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12 21:04:33

클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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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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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일
1999년 5월 1일
(데뷔일로부터 [dday(1999-05-01)]일, [age(1999-05-01)]주년)
데뷔 음반
정규 1집
[[클레오/음반 목록|
Cleo
]][[클레오/음반 목록#Cleo|
Cleo
]][[클레오/음반 목록#s-|
Cleo
]]
장르
댄스, 발라드
리더
채은정
활동 기간
1기: 1999년
2기: 2000~2003년
3기: 2004~2006년
New 클레오: 2023년~
소속사
스타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유통사
오감엔터테인먼트
링크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소속사[1]
1. 개요2. 멤버3. 멤버 변천사
3.1. 1기3.2. 2기3.3. 3기
4. 음반 목록5. 활동
5.1. 1집5.2. 2집5.3. 3집5.4. 4집5.5. 5집, 해체 이후5.6. New 클레오
6. 여담

[clearfix]

1. 개요

1999년 데뷔한 대한민국의 걸그룹.

팀명은 'Come and Listen, EveryOne'[2]의 약자로 1999년 1집 앨범 Good Time으로 데뷔했다.

2. 멤버

파일:New 클레오 채은정.jpg 파일:New 클레오 구도경.jpg 파일:New 클레오 디니.jpg
구도경
1982. 03. 01. ([age(1982-03-01)]세)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리더
1995. 04. 07. ([age(1995-04-07)]세)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3. 멤버 변천사

3.1. 1기

3.2. 2기

  • 김하나(리더)[4]
  • 채은정
  • 한현정(리드보컬)

3.3. 3기

4. 음반 목록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클레오/음반 목록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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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활동

MBC [[한국방송공사|
KBS
]]
SBS

5.1. 1집

파일:256E88435769333333332AA1033.jpg
1999년 1집 데뷔 당시의 멤버들.

데뷔 전 초기 컨셉은 에코를 염두에 둔 R&B 트리오쪽[5]이었으나 제작사 사장이 당시 걸그룹 시류를 검토한 뒤, 요정 컨셉으로 가는게 났다고 판단해서 데뷔 직전에 데뷔곡을 'Good Time'으로 바꾸고 컨셉도 요정요정하게 지시했다고 한다.

채은정은 이게 너무 싫어서 한 달동안 잠수까지 탔지만 어쨌든 계약이 이미 되어 있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고 한다. 데뷔 시절부터 채은정이 센터격이었지만 사실 팀내의 리더와 결성 중심에는 박예은이 있었다. 박예은 주위에 음악 관계자들이 많아서 직접 채은정을 길거리에서 캐스팅했고, 이후 오디션을 통해 김하나가 합류하여 그룹이 결성됐다.

과거의 정확한 자료들이 현재 없어 최근 채은정이 직접 밝힌 바로는, 1~3집때 소속사는 '도레미레코드(도레미미디어)'였다고 하며 소속사 사장님이 무섭기로 유명한 박남성 대표였다고 한다. 같은 소속 가수 선배로 드렁큰타이거현진영이 있었다고 하며 어느 시점부턴 도레미미디어의 레이블인 '일라이엔터테인먼트'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6] 일라이에는 가수 팀은 클레오만 전담했고 그 외에는 배우 홍수현, 이재황, 이선정이 있었다고 한다. 일라이에 대표를 거쳐갔었던 장세익 대표는 2002년쯤 룰라, 디바 등과 관련있는 크림엔터테인먼트로 이적하기도 했는데, 클레오 4집이 이상민의 프로듀싱이 닿은건 이 인연이 계기가 있어보인다.

1집 타이틀 곡은 앨범명과 같은 Good Time. 발랄한 느낌의 멜로디와 달리, 너와 함께 지내고 싶은 밤 부모님의 허락이 필요하지만이라는 당시로서는 노골적인 가사[7] 때문에 회자되는 노래로 수학여행을 가면 당시 1982년생~1989년생의 초중고 여학생들이 핑클, S.E.S., 베이비복스 다음으로 선곡했던 곡 중 하나였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8] 결국 1999년 SBS 인기가요 방송 차트에서 10위를 기록하며 파워 루키로 인정 받게 된다.



99년 7월부터는 리믹스 버전[9]으로 활동했는데, 도입 부분의 비트가 살짝 바뀌고 중간 간주 부분에 댄스 브레이크 타임이 있다는 점을 빼면 원곡과 거의 똑같다. 1집 활동 중에는 꽤 많은 팬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는데, 특이하게도 클레오 팬덤은 동시대 걸그룹들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여학생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몇 안 되는 여초 팬덤이었다.[10] 후술하듯 이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 대규모 팬덤을 보유한 그룹의 팬들과 안티들이었는데 클레오 팬덤은 이들이 모두 포함돼 있었던 특이한 구성으로 유명했다. 클레오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컨셉으로 데뷔했던 그룹은 소리 소문 없이 활동을 중단하면서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클레오는 1집이 예상치 않은 대성공을 거두면서 2집을 준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11]

후속곡 '니가 나를 꼭 사랑할때만'[12]을 끝으로 1집 활동 종료 후 박예은이 탈퇴하면서 새로이 한현정을 영입하고 새로이 2집 활동을 하게 된다. 1집의 소녀 컨셉의 순수함 하나만으로는 쉽사리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는지 2집에선 곧바로 성숙하고 섹시한 방향으로 컨셉을 잡았다.

5.2. 2집

파일:T001R800x800M000003fPvaF2KE4DV_2.jpg
클레오하면 떠오르는 2집의 라인업.
왼쪽부터 김하나, 채은정, 한현정
누구나 인정하는 클레오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이며 2020년대에도 클레오가 대중들에게 회자되는 인기와 인지도를 확보한 기념비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앨범 자체는 2000년 3월에 발매했지만, 음악방송에 컴백한 건 4월부터이다. 2집 타이틀곡인 Ready for love부터 멤버들 간의 포지션이 확립되었다.[13] 실제로 2000년의 2-3분기 6개월 동안은 클레오의 최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절정의 인기를 누렸으며 유튜브에는 특히나 2집 활동 당시 자료가 압도적으로 많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집 컨셉이 S.E.S., 핑클 쪽을 겨냥했다면 2집 컨셉은 베이비복스 쪽으로 타겟을 돌렸지만 너무 빨리 청순 컨셉을 버린 것이 아쉬웠다는 평도 있었다.

