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20:15:57

퍼커션 캡

<colbgcolor=#55678d,#7183aa> 근대 총기 발전사
장전 방식 전장식 후미장전식
격발 방식 매치락 휠락 플린트락 퍼커션 캡 탄피
강선 유무 머스킷 소총(라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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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ussion Cap

1. 개요2. 상세

1. 개요



미국 남북전쟁 때의 퍼커션 캡.

기본적인 구조는 플린트락과 거의 같으나 부싯돌과 화약 접시 대신에 단순한 공이와 뇌홍을 담고 있는 작은 금속제(주로 구리) 캡인 퍼커션 캡으로 구성된 발화장치로 되어 있다. 약실로 이어지는 꼭지[1]에 캡을 씌우고 방아쇠를 당기면 공이가 캡을 때리면서 예민한 뇌홍을 격발시키고, 뇌홍의 불꽃이 약실의 장약을 발화시켜 발사된다. 물론 이 캡은 일회용이므로 총알 개수만큼 갖고 다녀야 한다. 어쨌든 이렇게 인류는 최초의 뇌관을 가지게 되었다.

훗날 이 캡은 탄피로 변형되어 총알과 결합하게 된다.

조선에서는 동화모(銅火帽)라고 부르며 청나라에서 수입하다 1880년대에 국산화를 지시하였다.

2. 상세

퍼커션 캡 격발 방식은 영국의 화학자였던 에드워드 찰스 하워드(1774~1816)가 1800년에 개발한 것이 시초이다. 그리고 몇년 후,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셔, 벨헬비에 있는 교회의 목사 겸 발명가였던 알렉산더 존 포사이스(Alexander John Forsyth 1768~1843)가 1807년에 찰스 하워드가 만든 격발 방식을 좀 더 다듬은 후 개발을 완료했다. 포사이스는 평소 새 사냥을 즐겼는데 기존 플린트락 방식의 총은 구조상 방아쇠를 당기면 우선 부싯돌이 화약 접시의 점화용 화약에 불을 붙이는지라 발사까지의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다. 때문에 새가 부싯돌 소리만 듣고 날아가버리고는 해서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발사되는 총을 만들기 위해 퍼커션 캡을 개발했다.

매치락 시대부터 근 4백년을 이어져 온 화약 접시가 대부분 사라지면서[2] 장전 속도도 더 빨라졌고, 바람 불고 비오는 날에도 장약만 젖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발사할 수 있다는 부가 효과도 얻게 되었다.[3] 격발부가 밀폐된 덕분에 탄속이 상승하는 개선점도 가져왔다. 여기에 더해서 불발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아주 좋은 결과도 가져왔다. 이는 새 사냥 등의 취미나 생활용으로도 매우 큰 차이며, 군용 무기로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변화였다.

그러나 이렇게 퍼커션 캡이 개발된 지 한참 후인 1842년에 이르러서야 영국군브라운 베스의 개량형에 이 방식을 채택하였고 그 이후에야 세계적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4] 이렇게 채택이 늦어진 것은 포사이스의 특허권이 소멸될 때까지 채용을 늦췄기 때문이다.[5]

기존의 전장식 총기에 간단한 개조만 가하면 퍼커션 캡을 사용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남북전쟁 등 주요 19세기 전투에 모두 이 방식의 머스킷과 소총이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초기형 리볼버 또한 이 방식을 사용했다. 실린더에 각각 흑색화약과 탄환을 넣고 총에 달린 램로드로 꽉 눌러준 후 실린더 뒷부분에 일일이 캡을 달아 점화시키는 방식이다. 비단 콜트 리볼버뿐 아니라 레밍턴제 리볼버, 스타 리볼버, 애덤스 리볼버 등 당대 리볼버가 전부 다 그랬다.[6] 한국의 경우에는 1860~70년대 이래로 일본 등지에서 직수입되어 기존의 화승총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으며, 구한말 의병들 중 일부가 외국으로부터 사들이거나 직접 대장간에서 제조하는 식으로 퍼커션 캡 작동 방식의 조총이나 권총을 만들기도 했다.

