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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올로 말디니의 국가대표 경력을 정리한 문서.
국대에선 매우 뛰어난 활약을 했음에도 클럽과는 다르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말디니는 4번의 월드컵[1]와 3번의 유로[2]에 출전했는데,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선 3위,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선 승부차기 끝에 준우승, 이어 UEFA 유로 2000 결승전에서도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통한의 골든 골을 먹고 준우승에 그쳤다.[3] 따라서 국대에서는 무관의 제왕.
2. 데뷔
일단 국가대표 데뷔는 1988년 이었는데 확실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 답게, 1988년에 데뷔하자마자 그해 유로와 올림픽에 참가한다. 유로 4강, 올림픽 4위로 그 한해를 마무리 한다. 특히 이제 막 국가대표에 데뷔한 선수로서 UEFA 유로 1988 베스트 11에 선정되면서 이미 완성된 슈퍼 수비수임을 보여줬다.2.1.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는데 당시 개최국 이탈리아는 말디니-바레시-페리-베르고미[4]로 이어지는 월드컵 단일 대회 역사상 최강의 수비 라인과 골키퍼 발테르 쳉가가 버티고 있었고, 살바토레 스킬라치의 뜬금포 활약으로 이탈리아는 강력한 모습을 보이며, 월드컵 단일 대회 최장 시간 무실점 기록을 이어갔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와의 4강전에서 클라우디오 카니자에게 동점골을 허용해, 무실점 기록은 517분으로 막을 내렸고, 승부차기 끝에 패해 결승 진출이 좌절된다. 이후 3·4위 전에서 잉글랜드를 이기고 대회 3위를 차지했다.2.2. 1994 FIFA 월드컵 미국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는 조별예선으로 부상 아웃된 프랑코 바레시 대신, 4강전까지 임시 주장을 맡았는데, 말디니를 앞세운 강력한 수비진[5]과 로베르토 바조의 대활약으로 이탈리아는 결승전에 진출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브라질과의 혈전 끝에 바조의 실축으로 승부차기 패배로 준우승에 그쳤다... 그래도 말디니 본인은 대회내내 좋은 활약을 펼쳐 1994년 발롱도르 3위,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1위를 차지한다.2.3.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1996에서는 바레시의 은퇴, 그리고 바조는 아리고 사키와의 불화로 국대에서 탈락했으며 아주리 자체의 경기력이 내려온 상황이었고, 결과도 조별예선 탈락이었다. 그랬는데도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2.4.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의 말디니는 여전히 훌륭했으나, 아쉽게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와의 치열한 중원다툼, 수비싸움에서 아주리와 레블뢰는 승부의 결말을 짓지 못했고, 결국 승부차기로 프랑스가 4강을 올라간다. 이때를 기점으로 말디니의 후배 세대에서 리자라쥐, 카를로스같은 역사에 남을 왼쪽 수비수들이 등장했다.2.5. UEFA 유로 2000
UEFA 유로 2000에서 아주리의 스쿼드와 디노 조프 감독의 전술이 맞아 떨어지면서 아주리는 승승장구했다. 부폰과 비에리가 부상으로 아웃되긴 했지만, 델피에로와 인자기, 토티 등이 있었고, 알베르티니, 디 비아조, 피오레, 콘테 등등 미들진도 훌륭했다. 당시 디노 조프 감독은 율리아노-네스타-칸나바로로 3백을 형성한 후에 말디니와 잠브로타를 윙백, 나아가서 측면 미드필더로 썼는데, 베테랑과 중진 그리고 신예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강력한 모습으로 4강까지 진출했다.4강전 개최국 네덜란드와의 경기는 그 재밌다는 유로 2000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명경기인데, 잠브로타가 경기 시작한지 극초반에 퇴장하면서 아주리의 수비라인은 즉각적으로 말디니-네스타-율리아노-칸나바로 포백으로 변환, 알베르티니와 디 비아조도 중원 싸움보다는 수비에 집중하게 된다.[6][7] 여기서 말디니는 네덜란드의 오베르마스, 또 젠덴과 공방을 저지했다. 당시 말그대로 절정의 스쿼드를 가지고 있었던 네덜란드였기 때문에 아주리는 말그대로 막는 것에 총력을 했는데, 여기서 말디니는 세도로프의 슈팅 타이밍을 잠시 놓치자 손을 내리고[8] 말그대로 몸을 던진다. 그야말로 말디니 수비의 처절한 명장면.[9] 경기는 대혈전 끝에 아주리의 극적인 승부차기 승리였다.
그리고 대망의 결승에서 왕조를 이루려하는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말디니는 앙리를 완전히 억제하면서 왼쪽을 장악했지만, 결국 델피에로의 삽질로 인한 통한의 역전패로 준우승의 분루를 다시 한 번 삼키게 된다. 물론 이 대회에서 말디니의 역량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에 당연히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된다.
