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히 판 베토벤|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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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피아노 협주곡 제5번 내림마장조 작품번호 73 Klavierkonzert Nr.5 in Es-dur Op.73 Piano Concerto No.5 in E flat major Op.73}}} | |
창작시기 | 1808년 - 1811년 |
작곡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장르 | 피아노 협주곡 |
초연일 | 1811년 11월 28일 |
초연 장소 |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라이프치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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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 5번으로 부제는 '황제'다. 원제는 Konzert für Klavier und orchester No. 5 ‘Kaiser’ Op. 73유명한 베토벤 찬미자인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이 ‘걸작의 숲’이라고 부른 베토벤 제2기의 여러 걸작들[1] 중 하나이며, 피아노 협주곡 장르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이다. 부제인 "황제"는 작곡자 자신이 붙인 것이 아니고 후세에 출판업자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전 5곡[2]은 각 곡이 가진 나름의 특징과 매력 덕분에 다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이 중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음악성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 측면에서도 그 절정에 도달한 곡이다.
2. 작곡 배경
이 협주곡은 1808년 12월경부터 이 곡의 스케치에 착수하였다가 이듬해 1809년 4월 경에 스케치를 완성, 같은 해 여름에 총보를 완성했다.1808년 당시 베토벤은 든든한 후원자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과의 갑작스러운 불화로 후원이 끊겨 재정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이었는데(루트비히 판 베토벤/인간관계항목 참조), 이 때 나폴레옹의 동생이자 나폴레옹 제국의 괴뢰국인 베스트팔렌 왕국의 왕이었던 제롬 보나파르트로부터 궁정악장 제안을 받게 되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몹시 싫어했지만 제롬이 제시한 거액의 연봉에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는데, 이 때 다행히 베토벤을 아꼈던 빈의 귀족들이 그를 후원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롭코비츠 공작, 킨스키 공작, 루돌프 대공 등 세 사람이 후원자로 나섰는데 1809년부터 연 4000 플로린의 연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후원 약속을 하자마자 나폴레옹 전쟁이 다시 발발했고 이에 장교 신분이었던 킨스키 공작은 군대에 복귀했는데, 복귀한지 2달만에 예기치 못한 낙마사고로 사망했다. 또 롭코비츠 공작은 전쟁으로 빈의 화폐가치가 폭락하는 바람에 은행에 넣어둔 돈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파산해 버렸다. 결국 약속한 후원금은 루돌프 대공 혼자 떠안게 되었는데, 황족이었던 루돌프 대공은 나폴레옹군이 연전연승하면서 빈까지 점령할 상황이 되자 결국 피난을 떠나야 했다.[3]
이 때문에 1809년 당시 베토벤의 경제적인 궁핍은 극에 달했고 신변에 대한 불안도 큰 상황이었다. 특히 당시 청력에 문제가 있었던 베토벤은 전쟁으로 인한 소음에 상당히 민감해 했는데, 하필 살고 있던 집 주변에 포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베토벤은 한동안 동생 카스파의 집 지하실로 피신했으며 소음으로 청력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베게 등으로 귀를 막고 지냈다고 한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는 불안이나 고통의 흔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영웅적이고 힘에 넘치는 분위기가 가득한데, 불굴의 사나이 베토벤답게 언젠가는 이 어려움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곡의 주 조성이 '영웅의 조성'으로 불리는 Eb장조인 것만 봐도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작품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협주곡에 '황제'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는 불명확하다. 일설에 따르면 이 곡의 빈 초연 당시 관람석에 있던 한 프랑스군 장교가 '이 곡은 황제다!'라고 외친 것에서 황제라는 별명이 유래했다고 하는데 특별한 근거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베토벤은 민중의 해방자를 자처했다가 황제가 된 나폴레옹을 위선자라고 비난하면서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황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이 곡의 큰 규모와 화려한 피아니즘 및 곡 전체에 흐르는 남성적이고 영웅적인 분위기가 '황제'라는 별명과 나름 어울리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출판업자들이 황제라는 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현재에도 이 별명이 통용되고 있다.
2.1. 초연
이 협주곡은 전쟁의 여파로 인해 완성된 후 2년 가까이 공연도 출판도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비공식 초연은 이 작품이 완성된 후 1811년 1월 13일에 롭코비츠 공작의 성에서 열렸던 정기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제자였던 루돌프 대공의 독주로 처음 외부에 공개되었다. 이 초연 이후 약 3개월 후에 악보가 출판되었는데 이 악보는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됐다.그리고 같은 해 11월 28일에, 라이프치히에 있는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에서 요한 필리프 크리스티안 슐츠의 지휘와 피아니스트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프리드리히 슈나이더(1786-1853)의 독주에 의해 첫 공개 초연이 이루어졌고 1812년 2월 12일에 빈의 쾰른토나토아 극장에서 베토벤의 유명한 제자인 카를 체르니의 피아노 독주로 초연이 이루어졌다.