2집 최대의 특징은 리더가 된 김하나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면서 채은정과 투톱 체제가 된 점이다. 김하나는 1집을 거치면서 인지도를 확보하고 2집부터는 본인의 개성을 확립하면서 채은정과 함께 팬덤을 양분했는데, 특히 1집 때부터 클레오에서 보컬은 물론 랩까지 담당하는 유일한 멤버였기 때문에 채은정과 함께 팀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그러나 1집 시절에는 채은정이 사실상 단독 센터를 맡은 탓에 김하나는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고 2집에서 메이크업은 물론 의상까지도 차별화를 둬서 그대로 치고 올라오게 되었다. 이 때부터 아이돌 느낌에서 대중성을 노린 성숙한 섹시 그룹으로 변했고 팬덤 역시 점차 남초로 변화했는데 그럼에도 1집 때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여성 팬들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다.

1집 때부터 최고 인기 멤버로 당시 걸그룹 멤버 인기 순위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채은정은 젖살도 빠지고, Ready for love 당시 금발로 염색을 하면서 1집 당시의 청순한 이미지를 탈피해 성숙한 이미지로 변신을 꾀했다.[14] 하지만 1집 때부터 귀엽다는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얼빠들이 매우 많았던 탓에 본인 스스로 이미지 변신을 하려고 했던 노력이 팬덤 사이에선 귀여운 일탈 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결국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당시 채은정 하면 금발이 절로 떠오를 정도로 인상이 깊었던지라 이미지 변신엔 성공한 셈이 되었다.

신 멤버인 한현정은 2집 작업 도중 탈퇴한 박예은을 대신해 영입되었다. 강렬한 인상의 예쁜 외모에 독특한 비음 창법과 준수한 댄스 실력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앨범 활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높지 않았으나, 한현정의 강점은 바로 무대에서의 표정 연기와 단독 제스처[15]였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마스크로 구사하는 표정 연기만으로 당시 비주얼 센터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단독 제스처로 카메라 단독분량을 굉장히 잘 뽑아내는 편이라 다른 멤버들과 차별화된 매력을 선보였다.

특히 단독 제스처는 당시 다른 그룹들도 흔히 하던 거였지만, 한현정만큼 이런 제스처를 잘 소화해낸 사람이 없었다. 헤어스타일도 뮤비 때의 긴 생머리보다는 반묶음이나 뿌까머리가 많았고, 당시의 평가로는 무대매너 뿐만 아니라 사적인 팬서비스도 굉장히 좋았던지라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사실 수록곡들도 고음 쪽이 다소 약했을 뿐이지, 저음에서는 특유의 음색이 섹시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에 곡의 이미지를 잘 살렸는데, 기존의 청순한 소녀였던 클레오를 섹시 걸그룹 이미지로 바꿔낸 핵심 멤버였다. 특히나 이 저음의 정점을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바로 6번 트랙인 최후의 선택이다.


2집 타이틀곡은 Ready for love. 빠른 비트의 유로 댄스곡[16]이며 2000년 초반 클레오를 대세 걸그룹으로 만들어준 곡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클레오의 코어 팬들은 물론 나중에 입덕한 사람들도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 노래 1순위로 꼽을 정도로 수준이 높은데, 지상파 순위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17] 많은 주목을 받았다. 2000년대 엄청난 톱가수들의 연이은 활동 사이에서도 그 정도 순위를 기록했다는 것은 시기만 잘 탔다면 더 높은 성적을 기록했을 수도 있었다는 점을 반증한다.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와 외우기 쉬운 가사가 장점으로 꼽히며 당시 수학여행 장기자랑 최고의 인기곡 중 하나로 매우 높은 인기를 자랑하며 1집의 Good Time과 함께 2년 연속으로 많은 여학생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활동은 클레오의 최전성기 서막을 열었는데, 꾸준한 인기를 유지했을 뿐만 아니라 팬덤의 규모도 꽤 커져서 당시 2군 걸그룹 중에서는 신인인 샤크라 다음으로 탑이었다. 다만 샤크라와 달리, 클레오는 소속사의 역량이 부족했는지 인기나 인지도와는 별개로 CF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던 편이었다.[18]


참고로 SBS 인기가요에서 방송사고[19]가 한번 있었는데 채은정의 상의가 계속 흘러내려서 자칫하면 큰 문제로 확산될 뻔했다.[20] 다행히 채은정의 임기응변이 빨라 무사히 잘 넘어갔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상의를 가린 채로 안무를 해낸 것은 물론 마지막에 스페셜 퍼포먼스까지 보여줘서 괜히 클레오의 센터가 아니다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사건이다. 안무의 경우는 1집의 정적인 안무에서 벗어나 상당히 파워풀하고 어려운 동작이 많아졌다.



후속곡 모순은 당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라틴 음악 열풍에 힘입은 노래인데, 이 곡으로 활동하는 3분기 동안 후속곡 활동 성적도 괜찮게 흘러가면서 활동에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이 컨셉은 동 시기 라틴 음악풍의 댄스곡[21]으로 활동하던 백지영과 겹친데다 무리하게 발랄한 이미지에서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하려 한다는 세간의 걱정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지영과는 다르게 라틴 댄스 음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독자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데는 성공했다. 2집으로 입덕한 사람들에게는 Ready for love와 함께 입덕곡이기도 하다.

Ready for love와 함께 클레오의 전집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인기도 높았던 노래지만 앨범에 수록된 곡과 뮤직비디오 및 방송 활동곡이 판이하게 다르다. 앨범에 수록된 곡 쪽이 원곡인데, 리듬만 같고 한현정의 후렴 파트도 없으며, 라틴 음악 요소가 삽입된 댄스곡에 가까운 형태이지만, 뮤직비디오와 지상파 방송 활동 때 사용한 리믹스 버전이 인기가 더 높다. 일명 모순 나이트 리믹스 버전[22]으로 좀 더 빠르고 라틴 음악다운 격정적인 비트로 바꾸었는데, 실제로 플라멩고 풍의 안무와 카니발에 온 것 같은 정열적인 사운드가 굉장히 조화를 잘 이뤄서 클레오 팬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듣자마자 리믹스 버전을 선호할 정도로 뛰어난 퀄리티를 자랑한다. 파트 역시 재분배되어 한현정에게 후렴구 파트를 줘 균등히 재녹음했다.

활동 시기가 2000년 3분기이다 보니 당시 여름 휴가 시즌과 장마가 딱 겹쳐서 야외 행사 때에는 폭우 속에서 무대를 펼친 적이 제법 있었는데, 멤버들은 물론 백댄서들도 미끄러운 스테이지에서 자빠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닐 정도로 심각한 악천후였고 다 끝날 때쯤엔 비에 흠뻑 젖어 무대를 마치고 내려가는 일도 많았다.

