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8-22 00:16:25

페르난도 타티스


파일:external/pbs.twimg.com/CDSPcLaWgAAZlkJ.jpg
한만두 당시 2번째 만루홈런을 날린 후.
이름 페르난도 타티스 2세(Fernando Tatís, Jr.)
생년월일 1975년 1월 1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2년 아마추어 자유계약(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팀 텍사스 레인저스(1997~1998)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998~2000)
몬트리올 엑스포스(2001~2003)
볼티모어 오리올스(2006)
뉴욕 메츠(2008~2010)
가족관계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1. 개요2. 경력3. 기타

1. 개요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전설적인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선수.

총 11차례의 시즌 동안 통산 .265의 타율과 113홈런을 기록한 그저그런 평범한 선수였지만 단독항목이 개설된 만큼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다름아닌 1999년 시즌 도중 박찬호를 상대로 기록한 메이저리그, 아니 전 세계의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만두. 100년이 훨씬 넘는 MLB 역사상 한 이닝에서 만루홈런 두 방을 친 선수는 이 선수가 유일하다. 한국에서는 어째서인지 약쟁이로 오해 받는 경우가 잦다. 타티스는 약물 스캔들에 포함된 적이 없다.[1] SNS 계정을 통해 박찬호를 조롱했다는 정보도 거짓이다. 그 계정은 가짜 계정이다.

2. 경력

당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스카우터 역할을 하고있던 오마르 미나야[2]에 의해 발탁되어 1992년 17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아마추어 자유계약을 맺고 레인저스에 입단한다. 17살에 나이에 입단하여 비교적 빠른 속도로 마이너리그에서 성장해 나간 타티스는 계약 5년만인 199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콜업된다. 그렇지만 그 다음해 곧바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트레이드행...

그리고 자리를 옮긴 카디널스에서 이듬해였던 1999년 .298의 타율에 34홈런 21도루 107타점이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기록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폭발시킨다! 이 해가 바로 결코 잊혀질수 없는 사건인 한만두를 4월 23일 박찬호를 상대로 기록한 해이다. 여담이지만 당연히 이 한만두는 아직까지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으로 남아있으며 덧붙여 한이닝 한타자의 최다타점 경기로도 역사에 남아있다.[3] 굳이 한만두가 아니더라도 이 해의 성적은 정상급 3루수로 손색이 없는 기록이었고 그렇게 타티스는 자신의 전성시대를 열어가나 했는데.. 다음해 부상을 당하며 시즌을 후루룩 말아먹는다. 그리고 곧바로 몬트리올 엑스포스로 트레이드되며 전성기 대신 저니맨의 막을 힘차게 열어제끼기 시작한다. 따지고보면 이 때 타티스가 3루수로서 건강하고 단단하게 버텨줬다면 카디널스의 3루 빈 자리는 없었을테고, 당시 한창 마이너리그를 핫하게 달구고 있던 발전이 없는 잉여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는 어떻게 변했을지 알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4]



어쨌든 엑스포스로 가서도 부상을 떨치기는 커녕 유리몸 기질이 더 심화되면서 3년동안 총 208경기 출장에 그친 그는 이제 메이저리그 생존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2004년엔 스프링캠프 초청선수 자격으로 템파베이 데블레이스에 초청됐지만 생존경쟁에 실패했고 이후 그는 2005 시즌말까지 약 2년의 기간동안 고국인 도미니카에서 머무르면서 이렇게 초라하게 선수생활을 마감하나 싶었다.

그런데 2005년 말, 스토브리그 도중 뜬금없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더니[5] 같은 해 7월 마침내 콜업되면서 무려 3년가까운 시간만에 메이저리그 복귀에 성공한다![6] 그렇지만 뉴욕 메츠와 계약을 맺은 이듬해는 조용히 AAA에 머물렀고[7], 2008년에도 마이너에 머무르다 5월에 메이저리그 콜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9월 어깨탈골로 시즌을 마감하기 전까지 백업으로 쏠쏠한 활약을 선보이며 '올해의 재기상'까지 수상받는다. 이어 2009 wbc에서는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부상당하자 그의 대체자로 명단에 포함되기도... 이후 2010년까지 메츠에서 활약하던 타티스는 그 해를 끝으로 메이저리그 경력을 마감했고 그 후로는 3년간 윈터 리그에서만 뛰다가 2014년에 멕시칸리그에 진출하며 오랜만에 서머리그에 돌아왔다. 그러나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241을 기록하며 방출당했고, 결국 야구계에서 공식적인 은퇴를 선언한다.

