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강릉 함씨[1] |
출생 | 1893년 8월 19일 |
평안도 순천군[2] (현 평안남도 은산군 신창리) | |
사망 | 1942년 6월 24일 |
묘소 | 평안남도 은산군 신창리 |
상훈 | 대통령표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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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93년 8월 19일 평안도 순천군(현 평안남도 은산군 신창리)에서 아버지 함문종(咸聞鍾, 1865 ~ ?)[3]과 어머니 청주 한씨(1860 ~ ?)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그는 의사였는데, 1919년 2월 28일 경기도 경성부에서 박창빈(朴昌彬)이 기미독립선언서를 들고 귀향해 감리교회 목사였던 이윤영(李允榮)에게 전달하고는 함태호와 금융조합 서기 황경환(黃慶煥) 등 30여 명의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거사 당일인 3월 5일 오전 10시경, 3,500여 명의 군중이 신곡면사무소에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이때 그는 군중과 함께 독립선언식이 끝난 뒤, 시위군중과 함께 대대적인 시위행진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군 헌병에 의해 체포되었다.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3개월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1942년 6월 24일 별세했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