[23]
삼속곡 Always In My Heart[24]는 Ready For Love와 모순에 가려서 오랜 활동은 없었지만 클레오 2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곡이다. 발랄하고 빠른 비트의 Ready For Love와 라틴 댄스 특유의 정열적이고 섹시한 비트인 모순과 비교해선 차분하지만 세 멤버의 가창력이 가장 잘 녹아들어 있는 미디움 템포의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 역시, 당시 후속곡 뮤직비디오 대부분이 흔히 그렇듯 촬영 현장과 멤버들의 일상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수록되어 멤버들의 또 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곡은 채은정이 소속사 대표에게 '이 곡을 활동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추천해 삼속곡이 되었을 정도로 본인이 좋아하는 뉴 잭 스윙풍의 곡이었지만 뮤직비디오를 모순 의상에다가 하나 정도만 더 걸쳐 입고 대충 덤으로 찍는 느낌으로 제작되어 속상했다고 한다. 이렇듯 곡의 높은 완성도와 반대되는 뮤비 때문에 Ready For Love와 모순 활동 때는 무대 의상이 뮤비 의상의 컨셉과 일치한데 반해, Always In My Heart로 삼속곡 활동을 할 때는 유일하게 뮤비와는 완전히 다른 코디로 무대에 섰다.

케이블 방송에서는 편집이 없었지만, 지상파 방송에서는 항상 중간의 상당 부분을 잘라내고 편집곡으로만 활동해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어째서 이런 명곡을 푸대접하냐는 불평이 나오기도 했었다. 이 곡으로 음악방송 활동을 했을 때는 멤버들의 헤어스타일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는데, 후반으로 갈 수록 3집 앨범 자켓 사진과 거의 일치한다. 정황상 이 시기부터 3집 활동을 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직접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홍재선이 작사, 작곡한 12번 트랙 '사랑해'는 당시에 도전 골든벨의 BGM으로 사용되었다.

비록 음악방송에서 1위를 기록하는데는 실패했지만 클레오는 2집 활동으로 중소 기획사 소속 아이돌임에도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며 그룹 이미지를 확고히 했을 뿐 아니라 적절한 앨범 판매량과 인기를 동시에 확보하는 등 1집 시절의 악전고투를 보상하고도 남을만큼 엄청난 대박 성공을 거뒀다. 실제로도 당시 핑클, S.E.S., 베이비복스 등 거대 팬덤을 가진 걸그룹으로 편을 갈라서 언쟁을 벌이던 학생들 사이에서도 샤크라 다음으로 클레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을 정도로 인기와 인지도 모두 떨어지지 않았고 팬덤도 제법 큰 규모였지만, 상대 걸그룹들이 너무 강했다.

물론 시대를 아주 못 탔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클레오가 2집을 준비하던 99년 4분기~2000년 1분기에는 S.E.S., 핑클, 디바, 베이비복스 등 메이저 걸그룹들이 모두 활동을 종료하고 휴식 중이었고, 2분기 5월에 컴백한 베이비복스만 빼고 나머지 세 그룹 모두 2000년 4분기인 11월에 컴백했다. 즉 클레오가 2집으로 컴백할 당시인 2000년 2~3분기에는 클레오와 대적할 라이벌 걸그룹들이 거의 없었고, S.E.S., 핑클, 디바와 활동 기간이 전혀 겹치지 않아 1집 시절처럼 메이저 걸그룹들과 경쟁할 위험조차도 없었다. 그나마 베이비복스[25]가 4집 활동으로 상반기 걸그룹 최강자로 군림했고, 2월에 데뷔한 샤크라는 클레오의 후배이자 신인임에도 2000년 신인 가수상을 모조리 휩쓸며 사실상 1군에 근접할 만큼 무시무시한 성장세를 보였다.[26]

이처럼 베이비복스를 뺀 다른 1군 걸그룹들의 대대적인 공백기로 경쟁 상대가 줄어든 절호의 기회를 잡은 덕분에 클레오는 베이비복스와 샤크라를 바짝 추격하면서 2000년 2~3분기를 주름잡는 걸그룹으로 자리매김 했다. 그 결과 명실상부한 2000년 2-3분기 걸그룹 3대장으로서, 데뷔 동기이자 1집 시절 라이벌이었던 티티마와의 경쟁에서 압승한 것은 물론이고 1년 후배 파파야, 1년 선배인 O-24마저도 완벽하게 따돌리면서 정점을 달성했다. 1집과는 완전히 다른 컨셉이란 도박이 잘 먹혀들기도 했지만, 클레오는 2집 활동 당시 어지간한 2군 걸그룹들을 전부 압도하고 1군과 어느 정도 대적할 수 있는 인기와 팬덤을 갖추는데 성공했다.

2집 활동을 마칠 즈음인 2000년 4분기는 핑클, S.E.S.의 컴백과 더불어 연이은 대형 아티스트들의 컴백으로 가요계의 황금기를 맞이한 시기이면서 역대급 죽음의 조라는 세간의 평가가 결코 과언이 아닐만큼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던 시기였다.[27] 이처럼 클레오의 2집 활동은 시기 자체가 워낙 적절했고 중소 기획사로서는 엄청난 대박이었기 때문에, 이 때 자리를 잡은 인기와 인지도가 2020년대까지도 쭉 이어지면서 당대 다른 걸그룹들보다도 더 자주 방송에서 언급된 것은 물론 활동을 재개했으면 하는 아이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5.3. 3집



2집 때 확보했던 인기와 인지도는 2001년 7월에 나온 3집 활동과 동시에 완벽하게 추락했다. 3집 타이틀곡인 Triple은 엄청난 고음과 빠른 비트의 테크노 댄스곡으로 전작에서 보여준 발랄함을 배제하고 성숙한 섹시 노선으로 변신함으로서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 강했다.

하나 2001년 당시에는 댄스곡이 점차 내리막길을 타면서 발라드로 분위기가 넘어가는 시대에 쳐진 테크노를 뒤늦게 타이틀로 정한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다 3집의 분위기가 2집과 달리 너무 어두운 분위기인데다가 지나치게 뽕삘나는 곡들이 많아 그렇게까지 크게 인기를 모으지는 못했으며 부채춤으로 어필해 보려 했던 후속곡인 섹시 컨셉의 '속'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2집 때까지 클레오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3집 활동은 기억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원래 내정된 타이틀 곡은 1집-2집의 연장선상인 'Crazy Love'였고 멤버들도 좋아하는 곡이었지만 윗선에서 타이틀을 '트리플'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마 당시 클럽 시장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은데, 이것이 오판이 됐다. 물론 '트리플'이 클럽형 댄스곡이었던 만큼 클럽에서는 나름 각광받았던 노래라고 한다. 다만, 대중 인기로 이어지지 못한 것.[28]

전체적으로도 3집은 발라드나 인도 음악, 전작과 비슷한 유로 댄스를 비롯해서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몇몇 곡은 앨범 준비기간에 비하면 못 만들었다고 혹평을 들었고, 지나치게 어두운 가사의 곡들이 많은데다 멜로디마저 굉장히 난해해서 전작의 발랄하고 상큼한 멜로디에 익숙했던 팬들이 적응이 안된다고 했을 정도로 3집은 여러모로 아쉽다는 평가가 많았다.

