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플라비우스 마르키아누스 (Flavius Marcianus) |
출생 | 469년 |
사망 | 484년 |
직위 | 집정관 |
반란 대상 | 제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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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레오 왕조의 반란자. 제노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지만 진압당했다.2. 생애
아버지는 467년부터 472년까지 서로마 제국 황제였던 안테미우스이며, 어머니는 450년부터 457년까지 동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마르키아누스의 딸 아일리아 마르키아 에우페미아이다. 율리아누스의 이종사촌이며 발렌스 황제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프로코피우스의 후손이기도 하다. 그에게는 세 남자 형제 안테미올로스, 프로코피우스 안테미우스, 그리고 로물루스가 있었으며, 플라비우스 리키메르의 아내인 알리피아가 그의 여동생 또는 누나이다.마르키아누스는 동로마 황제 레오 1세와 황후 아일리아 베리나의 딸인 레온티아와 결혼하여 황실의 일원이 되었고, 469년과 472년에 단독 집정관으로 취임했다. 474년 레오 1세가 죽은 뒤 레오 1세의 사위 제노와 외손자 레오 2세가 공동 황제가 되었다가, 475년 레오 2세가 요절하면서 제노가 단독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제노는 동로마 제국민들이 멸시하는 아사우리아인 출신이었기에 입지가 매우 위태로웠고, 475년 바실리스쿠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도피했다가 1년만에 겨우 복귀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마르키아누스는 오랑캐 취급받는 제노보다는 황실의 핏줄을 타고났고 아내가 전 황제의 딸인 자신이야말로 황제감이라고 판단했다. 479년, 그는 형제 프로코피우스 안테미우스, 로물루스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 테오도시우스 포룸 남쪽의 카이사리우스 집터에 사병을 집결시킨 뒤, 황궁과 제노를 지지하는 일루스 장군의 집을 향해 진격했다. 반란군은 일루스의 집을 불태우고, 황궁 앞까지 진격해 제노를 거의 사로잡을 뻔했다. 그러나 그날 밤 일루스가 칼게도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이사우리아 부대를 이끌고 수도로 들어와서 반란군을 궤멸시켰다.
마르키아누스는 형제들과 함께 성 사도 교회로 피신했으나 곧 일루스의 부하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카파도키아의 카이사레아로 유배된 뒤 탈출을 시도했으나 체포되어 이사우리아의 파우리우스 요새에 수감되었다. 나중에 탈출한 뒤 군대를 일으켜 안키라를 공격했으나, 일루스의 동생 트로쿤데스에게 요격당하여 사로잡혔고, 재차 요새로 보내졌다. 484년 제논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일루스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다가 곧 폐위되고 오도아케르에게 원군을 요청하는 임무를 맡아 이탈리아로 보내졌다가 도중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