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즈먼 트로피 수상자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cd9f51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fff> 1935 | 1936 | 1937 | 1938 | 1939 | ||||
제이 베르왱거 | 래리 켈리 | 클린트 프랭크 | 데이비 오브라이언 | 나일스 키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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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하몬 | 브루스 스미스 | 프랭크 싱크위치 | 안젤로 베르텔리 | 레스 호바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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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 블랜처드 | 글렌 데이비스 | 조니 루잭 | 도억 워커 | 레온 하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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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자노윅즈 | 딕 카즈마이어 | 빌리 베셀스 | 조니 래트너 | 앨런 어미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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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캐서디 | 폴 호넝 | 존 데이비드 크로우 | 피트 도킨스 | 빌리 캐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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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벨리노 | 어니 데이비스 | 테리 베이커 | 로저 스타우벅 | 존 후아르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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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개럿 | 스티브 스퍼리어 | 게리 베번 | O. J. 심슨 | 스티브 오원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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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플렁켓 | 팻 설리번 | 조니 로저스 | 존 카팔레티 | 아치 그리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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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 그리핀 | 토니 도셋 | 얼 캠벨 | 빌리 심스 | 찰스 화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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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로저스 | 마커스 앨런 | 허셜 워커 | 마이크 로지어 | 더그 플루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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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잭슨 | 비니 테스타버디 | 팀 브라운 | 배리 샌더스 | 안드레 웨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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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데트머 | 데스몬드 하워드 | 지노 토레타 | 찰리 워드 | 라샨 살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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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조지 | 대니 워플 | 찰스 우드슨 | 리키 윌리엄스 | 론 데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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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와인키 | 에릭 크라우치 | 카슨 파머 | 제이슨 화이트 | 맷 라이너트 | |||||
<rowcolor=#fff> 2005 | 2006 | 2007 | 2008 | 2009 | |||||
| 트로이 스미스 | 팀 티보우 | 샘 브래드퍼드 | 마크 잉그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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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본타 스미스 | 브라이스 영 | 케일럽 윌리엄스 | 제이든 대니얼스 | }}}}}}}}}}}} |
<colbgcolor=#214388><colcolor=#fff> 허셜 주니어 워커 Herschel Junior Walker | |
출생 | 1962년 3월 3일 ([age(1962-03-03)]세) |
조지아 주 라이츠빌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가족 | 아들 크리스찬 워커 (1999년생) |
학력 | 조지아 대학교 ( 체육학 / 학사 ) |
정당 | |
신체 | 185cm / 102kg |
NFL 입성 | 1985년 드래프트 5라운드 114순위 댈러스 카우보이스 |
소속 구단 | 뉴저지 제네럴스 (1983~1985) 댈러스 카우보이스 (1986~1989) 미네소타 바이킹스 (1989~1991) 필라델피아 이글스 (1992~1994) 뉴욕 자이언츠 (1995) 댈러스 카우보이스 (1996~1997) |
포지션 | 러닝백 |
경력 | 하이즈먼 트로피 (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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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미식축구인, 종합격투기 선수, 정치인.2. 일생
2.1. 데뷔 이전
1962년 조지아 주 라이츠빌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비만과 언어장애 등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업 부진을 겪었고, 반에서 유일한 흑인인지라 담임교사로부터 구석에 앉혀져 여러모로 차별받는 불행한 일을 겪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이로 인해 다중인격장애를 겪었지만 부모만큼은 그를 사랑했는데, "남부터 탓하지 말고 자신부터 달라져라"는 충고도 했다.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에게 맞은 일을 계기로 그는 굳은 결심으로 팔굽혀펴기 및 윗몸일으키기 2,000회, 기차 따라 달리기, 타이어 묶고 달리기 등 고된 운동을 1년여 간 하여 듬직한 근육질 몸매를 지녔고, 존슨 카운티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 선수로 점차 활약하여 1980년 조지아 대학교에 진학한 후 미식축구 및 육상선수로 활약했는데, 미식축구부에선 빈스 둘리(1932~2022) 감독 밑에서 1980시즌 내셔널 챔피언까지 등극케 하는 등의 업적을 남겨 올 아메리칸 3회, 올해의 SEC 선수상 3회, 하이즈먼 트로피 등을 수상했다.[1]
2.2. 선수 경력
대학 시절 내내 허셜은 NFL 진출을 꿈꿨으나, 당시에는 졸업 후 드래프트에 신청할 수 있다는 규정 탓에 1983년, 당대 신생리그인 USFL 팀 '뉴저지 제너럴스'[2]에서 3시즌 동안 뛰며 점차 명성을 날렸고, 리그 해체 후인 1986년 NFL 팀 댈러스 카우보이스에 영입되어 1997년 은퇴 시까지 NFL에서만 4개 팀을 거쳤고, 1987 및 1988년 올 프로에 뽑혔다. 다만 리그 역사상 댈러스에게 최고이자 미네소타에겐 최악인 허셜 워커 트레이드의 당사자로 유명하다. 이후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때 미국 봅슬레이 대표팀에서 푸셔로 선발된 바 있다.1997년 은퇴 후 1999년 '르네상스 맨 푸드 서비스' 사를 세워 육가공/외식업종에 손을 댔고, 태권도까지 배워 5단을 땄다. 2007년 HDNet의 토크쇼 <인사이드 MMA>를 통해 종합격투기 선수가 되겠다고 선언하여 2009년 스트라이크포스와 계약을 맺어 2010년 1월 30일 마이애미에서 열린 vs. 그렉 네이지 전에서 데뷔한 이래 종합격투기계에서 점차 명성을 날렸다.