특히나 2집의 대박을 바탕으로 1년 이상 준비를 했기 때문에 3집 퀄리티가 당연히 높을 것이라 생각했던 팬들은 3집을 듣고나서 2집은 물론, 아직 그룹의 정체성이 확립되기 이전인 1집 수준보다도 못한 방송 활동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결국 3집 활동은 참혹한 실패로 끝났다. 공식 센터 채은정이 아닌 리더 김하나의 비중을 높혀 거의 더블센터로 세워진 앨범이었으나 본의 아니게 마지막 푸쉬가 됐다.
3집 활동 당시 출연한 프로그램. 당시 클레오가 말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3집 활동 당시에는 음악캠프가 연제협 사태로 인해 장기 결방을 한 뒤 올라이브 체제로 바뀌면서 라이브 횟수가 전무했던 이들은 여기서 활동 자체를 못 했으며 MBC의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립싱크로 활동했다. 타이틀곡 Triple 활동 기간엔 결방, 후속곡 '속'으로 돌입했을 땐 올라이브 체제로 개편. 아울러 뮤직뱅크에서도 3집 활동 무대를 찾을 수가 없으며 이들 뿐만 아니라 고난도 퍼포먼스 안무나 고음이 많은 곡으로 활동하는 가수 역시 음악캠프 출연을 하지 못했고 일부 가수들은 라이브를 위해 컨셉을 바꾼 경우가 있다.

이렇다 보니 클레오는 2집 시절 발휘했던 엄청난 저력이 무색하게도, 3집 활동 때는 지상파 음악방송은 물론 예능에서도 얼굴을 보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케이블 방송에서만 겨우 볼 수 있을 정도로 활동이 급감했다. 한마디로 3집은 전반적으로 방송 프로모션(홍보)에서도 크게 실패한 케이스다. 그래도 팬들의 충성도는 높았던 편이라 3집 앨범 발매 당초에는 팬들의 이탈이 그리 심각하지 않았으나, 2집 때처럼 왕성하게 활동하지 못했던 탓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밀려났고 이 때의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 3집 활동을 마치고 2년의 공백기간을 갖는 동안에 팬들이 많이 이탈하면서 그룹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

5.4. 4집



4집은 3집 발매 이후, 무려 2년의 공백기를 거친 2003년에야 완성됐다. 이 공백기 때 3집의 실패를 거울 삼아 룰라이상민이 프로듀서로 참여해 타이틀곡의 작사까지 맡고 유명 안무가였던 홍영주에게 안무 트레이닝을 받았다. 원래는 당시에 생소하던 개념인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먼저 곡을 광역살포한 다음,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었는데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 디지털 싱글은 호평 속에 모두 품절되고 성공리에 4집을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29] 타이틀 곡은 동화. 남자친구에 대한 바람을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인데, 가사나 멜로디가 커플들의 심경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서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매우 인기가 높았다. 당시 순위제가 중단됐던 SBS 인기가요의 순위제 대체 시스템인 Take 7[30]에도 입성했다.

그 당시에는 노래방이나 싸이월드에서 여학생들이 애창하고 배경음악으로 등록하기도 했던 인기곡으로 1세대 걸그룹들 중, 베이비복스를 제외하고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클레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노래다. 4집은 전체적으로 2집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데 멤버들 전반적으로 실력도 크게 상승하고 이 시기에 데뷔 후 처음으로 라이브로 활동했으며, 예전처럼 예능 프로그램 활동도 어느 정도 활발했다.

참고로 4집 발매 전 인기가수 김현정이 소속된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4집을 발매했었는데 '동화' 활동이 끝나자마자 계약이 만료되었고[31] 후속곡 활동도 없이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을 체결했다.[32] 그런데 이 과정에서 멤버들은 새로운 소속사로부터 누드 촬영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며 기자회견까지 강행하는데 소속사 측 입장은 제안한 적은 있지만 강요한 적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채은정 편에 따르자면 소속사에서 임의로 여성 3명을 구해서 마스크와 모자를 씌우고 누드화보 계약을 체결했고 클레오 멤버들에게 배째라 식으로 누드 촬영을 강요했다고 한다. 그래서 채은정은 절대 찍을 수 없다는 입장으로 거액의 위약금을 물고 나왔는데, 얼마 뒤 회사가 폐업하면서 자연스레 나머지 두 멤버는 자유로워졌다고 한다.[33]

어찌됐든 이런 후반부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2집 시절의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4집 활동이 소기의 성과를 이루면서 3집의 실패를 만회했다.

4집 활동 종료 후 원년 멤버 채은정이 탈퇴했는데, 1집부터 4집까지 김하나와 보컬을 양분하던 채은정의 탈퇴는 그룹 자체에는 상당한 손실이었다. 사실상 클레오의 상징이자 대중의 인지도도 가장 높고 인기조차도 그룹 내 최상위였던 채은정이 탈퇴했다는 것은 1세대 걸그룹 최후의 생존자인 클레오에겐 이미 사형선고 수준이었다. 이미 1집 때부터 세간에는 김하나와 채은정이 닮았다, 자매가 아니냐는 의혹이 비일비재할 정도였으니 그만큼 그 둘이 클레오 자체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격 존재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 각인된 것이다. 어쨌든 채은정 탈퇴 후에는 최후의 원년 멤버인 김하나만이 남았다.

채은정의 탈퇴 이후 활동내역은 아래 링크를 확인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채은정 문서
번 문단을
클레오 탈퇴 이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5. 5집, 해체 이후



채은정의 탈퇴 이후 나머지 두 멤버는 신생 기획사인 호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게 되었고, 새 멤버 정예빈[34]을 영입해서 2004년 마지막 앨범인 5집 'Rising Again'을 발매했다.

