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1 20:05:05

파울리나 루비오


파일:attachment/paulina_rubio_perfil.jpg
이름 파울리나 루비오
Paulina Rubio
본명 파울리나 수사나 루비오 룰
Paulina Susana Rubio Rul
별명 금빛 소녀 (La chica dorada)
라틴 팝의 여왕 (La reina del pop latin)
출생 1971년 6월 17일, 멕시코 시티
국적
[[멕시코|]][[틀:국기|]][[틀:국기|]] |
[[스페인|]][[틀:국기|]][[틀:국기|]]
데뷔 1992년 1집 앨범
'La chica dorada'[1]
레이블 EMI Music (1992 ~ 1997)
유니버설 뮤직 그룹 (2000 ~ 현재)
Sony/ATV Music Publishing (2009)[2]
공식사이트
페이스북
트위터

1. 개요2. 가족3. 생애
3.1. 유년 시절3.2. 팀비리체 (Timbiriche) 멤버3.3. 1992 ~ 1994년 : 황금의 해3.4. 1995 ~ 1997년 : 중남미에서 더 강해지다3.5. 2000 ~ 2003년 : 유니버설 뮤직, 세계로의 진출과 세계 음반 시장에서의 성공3.6. 2004 ~ 2007년 : 이베로아메리카 권역으로의 확산3.7. 2009 ~ 2010년 : 라틴 팝의 강화3.8. 2011 ~ 2013년 : 솔로 20주년과 평가원으로서의 생활3.9. 2014년 ~ 현재 : 가수로의 복귀
4. 앨범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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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멕시코의 가수, 음악 프로듀서, 방송인, 배우, 모델이자 기업인.

2. 가족

스페인 변호사인 아버지 엔리케 루비오 곤살레스 (Enrique Rubio González, 1943 ~ 2011)와 여배우인 어머니 수사나 도사만테스 (Susana Dosamantes Rul Riestra) 사이에서 태어났다. 형제로는 기업인인 엔리케 루비오 (Enrique Rubio)가 있다. 2007년 스페인 기업가인 니콜라스 바예호-나헤라 (Nicolás Vallejo-Nágera)와 백년가약을 맺었고 슬하에 안드레아 니콜라스 바예호 루비오 (Andrea Nicolás Vallejo Rubio)를 두었으나 2012년에 이혼하였다.

3. 생애

3.1. 유년 시절

여배우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므로 자연히 예능에 관한 교육을 받았으며, 4살 때 파울리나는 예술교육센터 (Centro de Educación Artística, CEA)에서 노래, 연기, 재즈, 그림그리기와 춤 교육을 받았다. 1983년에 멕시코 영화 대부의 날 (El Día Del Compadre)에 아역배우로 출연하였으며, 이후 부모님의 허락 없이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3.2. 팀비리체 (Timbiriche) 멤버

그는 1981년 팀비리체 창립 멤버로 활동을 시작[3]하며 음악계에 입문하였다. 팀베리체는 멕시코의 1980년대를 뒤흔들 정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여기에는 현재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탈리아 (Thalía)도 있었다. 팀비리체 멤버로 생활하는 동안 10개가 넘는 앨범을 제작하였으며, 1991년에 솔로 활동을 결심하고 탈퇴하였다.

3.3. 1992 ~ 1994년 : 황금의 해

1991년 팀비리체에서 탈퇴한 파울리나는 1992년 8월 12일 멕시코 시티에서[4] EMI 뮤직을 통해 미오 (Mío, 내 꺼)를 발표하면서 솔로로 데뷔하였으며, 동년 10월 20일 이 곡을 포함하여 첫 앨범인 라 치카 도라다 (La chica dorada, 금빛 소녀)를 발표하였다. 미오는 멕시코 차트 1위를 탈환할 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으며, 미국에서도 3위를 차지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연말에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1993년 기준으로 70만 장의 앨범이 팔렸다.

이 인기를 바탕으로 1993년 11월 16일에 24 킬라테스 (24 kilates[5], 24K)를 발표하였고, 이 음반 역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바탕으로 파울리나는 1994년에 24-K 투어 (24-K Tour)라는 이름으로 중남미 일대를 돌아다녔다.

