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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의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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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2E2B5><colcolor=#000> 하워드 부인
요크의 앤
Anne of York
파일:Anne of York.jpg
이름 요크의 앤
(Anne of York)
출생 1475년 11월 2일
잉글랜드 왕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사망 1511년 11월 23일 (향년 36세)
배우자 제3대 노퍽 공작 토머스 하워드 (1495년 결혼)
자녀 토머스
아버지 에드워드 4세
어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
형제 엘리자베스, 세실리, 에드워드 5세, 리처드, 캐서린, 브리짓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결혼과 사망
3. 가족관계
3.1. 조상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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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 에드워드 4세엘리자베스 우드빌의 3녀이자, 토머스 하워드의 첫번째 아내.

2. 생애

2.1. 어린 시절

1475년 11월 2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에드워드 4세엘리자베스 우드빌의 3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 4세는 잉글랜드 왕국 요크 왕조 초대 국왕이고, 언니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훗날 헨리 7세와 결혼하여 잉글랜드 왕국의 왕비가 된다.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세례를 받았고, 이름은 고모 엑서터 공작부인 앤과 증조할머니 앤 드 모티머의 이름에서 따와 지어졌다. 당시 잉글랜드 왕실에서 앤이라는 이름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국 역사상 최초로 "앤"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공주가 되었다.

1479년, 에드워드 4세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은 앤과 펠리페의 혼사를 추진했다. 막시밀리안은 부유한 상속녀인 마리 드 부르고뉴와 결혼했고, 펠리페는 이 영지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또 에드워드 4세의 여동생인 요크의 마거릿이 마리 드 부르고뉴의 새어머니라는 인연도 있었다. 1480년에 결혼 협상이 완료됐지만 1483년에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계획은 무산됐다.

에드워드 4세가 사망했을 때 앤은 겨우 7살이었다. 12살의 오빠 에드워드 5세가 왕위에 오르고, 작은아버지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가 어린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 되었다. 앤과 에드워드 5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자신의 친족들을 주요 직책에 임명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였으나, 리처드는 엘리자베스의 남동생 앤서니 우드빌과 아들 리처드 그레이가[1]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씌워 재판 없이 처형했다. 이어서 조카 에드워드 5세와 요크 공작 리처드를 런던 탑에 감금시켰고, 이에 엘리자베스 우드빌은 앤을 비롯한 남은 아이들을 데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피신했다.

1483년 6월 22일, 리처드에드워드 4세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은 무효라고 선언하였으며 그들의 아이들은 모두 사생아로 만들었다. 그로부터 단 4일 뒤에 조카의 왕위를 빼앗고 국왕으로 즉위했다. 그 즈음 런던 탑에 감금되어 있던 앤의 오빠들인 에드워드 5세와 리처드 왕자는 홀연히 사라졌고, 엘리자베스 우드빌과 자녀들은 밤낮으로 리처드 3세의 감시를 받았다.

2.2. 결혼과 사망

1485년 리처드 3세가 보즈워스 전투에서 전사한 후 튜더 가문헨리 7세잉글랜드의 새 국왕으로 즉위했다. 헨리 7세는 에드워드 4세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자녀들을 적자녀로 인정해주었고, 1486년에는 요크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여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강화했다.

앤의 혼기가 차자 언니 요크의 엘리자베스는 적합한 신랑감을 찾아주려고 했다. 리처드 3세가 죽기 전 앤을 노퍽 공가의 토머스 하워드와 결혼시킬 계획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왕비는 이 결정을 따르기로 하였다. 토머스의 아버지가 에드워드 4세의 시종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이기도 했다. 19세의 앤과 21세의 토머스 하워드는 1495년[2] 2월 4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앤과 토머스 하워드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토머스는 앤의 시녀들과 바람을 피웠고 앤과의 사이에서 낳은 4명의 아이들은 모두 요절했다.

1503년 요크의 엘리자베스가 일곱 번째 아이 캐서린을 낳은 후 산욕열로 사망했다. 앤은 언니를 잃은 슬픔에 제대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6년 뒤인 1509년에는 형부 헨리 7세도 사망하여 조카 헨리 8세가 즉위했다.

앤의 사망 날짜는 정확하게 전해지지는 않으나 1511년 11월 23일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유해는 테트포드 수도원에 안장되었다가 프램링엄의 세인트 미카엘 교회로 이장됐다.[3] 토머스 하워드는 앤 사후 제3대 버킹엄 공작의 딸 엘리자베스 스태포드와 재혼했다.

3. 가족관계

3.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요크의 앤
(Anne of York)
<colbgcolor=#fff3e4,#331c00> 에드워드 4세
(Edward IV)
<colbgcolor=#ffffe4,#323300>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 플랜태저넷
(Richard Plantagenet, 3rd Duke of York)
제3대 케임브리지 백작 코니스버러의 리처드[4]
(Richard of Conisburgh, 3rd Earl of Cambridge)
앤 드 모티머
(Anne de Mortimer)
세실리 네빌
(Cecily Neville)
제1대 웨스트모어랜드 백작 랄프 네빌
(Ralph Neville, 1st Earl of Westmorland)
조안 보퍼트[5]
(Joan Beaufort)
엘리자베스 우드빌
(Elizabeth Woodville)
제1대 리버스 백작 리처드 우드빌
(Richard Woodville, 1st Earl Rivers)
리처드 우드빌 경
(Sir Richard Wydeville)
조안 비들스게이트
(Joan Bidlesgate)
룩셈부르크의 자퀘타
(Jacquetta of Luxembourg)
생폴 백작 피에르 1세
(Peter I, Count of Saint-Pol)
보의 마거릿
(Margaret of Baux)

4. 여담



[1] 첫 번째 남편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2] 1494년이라는 설도 있다.[3] 토머스 하워드가 사망한 후 앤과 함께 안장됐다. 원래는 남편이 아내의 오른쪽에 안장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앤이 왕족인 것을 고려하여 토머스가 왼쪽에 묻혔다고 한다.[4]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페드로의 외손자다.[5] 에드워드 3세의 손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