가요계에서 유행하던 힙합, R&B 비트의 섹시 컨셉 타이틀곡 'In & Out(인 앤 아웃)'으로 활동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앨범은 실패한 축에 속한다. 이민수가 초창기 시절에 편곡한 곡인 프러포즈 등 수록곡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앨범 자체가 워낙 안 팔렸던 탓[35]도 있고 소속사의 홍보조차도 당시 치고 올라오던 후발주자들을 제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당시 MKMF[36] 걸그룹 부문에 디바의 Hey Boy, 베이비복스의 환상, 슈가의 Secret과 함께 클레오의 In & Out이 후보에 올랐으며 이 상의 수상그룹은 슈가. 참고로 언론에서 이를 두고 후보선정된 걸그룹들을 모두 겨냥해서 조목조목 디스했다. 지금과 비교해봤을 때 걸그룹이 거의 없었던 시기였던지라 빈집털이식이라며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는 것조차 부끄러운 성적들이라면서 상을 탄 슈가마저도 괜히 뻘쭘해지게 만들기도...[37][38]

결국, 5집 또한 별 다른 활동 없이 종료했으며 2년 뒤인 2006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2014년 MBC 예능 세바퀴에 출연했던 공서영은 당시 팀 활동 비화를 언급하며 "5집 앨범이 실패하긴 했지만 6집 앨범을 제작을 하려 했었고 제의가 왔지만 본인 스스로 다른 살 길을 찾기 위해 고사했다"고 밝혔던 것으로 보아 5집의 적자나 성패 여부는 상관없이 후속 앨범을 논의 중이긴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1월 16일 SBS플러스 컴백쇼 톱10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계 컴백을 선언했지만, 프로그램 자체가 조기 종영하는 바람에 베이퍼웨어가 되었다. 당시의 복귀 멤버는 원년 멤버인 김하나, 채은정, 박예은. 원래 박예은보다 한현정이 우선시됐던 거 같으나,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에 제외되었고 근 10년간 거의 일반인으로서의 삶은 산 박예은을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비록 단발성 복귀라고 해도 1990~2000년대의 걸그룹들이 한 두팀이 아닌데, 유독 클레오만 출연하게 된 것은 클레오가 2군 걸그룹 중에서도 상당한 인기와 팬덤을 자랑했었던 그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어쨌든 이 당시에는 조기종영 여부와 관계없이 클레오 팬들의 엄청난 환호와 응원을 받았다.

2016년 6월 21일,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서 희열팀 슈가맨으로 등장했으며 슈가송은 Good Time.



슈가맨 등장할 당시의 멤버가 특이한데, 김하나, 채은정, 공서영으로 멤버를 구성해 출연했다. 한현정은 사적인 구설수가 있어 출연이 어려워졌고, 박예은은 애초부터 일반인의 삶을 지향했던 사람이라 안 나와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다수. 비록 정식 컴백은 아니지만 1집 원년 멤버인 김하나와 채은정이 그대로 유지된 상태에서 5집 한정 멤버였던 공서영이 들어온 것은 팬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게다가 채은정 탈퇴후 공서영이 그 자리에 정예빈이라는 예명으로 들어와서 활동한 것이라, 슈가맨 등장 이전까지 채은정과 공서영은 클레오라는 이름으로 같이 활동한 적이 없다. 슈가맨 방영 후 팬들 중에는 이 조합 은근히 괜찮은데?라면서 호평을 하는 쪽이 많이 보인다.

슈가송인 Good Time 외에도 Ready For Love, 모순, 동화 등이 방송 내내 거론되고 히트곡 메들리까지 한 걸 보면 전반적인 평가는 동시기 활동하는 다른 걸그룹들에 비해서 인기는 뚜렷하게 높지 않았지만, 인지도 하나만큼은 대단히 강하게 각인되어 10여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에 회자되는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방송에선 김하나와 채은정이 팀 활동 당시 서로 예민했기에 멤버끼리 많이 다퉜다고 회고했는데, 크게 싸운 적은 없지만 지금 생각하면 정말 별 것 아닌 일들(의상 선택, 피곤한 스케줄 등)로 자잘하게 자주 싸웠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후임 멤버인 공서영 역시 멤버 언니들이 자신에게 크게 뭐라한 적은 없지만 두 분 다 무섭긴 하셨다며 폭소를 터트렸다.

채은정(이은정)과 김하나(김한나)의 예명, 그리고 팀명 클레오까지 사실은 원년 멤버 박예은이 직접 지어줬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박예은 본인은 본명이다.

5.6. New 클레오

2023년 10월 12일, 채은정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New 클레오의 멤버들이 공개되었는데[39][40], 원년 멤버인 김하나와 박예은, 2기 멤버인 한현정과 슈가맨에서 좋은 호응을 얻었던 공서영 또한 합류가 어려웠던 탓에 클레오의 원년 멤버이자 막내였던 채은정이 New 클레오에서는 맏언니이자 리더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이돌 중에서 재데뷔한 케이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은정은 이례적으로 이미 해체한 지 오래된 자신의 前 소속 그룹을 직접 부활시켰고 해체 전에는 막내였지만 재결성 후에는 맏언니이자 리더가 된 원년 멤버란 전대미문의 기록을 직접 세웠다. 1세대 아이돌 그룹 중에서는 보이그룹, 걸그룹을 통틀어 거의 최초나 다름없는 케이스인데, 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가 직접 그룹을 부활시키고 활동 재개를 선언하자 오랜 세월 활동을 접었던 클레오 팬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환영했다.

이렇게 클레오는 해체 이후 17년 만에 재결성 되면서 멤버 개개인의 데뷔년도가 아닌 그룹의 데뷔년도로 선후배를 정하는 가요계의 관습에 따라 현역으로 활동하는 대한민국 걸그룹 최고참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일단 리더인 채은정부터 99년에 데뷔해서 1세대 아이돌 전국시대와 별들의 전쟁이라 불렸던 2000년 가요계를 모두 경험하고 살아남았던 레전드급 짬밥 보유자[41]이고, 다른 멤버들도 데뷔한 지 제법 된 편이어서 나이로나 경력으로나 걸그룹 중 최상급인 셈이다.
New 클레오 - Good Time (LIVE) New X 콘서트

그리고 2023년 12월 12일 뉴엑스 콘서트에 참가하여 Good Time, Ready For Love, 모순[42], 동화를 공연했다. 채은정은 과거 본인의 파트를 그대로, 구도경이 김하나, 디니가 박예은과 한현정의 파트를 담당했다. 4집 활동 종료 이후 20년 만의 공식 그룹 활동인데도 채은정은 전성기 시절의 기량이 그대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며 아이돌 짬밥이 어디 가진 않았음을 보여줬고, 신 멤버들 역시 성공적인 그룹 활동 안착으로 호평을 받았지만 2집의 명곡인 Always In My Heart가 빠진 점을 아쉬워 하는 팬들이 많았다.

