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고바르드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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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고바르드 2대 국왕 Cleph | 클레프 | ||
제호 | 한국어 | 클레프 |
라틴어 | Cleph | |
생몰 년도 | 미상 ~ 574년 | |
재위 기간 | 572년 ~ 57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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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랑고바르드 왕국 2대 국왕.2. 행적
572년 6월 알보인 왕이 헬메치스와 로자문드에 의해 암살당한 뒤, 36명의 랑고바르드 공작들은 얼마 전에 공략한 파비아에 모여서 앞으로 어찌할 지 논의했다. 그 결과, 그들은 왕을 자처한 헬메치스를 단호히 거부하고 파비아 공작을 맡은 클레프를 새 왕으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클레프는 왕위에 오르자마자 헬메치스가 있는 베로나로 토벌대를 보냈고, 헬메치스는 로자문드와 함께 동로마군이 주둔하고 있는 라벤나로 도피했다.클레프는 이탈리아의 미점령지를 마저 공략하고 동로마 제국군을 완전히 몰아내기로 했다. 그는 라벤나와 투시아를 압박하면서 라틴 귀족들을 대거 숙청하고,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토지를 랑고바르드 귀족들에게 나눠줬다. 그러나 정복 전쟁 및 숙청 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던 574년, 그는 아내 마사네와 함께 부하 또는 노예에게 암살당했다. 그 후 36명의 공작들은 왕을 세우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프랑크 왕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클레프의 아들 아우타리를 왕으로 세우기로 합의했다.
클레프는 아우타리 외에도 2명의 딸을 더 낳았다. 딸 하나는 훗날 랑고바르드 왕이 된 튀링겐족 출신의 토리노 공작 아길루프와 결혼했다. 다른 딸은 아우타리와 테오도리다의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의문의 암살을 당한 귀족 안술루스와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