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9-23 13:10:40

파리 생제르맹 FC/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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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대 회장3. 창단부터 프랑시스 보렐리까지 (1970~1991)4. 카날 플뤼스와 미셸 드니소 (1991~2011)5. 카타르나세르 알 켈라이피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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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리 생제르맹 FC의 재정에 관한 문서이다.

2. 역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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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 ~ 현재
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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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에티엔 기요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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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 크레센트
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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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파트렐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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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에스떼
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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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보렐리
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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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드니소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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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비에트리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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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페페르
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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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그라이유
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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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블라이오
1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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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카이작
1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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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 타하르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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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빌뇌브
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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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바스티앙 바쟁
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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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르프루
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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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누아 루소
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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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세르 알 켈라이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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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단부터 프랑시스 보렐리까지 (1970~1991)

스포츠구단에게 재정은 중요한 부분이고 PSG의 역사에선 더욱 그렇다. 역사 문단에도 상술해두었듯이 파리 생제르맹은 프랑스 수도빅클럽을 바라던 프랑스 축구인들과 파리 시민 약 2만 명의 서명을 얻어 창단되었는데, 창단 이후 3년 동안은 서명을 한 그 파리 시민 약 2만여 명을 '소시오(Socio)'로 두는 시민구단으로서 운영되어왔다.

다만 서명을 통한 시민구단으로서의 창단이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주요 자금 출처였던 피에르테티엔 기요(이후 1대 회장), 가이 크레센트(이후 2대 회장), 앙리 파트렐(이후 3대 회장) 등으로 구성된 이사진들은 자금조달에 한계를 느꼈고, 이때 도움을 준 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레알 마드리드 회장이었다.##

베르나베우는 파리 시내에 한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시민구단으로서의 창단을 제시했고, 그렇게 실시된 창단(클럽 합병) 서명을 통해 파리 생제르맹 FC가 탄생하였다. 역사 문단에서 설명하는 합병된 클럽 중 '파리 FC'는 파리의 갑부 사업가들이 1969년 창단만 해놓고 사실상 방치하던 클럽이었으며[1], '스타드 생제르맹'은 상술한 '앙리 파트렐'이 당시 회장으로 있던 구단이었다. 그래서 합병에 대한 장애물은 사실상 자금이 가장 컸었는데 베르나베우가 아주 적절한 조언을 해준 것. 또한 그가 제시하여 이루어진 파리 시민들의 서명 및 구단에 대한 재정적 기여는 프랑스 축구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창단된 파리는 3년의 시민구단 시절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신생구단의 한계로 서명 등 거창하게 창단했지만 첫 시즌에 반짝 수익만 생겨났을 뿐 2, 3년차엔 상당한 적자를 보았다. 그래서 당시 3대 회장 앙리 파트렐은 지금의 파리 엠블럼 디자인을 있게 한 파리의 4대 회장, 디자이너 다니엘 에스떼에게 투자를 받고 회장직 또한 넘기게 된다. 다니엘 에스떼는 1974년부터 4년간 지금까지 내려오는 PSG 엠블럼, '에스떼 셔츠'로 불리는 유니폼 디자인과 자금 소방수 등의 여러가지 일들을 했으나, 홈구장 티켓 중복판매 혐의로 1978년 프랑스 축구 연맹으로부터 축구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하게 된다.[2]

에스떼의 사임으로 5대 회장은 다니엘 에스떼가 취임 시 부회장으로 임명한 프란시스 보렐리가 맡게 되었다. 보렐리의 임기 동안 쿠프 드 프랑스 2번, 구단 최초의 리그 1 우승까지 이뤄냈지만 임기 말 보렐리는 에스떼가 선녀로 보일 정도로 더 정신나간 놈이었다. PSG 수뇌부 장악을 위해 PSG 명의로 엄청난 부채를 만드는 것도 모자라 금융 비리까지 저질렀으며, 결국 전임 에스떼와 마찬가지로 이 모든 게 밝혀진 1991년 프랑스 축구 연맹으로부터 PSG 회장직에서 강제 사임당하게 된다.[3]

4. 카날 플뤼스와 미셸 드니소 (1991~2011)

이후 카날+의 인수 및 이 시기 PSG 첫 전성기로 인해 이때의 재정이 부각되지 않았는데, 보렐리 사임 당시 PSG의 상태는 파산 직전이었다. 까놓고 말해서 카날+가 PSG를 구제해준 것과 마찬가지. 프랑스 수도빅클럽을 바라던 창단 때 분위기처럼 카날+리그 1의 발전과 리그 경쟁력 확보를 위해 파리를 연고로 하는 PSG를 선택한 것이었고, 클럽이 가진 모든 부채를 처리해주었다.

마침 딱 좋은 시기였던 게 디지털 전환 전까지 프랑스 방송업계의 안정된 성장기(1990년대~2004년)에 방송사인 카날+가 구단주로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공영방송 4개, 민영방송 3개가 주파수 6개를 나눠쓰던 시절에 시장 선점으로 유료채널임에도 프랑스 1타 방송국이었던 게 카날+다. 스포츠 중계와 영화 방영으로 차별화를 하던 당시 카날+의 정책에 힘입어 이 시기 PSG의 재정 또한 프랑스 구단 중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괜히 파리의 전성기가 아니었던 셈.

그러나 1998년 미셀 데니소트 회장이 사임한 이후 파리의 재정은 다시 어려워진다. 2005년 경 디지털 전환기에 공영방송프랑스 텔레비지옹의 6개보다도 많은 7개의 채널을 확보하게 된 카날+ 자체의 사정도 원인 중 하나로 보는 편. 90년대 후반 프랑스 클럽 중 최고의 자금력을 자랑하던 PSG는 2004~2006년 3년 사이에 반대로 가장 많은 빚을 진 프랑스 클럽이 된다.