2024년에는 신곡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으며 이어 추가로 3집 타이틀곡이었던 Triple(트리플)을 현 멤버 버전으로 재녹음해 행사에서 가끔씩 선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컴백을 위한 뮤직비디오를 촬영 중인 소식을 공개했고 텀블벅을 통해 새 앨범 펀딩을 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신곡의 제목은 <You're Mine>이라고 한다.

펀딩 종료 이후 9월 2일 디지털 싱글 <You're Mine>의 음원이 발매되었다. 쇼케이스 이후 뮤직뱅크, 쇼! 음악중심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내며 컴백 무대를 가졌다. 댓글 반응은 "날짜를 잘못 본 줄 알았다"며 놀라워하는 반응이 대다수. 실제로 클레오의 공식적인 마지막 음악방송 활동이 2004년이었으므로 20년 만에 음악방송에서 부활한 셈이다. 게다가 음악중심 같은 경우는 모종의 이유로 2005년 론칭된 프로그램이라 생방송 음악캠프 세대인 클레오는 첫 출연이었다.
You're Mine (LIVE)

2주간의 음악방송 활동 종료 후 10월에는 불후의 명곡에 첫 출연했으며 12월에는 열린음악회에도 오랜만에 출연했다.
Good Time (열린음악회)

6. 여담

  • 90년대에 데뷔한 걸그룹 중에서는 특이할 정도로 안티가 없었던 몇 안 되는 그룹이었는데 사실 극성 안티만 없었을 뿐이지, "뜰래요"라며 조롱하고 인기를 폄하하는 등 신인이라면 숙명인 인격 무시는 존재했다.[43] 그룹 자체가 중소 기획사 소속임에도 예상 외의 대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다른 1군 걸그룹들에 비해 팬덤 규모도 작은데다 먼저 데뷔한 선배 그룹들의 안티들이 극단적인 성향의 강성들[44]이라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기 때문에 굳이 공격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클레오는 당시 걸그룹에 흔했던 대형 보이그룹들과의 스캔들조차 단 한 번도 없었을만큼 그룹은 물론 멤버 개개인의 구설수가 전혀 없고 처신을 굉장히 잘했기 때문에, 당시 아이돌 시장의 주축이던 여학생들한테 전혀 밉보이지 않아 이미지가 매우 좋았다.[45] 클레오 1집 활동 당시에 걸그룹치고는 보기 드물었던 여초 팬덤이었던 것도 이렇다 할 구설수나 스캔들 하나 없이 깨끗한 그룹이라고 호감을 샀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당시 H.O.T.젝스키스, S.E.S., 핑클, 베이비복스의 팬들과 안티인 여학생들 중 일부가 클레오 팬이 돼서 겸임으로 덕질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로 다른 그룹의 팬들과 안티들이 같은 그룹의 팬이 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다 겸임하는 다른 그룹 떡밥이 던져지면 대판 싸움이 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태였는데, 희한하게도 클레오 팬덤 내에서는 단 한 번도 이런 사태가 없었다.

    즉 다른 거대 그룹들에 비하면 주목을 덜 받았고 인기와 인지도는 1군 걸그룹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걸그룹들에 비하면 상당히 높았던 점, 스캔들 같은 사건사고 없이 조용히 지낸 덕분에 다른 거대 그룹의 팬덤들한테 밉보이지 않았던 점, 역으로 거대 그룹 팬덤의 일부와 이들의 안티들을 팬으로 흡수하면서도 어느 그룹들과도 적대하지 않고 안전하게 활동을 했던 점이 그룹이 오랫동안 회자된 원동력이 된 것이다.

    다만 팬덤 규모 자체는 100만 단위까지 동원할 수 있었던 1세대 메이저 걸그룹들에 비해 너무나도 미약했다. 클레오 팬덤은 1집 시절 완벽한 여초였다가 2집부터 남성 팬들이 대거 늘어나서 남녀 팬들의 비중이 크게 차이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규모가 10만 단위를 겨우 넘을 정도로 적었고 당연히 적은 인원만큼 화력 지원이 매우 부족했다. 2020년대까지 소수나마 남아있던 클레오 팬들 중에서는 클레오가 2집 때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음에도 끝내 음악방송 1위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하고 활동을 마무리 지은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많았는데, 팬덤의 규모와 조직력이 1군 그룹들 정도만 됐어도 2집 활동을 적극적으로 서포트해서 1위로 올려놓았을 것이라면서 2집 활동 때 뒷심이 부족했던 것이 한계였다고 자조하는 경우도 있었다.
  • 채은정이 밝히기로는 클레오의 소속사가 멤버들만 믿고 가는 시스템이라 아무것도 없는 기획력이 아쉬웠다고 한다.[46] 동갑내기로 친했던 간미연, 려원의 팀이었던 베이비복스의 곡 퀄리티와 샤크라의 독특한 컨셉 같은 소속사들의 기획력이 항상 부러웠었다고 한다. 다만 멤버들에게 숙소 비용이나 제작 비용 등의 빚을 떠넘기지 않고 오로지 회사가 지출했고, 정산도 잘 받았기에 그 점은 너무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클레오는 다른 팀들과는 다르게 숙소 생활을 하지 않았기에 그 비용 역시 절감되었다고 했다.[47] 바꿔 말하면 클레오가 1, 2집 때 이뤄낸 성과는 소속사가 금전적인 부분에서는 뛰어났지만 기획력이 형편없다 보니 멤버들끼리 각자도생 해야만 하는 당시 상황에서 순전히 멤버들의 분투만으로 이뤄낸 것이다.
  • 전소민이 예능 런닝맨을 통해 클레오의 데뷔곡이었던 'Good Time'을 여러차례 애창곡으로 소개하기도 했다.[48] 2018년 386화에서 노래방 미션으로 이 곡을 선곡하며 부모님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파격적인 가사를 선보였는데, 덕분에 기억속에서 이 곡을 잊고 있던 사람들과 아예 모르던 나이대의 사람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주며 화제를 일으켰었다. 2020년 520화에서도 'Good Time'에 맞춰 다시 한 번 깜찍한 커버댄스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2022년 9월에 방영된 621회에서도 유재석과 함께 노래방에 들러 '썸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로 또 다시 'Good Time'을 열창해 커뮤니티 등지에서 소소한 유머짤로 돌기도 했다. 런닝맨 하차 전까지 무려 3회차에서나 해당 곡을 소개했다보니 굿타임의 음원이나 무대 영상 유튜브 댓글에선 런닝맨 전소민으로 알게 된 노래라는 1020 세대들의 댓글도 꽤나 자주 보이는 편이다.
  • 위에도 상술된 클레오의 2집 활동곡이었던 모순 리믹스 버전은 현재 음원사이트에서는 들을 수 없게 됐지만 당시 2집 재판 버전에는 12번 트랙으로 수록되었는데, 절판된 현재 기준에서는 중고로 구해야하지만 보통 중고업체나 개인 판매자들이 기존 2집 기본 트랙리스트를 복붙해 올리다보니 보기 쉽지 않다. 재판 버전임에도 판매자들이 귀찮아서 구분하지 않기 때문. 실제로 리패키지 앨범처럼 자켓이 다르다거나 그런 점은 없고 그냥 수록곡 갯수 하나 차이라 식별도 쉽지 않다. 가끔 뒷면 트랙리스트를 올려준 판매자를 통해 구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보기 힘든 희귀 앨범이 존재하는데 까만색 자켓의 모순 홍보용 싱글 CD가 극소량 있다. 모순 리믹스와 리믹스 Instrumental로 2개의 트랙이 수록되어 있으며 몇 년전 한 중고 음반사이트에 등장했었으나 이후 전혀 매물이 보이지 않는 환상의 물품이 되었다.

