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back
1. 서양의 제책방식
책의 제본법 중 하나로 좁은 의미에서의 소프트커버(Softcover)를 말한다. 페이퍼백의 반댓말은 당연히 하드커버(Hardcover) 이다.본래 페이퍼백의 의미는 책 표지가 종이로 된 판본을 의미하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표지가 종이이고 접착제로 제본된 책을 페이퍼백이라고 부른다. 페이퍼백을 제작하는 목적이 보급을 위한 것이다보니 실제로 상당수의 페이퍼백들은 접착제로 제본되어 있다.
당연히 양장본이니 하드커버니 하는 것들보다 내구성은 떨어지고 없어보이지만, 값싸고 생산성이 높아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책의 종류다. 읽을 수만 있을 정도의 최저 비용으로 찍는 양산형 책이다. 일반적으로 같은 출판사, 같은 작가의 같은 도서라면 페이퍼백 가격이 하드커버의 절반 정도이다.
옛날 페이퍼백 책들은 기술적 문제로 누런 접착제가 비어져나온게 눈에 보일 정도였고 손바닥으로 눌러서 활짝 펴면 책장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현재로서는 페이퍼백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제본 품질은 한국제나 일본제에 비해 뒤떨어지는 건 여전하긴 하지만.
제법 자체는 이미 19세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흔히 '10센트 소설(Dime Novel)'이라고 말하는 싸구려 소설책이나 소책자를 만들때 주로 쓰였다. 최초로 대량생산 페이퍼백이 등장한 건 1931년 독일에서다. 현재도 서구권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는 종류이다. 페이퍼백을 보고 싶으면 도서관에서 하드커버가 아닌 외서를 찾아보거나, 대형서점의 해외코너를 가보면 된다.
또한 페이퍼백에는 매스 마켓 페이퍼백(mass market paperback)이 있다. 이건 책의 판형도 일반 페이퍼백보다 작고, 종이의 질도 가장 좋지 않은 대신 가격이 매우 싸다.[1] 말 그대로 보급형 염가판 서적인 셈. 책 가격과 품질의 순은 당연히 하드커버 > 페이퍼백 > 매스 마켓 페이퍼백의 순이다.
대체로 하드커버가 나온 후 반응을 살펴서 페이퍼백을 출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소설 등의 대중서적의 경우가 그렇다. 애초에 일반인의 수요가 적고 도서관 등에 비치(납본)되는 수요가 높은 학술서적은 하드커버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영미권에서는 성경책도 염가판은 페이퍼백으로 내는 경우가 흔하다.
손에 땀이 많은 사람의 경우 장갑이라도 끼고 읽지 않는한 얼마 못가서 버리게 될수밖에 없는 책이기도 하다.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만 읽으면 못읽을건 없지만 종국에는 물에 빠졌다가 건져서 말린 책마냥 되어 버린다.
2. 동양에서는?
한국과 일본에서는 페이퍼백 방식이 제본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페이퍼백이 외국 원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지경이다.한국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책은 반양장본이라 불리는 책이다.[2] 해외의 페이퍼백에 비하면 종이의 재질(材質)도 좀 더 좋고 책표면에도 대체로 코팅처리를 한 것들이 많다. 제본도 나누어 엮은 뒤 본드로 찍는 무선제본이나 아예 양장 사철제본이 주류이며 표지 자체도 적당히 두꺼운 종이를 날개를 안으로 하여 만든다. 또 하드커버로 만든다고 해서 이후 증판할 때 페이퍼백을 만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3] 즉 양장본, 반양장본이 주류이며 서구식 페이퍼백은 아예 없다고 봐도 좋다. 그냥 한국의 반양장본은 특히 무선제본 방식의 경우에는 한국식으로 고급화된 페이퍼백이나 다름 없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간혹 하드커버를 내놓고 나서 나중에 페이퍼백에 가까운 책을 내놓는 출판사들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열린책들에서 내놓는 각종 번역소설이다. 다만 이경우도 재생지를 쓰지않거나, 쓰더라도 표백제, 형광물질등의 화학 처리를 한 물건을 쓰며 비슷하지만 표지에 코팅처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히 똑같다고 보기 어렵다. 환경이나 건강관련 지적을 제외한다면, 물건으로서 퀄리티는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
이를 보고 한국의 상업성이라든가, 책이 지나치게 권위적이거나 고급화되었다거나, 책 시장 자체의 수요가 매우 적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뭐, 사실 한국 출판계 사정이 워낙에 현시창이고 이렇게라도 종이 퀄리티를 올려서 책값을 올려받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또한 출판하는 작가 입장에서도 페이퍼백같은 싸구려책을 판매대에 올리거나 선물하는 것이 체면상 문제라 반양장본을 한국식 페이퍼백처럼 쓰게 되었다. 근데 한국에도 출판시장 전성기에는 딱지본이라고 비슷한 물건이 있었다.
한국의 경우 민음사에서 펄프 라는 이름의 페이퍼백 픽션 전문 출간 브랜드를 2010년 초반에 만들어서 몇몇 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반응이 좋지 않았는지, 오래 가지 않아 관련 책들은 모두 절판되었고 브랜드 자체가 없어졌다. 펄프에서 나온 다카스기 료의 금융부식열도는 원작이 시리즈 소설로, 2편 격인 주박 편이 영화화 되는 등 일본에서 유명한 편이었다. 해당 편도 펄프에서 출간 예정이었다고 나와 있지만 출간되지 않았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없어진 브랜드.
일본의 경우 페이퍼백의 개념은 문고본(文庫本)으로 거의 완벽히 호환된다. 페이퍼백보다 종이 질은 좋지만, 크기가 양장본의 절반 이하. 그만큼 활자가 깨알같이 작아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대부분의 문고본이 소설 기준으로 권당 500~1,000엔 정도의 가격으로 나오기 때문에 2천 엔이 넘어가는 양장본에 비해 가격 메리트가 크다. 페이퍼백의 기능을 일본에서는 문고본이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나라에서 가장 대중적인 페이퍼백 책자는, 한국 서점에서 아이큐 점프, 혹은 일본 서점에서 소년 점프같은 만화잡지를 보면 된다. 컬러 페이지 몇 장 있는 것 빼면 거의 표준적인 페이퍼백 수준의 사양. 또한 일반적인 단행본도 페이버백으로 볼 수 있다.
[1] 해외의 페이퍼백은 만화책 회색종이보다 품질이 좀 떨어지는 회색톤의 종이를 쓴다고 상상하면 쉽다. 교보문고 등 대형서점의 원서란에 가면 한손에 들 수 있는 가벼운 갱지 재질의 작은 소설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걸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책들이다.[2]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그 쬐끄만 문고본조차 종이질만 보면 서구권 페이퍼백보다 굉장히 낫다(...)[3] 그러나 외서의 하드커버를 보면 알겠지만 한국의 하드커버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무엇보다 재질과 제책방식이 달라서 매우 가벼운 경우가 많다. 사실 이렇게 가벼우면서 변색이 잘 되지않는 종이나 상당히 비싼 종이로 페이퍼백에 쓰는 종이와는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