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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요렌테/클럽 경력/아틀레틱 클루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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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도 요렌테
2005-2013
파일:galeria50632.jpg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아틀레틱 클루브 (라리가)
등번호 9 (2005-2013)
32 (2005)
기록
파일:라리가 산탄데르 은행 로고(가로형/화이트).svg
262경기
84득점 23도움
파일:UEFA 유로파 리그 로고 화이트.svg
35경기
16득점 8도움
파일:코파 델 레이 로고.svg
35경기
16득점 6도움
파일:Supercopa-de-España-RFEF.svg
1경기
합산 성적
333경기
116득점 37도움
1. 개요2. 유스 시절3. 2004-05 시즌4. 2005-06 시즌5. 2006-07 시즌6. 2007-08 시즌7. 2008-09 시즌8. 2009-10 시즌9. 2010-11 시즌10. 2011-12 시즌11. 2012-13 시즌12. 총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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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난도 요렌테아틀레틱 클루브시절 활약상을 다룬 문서.

2. 유스 시절

11세의 나이로 아틀레틱에 입단하여 아틀레틱의 C팀인 CD 바스코니아[1]에서 성인무대에 데뷔 했고 같은 시즌 33경기에 출전해 12골을 터뜨리며 이름을 알린 요렌테는 일찌감치 팀의 미래를 이끌어 갈 대형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3. 2004-05 시즌

그렇게 기량을 갈고 닦던 요렌테는 18세의 나이로 라리가에 데뷔에 성공, 데뷔 시즌에 6골을 터뜨리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2004-05 시즌부터 B팀 소속으로 활약했으며, 2005년 세계청소년대회에 참가하여 세스크 파브레가스, 다비드 실바 등과 함께 스페인 대표팀으로 출전해 칠레 전에선 4골이나 넣으며 대회 득점 2위까지 오르는 등 선전했다.[2] 거인에 가까운 체구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뛰어난 발재간을 선보였기 때문에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에 빗대어 '즐렌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더 유명한 요렌테의 애칭은 'El Rey Leon(라이온킹)'이다. 그의 헤어스타일과 팀 별명 Los Leones(사자들)에서 유래했다.

2004-05 시즌: 20경기(선발 12경기) 6골 1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15 9 6 3 0
UEFA컵 1 0 1 0 0
코파 델 레이 4 3 1 3 1
<rowcolor=#fff> 합계 20 12 8 6 1

4. 2005-06 시즌

청소년 대표팀에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아틀레틱 성인팀으로 승격한 뒤의 활약상은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 2005-06 시즌에는 22경기 출전 2골만을 기록했다.

2005-06 시즌: 25경기(선발 13경기) 4골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2 12 10 2 0
코파 델 레이 3 1 2 2 0
<rowcolor=#fff> 합계 25 13 12 4 0

5. 2006-07 시즌

2006-07 시즌에는 23경기 출전 2골에 그쳤고, 득점력과 결정력 면에서 심각한 난조를 드러내며 아틀레틱 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결국 요렌테는 아리츠 아두리스와의 주전 경쟁에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없었다.

2006-07 시즌: 24경기(선발 3경기) 2골 3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3 2 21 2 3
코파 델 레이 1 1 0 0 0
<rowcolor=#fff> 합계 24 3 21 2 3

6. 2007-08 시즌

05-06 시즌 부터 06-07 시즌까지 한동안 침묵하던 요렌테는 2007-08 시즌에 이르러 11골을 터뜨리며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초반에는 똑같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시작했지만 점차 살아는 모습을 보여 팬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2007-08 시즌: 40경기(선발 29경기) 12골 4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5 25 10 11 3
코파 델 레이 5 4 1 1 1
<rowcolor=#fff> 합계 40 29 11 12 4

7. 2008-09 시즌

2008-09 시즌에는 아두리스가 마요르카로 떠나면서 요렌테는 부동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완벽한 주전으로 올라섰다. 요렌테는 리그 13골을 꽂아넣었고, 코파 델 레이에서도 맹활약하며 팀을 결승까지 이끌었지만 바르셀로나에게 4:1 패배하며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2008-09 시즌: 43경기(선발 43경기) 17골 7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4 34 0 13 4
코파 델 레이 9 9 0 4 3
<rowcolor=#fff> 합계 43 43 0 17 7