[1] 주로 행사 직캠을 공개한다.[2] 2024년 신곡 펀딩 소개 문구로, 1세대답게 당시 소속사가 문법에 맞지 않는 어거지 작명으로 'Come Listen EveryOne'을 했다고 스스로 소개했다. 그리고 그나마 수정해 'Come and Listen, EveryOne'으로 살짝 변형했다.[3] 공식적인 프로필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정확한 나이, 본명 등은 알 수 없는 상태며 KBS 라디오에서 성이 "홍씨"라는 언급이 있어 본명은 홍OO인 것으로 보인다. 팀 합류 전 싱글 앨범을 발매한 이력이 있다. 나이는 컴백 쇼케이스에서 채은정이 20대 30대 40대 있다고 하고 구도경이 막내라고 한 걸로 보아 85년생~94년생으로 추측되고 있다.[4] 이후 해체까지 리더 역할을 맡았다.[5] 실제로 1999년 당시에는 클레오와 에코를 헷갈리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6] 유튜브에 남겨진 2집 Always in my heart의 뮤직비디오 엠넷 방영본에 소속사 표기 부분에서 'eela i Entertainment'라고 명시되어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7] 김이나는 이 가사를 "라면 먹고 갈래"와 비슷하다고 평가했는데, 다른 노래는 몰라도 good time만큼은 가사 때문에 기억한다는 사람들이 많았다.[8] 1999년은 S.E.S. 2집과 핑클 2집이 전대미문의 인기를 기록하면서 두 그룹 모두 최전성기였는데, 얼마나 인기가 높았냐면 전국의 초중고 여학생들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장기자랑에서 십중팔구 Dreams come true나 너를 사랑해, 영원한 사랑을 선곡하는 기현상이 나타날 정도였다. 거기다 99년은 베이비복스도 전성기이긴 했지만 안티 역시 그룹의 인기에 비례해 엄청난 강성이었던 시기라 Get Up이나 Killer는 선곡해도 학생들 사이에서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 이러다 보니 여기에 끼지도 못하는 다른 걸그룹들의 곡이 장기자랑에서는 아예 선곡되지도 않았던데 반해 한 두 팀 이상은 반드시 Good Time을 선택했을만큼 인기가 있었다. 당시 교사들은 S.E.S와 핑클 노래만 주구장창 듣다가 지루해질 즈음에 클레오의 노래가 나오면 좋은 반응을 보였다.[9] 이 리믹스 버전의 정체는 IVY Mega Mix Vol.1에 수록된 음원으로, 정확하게는 IVY Mega Mix에 기초하여 약간의 편곡을 거친 것이다.[10] 1, 2집 통틀어서 관객석 응원소리를 들어보면 주로 10대 여학생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물론 인기 멤버인 채은정은 남녀 지분이 동등했고,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높았다.[11] 1집 때인 1999년은 당시 활동했던 대부분의 아이돌들이 회고하는 것처럼 최정상에 위치한 메이저 걸그룹들을 벤치마킹한 후발 걸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고, 저마다 음악방송에서 엄청난 경합을 벌였지만 결국 클레오를 포함한 극소수의 팀만 살아남았던 매우 치열한 전국시대였다.[12] 이 곡이 원래 데뷔곡이었다고 채은정이 밝혔다.[13] 1집 때는 대부분의 포지션이 채은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김하나도 비중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2집을 기점으로 포지션이 균등해져서 김하나는 물론, 한현정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14] 당시 간미연을 따라한다는 말도 많았다.[15] 원래는 본인의 안무 파트지만, 매번 같은 안무를 하기보다는 독자적인 안무나 다른 제스처로 대체하는 것이다.[16] 2000년 당시에는 영국의 혼성 팝 그룹인 Steps의 One For Sorrow와 곡의 구성이 비슷하다는 지적이 있었다.[17] MBC 음악캠프 차트 기준 11위 기록했으며 SBS 인기가요의 서브차트였던 ARS 차트에서 5위를 기록했다.[18] 후술하듯 소속사가 재정적인 문제는 적극적으로 해결해줬지만 그 외의 다른 건 멤버들만 믿고 가는 구조였기 때문에 별다른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19] 2000년 5월 7일 방송.[20] Ready For Love는 발랄한 댄스곡인데 의상을 섹시 컨셉이라는 것에 크게 의의를 둬서 그런지 활동할 수록 다소 어울리지 않게 야한 쪽으로 입혔다.[21] 2분기(2000년 4월~6월)에는 2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Dash 활동을 마무리 하고, 3분기 때부터는 후속곡인 Sad Salsa로 활동했다.[22] 일부에서는 라틴 리믹스로 지칭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출시되었던 음원이기도 하다. 재판 버전에서 12번 트랙으로 추가되어 발매됐었으나 현재 음원사이트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여담 문항 참조.[23] 그나마 지상파 방송에서 편집이 가장 덜 된 무대이다.[24] 2011년에 윤대장이 리메이크 했는데, 윤대장이 랩을 맡고 대부분의 보컬은 동경소녀가 피처링했다.[25] 단, 베이비복스는 3집부터 격화되던 안티들의 횡포가 4집으로 절정에 달하면서 활동 내내 멤버들의 정신 건강이 염려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베이비복스는 핑클이나 S.E.S.와 달리 안티인 여학생이 워낙 많아 여성 팬이 보기 드문 그룹이었다. 물론 핑클과 S.E.S.도 여성 안티는 있었지만 소속사가 워낙 메이저 했던지라 쉽게 건드리기 어려운 그룹이었고, 베이비복스 안티들은 안 그래도 중소 기획사 소속인데 안티들의 횡포가 너무 지나쳤기 때문에 안 좋은 의미로 전설로 남은 케이스이다.[26] 후배인 샤크라가 데뷔하자마자 클레오를 넘어설 정도로 급속한 성장세를 나타낸 건 기존 걸그룹들과는 전혀 다른 인도와 서아시아, 아프리카 음악을 지향하는 저세상 컨셉 때문이었다. 