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ff00><colcolor=#DA251D,#e72d24> 독립궁 (통일궁) 營獨立(영독립) | Dinh Độc Lập[발음] | |
주소 | 호찌민시 1군 벤응에 동 남키코이기아로 135 |
착공 | 1962년 7월 1일 |
완공 | 1966년 10월 31일 |
국가 | [[베트남 공화국| ]][[틀:국기| ]][[틀:국기| ]]→ [[베트남| ]][[틀:국기| ]][[틀:국기| ]] |
건축가 | 응오비엣투(Ngô Viết Thụ) |
남베트남 시절의 독립궁[2] |
현재의 독립궁 |
1. 개요
1975년 베트남 공화국이 패망하기 전까지 베트남 공화국 총통의 집무실 및 관저로 사용되었던 시설로, 베트남의 남북통일이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남베트남 시절에는 독립궁으로 불렸고, 베트남 통일 이후 한동안 통일궁으로 불리기도 하였으나 현재도 공식 명칭은 독립궁이다.
2. 역사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의 노로돔 궁전 |
남베트남 응오딘지엠 총통 시절 독립궁 |
1962년 쿠데타로 인해 파괴된 독립궁[3] |
독립궁이 있던 자리는 본래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시절 베트남을 식민지로 두고 있던 프랑스에 의해 1868년에 착공하어, 1873년에 완공된 노로돔 궁전이 있던 자리이다. 그 후 이 건물은 코친차이나의 지사(知事) 및 제2차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까지의 코친차이나의 프랑스 총독이 사용하였고, 1955년 베트남 공화국이 성립한 후, 독립궁으로 개명되었다. 이 건물은 응오딘지엠 초대 남베트남 총통이 이용하였다. 그러다가 1962년 응오딘지엠 정권에 대하여 발생한 쿠데타 당시 남베트남 공군 장교가 조종하는 전투기에 폭격을 받아 대파된 후 철거되었다. 응오딘지엠을 이에 새로운 대통령궁을 지으라고 명령했고, 이에 지어진 것이 지금의 독립궁이다. 다만 응오딘지엠 총통은 새로 완공된 독립궁을 보지 못하고 1963년 쿠데타로 피살된다.
1965년 새로운 독립궁을 짓고 있는 모습 |
새로운 독립궁 준공식의 응우옌반티에우 주석[4](왼쪽)과 응우옌까오끼 수상(오른쪽) |
현재의 독립궁 건물을 최초로 사용한 총통(사용을 시작한 당시의 직함은 “국가영도위원회 주석”이다. 1967년 10월 31일에 정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은 응우옌반티에우로, 그 후 도합 3대의 대통령이 이곳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대부분 기간은 응우옌반티에우 총통이 사용하였으며 후임 총통인 쩐반흐엉과 즈엉반민이 사용한 기간은 총 9일밖에 안 된다. 사실상 응우옌반티에우의 궁전이나 다름없던 셈.
1975년 4월 8일에는 북베트남군이 노획한 노스럽 F-5 프리덤 파이터에 의해 폭격을 받았다. 같은 해 4월 30일의 베트남전쟁 종결시에, 사이공 시내에 돌입한 북베트남군의 전차가 당시의 대통령 집무공간이었던 이 건물의 정문을 부수고 돌입하여, 남베트남 즈엉반민 총통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이로써 20여년간의 전쟁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 때의 영상은 “일 개의 국가가 소멸하는 순간”으로서 전세계에 타전되어 유명해졌다. 현재에도 그 당시의 소련제 전차가 부지 내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1976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에 세운 괴뢰정부인 남베트남 공화국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통일된 역사적인 장소이다.
3. 독립궁을 사용한 역대 총통
구 독립궁 (노로돔 궁전)응오딘지엠 (1955년 10월 26일~1962년 2월 8일)[5]
신 독립궁 (현 건물)
응우옌반티에우 (완성 전 - 1975년 4월 21일)
쩐반흐엉 (1975년 4월 21일 ~ 4월 28일)
즈엉반민 (1975년 4월 28일 ~ 4월 30일)[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