3. 기타

해야갤산 드립으로 박찬호 인생 최대의 굴욕을 안겨준 타티스를 흔히 매국노라고 부르는 매국노 드립이 유명해서 전 야구 관련 커뮤니티로 퍼져나갔고, 이젠 메이저리그좀 보는 사람이면 다 아는(...)지경에 이르렀다.

디시인사이드에 페르난도 타티스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매국노갤러리

은퇴이후 한동안 SNS 등으로만 소식이 전해지다가 2017년 올스타전 홈런더비에서 미겔 사노의 배팅볼 투수로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의 반응은 만두만 먹을 줄 알지 배팅볼은 정말 못 던진다고...

아들 페르난도 타티스 3세(등록명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매국노의 씨앗도 야구선수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는 중.[8] 이쪽은 흔히 한만두 주니어 혹은 페타주로 불리는 중. 1999년생 우투우타 유격수로 18세에 싱글A에서 홈런 21개 도루 29개를 찍고 하이싱글A를 건너뛰고 바로 AA로 월반해버리는 등 상당한 재능이 있어 보이는 선수. 2017 BA 순위에서도 5위에 이름을 올렸는데, 1위인 오타니 쇼헤이가 투타겸업인 걸 생각하면 사실상 야수 4위로 몇 년 내로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어 보인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에게 한만두를 당한 박찬호가 샌디에이고 프런트로 같은 팀에 있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관련기사 번역

2018년 BA 순위에서는 9위로 약간 떨어졌지만 연내 데뷔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졌는데, 서비스타임 조절을 위해 결국 콜업은 되지 못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닌 서비스타임 조절을 위해 연내 콜업을 하지 않았던 것이므로 2019년에야말로 게레로 주니어와 함께 빅리그 데뷔가 확실해 보인다.

2019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어 MLB 데뷔가 확정되었다. 신인을 개막 로스터에 포함시키는 것은 굉장히 과감한 무브먼트라는 평과 동시에 타티스 주니어의 기대치를 알 수 있는 부분. 그리고 데뷔 첫 홈런을 전년도 KBO에서 뛰다 온 메릴 켈리에게, 한만두를 치던 날 아버지와 같은 궤적으로 쳐냈다.이후 4월 13일 켈리를 상대로 다시한번 홈런을 쳤다.해외야구 갤러리에선 매국노가문(...) 및 '역시 도련님'이라고 칭송 중이다.류현진과의 맞대결을 기대하는 야구팬들도 많다.-

동성애 스캔들에 연루된 적이 있다. FOX의 대표 아나운서 조 벅검열삭제를 한게 걸려 조 벅이 이혼당했다는 내용이다. 타티스 쪽은 어떻게 되었는지 추가바람.


[1] 도미니카 언론에서 나온 신빙성이 떨어지는 명단을 근거로 삼는다면, 페드로 마르티네스, 애드리언 벨트레 같은 선수들도 약쟁이가 된다.[2] 알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뉴욕 메츠의 단장출신이다. 시원하게 지르신 빅사이닝이 죄다 시원하게 말아드셔서 아직까지도 메츠가 10년 가까이 플옵 못나가게 하신 장본인이시지[3]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이 날 타티스가 쓴 헬멧을 보관 중이라고(!!!). 그는 정말로 딱 한 경기로 전설이 된 셈이다.[4] 푸홀스는 초창기에 3루수로 콜업되었으나, 1루에 정착하기 이전에는 그냥 외야고 1루고 3루고 자리 나는대로(...) 뛰면서 3할 30홈런 100타점을 찍었다. 베이스볼 레퍼런스의 2001시즌 세인트루이스 팀 기록을 봐도 푸홀스는 주전야수 8명 자리에 이름이 없고 그 밑에 당당히 유틸리티(...) 선수로 등재되어 있다. 37홈런 130타점의 유틸리티 플레이어[5] 교회를 지을 돈이 없어서 메이저리그로 돌아왔다고(.....)[6] 물론 주전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백업[7] 이때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는다![8] 원래 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있다가 제임스 실즈 트레이드 때 샌디에이고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