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治物語(へいじものがたり)
1. 개요
1. 개요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왕자(王者)가 인신(人臣)을 상찬함에, 화한(和漢)[1] 양국을 살펴보건대, 문무(文武) 이도(二道)를 앞세운다.[2] 문을 가지고서는 정치 만사를 돌보고, 무를 가지고서는 사방 오랑캐를 평정한다. 허면 천하를 보존하고, 국토를 다스리는 계책이란, 문을 좌로 하고 무를 우로 하는 것으로 사료될 따름이라. 예컨대 사람의 손으로 치자면, 한 손이라도 부족하여서는 아니 됨이라.
공정인의(公政人儀)가 참 중하도다. 천하의 안락은 여기 보였도다. 사해(四海)에 풍파 걱정이 없더니, 도대체가 말류에 이르러서는, 으스대는 자는 조정을 업신여기고, 드센 백성은 야심을 품는도다. (후략)
ㅡ호사(蓬左)본 헤이지모노가타리 서두
공정인의(公政人儀)가 참 중하도다. 천하의 안락은 여기 보였도다. 사해(四海)에 풍파 걱정이 없더니, 도대체가 말류에 이르러서는, 으스대는 자는 조정을 업신여기고, 드센 백성은 야심을 품는도다. (후략)
ㅡ호사(蓬左)본 헤이지모노가타리 서두
1159년 발발한 헤이지의 난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고전 군기(軍記) 모노가타리. 앞선 <<호겐모노가타리>>와 함께 후대의 군기 문학 걸작 <<헤이케모노가타리>>에 영향을 주었다. 중일(中日)의 고사를 두루 인용하고 유불신(儒佛神)의 이치를 말하는 등 귀족 식자층 작가에 의한 교훈성과 교양성이 드러난다.
호겐의 난에서 조정 편에 서서 전공을 올리고, 아버지와 어린 형제들까지 희생시키며 출세가도를 노렸던 명문 무가 겐지 수장 미나모토노 요시토모.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 무가 헤이케의 타이라노 키요모리에게 권력에서 밀리게 되자, 앙심을 품고서 헤이지의 난의 주역이 되어 조정에 반역한다. 기습을 통해 수도를 일시적으로 장악하지만 그 자신이 초래한 겐지의 분열과 헤이케의 반격에 의해 도리어 패망하고 만다. 결국 난신적자(亂臣賊子) 요시토모는 부하의 배신에 의해 살해돼 비참히 효수된다.
요시토모의 장남 요시히라는 키요모리의 장남 타이라노 시게모리와 맞붙으며 크게 활약하지만 그 역시 죽고, 겐지 세력이 와해됨에 따라 요시토모의 아직 어린 아들들이었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요시츠네는 유배길에 오른다. 이후 겐페이 합전 발발까지 약 20년 동안 헤이케가 무가의 지존으로서 영화를 누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