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30 19:29:27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

<colbgcolor=#ACB8C4><colcolor=#000000>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
Juan Martínez de Recalde
파일:960px-Juanmartinezderecalde.jpg
성명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
Juan Martínez de Recalde
출생 1540년
스페인 제국 빌바오
사망 1588년 10월 23일 (향년 47~48세)
스페인 제국 라코루냐
아버지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 사에스 데 라리나가
어머니 산차 데 라리나가
직위 산 후안 함대 사령관,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
1. 개요2. 생애

1. 개요

스페인 제국의 제독. 스페인 대함대의 1차 잉글랜드 원정에 참여했다.

2. 생애

1540년경 스페인 제국 빌바오에서 후안 마르티네스 데 레칼데 사에스 데 라리나가와 산차 데 라리나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에 스페인 해군에 입대하여 비스케이 함대에서 활동했다. 그러던 중 인도양 함대 3척 중 갤리선 1척을 이끌고 쿠바에서 세비야로 항해하는 보물선을 지키던 그는 마데이라섬 인근 해역에서 잉글랜드 함선 7척을 공격받았다. 이에 레칼데는 굳건히 버티며 6시간 동안 화약과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싸운 끝에 적선 4척을 격침했고, 다른 적 함선들은 경악해 도주했다. 이리하여 보물선을 세비야까지 안전하게 운송하는 데 성공한 그는 큰 명성을 얻었고, 그 공로로 라레도 함대의 최고 사령관직을 맡았다.

1580년 9월 10일, 스페인 함대가 세바스티아노 디 산 주세페(Sebastiano di San Giuseppe)가 지휘하는 스페인 및 이탈리아인으로 구성된 교황군 600명을 딩글 반도의 스머윅[1]에 상륙하도록 했다. 이들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지시에 따라 잉글랜드 왕국을 상대로 데스몬드 반란을 일으킨 아일랜드인을 돕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3세가 비용을 지급하고 구매한 무기 수천 개를 지녔다. 그들은 잉글랜드 토벌군을 상대로 스머윅 공방전을 치렀으나, 끝내 항복한 뒤 모조리 학살당했다.

이후 친구이자 동료였던 미겔 데 오켄도와 함께 초대 산타크루스 후작이자 스페인 함대 총사령관 알바로 데 바잔 이 구즈만의 측근이 되었고, 1582년 테르세이라 해전과 1583년 스페인 제국의 아소르스 제도 정복에 모두 참여해 승리에 공헌했다. 그 후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로부터 함선 8척과 파타슈 4척으로 구성된 함대를 지휘하는 임무를 맡아 아일랜드 해안을 수색하면서 잉글랜드 정부에 불만을 품은 가톨릭 성향 아일랜드인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1587년 스페인 대함대의 1차 잉글랜드 원정에 참여한 그는 메디나 시도니아 공작 알론소 데 구즈만 이 소토마요르에 의해 제독 계급을 받았다. 그해 7월 대함대의 선봉대를 맡은 그는 잉글랜드 해군과의 초기 전투를 진두지휘했다. 원정이 실패로 돌아간 뒤 아일랜드해를 거쳐 라코루냐로 돌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열병과 전투로 입은 부상이 겹치면서 중병을 앓다가 항구에 정박한 지 며칠 만인 10월 23일에 사망했다.
[1] Smerwick. 아일랜드식 명칭은 아르드 나 카이트네(Ard na Caithne)