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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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Tay Bridge disaster1879년 12월 28일 영국 스코틀랜드 던디에서 일어난 다리 붕괴사고.
2. 테이 브리지
테이 브리지는 던디(Dundee)와 파이프(Fife)를 연결하는 다리로, 노스 브리티시 철도 회사(North British Railway)에서 건축가 토마스 바우치(Thomas Bouch)에게 의뢰해 만들었다. 3.2km 길이의 다리엔 선로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양방향으로 통행이 가능했는데, 지날땐 한쪽 신호소에서 바턴을 받고 제한 속도인 시속 40km로 지나간 뒤 다리에 도착하면서 반대편 신호소에 바턴을 넘기는 식으로 열차가 지나는 걸 확인했다. 신호소에선 바턴을 넘기거나 받으면 수기를 작성했고, 다리에 전화선이 설치되어 양측 다리 끝에서 서로 통신이 가능했다.
하지만 짓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 수심 9m 강 밑의 기반암이 예상보다 더 깊이 있어 설계도를 수정해야 했다. 바우치는 원래는 벽돌 + 콘크리트 기둥만 하려 했던 것을 수정해, 먼저 다리와 맞닿는 철기둥을 추가하고, 그 밑에 벽돌 + 콘크리트 기둥을 세웠다. 기둥 높이는 예정보다 더 높아진 26m가 됐다. 다리 중간엔 배가 지나갈 수 있게, 구간을 다른 곳 보다 높인 곳이 있었다.
1878년 5월 31일, 다리가 개통했다. 개통하고 던디와 파이프를 오가는 통행량은 2배로 증가했다. 빅토리아 여왕도 열차를 타고 다리를 건넜다. 1879년, 토마스 바우치는 빅토리아 여왕에게서 기사작위를 수여받았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면서 다리가 너무 불안하다는 의견이 종종 나왔다. 다리에서 일한 페인트칠 인부들도 다리가 흔들린다 증언했다.
3. 사고 내용
사고 당일, 시속 80km의 강풍이 부는 가운데, 오후 7시 13분에 노스 브리티시 철도 소속 열차가 테이 브리지를 지나려 했다. 열차가 지나기 전, 열차가 지나간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신호수가 열차에서 바턴을 받았다. 바턴을 받은 신호수가 수기를 작성하러 가는 찰나, 열차가 지나면서 바퀴에서 불똥이 튀더니 점점 심해졌다. 얼마 안가 다리가 무너졌다. 배가 지나가도록 높게 설치한 구간이 무너졌다.다리가 무너지면서 전화선이 끊어져 연락도 불가능해졌다. 혹시 모를 생존자를 찾으러 강풍에도 불구하고 구조선이 몇대 출동했으나 생존자는 없었다.
사고로 최소 59명이 사망했다. 당시 무임승차가 종종 있어서 사망자는 더 많다는 추측도 있다. 시신 대다수는 바람으로 인해 강해진 강물에 유실되어 수습하지 못했다.
사고 원인은 부실공사였다. 다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안 좋은 재료가 쓰였고, 이 때문에 기둥끼리 길이가 안맞는 경우도 있었다. 기반암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아 공사 도중 기둥이 기우는 바람에 철거하고 다시 세우기도 했다. 거기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 열차가 너무 빠르게 지나는 바람에 진동이 심해졌고, 다리가 버티지 못할 정도까지 일었다.
4. 사고 이후
기관차는 사고 현장에서 인양해서 수리 후 계속해서 쓰였다.5년 뒤 새 다리가 지어졌다. 개통식은 없었다. 새로 지어진 다리는 아직도 정상적으로 남아있어 열차가 드나든다.
2013년,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