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0 23:56:26

타카기 하야토



파일:external/www.sanspo.com/gia15040505000006-p1.jpg
타카기 하야토
高木勇人/Hayato Takagi
출생 1989년 7월 13일
미에현 츠 시
국적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체격 178cm/88kg
프로입단 2014년 드래프트 3위
소속팀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5~2017)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018~2019)
레오네스 데 유카탄 (2020)[1]
아길라 데 베라크루즈 (2022)
리엘레로스 데 아과스칼리엔테스 (2022)
브라보스 데 레온 (2022)
카나가와 퓨처 드림스 (2023~) [2]
1. 개요2. 프로 입단 전3. 프로 입단 후
3.1. 2015년3.2. 2016년3.3. 세이부 시절3.4.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clearfix]

1. 개요

일본의 프로야구 선수.

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했고, 미에현 카이세이 고등학교로 진학하여 투수로 나서서 2학년 때 팀을 현 추계대회 우승, 도카이 대회 4강까지 올려놓는 활약을 선보인다.
3학년 때는 여름대회 준결승에서 나카이 다이스케가 속해있던 미에현립 우지야마다상업고등학교에 패배하고 만다.

프로 입단을 위해 드래프트를 신청했지만 어느 구단도 지명하지 않아 사회인야구팀인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에 입단하여 도시대항야구대회에 6차례 출전하는 등, 7년간 활약한다.
최고 153km/h의 빠른 공으로 각 구단 스카우트들이 주목하며 이때문에 매년 드래프트 후보로 거론됐지만 불안한 제구력 탓에 2013년까지 지명 받지 못했으나 2014년에 제구력이 크게 향상되며 10월 23일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3순위로 지명받고 입단하였다.

3. 프로 입단 후

3.1. 2015년

2월 23일에 라쿠텐과의 시범경기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3월 3일, 니혼햄과의 시범경기에선 5회부터 등판하여 3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선보였다.
시범경기에서의 거듭된 호투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선발투수로 기용할 뜻을 보였다.

2015년 3월 29일에 열린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의 개막전 시리즈 3차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하여 6이닝 동안 2실점, 5탈삼진의 호투를 보이며 프로 데뷔 첫 경기를 승리투수로 장식했다. [3]
4월 5일에 펼쳐진 한신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는 데뷔 2경기만에 완봉승을 달성했다.

7월 16일에 2015 WBSC 프리미어 12 1차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시즌 중반까지 5연승을 달리는 활약을 보이며 요코하마야마사키 야스아키와 신인왕 경쟁을 했지만 체력 저하와 신인의 한계에 부딪치며 최종 성적은 26경기 163.2이닝 9승 10패 평균자책점 3.19를 기록했다.

3.2. 2016년

3.3. 세이부 시절

시즌 종료 후 노가미 료마의 FA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2018년부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주로 2군에 있으며 거의 나오지 못하고 2년만에 방출.

3.4. 이후

뜬금없이 멕시칸 리그레오네스 데 유카탄과 계약을 맺으면서 재기를 노린다. [4]

다만 멕시칸리그는 2020시즌이 완전히 취소되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됐다.

결국 2021년에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독립 리그에서 뛴다.

그러다가 2022 시즌 다시 멕시칸 리그로 갔으며, 이번에는 아길라 데 베라크루즈와 계약하였으며, 이후 리엘레로스 데 아과스칼리엔테스브라보스 데 레온 등에서 짧게 뛴 뒤 멕시코를 떠났다.

2023년부터는 일본 독립 리그에서 활동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최고 153km/h(프로 입단 이후 최고구속은 149km/h)에 이르는 움직임 좋은 패스트볼과 슈트, 포크볼, 커브를 구사하며 더불어 하라 감독이 이름붙인 '타카기 볼'이라 불리는 각이 큰 커터가 주무기다.[5]

원래 사회인야구 시절,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했지만 드래프트 전에 열린 도시대항전에서 보인 호투로 요미우리의 야마시타 스카우트부장이 '선발투수와 중간계투, 모두 가능하다'고 호평했다.
[1] COVID-19로 인한 리그 취소[2] 일본 독립 야구 소속[3] 요미우리의 신인투수가 데뷔 첫 등판, 선발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된 것은 1960년 호리우치 리츠오와 아오키 히로아키 이후 55년만에 처음이다.[4] 멕시칸리그는 멕시코의 서머리그로 용병들에게 연봉 10만달러 정도는 주는 곳. 그러나 용병교체가 대만프로야구 이상으로 잦다. 김진우가 선수생활 말년에 멕시칸리그에 진출했으나 두 달 정도 뛰고 퇴출된 경력이 있다.[5] 실제로 타카기 하야토를 상대했던 타자들이 이 커터를 공략하는데 어려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