겐에서 제염 작업 중인 미 해군 장병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분열되지 않고 남은 플루토늄이었다. 플루토늄은 배지 선량계에도, 가이거 계수기에도 탐지되지 않는 물질이었지만 플루토늄은 원자폭탄 폭발시 생성되는 방사능 입자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이러한 점을 들어 방사능 안전 책임자였던 스태포드 워렌 육군 대령은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근처에서 잡힌 물고기의 방사능 사진이었다. 이 사진은 플루토늄이 실제로 다량 흩어져 있으며 생물체에 흡수되어 있다는 증거였다. 결국 8월 10일 모든 방사능 제염 작업은 중지되었다.
방사능에 오염된 물고기. 배의 밝은 부분은 물고기가 먹은 조류(algae)에서 나오는 방사선이고, 나머지 물고기의 윤곽은 비늘의 칼슘에 섞여 들어간 플루토늄이 방출한 알파선에 의한 것이다.
3.3. 찰리
찰리 | |
실험 날짜 | 1946년 8월 1일 (MIT) |
실험 장소 | 비키니 환초 |
사용한 폭탄 | 취소됨 |
위력 | 취소됨 |
폭탄 종류 | 취소됨 |
고도 | 수심 50m 수중폭발 |
본래 여기에 사용할 플루토늄 탄두는 해리 K. 더그힐란 2세, 루이스 슬로틴과 동료 과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데몬 코어'였다. 그러나 실험이 취소되면서 데몬 코어는 분해되어 다른 탄두[6]로 재활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