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황혜성(黃慧性) |
출생 | 1920년 7월 5일 |
충청남도 천안군[1] | |
사망 | 2006년 12월 14일 (향년 86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서울강남의료원 | |
직업 | 조선왕조 궁중음식 요리 연구가 대학교수 작가 저술가 |
출신학교 | 천안보통학교[2] 공주공립고등여학교 후쿠오카 치쿠시(筑紫) 고등여학교 교토여자전문학교 가사과 |
가족 | 남편 청주 한씨[3] 한병덕1917년 6월 6일생 장남 한문규1945년 4월 15일~1962년 8월 2일 {요절} 장녀 한복려1947년 5월 13일 차녀 한복선1949년 10월 23일 3녀 한복진1958년 10월 17일 차남 한용규1958년 1월 11일 |
[clearfix]
1. 개요
黃慧性, 1920년 7월 5일 ~ 2006년 12월 14일조선왕조 궁중음식의 연구가이자 대학 교수. 1920년 충청남도 천안군의 평해 황씨 집안에서 대지주의 맏딸로 태어났다.[4] 스승으로는 조선왕조 마지막 주방상궁인 한희순이 있으며, 그녀에게서 조선 왕조 궁중 음식을 전수받았다.
공주공립고등여학교에 다니다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후쿠오카 치쿠시고등여학교를 졸업했고, 교토여자전문학교 가사과에 진학하여 식품영양학과 일본 요리를 공부했다. 귀국 후 대동고등여학교에서 가사를 가르치며 2학년 담임과 기숙사 사감도 맡았다가, 숙명여자전문학교 가사과 교수가 되어 식품영양학과 한국 요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황혜성은 이를 위해 한희순에게서 한국요리와 조선왕조 궁중요리를 전수받는다.
6.25 전쟁이 일어나 숙명여전이 부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어, 황혜성은 숙명여전 가사과 교수를 그만두고 영등포여자고등학교 강사가 되어 가사를 가르쳤고, 이후 명지대학교와 한양대학교 가정학과 교수, 성균관대학교 가정대학 학장을 지냈다.
한복 연구가이자 단국대학교 교수였던 석주선의 격려로, 조선왕조 궁중요리를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해 노력했다. 황혜성의 노력으로 조선왕조 궁중요리는 1970년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로 등록되었다. 1972년 궁중요리 기능보유자였던 한희순 상궁이 별세하자, 황혜성이 뒤를 이어 궁중요리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한편 그녀의 딸들도 어머니의 뒤를 이어 한국 요리와 조선왕조 궁중 요리를 연구하고 보급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후 장녀인 한복려가 3번째 궁중요리 기능보유자가 되어 계승하고 있다.[5]
2. 주요 저서
- 《이조궁정요리통고 (李朝宮廷料理通考)》 (1957년)
- 《한국요리백과사전》《한국의 미각》 (1976년)
- 《컬러판 가정요리교실》(1981년)
- 《한국의 요리 (韓國의 料理)》 (1982년)
- 《한국음식》《전통의 맛》 (1985년)
- 《한국의 식(韓國의 食)》 (1987년)
- 《한국의 전통 음식》 (1989)
- 《조선왕조 궁중 음식》 (1993)
- 《한국음식 대관-6권 궁중의 식생활》 (1997년)
- 《우리 음식 백가지》( 1998년)
- 《궁중음식》
- 《한국의 미학 (韓國의 味覺)》
- 《전통의 맛》
- 《12첩 수라상으로 차린 세월》: 궁중음식연구원 홈페이지에 연재되어 있다.
- 《고종24년 진찬의궤 찬물에 대한 분석적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