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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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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발견3. 의혹과 진상

1. 개요

파일:external/2.bp.blogspot.com/Persian_mummy.jpg

persian princess 또는 persian mummy라고 한다. 파키스탄발루치스탄 주에서 발견된 미라로, 고고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나 결국 위작으로 판정되었다. 게다가 위작으로 판정된 그 이면의 충격적인 사실까지 드러난 사건이다.

2. 발견

2000년 10월 19일, 파키스탄발루치스탄주 정부는 알리 아크바(Ali Aqbar)라는 남자에 관한 정보와 비디오 테이프를 입수했다. 그 비디오 테이프에서는 한 미라가 언급되었는데 바로 문제의 페르시아 공주였으며, 알리 아크바는 이 미라를 예술품 암시장에 6억 파키스탄 루피[1]에 출품했다. 발루치스탄주 정부는 파키스탄 문화재 보호법으로 그 남자를 고발했고, 미라를 환수했다.

한편 미라는 그 근처 부족의 족장 모하메드 리키라는 남자의 집에 보관 중이었다. 모하메드 리키는 훗날 이 미라를 샤리후 샤 바키라는 이란인에게서 받았고, 그 바키라는 이란인이 퀘타[2]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 덕에 입수했다고 주장했다. 직후 미라는 감정에 들어갔는데...

감정 결과 놀랍게도 이 미라는 기원전 600년 무렵의 것으로, 아케메네스 왕조의 제5대 국왕 겸 개조인 키루스 2세의 왕녀의 미라인 듯하단 분석이 나왔다. 시신을 고대 이집트 양식으로 감싸 목관에 넣었고, 다시 설형문자를 새긴 사르코파구스[3] 안에 안치했으며, 가슴 위 으로 된 플레이트에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딸, 로두구네"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미라는 페르시아에서 한 번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고고학자들이 주목했다.

여담으로 전술했다시피 이 문화재의 복잡한 내력 덕분에, 이란파키스탄 정부 사이에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란 정부는 '페르시아 왕실의 미라이니 당연히 이란에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파키스탄은 파키스탄대로 '우리나라 안에서 발견된 것이니 우리 문화재'라고 맞섰으며, 엉뚱하게 아프가니스탄탈레반마저 이 미라가 자국의 문화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3. 의혹과 진상

이후 이 미라가 뉴스를 타고 전세계로 알려지면서 조금씩 의혹이 불거졌는데, 대표적인 의혹은 다음과 같다.
  • 사르코파구스에 적힌 페르시아어의 문법이 틀렸다.
  • 금으로 된 플레이트에는 공주의 이름을 쐐기 문자로 '로두구네'라고 각명했는데, 이는 고전 그리스어다.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와르데가우나'라고 써야 하며[4], 더욱이 그것을 그리스 문자가 아닌 굳이 쐐기 문자로 표기한 부분에서 조작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다.
  •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기록에서는 크세르크세스 1세의 딸이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 단층촬영을 했더니, 미라의 양식이 페르시아 제국 치하 고대 이집트의 그것과는 판이했다. 대표적으로 이집트식 미라는 심장을 흉강에 고정하는데[5], 이 미라는 모든 내장을 제거했다.
  • 기원전에 제작한 미라라면 힘줄이 모두 썩어 없어져야 할 텐데, 이 미라는 힘줄이 그대로 남아 있다.
  • 사르코파구스에 조각을 위해 연필로 표시한 흔적이 있는데, 연필은 기껏해야 400여 년 전에 발명된 필기구다.
  • 결정적으로 목관을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목관은 겨우 250년밖에 되지 않았고 밑에 깔린 양탄자는 고작 5년밖에 안 되었다.

파키스탄 측이 이상하게 여겨 정밀조사를 한 결과, 이 미라는 발견되기 4년 전(1996년)쯤에 사망했다고 추정되는 21~25세 남짓한 여자의 시신이었다. 미라화된 시신의 목 부위에서 대형 둔기에 맞아 생긴 골절이[6] 발견되었다. 다시 말해서 페르시아 공주 미라는 살해당한 성명불상 여자의 시체였다.

시신은 사후에 치아가 모두 제거되고 골반뼈가 심하게 훼손된 상태였으며, 미라로 위장하기 위해서였는지 화학 분석 결과 시신의 몸과 머리카락은 표백되었고, 복부에는 중탄산염 소다와 염화나트륨 같은 현대적인 건조제를 채워 놓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미라를 만드는 데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해부학 전문가가 이 범죄에 참여했음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당연히 파키스탄 경찰은 수사에 착수하여 용의자를 심문했지만, 끝내 범인은 잡지 못했다.

피해자의 시신은 2005년 파키스탄의 최대 자선단체인 압둘 사타르 에디 재단에서 인수하여 조촐한 장례식을 치렀으며, 2008년에는 매장 허가가 나와서 정식으로 묘지에 매장되었다.


2017년 6월 25일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되었다.
[1] 2000년 당시 파키스탄 환율로 1,100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다.[2] 발루치스탄의 주도[3] 미라를 보존하는 석곽[4] 고대 중근동 어휘의 상당수는 최근에 와서야 실제 발음을 재구할 수 있게 되었고, 흔히 알려진 발음은 대부분 그리스식 발음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피라미드, 람세스 등이 있으며, 이 미라의 아버지로 여겨진 크세르크세스 역시 그리스식 발음이다.[5] 고대 이집트인들은 심장은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여겨, 사후 재판을 위해서 심장은 반드시 남겨두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모조 심장이라도 넣어 두었다.[6] 살해당한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BBC를 인용한 영어 위키백과 문서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뭉툭한 도구에 맞아 생긴 척추와 골반뼈 골절이 시신에 있었으므로, 뒤에서 오는 차에 치어 죽은 여자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