2.2.1. 허셜 워커 트레이드
이 문단이 따로 생성된 이유는 바로 이 선수의 트레이드가 NFL 역사상 가장 규모가 컸던 트레이드였고, 가장 불균형한 트레이드였다고 평가 받기 때문. 당시 카우보이스는 70년대에 첫 번째 전성기가 지난 이후 내리막을 걷던 팀이었고, 워커가 트레이드 되기 직전인 1988시즌에는 3승 13패로 리그 전체 꼴찌를 달성했다. 그리고 1989시즌 카우보이스는 트로이 에이크먼을 지명하지만 여전히 PO에 올라가기에는 부족한 전력이었다. 이 때 워커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그런 부진한 성적에도 올 프로에 선정될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고 있었다.이 때 1989시즌 새롭게 부임한 단장 겸 감독 지미 존슨은 리빌딩을 위해 1989시즌 시작된 이후 워커를 트레이드 매물로 내놓았고, 리빌딩을 위한 블록버스터 급 트레이드를 계획한다.[3] 카우보이스는 이 때 수많은 팀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처음에는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와 트레이드가 성사되나 싶었지만, 브라운스의 제안을 들은 미네소타 바이킹스가 연락을 받고 워커 트레이드에 합의를 한다. 당시 제안을 들은 바이킹스는 한끝차이로 대권에서 계속 떨어지던 터라, 워커가 대권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라는 판단하에 바이킹스는 5명의 선수, 3개의 드래프트 지명권, 5개의 조건부 지명권, 그야말로 보따리채로 댓가를 카우보이스에게 넘겼다.
이 때 카우보이스로 보내기로 했던 러닝백 대린 넬슨이 카우보이스에서 뛰기를 거부하면서, 추후 트레이드로 이 선수를 샌디에이고 차저스에 보내기로 하고 최종적으로 삼각 트레이드가 되었다. 이 중 바이킹스에서 카우보이스로 넘어온 데려왔던 5명의 선수가 팀에서 방출될 경우 조건부 지명권을 받는 조건까지 달렸는데, 문제는 지미 존슨 감독은 대놓고 지명권을 받으려는 스탠스였던 것. 그렇기 때문에 카우보이스는 나머지 4명을 모두 방출하여 조건부 지명권을 받으려고 하자 결국 바이킹스는 두손 두발을 다 들어 조건부 지명권을 유지하고 대신 카우보이스에게 3개의 지명권을 받게 된다.
DAL Get | LB 제시 솔로몬, LB 데이비드 하워드, CB 아이작 홀트, DE 알렉스 스튜어트 1990 드래프트 MIN의 1, 2, 6라운드 지명권 1991 드래프트 MIN의 1, 2라운드 지명권 1992 드래프트 MIN의 1, 2, 3라운드 지명권[4] |
MIN Get | RB 허셜 워커 1990 드래프트 DAL의 3, 10라운드 지명권 1990 드래프트 SD의 5라운드 지명권[5] 1991 드래프트 DAL의 3라운드 지명권 |
SD Get | RB 대린 넬슨 |
최종적으로 카우보이스는 선수 4명, 1라운드 지명권 3장, 총 지명권 8장이라는 엄청난 댓가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 트레이드는 엄청난 파장을 남기게 된다.
먼저 1990년 드래프트에서 바이킹스의 1라운드 지명권을 활용하여 후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에밋 스미스를 지명하고, 1992 드래프트에서는 바이킹스의 2라운드 지명권으로 거래한 끝에 대런 우드슨을 지명하게 된다. 이 때 에밋 스미스를 지명하면서 트로이 에이크먼, 마이클 어빈, 에밋 스미스로 이어지는 Triplet이 탄생하게 된다. 그 외에도 이 8장의 드래프트 픽으로 러셀 메릴랜드, 클레이튼 홈즈, 케빈 스미스 등 많은 선수들을 수집하면서 순식간에 전력을 구축해 강팀으로 다시 도약하게 되고 결국 카우보이스는 1990년대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하며 1992시즌, 1993시즌, 1995시즌 총 3번의 우승을 일궈낸다.