후에 이 퍼커션 캡의 구조를 간략화하여 뇌홍 캡과 화약, 총알을 일체형으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곧 탄피의 탄생이 되었다. 이후 앞서 언급된 많은 전장식 총들이 탄피식으로 개조되기도 했다.[7] 그래도 탄약의 등장 후 바로 사라지지 않고, 초기의 핀파이어 탄약, 림파이어 탄약들이 여러 문제점을 보유해 센터파이어 탄약이 나오고 대중화가 될 때까지 페이퍼 카트리지와 함께 계속 쓰였다.

70년대부터 국내에 판매하기 시작한 장난감 화약총의 경우, 격발 장치와 이 퍼커션 캡만 있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단발과 6연발, 8연발이 있었으나 90년대 들어 안전 문제나 민원, 사고가 일어나며 화약을 이용한 장난감 제조가 어려워지고 사실상 시중에서 사라졌다.[8]


1967년작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 “황야의 분노”(Day of Anger, I giorni dell'ira, 1967)에서 리 밴 클리프(프랭크 탤비 역)의 마상결투씬에서 장전하는 모습이 리얼하게 나온다.(0:00 ~ 1:08 구간) 당시에도 이미 구식이었던 소총을 말 위에서 소지한 상태에서 먼저 장전하고 발사하여 상대를 절명케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설정.[9] [10]

20세기 이후에는 실전에서 사장된 지 오래로 알려져 있으나,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미얀마 반군과 시민군이 사용하는 게 확인되었다.#


[1] 조금 속된말로 젖꼭지 노출형이라고 한다.[2] 구조가 비슷한 기존의 매치락 등을 개조해서 만든 경우 화약접시가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3] 화약을 가지고 다니거나 장전하는 동안 화약이 젖어서 비오는 날에 사격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웠다. 비오는 날에도 문제없이 사격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현대적인 금속탄피가 등장한 이후의 일이다.[4] 1833년 미 육군이 Hall 라이플을 개량하면서 대량 사용하기도 했고, 애초에 사냥용 샷건을 만들기 위해 제작을 시작했기에 스포츠나, 사냥, 호신용 데린저 등에서는 1842년 이전에도 사용되고 있었다.[5] 비용 문제도 있다. 부싯돌 하나로 수십에서 수백발을 쏠 수 있는 플린트록이나 화승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매치락과는 달리, 퍼커션 캡은 1회용에다가 화학 지식 및 산업 인프라가 없으면 양산이 어렵다. 그래서 퍼커션 캡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는 사회에서는 한동안 계속 이전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6] 가끔 서부극에서 뇌관식 모델 리볼버들을 탄피식으로 재장전해 쏘는 장면이 있는데, 고증오류가 아니다. 1860년대를 넘어 기술이 발달하면서 뇌관식을 탄피식으로 바꾸는 개조는 쉽고 흔한 것이 되었다.[7] 퍼커션 캡에 탄두를 끼워 만든 총알로 실내사용을 염두에 둔 총기들에 갤러리건 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후 발전하여 림파이어 탄약이 된다.[8] 오프라인에서 구하기 힘들 뿐이지 재고가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다.[9] 영상의 배경음악은 나중에 영화 장고: 분노의 추적자군도: 민란의 시대OST로 수록된다.[10] 재밌게도 클리프가 미리 입에 납탄을 물고있어 배럴에 화약을 넣자마자 바로 총구를 입에 대고 뱉어 상대보다 더 빠르게 장전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주인공의 승리에 신빙성을 준다. 실제로 당시 엘리트 군인들은 더욱더 빠르게 재장전 하기 위해 입에 납탄을 물고있다 넣는 방식으로 장전했다는 기록을 인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