구단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들을 여기저기 팔아치우고, 카날+ 또한 여러 금융회사 등에 PSG 지분을 매각하며 롤러코스터라도 탄듯 90년대 후반에 비해 너무 암울한 2000년대 중후반을 보내게 된다. 카날+의 매각 이후 2008년부터 2년간 95%까지 지분을 끌어올린 콜로니 캐피털도 PSG를 축구 구단으로써 진지하게 키울 생각은 없었다. 생각만큼 수익이 안 나오자 2010년 콜로니 캐피털은 곧바로 매각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5. 카타르나세르 알 켈라이피 이후

1998년 카날+가 손을 떼기 시작하던 때부터, 2010년 이 당시까지 클럽 운영 누적 적자는 무려 3억 유로로 추정. 그야말로 20년 전 카날+보다 더 돈 많은 구세주가 필요했던 상황에 창단의 70년, 전성기의 90년대처럼 프랑스 수도의 클럽이라는 메리트를 높게 본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당시 카타르 황태자가 2011년 PSG를 인수하게 된다.

다만 카타르의 이 투자는 파리빅클럽을 원하는 프랑스 축구인들의 그것과는 다른 목적이 있는 듯 보였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 앞서 카타르라는 국가의 축구계에서의 이미지, 월드컵 자체의 홍보, 2019 AFC 아시안컵 아랍에미리트에서도 확인되었던 아랍에미리트와의 스포츠계 파워게임 등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는 분석이 많다. 애초에 구단 인수 6개월 전부터 비리 의혹은 있었다. 개최지 투표 직전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과 카타르의 국왕, 총리가 회동을 가진 것부터 수상쩍었다.

하지만 PSG라는 구단 입장에선 600억 달러(당시 약 510억 유로) 상당의 투자가 가능해진 시점에서 3억 유로의 손실액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각잡고 돈을 풀기 시작했는데 카타르 자본 투입 전 클럽 레코드는 2000년 33m 유로의 니콜라 아넬카였으나, 이후 하비에르 파스토레 45m을 시작으로 43m 치아구 시우바, 19m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50m 다비드 루이스, 62m 앙헬 디마리아, 64m의 에딘손 카바니, 180m의 킬리안 음바페, 222m의 네이마르 주니오르 등 폭풍영입을 보여주며, 맨체스터 시티 FC와 함께 유럽에 단 둘뿐인 국영 클럽으로서의 씀씀이를 보여주었다.

당연히 뒤탈이 없지는 않았고 2012년, 2017년 두 차례의 UEFA 조사와 UEFA FFP 룰 준수를 위해 음바페, 네이마르 이후로는 이렇다할 빅 사이닝은 없었으며 클럽 가치는 폭발하듯 올랐어도 2017-18 시즌 이후 2~3년 정도 순이익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그 세기의 영입 이후 PSG는 유럽의 확실한 상위 클럽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고, PSG 프로젝트는 축구 클럽을 넘어 다른 수익창출 모델 또한 만들기 시작하였다.

사실 네이마르 영입 후 PSG의 재정관리 전략은 구단의 자체 수익만큼만 지출하는 것이라는 게 팬들 사이의 보편적인 인식이다. 카타르 자본은 PSG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작정 돈을 푼 적이 없기도 했고. 실제로 2019년엔 카타르 자본 인수 후 최초로 이적시장에서 흑자를 기록했다. 수익 110m, 지출 95m. 아무튼 2010년대 후반 들어서 다수의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등 PSG의 의류계 브랜드화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며, 그 외 시티 풋볼 아카데미의 프랑스판인 '파리 생제르맹 아카데미'나 부회장 장클로드 블랑이 맡은 파르크 데 프랭스 재개발 등 축구는 물론이고 축구 관련 분야, 또는 그 외의 영역에까지 PSG는 점점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카타르 자본 인수 후 PSG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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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순이익(€) 총수입(€) 클럽 가치($) 참고
2011-12 <colcolor=#f00> - 5m 221m - ##
2012-13 - 4m 399m -
2013-14 - 0.3m 474m 415m ##
2014-15 + 11m 481m 634m ##
2015-16 + 10m 521m 814m ##
2016-17 - 19m 486m 841m ##
2017-18 32m 542m 971m ##
2018-19 27m 636m 1.1b ##
2019-20 - 124m 541m 2.5b ##
2020-21 - 224m 556m ##
2021-22
20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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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자본 인수 후 PSG 이적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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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수익(€) 지출(€) 합계(€) 참고
2011-12 9.4m 107.1m <colcolor=#f00> - 97.7m ##
2012-13 4.75m 151m - 149.25m
2013-14 26.5m 135.9m - 109.4m
2014-15 2.2m 49.5m - 47.3m
2015-16 22.9m 116.1m - 93.2m
2016-17 59.8m 134.5m - 74.7m
2017-18 98.4m 238m - 139.6m
2018-19 114m 227m - 113m
2019-20 105.9m 95m + 10.9m ##
2020-21 5.4m 62.5m - 57.1m ##
2021-22 9m 83m - 74m ##
2022-23
}}}}}}}}}}}}}}}}}} ||

[1] 재분할 후 1974년 강등당할 정도의 성적 부진도 운영 소홀이 원인.[2] ## 다만 의류사업은 꽤나 성공하여 지금도 유럽의 중가 브랜드로 남아있다.[3] 하지만 에스떼처럼 축구 관련 비리는 안 저질러서 축구계 완전 퇴출까진 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