이런 컨셉은 원체 난해한데다 잘못하면 개그 컨셉이 아니냐는 오해를 사기 쉽기 때문에 2010년대 이후에도 솔로 가수나 아이돌이 시도하면 가히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데, 2000년대 당시 국내 가요계에서는 그 어떤 아이돌 그룹도 시도하지 않은 미개척지인데다 다른 세계의 문화였다. 그러므로 완벽한 블루 오션을 제대로 파고든 샤크라와 달리 당시로선 포화 상태인, 1군 걸그룹 컨셉을 그대로 따랐던 클레오는 살짝 어중간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라서, 201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2집 시절의 클레오를 떠올릴만큼 포지셔닝이나 이미지 변신에는 확실히 성공했다.[27] 일명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였던 시기. 이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닌 게 2000년 가요계는 1년 내내 서태지, 조성모, 임창정, 김현정, 백지영 등 솔로 가수들은 물론, 1세대 걸그룹과 보이그룹들이 대거 컴백하며 매 주마다 음악방송에서 서로 1위를 경쟁했고, 이 시기 음악방송은 평균 2~3주마다 1위가 바뀌면서 매 주가 살벌한 왕중왕전 그 자체였다.[28] 실제로 채은정은 당시 팬카페에 타이틀곡이 변경되었음을 공지하면서 평소 성격답게 '솔직히 이 곡에 대해 자신이 없다'며 과감하게 사장을 돌려까며 디스했다. 결국 대중들의 외면을 받았기에 어찌보면 채은정의 불길한 예감이 맞았던 셈.[29] 타이틀곡 동화와 SPY란 두 곡의 싱글을 100원에 한정 판매했다.[30] 기존 1위 후보에 준하는 뮤티즌송 후보 7팀.[31] 2002년 2월 레볼루션 넘버나인과 계약했는데 1년 좀 지나서 계약이 만료된 특이한 케이스였다. 연예계 전반에서는 드문 일인데 아마 알려지지 않은 어른들의 사정이 있던 걸로 추측된다. 동화 활동 직후로 채은정도 고생하며 만든 앨범인데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활동을 접게되어 아쉽다는 글을 올렸다.[32] 5집때 지방 공연에서 4집의 '흔들흔들'이라는 수록곡을 동화, In & Out과 함께 무대에서 선보인적은 있다. 사실상 동화 외의 4집 공연곡은 흔들흔들이 유일하다 봐야할 듯. 소수의 팬들이나 채은정 본인의 유튜브 채널의 댓글 언급을 보면 흔들흔들이 당시 4집 후속곡으로 준비했던 곡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33] 이 때 김하나와 한현정이 그냥 참지 왜 나갔냐고 아까운 돈만 날렸다고 채은정한테 얘기했다고 한다.[34] 공서영이 클레오임을 몰랐던 사람들이 많다. 전성기에 영입되어 활동한 게 아니므로... 카라의 마지막 활동에 함께 했던 멤버 허영지를 떠올리면 쉽다.[35] 저작권 문제의 이슈화와 온라인 음원 시장(벅스, 소리바다)의 도입으로 음반 시장이 위축되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판매량이 너무 낮았다.[36] 현재 엠넷 시상식 MAMA의 전신.[37] 원래 후보를 5팀씩 올리나 이 해엔 기성 걸그룹들이 4팀 밖에 활동을 안해서 이들만 올렸고 가장 인기있던 쥬얼리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잠시 활동하느라 2004년 앨범을 내지 않아 후보에 들지 못했다.[38]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안 그래도 2002년 상반기를 전후로 S.E.S.나 핑클 같은 그룹들이 해체나 활동휴식 수순을 밟았고, 그나마 탑 그룹이었던 베이비복스도 이전보다 기세가 많이 꺾인 상태였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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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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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이만한 경력을 갖춘 1세대 걸그룹 멤버들 중에서 활동 중인 멤버들이 많기는 하지만, 그룹 활동은 가끔씩 하는 편이고 대부분 예능 같은 다른 분야로 진출한 경우가 많다. 그룹 활동하는 멤버로 한정하면 채은정이 명실상부한 걸그룹 최고참이다.[42] 음악방송 활동 시기, 2집 재판 앨범의 라틴 리믹스가 아닌 초판 음원 버전이다.[43] 채은정은 슈가맨이나 컴백쇼10, 식신로드 등에 출연 당시에도 "우리 팀이 인기가 많지 않았다"며 자신 없어했다.[44] 웃기게도 당시 팬들과 안티들의 관계는 핑클의 안티가 젝스키스의 팬이고 S.E.S.의 안티가 H.O.T.의 팬이고 그 반대도 성립하는 이상한 관계였다. 이들이 얼마나 강성 안티냐 하면 조영구의 차를 이호연의 차인 줄 알고 완전히 폐차가 다 되도록 파괴해놓은 사건까지 있었다. 물론 당시 걸그룹 최대의 안티들을 보유했던 베이비복스는 말할 것도 없을 지경이다.[45] 단, 크리스와 채은정은 스캔들이 있었다. 크리스 패거리와 채은정 매니저들이 압구정 강남 일대에서 싸움을 벌인 일화도 있지만, 크리스가 소속된 샵은 보이그룹이 아닌 혼성그룹이라 예외로 치기 때문에 보이그룹과는 전혀 스캔들이 없었다. 크리스는 서인영과도 스캔들이 있었다.[46] 안 그래도 클레오는 당시에 음악방송이나 행사 외에도 예능 출연은 제법 자주 있었지만, 그룹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CF 섭외가 없었기 때문에 높은 인기나 인지도에 비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어려웠었다.[47] 부러워했던 동료 두 팀은 회사들이 요즘처럼 제작비, 식비 등을 멤버들에게 빚을 떠넘기거나 정산이 부실했기로 유명한 회사긴 했다. 최근 밝혀진 클레오처럼 1세대 팀 중에 소속사가 멤버들에게 금전적으로 빚을 지게 해주지 않아 운이 좋았다는 중소 걸그룹이 또 있는데, 바로 오투포가 있다. 멤버 김민지가 채은정처럼 유튜브를 통해 밝힌 사실.[48] 클레오가 데뷔한 99년도에 전소민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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