3.4. 1995 ~ 1997년 : 중남미에서 더 강해지다

데뷔 이후 발표된 두 앨범의 큰 성공으로 인해 파울리나는 스페인어권 전체에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코미디 프로그램 베사메 엔 라 보카 (Bésame En La Boca, 내 입에 뽀뽀해달라) 제작을 마친 그는 1994년 가을과 겨울동안 새 앨범 제작에 들어갔으며, 1995년 3월 25일에 엘 티엠포 에스 오로 (El tiempo es oro, 시간은 금이다.) 앨범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곧바로 큰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동년에는 텔레노벨라인 포브레 니냐 리카 (Pobre niña rica) 촬영을 하였으며, 1996년에는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6]로 건너가서 지역 축제에서 공연을 하였다. 동년 9월 3일에는 EMI 뮤직에서의 마지막 앨범인 플라네타 파울리나 (Planeta Paulina, 파울리나 행성)를 발매하였으며, 16개의 북미, 중남미, 유럽 버전으로 발매되었다.

3.5. 2000 ~ 2003년 : 유니버설 뮤직, 세계로의 진출과 세계 음반 시장에서의 성공

2000년 들어 파울리나는 솔로 앨범 로 아레 포르 티 (Lo Haré Por Ti, 너를 위해 그것을 하겠다.)를 발매하면서 발매사를 유니버설 뮤직으로 변경하였고, 이것이 2015년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동년 4월 16일에는 파울리나 (Paulina)를 발매하였고, 2002년 6월 17일에는 보더 걸 (Border Girl)을 발매하였다. 이 사이 솔로앨범 발매도 이루어져서 그의 노래는 항상 라틴 팝 차트 1위를 석권하였다.

3.6. 2004 ~ 2007년 : 이베로아메리카 권역으로의 확산

2004년 2월 10일에는 파우-라티나 (Pau-latina) 앨범을 발매하였으며, 2006년 9월 19일에는 아난다 (Ananda)를 발매하였다. 2008년에는 라 오레하 데 반 고흐의 전 보컬인 아마이아 몬테로 (Amaia Montero)가 탈퇴하자 파울리나 루비오가 새 보컬로 가는 게 아닌가 하는 루머가 돌았으나, 스페인 밴드 관계자에 의해 부인되었다.

3.7. 2009 ~ 2010년 : 라틴 팝의 강화

2009년 6월 23일 그란 시티 폽 (Gran City Pop)을 발매하였다.

3.8. 2011 ~ 2013년 : 솔로 20주년과 평가원으로서의 생활

그의 부친인 엔리케 루비오 곤살레스 (Enrique Rubio González)가 2011년 1월 11일 향년 67세로 별세했다. 슬픔으로 가득찼음에도 불구하고 파울리나는 반다 그룹인 로스 티그레스 델 노르테 (Los Tigres del Norte)와 골페스 엔 엘 코라손 (Golpes En El Corazón) 곡에 관한 피쳐링을 진행하여 발매하였으며, 한 달도 안돼 그 노래는 Ranking Oficial del Monitor Latino 차트의 상위권을 이끌었다. 이후 레이디 가가, 제니퍼 로페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와 협업을 하기도 하였다.

2010년에는 트위터 계정을 개설하였으며, 2012년 멕시코 잡지 『레비스타 포르베스 (Revista Forbes)』에서는 멕시코의 영향력이 강한 여성 50명 (Las 50 mujeres más poderosas de México)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3.9. 2014년 ~ 현재 : 가수로의 복귀

2015년 2월 17일 솔로 앨범인 미 누에보 비시오 (Mi nuevo vicio, 나의 새로운 나쁜 습관)을 발매하였다. 2015년 4월 현재 멕시코의 웬만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이 노래를 1 ~ 2시간에 한 번 꼴로 내보내고 있다.

4. 앨범 목록

  • 1992 : La chica dorada
  • 1993 : 24 kilates
  • 1995 : El tiempo es oro
  • 1996 : Planeta Paulina
  • 2000 : Paulina
  • 2002 : Border Girl
  • 2004 : Pau-latina
  • 2006 : Ananda
  • 2009 : Gran City Pop
  • 2011 : Brava!

[1] 팀비리체 (Timbiriche) 그룹에서 활동한 기간은 제외.[2] 출처[3] 정식 데뷔는 1982년에 하였다.[4] 단, 녹음은 스페인에서 이루어졌다.[5] 원래 스페인어로 quilate인데, 철자를 바꾼 것이다.[6] 테네리페 참사가 났던 그 지역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