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31 08:50:17

키라 치카사다

1. 개요2. 생애3. 창작물에서

1. 개요

吉良親貞
1541~1576

쵸소카베 쿠니치카의 차남으로, 시코쿠의 패자인 쵸소카베 모토치카의 동생이다.

2. 생애

1541년, 쵸소카베 쿠니치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첫 출진은 형인 모토치카의 첫 전투인 1560년의 모토야마(本山) 가문과의 나가하마 전투였다.

1563년, 형인 모토치카에 의해 토사국의 호족인 키라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가독을 상속받는다.

1568년, 형 모토치카가 토사 통일에 착수하던 시절, 당시 서쪽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때 마침 이치죠 가문의 붕괴 조짐을 눈치채고 모토치카에게 이치죠 가문 토벌을 주장한다. 당시 모토치카는 막 동토사를 토벌한 직후라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치카사다의 설득에 넘어가 결국 군사권을 위임받아 이치죠 가문의 영지인 서부 토사를 침공한다.[1]

1575년, 오토모 소린의 지원을 받은 이치죠 카네사다를 격파한다.이 시만토가와의 전투로 인해 쵸소카베 가문은 토사를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안타깝게도 치카사다는 1년 뒤 36세의 나이로 병사하고 말았다.

치카사다가 살아있었다면, 모토치카의 시코쿠 통일은 5년은 앞당겨 졌을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토사 통일 후, 모토치카는 바로 시코쿠 통일을 위해 아와, 이요 방면으로 동시에 진출을 하려고 했는데, 아와는 셋째 동생인 코소카베 치카야스와 주력한 반면, 이요 방면은 치카사다가 총대장으로 임명 될 예정이였다. 그러나 치카사다가 병사하는 바람에 정발군 자체를 다시 짜야 됐다. 결국 1579년, 히사타케 치카노부가 대신 총대장을 맡으면서 이요 공략을 진행하게 되긴하지만 [2]예정보다 3년 정도 늦어지게 되었고 이마저도 치카노부가 정벌 중에서 전사하면서 흐지부지하게 된다, 게다가 1580년, 오다 노부나가가 제동을 걸면서 아와, 사누키 공략도 늦어지게 되었고, 이후 이요공략은 1584년에 다시 시작된다.

3. 창작물에서

3.1.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

파일:0154.jpg
노부나가의 야망 대지
파일:GTybfv4bEAALkID.jpg
노부나가의 야망 출진

창조에 들어오면서, 시코쿠의 몇없는 관통 보유자가 되었다. 능력치는 떨어지지만, 전법으로 보자면 상당히 유용하다. 아쉬운건 수명. 특히 모토치카의 본격적인 비약 시기인 노부나가 포위망에서는 시코쿠 통일 할 때 자연사한다.


[1] 당시 이치죠 가문은 이요의 사이온지 가문과 전투에서 패해 상황이 안 좋았던데다가 당주였던 이치죠 카네사다 역시 무능해서 가신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다[2] 이 시기엔 아와정벌은 사실상 시간문제여서 사누키 정벌까지 시작하려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