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3 16:59:45

피에르 2세 달랑송

성명 피에르 2세 달랑송
Pierre II d'Alençon
생몰년도 1340년 ~ 1404년 9월 20일
출생지 프랑스 왕국 알랑송
사망지 프랑스 왕국 아르장탕
아버지 샤를 2세 달랑송
어머니 마리 드 라 세르다
형제 샤를 3세, 필리프, 이자벨, 로베르
아내 마리 샤마이야르
자녀 장 1세, 마리, 카트린, 마르그리트
직위 알랑송 백작, 페르셰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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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장군.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섰다.

2. 생애

1340년경 프랑스 왕국 알랑송에서 알랑송 백작 샤를 2세 달랑송카스티야 연합 왕국의 영주 페르난도 2세 데 라 세르다의 막내딸인 마리 드 라 세르다의 3남으로 태어났다. 형제로 샤를 3세[1], 필리프[2], 이자벨[3], 로베르[4]가 있었다. 그는 1350년부터 기사가 되었고,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생포된 프랑스 국왕 장 2세를 대신해 1360년 잉글랜드로 보내진 인질 중 한 명이 되었다.

1370년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 국왕 샤를 5세의 동생인 장 드 베리의 부대에 입대한 뒤 남동생 로베르와 함께 아키텐에서 잉글랜드군과 맞서 싸웠다. 이들은 리모주를 공략했지만, 1371년 우손 공략에 실패했다. 1373년 프랑스 무관장 베르트랑 뒤 게클랭 휘하에 들어가 브르타뉴 전선에서 싸웠지만 엔봉 공방전 중에 부상을 입었다. 1375년 형 샤를 3세가 사망한 뒤 알랑송 백작이 되었으며, 1377년 남동생 로베르가 자손을 두지 못한 채 사망한 뒤 로베르의 영지였던 페르셰 백작령을 자기 소유물로 가져갔다. 1382년 동프홍 성을 개조했다.

1386년, 그는 자신의 시종 장 드 카르주와 종자인 자크 르 그리의 분쟁에 직면했다. 그해 1월, 장 드 카루즈는 스코틀랜드 원정에 봉사해서 입은 재정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파리로 가서 프랑스 국왕 샤를 6세에게 변제를 부탁하려 했다. 이때 그는 아내 마르그리트 드 티부빌을 어머니가 있는 코포메닐로 보냈다. 얼마 후, 자크 르 그리의 친구이자 하인인 아담 루벨이 코포메닐로 찾아와서 마르그리트에게 자크 르 그리가 그녀를 사랑한다며 만나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녀가 거절하자, 그리가 직접 찾아와서 비밀을 준수하고 상당한 보상을 줄 테니 성관계를 갖자고 제안했다. 마르그리트가 이번에도 거부하자, 자크 르 그리는 그녀를 강간했다.

이후 파리에서 돌아온 장 드 카르주는 아내 마르그리트에게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전해듣고 격분해 주군인 피에르 2세에게 자크 르 그리를 처형해달라고 요청했다. 피에르 2세가 자크 르 그리를 불러 추궁하자, 그는 자신이 그 당시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인을 불러서 마르그리트의 증언을 반박했으며, 평민이었던 자신이 백작의 종자가 된 것에 불만을 품은 장 드 카르주가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시켰을 거라고 주장했다. 피에르 2세는 고심 끝에 자크 르 그리를 종자에서 해임하는 선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장 드 카르주는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여기고 파리 의회에 이 사건을 재소했다. 그러면서 샤를 6세에게 결투 재판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승인을 얻어냈다. 결투 재판은 1386년 12월 29일에 파리에서 열렸고, 샤를 6세와 귀족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 드 카루즈가 자크 르 그리를 처단하면서 막을 내렸다.

1388년, 피에르 2세는 샤를 6세가 브라반트의 쥘리에 공작 기욤 6세를 상대로 원정을 벌일 때 참여했다. 1404년 9월 20일 아르장탕에서 사망했고, 페잉스의 샤르트뢰즈 뒤 발디외에 묻혔다. 1865년 수도원 예배당 폐허에서 발굴된 그의 유해는 페르셰의 르 팽라가 교회에 옮겨졌다. 그러나 그의 무덤은 곧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져 오랫동안 방치되었다. 그러던 2013년 10월 2일, 르 팽라가 교회 지하실에서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뼈가 발견되었다. 2017년 11월 18일, 그의 유골은 생 바르텔레미 교회에 재안장되었다.

3. 가족

  • 마리 마리 샤마이야르(1345 ~ 1425): 안테나이즈 영주 기욤 2세 샤마이야르의 딸.
    • 마리 달랑송(1373 ~ 1417): 아르쿠르와 오말레 백작 장 7세 다르쿠르의 부인.
    • 피에르(1374 ~ 1375): 요절.
    • 장(1375 ~ 1376): 요절.
    • 마리(1377): 요절.
    • 잔(1378 ~ 1403): 수녀.
    • 카트린(1380 ~ 1462): 모르탱 백작 피에르 데브뢰[5]와 초혼, 바이에른-잉골슈타트 공작 루트비히 7세와 재혼.
    • 마르그리트(1383 ~ 1400년 이후): 아르장탕 수녀.
    • 장 1세 달랑송(1385 ~ 1415): 알랑송 공작.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했다.


[1] 1337 ~ 1375, 알랑송 및 페르셰 백작[2] 1338 ~ 1397, 루앙 대주교, 예루살렘 라틴 총대주교, 아퀼레이아 총대주교, 오스티아와 사비나 주교[3] 1342 ~ 1379, 수녀[4] 1344 ~ 1377, 페르셰 백작[5] 나바라 국왕 카를로스 2세의 장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