반면 바이킹스로 넘어간 워커는 1988시즌 1500야드를 찍던 포스는 어디가고 한 시즌 최다 러싱 야드가 825야드에 그칠 정도로 부진하여 바이킹스 팬들 사이에서는 먹튀로 찍혔으며, 바이킹스 역시 워커가 영입된 1989년[6]을 제외하면 오히려 대권은 커녕 플레이오프 무대도 밟지 못 했다. 결국 워커는 단 3시즌만 뛰고 필라델피아 이글스로 이적하면서 이 트레이드는 볼 것도 없이 카우보이스의 초압승으로 끝이 났으며, 바이킹스에게는 팀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2.3. 정치 경력
2022년 11월 8일에 있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했는데, 5월 24일에 있었던 당내 경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게리 블랙 주 농업 국장을 68.18% vs 13.35%로 압살하고 본선행을 확정지었다.하지만 10월 들어 허셜 워커에게 매우 큰 악재가 발생했는데 2009년에 전 여자친구에게 낙태를 요구하고 낙태비용까지 지불한 사실이 밝혀졌다.
주요 언론사에서는 이를 대서특필하고 있으며 공화당 후보로서 낙태에 공공연히 반대하고 있던 워커의 명백한 내로남불적인 행동에 조지아주 유권자들은 냉소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다. 당연히 워커측에서는 주요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민주당측의 거짓공작이라고 해명하고 있지만 병원비 영수증 등 증거가 너무 확실한지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공화당 지도부에서는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워커에 대한 지지선언으로 지원사격을 하고 있지만 한 때 워녹 의원의 지지율과 매우 근접하며 치열한 경쟁을 하던 워커의 지지율은 워녹과 명백한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일이 가까워지며 악화되는 인플레이션, 공화당원들의 집결로 다시금 상승세를 타던 주들의 공화당 후보들과는 정반대 상황.
결국 여러 논란으로 인하여 민주당 라파엘 워녹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워녹이 최종 50%의 벽을 넘지 못하면서 결선 투표까지 가긴 했지만, 워녹이 지난 선거에서도 결선 투표 끝에 승리한 경험이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게다가 11월 13일부로, 미국 상원은 네바다와 애리조나에서의 승리와 함께 민주당의 승리로 끝난 상황이라, 결선 투표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투표 포기가 줄을 이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거기다 결선 투표일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최근까지 실거주지가 조지아주가 아니라 텍사스주에 있었고[7], 여기서 상당한 수준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워커로서는 또 한번 더 궁지에 몰렸다.[8] 실제로 비슷한 논란을 겪었던 같은 당 메흐메트 오즈 후보가 결국 펜실베이니아의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패한 바 있다. #
2022년 12월 7일 미 NBC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조지아주에서 치러진 연방 상원의원 결선 투표에서 민주당의 라파엘 워녹 현 상원의원의 당선이 확정되며, 낙선했다. # 여러모로 메흐메트 오즈의 조지아주 버전.
3. 여담
- 미식축구 선수은퇴 후 정치입문 전까지는 텍사스 주에서 살았다.
4. 선거 이력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22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조지아 | | 1,721,200 (48.60%) | 낙선 (2위) | [결] |
5. 참고 자료
[1] 조지아 불독스는 1980년 우승 이후 오랜 침묵 끝에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 내셔널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2] 1984년에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팀을 산 바 있다.[3] 현재로 따지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트레이드 매물로 나온 S급 선수를 다수의 유망주를 주고 데려오는 것과 비슷하다.[4] 이 중 1990년 드래프트 지명권만 원래 받은 지명권이고 나머지 지명권은 모두 조건부 지명권이었으나, 카우보이스가 지명권을 받기로 하면서 전부 넘겨 받았다.[5] 대린 넬슨을 차저스로 보내고 바로 카우보이스가 바이킹스로 해당 픽을 보냈다.[6] 이 시즌마저 플레이오프에서 첫 경기에 당대 최강팀이었던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를 만나는 바람에 광탈했다.[7] 선거를 위해 2021년 여름에서야 조지아주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8] 이렇다 보니, 공약을 내밀었다 하면 "조지아주 공약이 아니라 텍사스주 공약 내밀었다."는 비웃음을 받았었다(...)[결] 결선투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