피아노 협주곡 1번부터 4번의 초연의 독주는 모두 베토벤 본인이 담당했는데 이 작품은 다른 연주자가 독주를 담당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그가 이 작품을 구상하고 작곡했던 1809년경부터 난청이 크게 악화되어 연주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짐작하고 있다. 당시 프랑스군이 빈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포성과 드럼소리 등의 큰 소음들이 베토벤의 난청을 악화시켰다고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
3. 곡의 형태
3.1. 제1악장 : Allegro
1악장은 전반적으로 소나타 양식에 충실하지만 기존의 고전기 협주곡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혁신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다. 보통 고전기의 협주곡은 몇분간의 관현악 서주가 연주된 후 독주악기가 본격 등장하는데 이 5번 협주곡은 4번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초반부터 독주악기가 힘차게 등장한다. 하지만 4번의 협주곡의 피아노 서주가 말 그대로 도입(introduction)에 해당된다면 5번 협주곡의 서주는 카덴차에 가까운 강렬한 음향과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면서 이후 이 곡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준다.
혁신적인 피아노 도입부의 독주도 빛나지만 이 협주곡에서는 협주곡의 1악장의 종결부에 으레 등장하는 연주자의 기교를 한껏 과시할 수 있는 카덴차가 등장하지 않는데 이 역시 음악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카덴차가 생략되면서 1악장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역동성과 긴장이 계속 유지된 상태로 2악장으로 넘어가기 때문. 이런 파격적인 구성은 이른바 "교향적 협주곡"이란 개념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관현악이 단순히 독주악기를 보조하는 위치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좀더 유기적이고 적극적으로 곡 전반에 참여시키려는 베토벤의 의도가 엿보인다.
3.2. 제2악장 : Adagio un poco mosso
1악장의 넘치는 힘과 에너지가 잦아들면서 야상곡 풍의 명상적이고 성스러운 B장조의 2악장이 시작된다. 아름답고 명상적인 선율이 약음기를 사용한 바이올린 연주 위로 이어지고 그 위로 펼쳐지는 피아노의 맑고 투명한 연주가 변주 형식으로 진행되며 트릴 연주가 적재적소에 인상적으로 빛난다. 2악장 말미에 피아노에 의해 3악장의 주제가 살짝 엿보이면서 중단없이 바로 3악장으로 넘어간다.[4]
3.3. 제3악장 : Allegro
2악장에 이어 아타카로 쉼없이 이어진다. 론도형식으로 활기차고 생동감 넘치는 춤곡과 같은 주제가 피아노 독주와 관현악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박진감있게 피날레까지 이어진다.4. 기타
- 영화나 광고에 많이 등장하는 편인데 특히 맑고 명상적인 2악장이 자주 선호된다.
- 클래시컬로이드에서 이 곡을 리메이크 한 '황제의 미학'이 등장했다.
- 장대하고 심포닉한 연주효과와는 별개로 (달리 표현하면 필요충분한 만큼의 대단히 효율적인) 관현악이 심플한 편이어서 대곡임에도 일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조금 심심해하는(....) 곡이기도 하다.
금관악기 주자는 그냥 '빠암'과 '뿜뿌붐'의 반복이다
- 이 작품은 베토벤이 완성한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이다. 이후에도 피아노 협주곡 작곡을 시도했지만 1악장 일부만 작곡한 상태에서 중단되었다.
[1] 베토벤의 작품시기 분류상 중기에 해당하는 베토벤의 30대중후반에 작곡된 곡들 - 영웅교향곡, 교향곡 4번, 교향곡 5번, 전원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라주모프스키 현악4중주, 피아노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피아노소나타 23번 "열정", 피아노 협주곡 4번, 코리올란 서곡, 피아노소나타 26번 "고별", 피아노 3중주 "대공" 등등[2] 작곡순서대로 하면 2번 협주곡 B플랫장조 → 1번 협주곡 C장조 → 3번 협주곡 c단조 → 4번 협주곡 G장조 → 5번 협주곡 E플랫장조 "황제" 순이며 초기작인 1,2번은 그의 교향곡 1,2번과 비슷하게 하이든, 모차르트 등의 음악적 선배들의 영향이 느껴지면서도 그의 음악적 특징들이 언뜻언뜻 드러나며 나름 취향저격하며 애호되는 곡들이다.[3] 이 어려운 와중에서도 루돌프 대공은 틈틈이 베토벤에게 후원금을 지원해 주었다. 전쟁을 피해 피난을 떠나는 루돌프 대공과 작별할 때의 슬픈 심정을 토로하고 재회를 기원하면서 쓴 작품이 바로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이다.[4] 이처럼 악장이 중단없이 이어질 때 악장 말미에 다음 악장의 주제가 드러나게 하는 수법은 바이올린 협주곡 Op. 61의 2악장이나 전원 교향곡 Op. 68의 4악장 등에서도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