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前 축구선수 | ||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 파울루 주니오르 Paulo Junior | |
본명 | 파울루 호베르투 모라이스 주니오르 Paulo Roberto Morais Junior | |
K리그 등록명 | 빠울로 | |
출생 | 1984년 2월 25일 | |
히우그란지두노르치주 나타우 | ||
사망 | 2018년 2월 2일 (향년 33세) | |
국적 | [[브라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184cm | |
포지션 | 스트라이커 | |
소속 | 유스 | ACD 포티구아르 |
선수 | 바라우나스 (2004) ABC FC (2005) 바라우나스 (2005) CO 생-디지에 (2005~2006) 미네이루스 EC (2007) 포티구아르 (2007) 알 우루바 (2007~2009) 디바 알 푸자이라 (2009~2010) 알 타이드 SC (2011) ACEC 바라우나스 (2011) 디바 알 푸자이라 (2011~2012)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2) 푸자이라 SC (2012~2013) 알 나흐다 (2013) 알 히드 (2014) 캄피넨시 클루비 (2014~2015) 아메리카 지 나타우 (2015) 사우게이루 AC (20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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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질의 前 축구선수로 현역 시절 스트라이커 포지션을 소화했다.2. 경력
2.1. K리그 입성 이전
빠울로는 다양한 리그의 팀들을 거치면서 서서히 경력을 쌓아나간 선수였다. 그는 브라질 리그에서 커리어를 시작했고, 이후 프랑스로 진출하기도 했으며, 2007년에는 커리어 내내 그가 주로 활약한 무대로 자리잡는 중동 리그로의 진출을 이루었다. 2009년에 빠울로는 UAE 2부리그의 득점왕을 차지했고, 2011년에는 소속팀의 리그 준우승에 기여하는 등 나름의 활약을 펼쳤다.2.2.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2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인천은 페르지난두 레다를 떠나 보내면서 외국인을 추가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천은 이보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한 네이선 번스를 제외하면 두 자리를 더 외국인 영입에 사용할 수 있었고, 그렇게 선택한 선수가 바로 빠울로와 소콜 치칼레시, 두 공격수였다. 소콜에 비해 빠울로는 사실 경력이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던지라 큰 기대감이 있는 영입은 아니었다. 그러나, 빠울로는 데뷔전 단 한 경기로 깊은 임팩트를 남긴다.
2012년 7월 15일에 인천은 FC 서울과 경인 더비를 치르고 있었다. 이 경기는 이후로도 자주 회자되는 명경기로 남았다. 인천은 김진규의 프리킥에 먼저 실점을 했지만, 한교원이 비가 내리는 경기장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역전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대성이 다시 경기를 원점으로 만드는 득점에 성공하며 경기는 알 수 없게 흘러갔다. 그 와중에 빠울로는 교체 투입을 통해 데뷔했다. 그리고 후반 46분, 남준재가 크로스를 올린 것을 빠울로가 헤딩으로 연결해 득점에 성공했다. 빠울로의 골은 그대로 결승 골이 되었고, 인천은 극적으로 강적 서울을 쓰러뜨렸고, 다음 날 김봉길 감독 대행은 정식 감독으로 임명되는 등, 단 한 골로, 인천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만큼 의미있는 경기였고, 의미있는 득점이었다.
아쉽게도 빠울로의 활약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후로는 경기장에 나와서 인상깊은 플레이를 보이지 못했고, 소콜이 부상에서 돌아와 기용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입지가 애매해졌다. 그리고 공격수로 경쟁자는 설기현도 있었으나 빠울로에게는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렇게 시즌이 종료된 후, 빠울로는 인천을 떠나게 되었고 인천은 새롭게 디오고 아코스타, 티아구 엘리아스를 영입하며 이보, 빠울로, 소콜의 공백을 메웠다. 빠울로의 인천 경력은 비록 전체적으로는 실패였으나, 그의 한 차례의 멋진 활약은 인천 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장면이었고, 그래서 인천 팬들에게는 호감으로 남으며 팀을 떠났다.
3. 그의 활약상
3.1. 인천을 떠난 이후, 빠울로에게 찾아 온 재앙
빠울로는 인천을 떠나서 다시 중동 리그를 경험한 뒤, 브라질로 복귀하게 된다. 이 때까지는 아직 현역으로 몇 년은 더 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빠울로는 백혈병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2015년, 빠울로는 축구 생활을 접고 긴 투병 생활을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큰 위기가 왔고, 죽을 고비도 있었으나 빠울로는 견뎌내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몸 상태로 돌아왔으며, 축구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은 그는 2017년에 에이전트 사업까지 시작했다. 2017년에는 인천 유나이티드 기자단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근황을 알리고, 그 시절을 잊지 않았으며, 현재까지 남은 동료 이윤표와 최종환도 잘 기억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언젠가 인천이 우승하기를 바라고, 꼭 한 번 찾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그의 바람을 결국 이루지 못했다.
4. 사망
2018년 2월 2일, 빠울로는 결국 다시 쓰러졌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아직은 젊은 나이였고, 에이전트 업무를 통해 축구계에 돌아온지 얼마 안 된 시점이라 그 안타까움은 더 컸다. #5. 플레이 스타일
기술적인 면에서는 기대 이상이라는 평을 들었다. 다만 인천에서 뛸 당시에 체중이 상당히 불어 있었고, 그래서 동작이 둔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포지션의 영향인지 수비 가담도 적었던 편.6. 여담
- 생전에 SNS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면 다 대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때 선수 개인의 홈페이지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