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8 13:45:12

키스 제스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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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연쇄 살인4. 해피 페이스 킬러5. 체포 이후

1. 개요

Keith Hunter Jesperson (1955년 4월 6일~ )
사람이 죽는 데엔 3~4분 정도 걸리더군요. TV에 나오는 것처럼 15초만에 끝나는 게 아닙니다. 그 모습은… 보기 좋지는 않죠. -경찰 심문에서-

1990년대 초중반 미국에서 활동한 캐나다계 미국인 연쇄살인범. 4건의 살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최소 8명을 살해했다고 인정되었으며 여죄가 더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 언론과 검찰에게 자신의 범행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 유명해졌고, 이 편지에 웃는 얼굴(Happy Face)을 그려넣어 '해피 페이스 킬러(Happy Face Killer)'라는 별명이 붙었다. 키 202cm에 몸무게 112Kg의 거구다.

2. 생애

제스퍼슨은 1955년 캐나다 자치령 브리티시컬럼비아칠리웍에서 태어났다. 그가 살던 동네는 완전히 깡촌이었고, 집에서는 여러 가축들을 길렀다. 제스퍼슨은 아버지의 공기총으로 어린 시절부터 동물들을 죽였다.

그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으며 할아버지도 폭력적인 성향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얼버무렸지만, 여러 취재에 의하면 제스퍼슨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허리띠로 심하게 맞는 등 학대를 당했다.

초등학생이 되기 전 그의 가족은 기회를 찾아 미국 워싱턴 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환경에 그다지 익숙해지지 못 했고, 학교에서는 너무 큰 덩치로 인해 놀림을 당했다.

어린 제스퍼슨은 공원을 돌아다니며 길고양이, 비둘기 등을 잡아 죽였다. 그러고는 사람을 죽이는 기분이 어떨지를 상상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폭력성은 이후에도 드러나 10살 때는 사이가 좋지 않던 친구를 심하게 구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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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자녀와 함께한 제스퍼슨.

1973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20세의 나이로 Rose Hucke라는 여성과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중 모르는 여자들의 전화가 자꾸 집에 걸려오자 ROSE가 남편의 부정을 의심하면서 사이가 나빠졌고 별거에 이르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제스퍼슨은 캐나다 왕립기마경찰(RCMP)이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으나 도중에 부상을 입으면서 미국으로 돌아와 원래 하던 직업인 트레일러 물류 트럭 운전기사를 계속 하게 되었다.

1990년, 제스퍼슨은 부인과 법적으로 이혼하게 되자 더욱 내면의 분노를 키웠다. 이 와중 제스퍼슨은 여러 주의 고속도로를 지나는 이 직업이 살인을 저지르고 들키지 않는데 안성맞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3. 연쇄 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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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 베넷.

1. 1990년 1월 21일 밤,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한 술집에서 제스퍼슨은 23세의 타냐 베넷(Taunja Bennett)이라는 여성을 만났다. 제스퍼슨은 그녀가 자신에게 별안간 다가와 포옹을 하자 자신에게 호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는 술집 누구에게나 그렇게 했다고 한다. 베넷은 경도의 발달장애가 있는 여성이었다. 그는 베넷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한 뒤 성폭행하고 목졸라 살해하고선 올드 콜롬비아 리버 고속도로(Old Columbia River Highway) 옆 강변에 시체를 버렸다.

그런데 시체 바지 단추에 자기 지문이 묻었을 것을 염려한 그는 다시 유기 장소로 가 시체의 바지 단추를 뜯어 버렸다. 이후 그녀의 가방과 신분증을 강둑에 버렸다.

시체는 바로 다음날 발견되었다.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동네에 살던 존 소스노브스키(John Sosnovske)라는 알코올 중독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이 소스노브스키를 지목한 이유는 자신보다 스무살 가까이 어린 애인 소스노브스키의 학대에 시달리던 라번 파블리낵(Laverne Pavlinac)이 소스노브스키가 타냐를 죽인 것 같다고 신고했기 때문. 파블리낵은 소스노브스키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가짜 증거까지 만들어 심었고 그 사실이 들통나 궁지에 몰리자 소스노브스키가 베넷을 강간하는 동안 자신이 베넷을 죽였다는 자백을 하고 만다. 그래서 존 소스노브스키와 라번 파블리낵은 강간살인 공모 혐의로 각각 종신형과 10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되었다. 이후 제스퍼슨의 체포가 이루어지고 둘은 석방되었으며 파블리낵은 70살의 나이로 2003년에 사망하였다. 그녀가 왜 허위자백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오랫동안 가정폭력을 당하며 이성적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차라리 감옥에 감으로써 남자친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리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많다.

한편 첫 번째 범죄 행각이 들키지 않자 제스퍼슨은 우쭐해졌다. 마치 자신이 제임스 본드처럼 살인 면허를 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들떴다. 그는 이를 자랑하기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벽에 펜으로 웃는 얼굴을 그려넣은 뒤 '내가 타냐 베넷을 죽였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 놓았다. 그러나 아무도 이 글에 주목하지 않자 그는 심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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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몽타주.

2. 1992년 8월, 제스퍼슨은 캘리포니아 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난 여성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블라이스 시 고속도로 변에 시체를 버렸다. 이 여성의 신원은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는 여성의 이름이 클라우디아(Claudia)라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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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 린 로즈.