8. 2009-10 시즌

09-10 시즌 요렌테는 더 발전하여 리그를 14골로 마감했고 유로파 리그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8골을 기록했다. 이렇게 꾸준한 성장세에 힘입어 스페인 대표팀에도 합류, 2010년 월드컵 우승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9-10 시즌: 51경기(선발 49경기) 22골 8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7 35 2 14 5
유로파 리그 7 7 0 6 2
코파 델 레이 2 2 0 0 1
수페르코파 1 1 0 0 0
유로파 리그 예선 4 4 0 2 0
<rowcolor=#fff> 합계 51 49 2 22 8

9. 2010-11 시즌

요렌테의 진정한 전성기는 2010년 월드컵 이후에 찾아왔다. 하비 마르티네스, 이케르 무니아인, 수사에타 등의 성장과 함께 미드필드 지원의 수준이 높아지자, 리그 18골을 터뜨리며 아틀레틱을 리그 6위로 올려놓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스페인 대표팀에서도 토레스의 부진을 틈타 입지를 넓혀나가며 유로 2012 예선에서 3골을 넣는 수훈을 세웠다.

2010-11 시즌: 41경기(선발 40경기) 19골 7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8 37 1 18 6
코파 델 레이 3 3 0 1 1
<rowcolor=#fff> 합계 41 40 1 19 7

10. 2011-12 시즌

2011-12 시즌에는 새롭게 감독으로 부임한 비엘사 감독의 전술적인 지원 아래 리그 17골, 유로파 리그 7골, 코파 델 레이 5골을 몰아넣어 유럽 정상급 반열에 올라섰다는 호평을 받았다. 195cm나 되는 큰 키를 이용한 제공권 장악에 능하며 상대 수비진과의 몸싸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통 타겟맨 스타일이며, 중거리 슛이나 공간 침투, 그리고 볼 컨트롤도 괜찮은 선수다.

2011-12 시즌: 53경기(선발 45경기) 29골 5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32 24 8 17 1
유로파 리그 14 14 0 7 4
코파 델 레이 6 6 0 5 0
유로파 리그 예선 1 1 0 0 0
<rowcolor=#fff> 합계 53 45 8 29 5

11. 2012-13 시즌

2012년 여름 이적시장 당시 유벤투스행을 강력히 주장하였고, 훈련 거부까지 하는 등 이적 의사를 어필하였지만, 구단 측에서는 벤치에만 앉혀놓는 일이 있더라도 이적은 불허한다는 입장이라 결국 유벤투스 이적은 결렬되었다. 하지만 1년 남은 계약기간 때문인지 유벤투스 FC와의 가계약 루머 등 이적설이 나돌고 있다. 아틀레틱 팬들은 정나미가 떨어져 그냥 유벤투스로 사라져버리라고 욕을 하고, 소속팀에선 괘씸죄로 벤치를 달구고 있다. 2013년 1월 유벤투스는 보스만 룰로 요렌테의 영입을 확정지었고, 동년 6월 30일 부로 유벤투스에 공식 입단하게 된다.

2012-13 시즌: 36경기(선발 8경기) 5골 3도움
<rowcolor=#fff> 대회 경기 선발 교체 득점 도움
라리가 26 4 22 4 1
유로파 리그 6 2 4 1 2
코파 델 레이 2 2 0 0 0
유로파 리그 예선 2 0 2 0 0
<rowcolor=#fff> 합계 36 8 28 5 3

12. 총평

아틀레틱은 클럽의 레전드 텔모 사라 이후 좋은 스트라이커가 나타나지 않아 지금의 선수 영입 제도 방침까지 폐지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요렌테 덕에 그 우려를 말끔히 해소할 수 있었다.[3] 그런 만큼 클럽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특유의 영입 제도 탓에 강등권에서 허덕일 뻔한 아틀레틱 클루브를 구원했기 때문에 아틀레틱에게는 이케르 무니아인과 함께 절대로 타 클럽에 이적시키고 싶어하지 않을 귀중한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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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D 바스코니아는 1913년에 창단된 팀으로, 1997년부터 아틀레틱의 C팀이 되었다. 바스코니아는 94/95 시즌부터 지금까지 스페인 4부 리그인 테르세라 디비시온 소속이다.[2] 위의 두 선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페인 대표팀은 청소년 대표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구를 정복할 것처럼 엄청난 선수층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팀은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에게 패배하여 8강에서 탈락했다.[3] 이 순혈주의 영입 제도는 결국 나중에 규정이 좀 완화되긴 했다. 이런 내부논의가 오가던 시절엔 말 그대로 바스크 혈통이 분명한 선수만 선발했지만, 지금이 아틀레틱 클루브는 바스크 지역(에우스칼 에리아)에서 나고 자란 선수 중 선발로 확대되었다. 때문에 이냐키 윌리암스같은 이민 2세대 선수도 등장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