2.6.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의 축구 경력 최초로 장기 부상을 끊으면서, 정말 아슬아슬하게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평상시 보다 떨어진 경기력도 있었고, 지역예선에서 3백을 쓰면서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승장구했던 조반니 트라파토니가 갑자기 본 대회에서에서는 4백으로 포메이션을 전환하면서 아주리의 플레이 자체가 불협화음이 심했다. 거기다 네스타의 부상 아웃, 칸나바로의 경고 누적 등 악재가 겹치면서 16강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울며 겨자 먹기로 말디니를 센터백으로 기용했는데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갔으나, 후반 종료 직전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연장 후반 말디니는 안정환의 헤더를 제대로 커버 못하면서 부폰이 골든 골을 허용하여 결국 패하고 만다. 참고로 말디니가 국가 대항전이나 국제 메이저 대회에서 커맨더 센터백으로 선 경기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10]더군다나 이 경기에서 이천수의 오른발에 뒤통수를 까이기도 했다.[11] 그래서 그런지 2002년 월드컵은 안 좋은 기억 밖에 없는 생애 최악의 대회라고 한다.
3. 이후
마르첼로 리피는 파올로 말디니에게 2006년 월드컵을 함께 하자는 제의를 했고, 그 전에는 트라파토니가 말디니에게 2004년 유로 대회를 같이 하자고 제의를 했지만, 말디니는 두 제의 모두 거절.그러나, 이탈리아는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더군다나 이 때 말디니는 충분히 주전으로 뛸만한 기량이었다.
4. 은퇴
말디니가 은퇴한 직후 2010년 초에 마르첼로 리피는 이탈리아 축구 연맹 측에 요청하여 이탈리아 vs 북아일랜드 경기를 말디니의 국대 마지막 경기로 정하려고 했지만, 이 역시 거절되었다.다만 2009년 4월 선수 은퇴 직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만약 내게 단 한 경기만 더 치를 수 있다면, 한국과 경기하고 싶다. 내 마지막 국가대표 경력이었던 2002년 월드컵에서 나온 안정환의 골든골을 잊을 수 없다” 라며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이 한으로 남아있다는 걸 표현했다.
그리고 실제로 2023년, 대한민국 고양에서 한국, 이탈리아, 브라질 대표팀 레전드 매치가 기획되었고 출전선수 명단에 3개국의 2002년 월드컵 멤버 다수가 포함되어 있어서 말디니 본인의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주최 측 사정으로 아쉽게 취소되었다.
[1] 1990, 1994, 1998, 2002[2] 1988, 1996, 2000[3] 트레제게는 이때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해온다.[4] 페리와 베르고미는 유기적인 포지션 체인징을 보여주었다. 일단은 페리는 센터백.[5] 베레시의 부상과 타소티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루이스 엔리케의 코뼈를 부러뜨리면서 대회 아웃이 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주리 수비라인 포메이션은 정말 유동적으로 바뀌었었는데, 말디니는 이 대회에서 왼쪽 풀백, 왼쪽 윙백, 왼쪽 센터백, 즉 왼쪽 수비에 관한 모든 보직을 다 맡았다. 말디니의 수비능력을 압축해서 보고 싶다면, 94년 월드컵을 추천한다. 의도적으로 포메이션 체인징이 있었던 90년 대회에 비해서 말 그대로 부상과 퇴장에 따른 임기응변이 필요했던 대회였기 때문에 그의 수비능력이 더더욱 빛을 발했다. 그리고 대회 내내 포지션 변화에 따른 말디니의 수비 스타일 변화를 볼 수 있다.[6] 이때 조프는 공격을 말그대로 알아서 하게 냅뒀다. 피오레나 델피에로 같은 흔들기 명인들이나 인자기 같은 한방이 있는 선수들의 자율적인 플레이를 디노 조프 답지 않게 용인했는데, 특히 델피에로 같은 경우는 드리블만으로도 네덜란드를 압박하는 장면을 꽤나 만들었다. 이후 후반에 교체로 투입된 토티도 특유의 배짱과 다이나믹함으로 네덜란드의 파상공세를 저지하는 역할을 했고, 역시 교체 투입된 델 베키오도 높이로 네덜란드 수비진을 압박했다.[7] 수비 포메이션은 이후 페소토가 알베르티니와 교체되면서 3백에 2명의 윙백을 쓰는게 아니라 철저히 수비를 염두에 둔 5백으로 전환된다.[8] 핸드볼 파울을 피하기 위해서[9] 아쉽게도 한국에서 돌아다니는 영상에서는 이 부분이 짤려있다.[10] 보통 말디니가 센터백에서 뛸때는 전문 센터백인 파트너의 커맨드를 받으며 보조를 맞췄다. 바레시, 코스타쿠르타, 네스타 등.[11] 이천수가 JTBC 뉴스룸이나 예능에서 밝힌 바로는 이탈리아측의 공격적인 반칙 때문에 열이 오르자 '눈 앞에 보이는 선수 아무나 걷어차야겠다'고 생각했고 실행했다고. 다만 누군지 제대로 확인은 못했는데 까고보니 말디니였던 거라고...[12] 10수년이 지나 이제 심판 자격증을 따게 된 이천수가 본인의 유튜브에서 반칙장면들을 보면서 말디니의 뒤통수를 차는 장면이 나오자, 이천수는 당시 대표팀이 처음으로 16강에 올랐는데, 자신도 대표팀에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앞서서 이런 실례를 범했다면서 말디니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같이 이천수의 반칙 퍼레이드를 보던 윤보희 심판은 이건 당연히 퇴장감이지만, 경기 흐름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만약 본인이 주심이었더라도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13] 이미 최장 시간 출전 기록자였다.[14] 해당 두 기록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에서 리오넬 메시가 모두 경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