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김동리의 1935년작 소설.화자인 '나'가 조선판 아Q라 할 수 있는 황(黃) 진사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줄거리. 1인칭 관찰자 시점 소설이다.
작중 등장하는 '숙부'는 김동리의 형인 김범부가 모델이라는 해석이 많다. 김범부는 김동리와 16살이나 차이가 나 실제 아버지나 숙부와도 같은 위치였으며, 일제강점기 옥고를 치른 적이 있다.
대한민국 중등교육 6차 교육과정부터 고등학교 국어 과정에 들어갔으며 2002학년도 수능에 출제된 작품이다. 6차 교육과정 당시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원래 6차 교육과정에서 화랑의 후예 자리에는 동인문학상 초대 수상작인 김성한의 바비도[1]가 들어있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중세 교회를 알레고리로 한 사회풍자 작품이었고 여기에 버튼이 눌린(...) 한국 개신교계가 극렬히 반대하여 결국 바비도는 교과서에서 빠지고 1997년부터 화랑의 후예가 교과서에 실렸다.
2. 줄거리
어느날 '나'는 금광일을 하는 숙부에게 끌려서 황 진사에게 관상을 보고 돌아오고, 그 때부터 황진사를 알게 된다.황 진사의 본명은 황일재(黃逸齊)라고 하며, 나이는 60세쯤 되는 노인으로 평소에는 탑골공원에서 별로 하는 일 없이 관상을 보아 주는 것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황 진사는 충청도 출신으로, 문벌은 놀라운 양반이며 조상 대대로 정승과 판서가 많이 나는 명문가였다고 한다.[2]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과거 급제는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진사 노릇을 하게 된 것은, 어느 장난꾼이 그에게 서전과 춘추를 외우게 하고 장난으로 급제를 주며 '황 진사'라고 부른 것에서 비롯되었다.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반쯤 놀리면서 '황 진사', '황 진사'라고 불렀더니, 황 진사 자신이 오히려 그럴듯하게 여겨서 뽐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꾀죄죄한 꼴에 돈 없이 밥도 굶고 다니는 황 진사는 '나'와 알게 되자 거지처럼 빌붙는다.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이라는 흙가루를 가져와서 '나'에게 다짜고짜 선물로 주고 밥을 얻어먹거나, 낡아빠진 작은 책상을 억지로 팔거나 하는 등, '나'에게 여러 가지로 신세를 지게 된다.[3]
주역을 싸들고 다니면서 음양오행과 역리를 꼽아 '지략'과 '조화'를 부려보려 하는 것을 보고, '나'는 황진사가 말하는 '지략'과 '조화'라는 것이 고작 '쇠똥 위에 개똥 눈 것'이나 '친구에게 책상을 짊어지고 다니게 하는 것'인가 하고 한심하게 여긴다.
또 늙은 나이에 혈육이 없는 것을 한탄하였는데, 그러면서 19살짜리 오 씨 처녀나 갓 20살짜리 윤 씨 처녀와 결혼하고 싶은 눈치였다. '나'의 숙모는 그것이 불쌍해서, 숙부에게 황 진사를 장가보내 주자며 30세도 되지 않은 젊고 돈 많은 과부를 하나 중매하려 했다. 황 진사는 침을 질질 흘리며 달려들다가 색시가 과부라는 말을 듣자 기겁을 하며
"당찮은 말씀유……. 흥, 과, 과부라니 당치 않은 말씀을……." 그는 곧 호령이라도 내릴 듯이 누렇게 부은 두 볼이 꿈적꿈적하며 노기 띤 눈을 부라리곤 하더니, 엄숙한 목소리로
"황후암(黃厚庵)[4] 육대 종손이유."하고 다시,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갈 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황후암(黃厚庵)[4] 육대 종손이유."하고 다시, "황후암 육대 손이 그래 남의 가문에 출가했던 여자한테 장갈 들다니 당하기나 한 소리요……? 선생도 너무나 과도한 말씀이유."
결국 숙모는 내일이라도 젊은 처녀한테 장가가라고 비꼬고 숙부는 딱했던지, "일재, 일재. 염려 말우. 농담했수. 그럼 일재 되구야 한번 타문에 출가했던 사람 과 혼인을 하다니 될 말이유? 내가 어디 황후암을 모루, 황익당을 모루?" 한즉, 그 때야 그도 "아, 아무렴 그랴 그렇지, 거 어디라구, 함부루 어림없이들……." 얼굴을 펴고 이렇게 높은 소리로 외쳤다.
평균수명이 상대적으로 지금보다 짧던 시대에 60세가 다 된 나이에 재산도 없고 특별한 직업도 없는 황 진사에게, 재산 많은 20대 여자라면...[5][6] 조선시대에도 평민, 천민들은 재가가 당연했고 양반 여인이 수절하는 풍속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던 시대에는 구시대의 유물이었지만, 황진사가 그만큼 과거에 사로잡힌 인물이라는 하나의 장치인 셈이다.
나중에 숙부가 대종교 사건으로 검거되고 가택 수색과 금광 채굴 금지를 당하게 되자, '나'도 매우 곤란한 처지가 되었다. '나'는 감옥에 갇힌 숙부님을 면회하고 오던 길에 황 진사를 만나게 된다. 황 진사는 '나'를 붙잡고 호들갑을 떨며 인사를 하더니 "이리 잠깐 오, 날 좀 보." 하고, 그는 나를 한쪽 구석에 불러 놓고, 지극히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노라고 한다. 무슨 큰일이 났나 긴장해서 들어봤더니 글쎄,
"아, 이럴 수가……. 온, 내 조상이 대체 신라적 화랑이구랴!"[7]
라는 개드립으로 '나'의 어이를 탈출시켜 버린다. 오랜만에 본 사이에 숙부의 처지도 묻지 않으면서 한다는 소리가 옛날 고리짝 책을 뒤지다 보니 먼 조상님이 화랑이라 감격했다는 개소리...
그리고 또 얼마 후, '나'는 숙부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다가, 일본 진료소 근처에서 황 진사가 시장거리에서 만병통치약이라면서 두꺼비 기름을 팔다가 순사에게 붙들려 가면서도 점잖게 걸어가는 광경을 목격한다.
3. 같이보기
[1] 자세한 건 헨리 5세 항목을 참조.[2] 조선시대에 충청도 지방에 문벌 양반이 많았으므로 충청도 출신으로 설정했을 가능성이 높다.[3] 숙부 댁에 신세지는 청년 하나 알았다고 즉각 들러붙을 리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화자에게 오고, 화자에게 거절당하면 다른 사람에게 가고 하는 식으로 면식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 빌붙었을 가능성도 있다.[4] 실존인물인지는 불확실. 하지만 만약 현실에 있는 황씨 가문의 유명한 중시조 등을 여기에 썼다간 작가가 멱살잡이를 당했을 테니 아마 창작인물일 것이다.[5] 작중에서도 여자가 아깝다는 말이 나온다. 숙모가 과부를 언급하자, 지도 과부지만 그렇게 나이 많은 사람에게 시집을 가겠냐고 숙부가 의문시하며 말하는 것.[6] 그런데 정작 예상치도 못한 황진사가 정색을 하면서 황진사가 더욱 극적으로 풍자된다.[7] 6차 과정 문학 교과서에서는 이 화랑 운운하는 부분이 빠진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왜 이 소설의 제목이 '화랑의 후예'인지 몰랐던 학생들도 제법 있었다. 제일 중요한 대목을 빼다니 이 부분이 삭제된 편집본은 바로 만병통치약 판매하다 잡혀가는 부분으로 바로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