3. 같은 해 9월, 그는 캘리포니아 주 터록에서 신시아 린 로즈(Cynthia Lyn Rose)라는 여성을 살해하고 시체를 버렸다. 그는 로즈가 자신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자고 있는 동안 트럭에 몰래 침입한 매춘부라고 주장했다.

파일:Laurie Ann Pentland.png

로리 앤 펠틀랜드.

4. 같은 해 11월, 그는 오레곤주 세일럼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매춘을 하던 로리 앤 펜틀랜드(Laurie Ann Pentland)를 만나 성관계를 가졌다. 그는 펜틀랜드가 화대를 더 받으려고 하자 목졸라 죽인 뒤 시체를 버렸다.

5. 1993년 6월, 그는 캘리포니아 산타넬라에서 또다른 여성을 살해했다. 이 여성 역시 고속도로 변에서 발견되었고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처음에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한 시체로 처리하고 사건을 종결했으나 제스퍼슨이 체포된 이후 자백해 진상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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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퍼슨이 그린 피해자(왼쪽)와 경찰이 두개골로 복원해 재현한 몽타주(오른쪽).

6. 1994년 9월, 그는 플로리다 주 크레스트뷰(Crestview)에서 또다른 여성을 넥타이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제스퍼슨은 그녀의 이름이 Susanne이라고 했다. 이 여성의 신원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7. 1995년 1월, 그는 히치하이커 안젤라 서브라이즈(Angela Subrize)를 트럭에 태웠다. 1주일 후 그는 서브라이즈가 남자친구가 빨리 보고 싶다며 재촉을 하는 것이 짜증나 목졸라 살해하고 잠에 들었다.

그는 3시간 후 깨어나 네브래스카 주로 차를 몰았다. 인적이 드문 휴게소에서 그는 서브라이즈의 시체를 검은 나일론 밧줄로 묶고 트럭 뒤에 고정한 뒤 약 10~12마일을 달려 시체를 아스팔트에 질질 끌어 얼굴을 갈아 버렸다. 그런 다음 묶여 있던 시신을 풀어 와이오밍 주 라러미 카운티 도로변에서 약 75피트 떨어진 도랑에 던졌다. 시체 발견 당시 나일론 밧줄은 여전히 ​​발목에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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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위닝햄.

8. 1995년 3월 10일, 워싱턴 주의 자신의 집에서 그는 사귀던 41세의 줄리 위닝햄(Julie Winningham)을 목졸라 살해한다. 그는 위닝햄이 자신을 돈 때문에 만나고 있다고 생각해 불만을 갖고 있었다. 위닝햄의 시체는 외딴 도로변에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다. 그는 한 차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였는데 딸 멜리사(Melissa)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아침에 집에 찾아와서는 "너한테 말할 게 있는데…먼저 경찰에게 말해야 해"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는 체포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형에게 자신이 8명을 죽였다고 말하는 편지를 보냈다. 3월 20일 그는 체포되었다.

4. 해피 페이스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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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언론에 보낸 편지

1994년, 제스퍼슨은 익명으로 오리건 주 검찰청에 웃는 얼굴을 그려넣은 여러 건의 살인을 자백하는 편지를 보냈다. 검찰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신문사에 동일한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살해 방법이 아주 자세히 적혀 있었다.

경찰은 편지를 쓴 사람이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적었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필체와 우표에 남겨져 있던 DNA를 분석했고 제스퍼슨 체포 이후 그가 이 편지를 쓴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후 신문사에서는 그에게 해피 페이스 킬러(Happy Face Killer)'라는 별명을 붙였다.

5. 체포 이후

위닝햄 살인 혐의로 워싱턴 주에서 재판을 받던 제스퍼슨은 사형을 면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여죄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다. 그러나 당시 사형 제도가 있는 와이오밍 주로 인도될 경우 안젤라 서브라이즈의 살인죄로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형 제도가 있지만 1960년대 초 이후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오리건 주라면[1] 이곳으로 인도되어 타냐 베넷의 살인을 자백한다고 해도 사형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유죄를 인정한다면 사법 거래를 통해 종신형으로 감형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머리를 굴린 제스퍼슨은 제일 먼저 타냐 베넷에 대한 살인사건을 자백한다.

오리건 주 경찰은 이 자백을 반신반의 했지만, 그가 지목한 곳에서 여태껏 찾지 못하던 베넷의 신분증이 발견되자 그가 진범임을 깨달았다.

누명을 쓰고 형을 살고 있던 파브라닉과 소스노브스키는 1995년 11월에야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제스퍼슨은 자신의 범행을 모두 자백하는 조건으로 사형을 면했다. 그는 4회의 연속 종신형을 선고받고 현재도 오리건 주립 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다.

그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그림에 나름대로 재능과 흥미가 있어서 교도소에서 그림을 보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의 그림은 인터넷을 통해 거래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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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그림 앞에 앉아 있는 제스퍼슨.
[1] 부연 설명을 하자면 1995년 당시에는 오리건 주의 사형이 20년 이상 멈춰 있었다. 1997년 한 차례 집행된 이후 오리건 주는 한 번도 사형이 집행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